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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반도의 등줄 태백을 따라 치달아 내리던 팽팽한 긴장이
대팻날 옹이 걸리듯 움찔 하는동안 불끈거리는 기운으로 치솟았다.
시작머리 내리치는 기운으로 보아서야 한치도 물러설것이 없는
덕대였지만 주체못하던 기운이 삼도(三道)를 두고
문어발로 쪼개지면서 그중 한 가닥이 점점히 흘러
땅끝 서포에 와서는 종체 그 기세조차 가물거리고 말았다.
대해로 이는 바람따라 열리던 팔도의 물길조차
토말(土末) 서포어름을 끝으로 닿줄을 내렸다.
이렇듯 황포나루 물길이야 애시당초 물건넌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삼남제일의 명산 지리등날 끝머리에 줄이라도
놓은덕에 산중에서 나는 산채목피기물이 부지기로 흘러들었다.
대동아(大東亞)전쟁이나 한국동란까지 거슬러 올라가
장세(場勢)를 궂이 들먹이지 않아도 불과 몇십년전
그러니까 자유당 시절은 물론 군사 혁명당시만 하여도
가근방에서는 내노라 하고 축에드는장이 바로 여기 였다.
곤명 완사장....!(昆鳴阮沙場)
매, 일일, 육일의 오일(五日)장 이다
끝녀 말남(末娚)이 장터물을 손 끝에 묻힌지도 햇수로 따진다면
제법 터수가 있어 이제 상호에서 늙수그레티가 상당 했다.
말녀의 부(父)강태(康台)가 일찍이 요절하여
인망가패(人亡家敗)하는 절운(節運)을 맞았으나
다행히도 그녀는 삼장십악(三障十惡)과 효녀순부(孝女順婦)의
도리(道理)가 강태로부터 훈육되어 정도(正道)의 용자(容姿)는
어렵사리 갖추고 있었다.
땅쪼아 홈파먹던 재주 외에는 가진것이라고는 파리발톱만큼도
없던 말녀의 엄니가 이참에 어중잽이 하나를 붙들어
그녀를 쫓아내듯 출가 시켜 버렸다.
물건너 언뜸 금성이 안태봉인 그녀의 남편 봉수(奉洙)는
말그대로 어중잽이였다.
타고난 태성이 악착스럽지 못하고 독한 맛이 없다보니
어느 한가진들 진득하니 붙들고 끝장을 보지 못했다.
남새밭 수앙질에서 부터 산판등짐과 대장간 불무질로 쇠벼르는
메질까지 안해본 일이 없으나 약해빠진 근골(筋骨)탓으로
매번 중도에 손을 놓았다.
장터에 눌러 있던 사당패들의 어름사니와 홀딱거리던 땅재주가
대충막장에 들고 기우뚱하니 저물던 동짓달 짧은 햇살이
잠시 문살에 번지는가 했는데 얼런거리던 남편 봉수의 그림자가
그날 이후 말녀의 눈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중잽이의 불어터진 붕어 주둥이를 통해 직설로 들은 말은
아니지만 드팀전 코신장사 말이 봉수가 사당패 작물(作物)을
둘러메고 땅꾼처럼 사당뒤를 쫓았다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여편네와 눈 한번 애살스럽게 맞춰본적이 없던
곰탱이였지만 미련해도 뒹구는 재주는 있다고 그놈의 어중한
상호가 없어지자 때맞추어 말녀의 달거리가 근근 하더니
이내 뚝 끊어지면서 하루가 다르게 아랫배가 무거워 졌다.
곰패를 틀던 사당이 재넘어 진교(晉橋)어름에서 패를접고
서포(西浦)로 간다는 바람냄새가 잠시 나더니 사당이 곰패를
다시 틀었다는 풍문(風聞)은 어느 바람살에도 없었다.
붕어주둥이 봉수가 말녀의 사다마리 꼬챙이를 닫아놓고
사당뒤를 헐떡거리며 따라 붙힌지도 올해로 아홉해를 넘어
물경 강산(江山)이 변한다는 십년에 접어들었다.
그해겨울....
함박눈이 흠씬내려 천지가 잠덧한 어느 오밤중에.
머리에 소복눈을 잔뜩이고 울안을 기웃거리던 돼지머리 하나가
소리없이 말녀의 외쪽마루에 발을 올려놓았고 어느발이
먼저랄 것도 없이 돼지머리의 몸이 방안으로 스며 들었다.
방안에서 잠시 도둑놈 소 모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부스럭거리는 마른짚 실랭이 끝에
고뿔든 고양이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잠시후 소 영각숨소리를 헉헉 거리며 방을 나온 돼지머리가
쥐잡은 삵괭이 걸음으로 어둠속에 묻히고 돼지머리의
발자국위로 소리없는 함박눈이 밤새 내렸다.
그날이후 사흘걸러 오밤중이면 삵괭이 걸음의 돼지머리가
어둠속에서 소리없는 잰걸음을 쳤고 그때 마다 말녀의
머리맡에는 비료푸대에 싼 돼지고기 사태살이 한근택이나 놓였다.
그는 배건너 잣실(柏谷)의 백정 두팔(杜叭)이었다.
두팔의 상호는 꼭 자기가 잡아 삶아놓은 돼지 머리에
새우젓 눈을 가진 저팔계의 상을 가지고 있었다.
두팔과 말녀의 이러저러한 정분으로 말녀는 잡은 돼지의
내장일부를 두팔에게서 얻어 낼수가 있었다.
돼지의 작은창자를 뒤집어 게잡스런 속을 훓어내고 핏물에 섞은
고를 채워 무쇠솓에 넣고 불을 지핀지도 실팍한 삼년이었다.
두팔의 도움이라 여겼다.
남편봉수가 사라진 직후 회임하여 소태 같은 해산의
고통을 치르고 얻은 수복(壽福) 이가 이제 열다섯이 되었다.
지난 세월이 양잿물보다도 더 독한 삶이었다.
말녀는 자신의 오막살이에서 삶던 피창순대를 이제는
장터 귀퉁이 두팔의 푸줏간 뒤에서 삶게 되었고.
근년에는 가세도 제법 굳어지면서 수복이를 대처 진주에 있는
남중으로 유학을 보냈다.
조금씩 자색이 피어오르는 말녀의 용태에 게침을 흘리는
건갈꾼이 전무(全無) 하진 않았으나 두팔이 뒤에 있다는
소문이 있고 그가 놀리는 대대로 물린 족보
(백정의 소잡는 성스러운 칼을 말함)끝이 섬뜩하여 감히
가까이 하기가 어려웠다.
그러한 두팔이 소에 받혀 시름시름 하다 귀천(歸天)하여
저세상사람이 되고난 얼마뒤 남편 봉수가 턱 쪼가리에
염소수염을 달고 짜부둥한 허리에 다리를 끌며 나타났다.
어름사니로 넉살께나 떨며 사당을 따르다가 어름을 놓던중
허리를 꺽었는데 그날이후 사당축에서 쳐지고 삼남 일대를
빌어 먹고 다녔다고 했다.
-하이고 지지리도 복도 없는 화상아-
어쨌건 봉수는 말녀의덕으로 면도한 돼지 살같이 나날이
신수가 훤해졌다.
수동(守童)은 수봉들머리 지나 끝실(末谷)에 선산을 두고
누대를 이은 말곡(末谷) 토박이었다.
수동은 날짜 지나는 산지(算支)를 매일 놓았다.
하루 엿새사이 오일마다 열리는 장을 셈하기 위함 이었다.
오늘도 수동은 말녀를 머리에 그렸다.
“아...! 보고싶은 말녀.....”
순대를쓸어대는 그녀의 손목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체면 무시하고 덥석 잡아보고 싶었던 충동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돌아선 뒷모습의 봉긋한 엉덩이는 잠결에 아스름하게 뜨올랐다.
앞치마를 두른 밑으로 솟은 계란같이 볼록한 말녀의
사타구니 언덕이 수동을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올림머리에 망사테를 치고 쪽을친 뒷머리 아래로 보이는 말녀의
목덜미는 수동의 사추리에 불을 놓았다.
근년들어 장터에서 유행하던 뺀질뺀질 매끄러운
인조견 부라우스를 입은 말녀의 출렁대는 큼직한 젓가슴과
새파란 플라스틱 슬리퍼를걸고 있는 그녀의 버선이 참으로
희디 희었다.
-제눈에 안경이라 했던가...
대포 막걸리 한사발에 푸새를 놓고 왼종일 말녀의 위아래를
핧아대던 수동의 게슴한 눈길이 점점 충혈되며
속병든 문상처럼 면상이 상기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수가 없었다.
말녀를 불러 보아야 한다...!
그러나 마땅히 불러볼 말때중이 서질 않았다.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녀를 두고 불러볼 말을 생각 하는 상상 만으로도
미상불 수동은 행복 했다.
-무엇일까...?
-늙어막에 이무슨 주책일꼬.....
수동은 들락거리며 순대를 파는 말녀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일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오래되어 소매 끝이 헤진 검정사지 양복에 복숭아뼈가 달롱하게
짧아보이는 수동의 양복 바지는 수년전 장터 난전에서
제법 금을 많이 내고 산 단벌이었다.
목이 죄는 넓은 넥타이를 짤막하게 둘러메고 숨이 막히게
의자에 걸터 않아있는 수동은 장터순대집의 말녀를 만나는
목적으로 제 딴엔 갖은 멋을 다 내었다.
영문도 모르는 수동의 처는 양복을 차려 입은 남편의 모습이
자랑스러워 삽작을 나서는 수동을 오랬동안 바라다보았다.
낯꽃이 화했다. 그녀는 남편 수동이 세상에서 최고 였다
만약 대처서 살았다면 틀림없이 한자리 했으리라 믿고
이날 평생을 순종하며 살았다.
벼락치듯 수동의 머리를 둟고 지나는 번쩍이는 뇌성이 있었다.
그랬다...
불러볼 적당한 말이 있었다.
싸전뒤 삼각지 다방의 한복여자를 보고 양복신사들이
손짓하며 부르던 말이 생각 났다.
-마담...!
뜻은 모른다.
어쨌던 입으로 굴려 부르기가 고상해 보였다.
불러보고 싶었다.
고개를 들어 서있는 말녀를 부르며 손목을 덥석 잡았다.
“마 담...!
어리둥절한 말녀의 멀뚱한 눈이 수동을 내려다 보았다.
순간..
백일이 막 지난 손자를 등에 업은 말녀의 남편 봉수가
점방 안으로 쭈적 발을 들여 놓다가 마늘코를 벌렁거리며
게트림을 했다.
“이런 개 우라질 같은 노무 짜슥....”
아이를 들쳐 매고 있던 포대기를 풀면서 말녀의 남편 봉수가
열탕에 잉어뛰듯 설치며 눈알을 희번득 거렸다.
봉수를 밀치고 꽁무니에 불을단듯 허겁지겁 내달리는
수동의 등뒤로 무슨 구경이나 난듯 온동네 개들이
기를 쓰고 짖어 댔다.
봉수의 등에 업힌 아이는 그의 외아들 수복이 낳은
손자(孫子)상호, 였다.
말녀의 자부(子婦) 희숙(姬淑)은 원전(元田)다솔(多率) 사람 이었다.
지난해 말녀의 아들 수복을 만나 딱 한번 동침(同寢) 한뒤
회임(懷妊)을 하였고 배가 불러 아들 상호(相鎬)를 낳았으나
아직 육례(六禮)를 치르진 않았다.
나이 열아홉에 수복을 만난 희숙은 매 장날이면 시부(始父) 에게
아이를 맡기고 시모 말녀를 도와 순대집일을 도우고 있었는데
이제 갖 스물이었다.
여자가 눈이 검고 둥글둥글 한대다 얼굴이 갸름한 것이 피부가
죽순대 같이 보드라워 보였다.
느리고 완만한 얼굴선으로 하여 그녀의 상이 더욱 착해 보였다.
전체적으로 가늘고 긴 체구를 한 희숙은 항시 까만 바지를 입고
시모를 도왔는데 내가 그녀의 순대집으로 가면 매번 동그란눈을
반짝이며 실눈으로 웃어주었다.
“오늘은 아들을 안 데리고 왔으예...?”
그녀가 나의 아들 종현이를 묻는 말이다.
항시 갈 때 마다 아들과 같이 동행(同行)을 하지만 간혹
혼자라도 갈 때면 이렇게 묻곤 하는 그녀는 허리가 잘록 한 것이
엉덩이가 봉듯하고 조그만 몸이라서 싫지 않았다.
음식을 나르거나 말을 걸면 간잔스러운 실눈으로
웃음기를 보내며 애살스럽게 굴었다.
다만 아릿아릿 한 것이 예쁘고 귀여웠다.
부산에서 돌아온 어느 늦은 밤...
나는 옷을 벗는둥 마는둥 피곤에 잦아 마른 창호지 물에 젖듯
삭신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내 수마(睡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혼미한 수렁속 같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아지랑이가 몽롱히 피어오르는 향연이 일고 있었다.
구름꽃이었다.
밀고 들어왔다.
이내 비사주석(飛沙柱石)과 같은 광풍이 일며
뿌연 안개 구름꽃이 걷히고 멀리 아른거리는 아침 사이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여뀌 당살꽃같은 요요함이 있었다.
살냄새가 일었다.
비천무(飛天舞)처럼 춤을 추며 끌려 가고 있었다.
말할수없는 비밀과 지독한 갈증이 무엇을 찾고 있었다.
뜨거운 액체가 뱃속으로 흐르며 미끈한 진액이 넘쳤다.
밤꽃 냄새가 지천으로 퍼졌다.
온가슴으로 덮치며 폭포같은 요동이 일었고
명주실 튀기듯 흐느끼는 소리가 가늘게 들렸다.
얼굴을 보았다.
깜짝 놀라 눈을 뜨고 일어나 앉았다.
이럴수가.....
그녀였다.
희숙(姬淑)이....!
말녀의 자부 였다.
-나는 이집을 십수년을 다녔다. 아주오래전부터 말녀를 알고 지낸다.
잠시 그녀의 집안내력은
그렇다 치드래도 나는 말녀의 자부 희숙과 몽중 동침을 하였다.
참으로 알수 없는일이다.
왜 희숙이 나의 몽중으로 찾아 들었는지......?
그날 이후 나는 희숙을 보면 알수 없는 미소와 더불어 잔잔한 연민을 느낀다.-
10살 하얀 도화지같은 아동...
아무른 밑그림도 없었든 그때의 친구와
완사 오일장이 선다는 빈 장터에서 점심손님 몇 없는 한가한 날에
피순대국집 평상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답니다
친구가 들려 주었던 이야기입니다...
여주인장의 며느리가
뜬금없이 꿈속으로 찾아와
동침을 하였노라고...
여주인장 말녀라는 여인은 60이 넘지않은 마른 몸매에
오랜 장바닥 인생답게 노련미가 있어보이고
오랜만에 찾아든 친구에게
기억해둔 안부를 물어주는 다정함도
동행한 여자친구에게도 아는 사람처럼 웃어주는
공연한 너스레에 덩달아 편해졌든
그런 날로 기억됩니다....
첫댓글 경전선 완행을 타고 하동으로 가다보면 진주에서 나동과 유수를 지나 세번째역이 바로 완사역이다.이 역 다음이 북천역인데 겨울의 초입에 가보면 쓸쓸한 간이역의 향수가 모과나무 열매의 노란색과 지독하게 겹쳐진다...어느해 가을 나도 이 장터의 피순대국밥집엘 우연히 가본적이 있다.이글을 쓴 작가의 심미안으로 나 또한 그장터의 회상이 유별스러운 오늘이다..우연 치고 너무 닯은 우연이다..이겨울의 언제쯤 또 우연히 기회가 온다면 나는 미라와 도리와같이 말녀의 국밥집으로 동행하여 특별한 맛의 그 장터 그 국밥을 맛보고 싶다....*마타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