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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C. (184) 82년 10월 첫째일요법회(82.10.03) 77분
심수만경전이요
마음은 모든 경계를 따라서 일어나는데 전처?라 일어나는곳마다 바로 거기서 능히 ?해버린다.
중생은 경계에 따라서 마음이 일어나는데 한생각 일어나면 그 한생각으로 인해서 점점점점 생각이 벌어져가지고 가지가 쳐서 그 생각이 점점 발전을 해가지고 그 생각이 얼굴에 표현이 되고 나아가서는 행동으로 나타나가지고 큰일을 저지르게된다.
그래가지고 그 한생각으로 인해서 슬픔의 구렁에 빠지기도하고 노여움의 불구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지옥의 구덩이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기도하고 그러는데 그 한생각 물론 우리가 살아있으니까 무슨 소리를 듣던지 무슨 색상을 보던지 어떤 경계에 닥치면 그 경계에 따라서 생각이 저것이 차소리라든지 비행기소리라든지 또는 어린애소리라던지 저건 꽃이다 붉다 검다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에 그러한 경계에 따라서 그러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데 일어나는 그때에 그 일어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능히 경계에 휩싸여 끌려들어가지 아니하고 바로 그자리에서 본성을 ?해버린다.
일어나는 바로 그 경계를 발판으로 해서 자기의 본성자리로 돌아와 버린다. 이것이 ? ? ?을 해버리면 ?라.
기뻐할것도 없고 근심할것도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각이 그것이 바로 생사심인데 이세상에 나왔다가 한평생 살다가 죽어가고 죽었다가 다시 또 자기의 업에 따라서 어느곳에 태어나면 또 한평생 살다가 또 죽고 하기를 무량억천만겁을 그렇게 윤회를 하면서 금생에 까지 이르렀는데 그 육도 윤회의 근본이 무엇이냐 하면 한생각 때문에 그런거예요. 한생각 일어나는것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천당에도 올라가고 지옥에도 떨어지고 축생도 되고 또는 사람도 되고 귀신도 되고 그런것이여.
그런데 그 일어나는 한생각을 어떻게 단속을 하느냐?
여기에서 지옥으로 떨어질 것을 미연에 방지할수도 있고 축생이 될것을 미리 방지할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천당에 가고 싶으면 천당에 가고 지옥에 가고 싶으면 지옥에 가고 독사가 되고 싶으면 독사가 되고 육도윤회를 자유자재로 할수가 있는 그러한 능력을 우리는 낫낫히 다 가지고 있는 것이여.
그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한생각을 단속을 못해가지고 원치도 아니한 지옥에도 떨어지고 독사도 되고 귀신도 되고 수라도 되고 이러하지 참으로 그 한생각을 어떻게 단속할 방법만을 분명히 알아서 실천을 해나가면 우리는 지옥에 갈 필요가 없어.
천당에도 가고 싶으면 가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되 좋은 여건하에 태어나서 자기도 훌륭한 인격을 이루고 나아가서는 모든 사람을 갔다가 제도할수있는 그러한 사람이 될수도 있는 것이여.
이것이 바로 참선법인데 참선법은 다른것이 아니고 그 일어나는 한생각을 단속하는 방법이다.
한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슬픈일을 당하던지 또는 속상하는 일을 당하던지 괴로운 일을 당하던지 또는 기쁜일을 당하던지 어디서 언제 어떠한 일을 당하더라도 바로 그때 그자리에서 이뭐꼬 자기의 본참화두를 참구하는것 입니다.
금방 녹음 법문을 통해서 조실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만은 활구참선. 활구참선이 바로 가장 빨리 어떠한 근기라 하더라도 남자가 되었건 여자가 되었건 나이가 많건 적건 지식이 있건 없건 또는 성질이 급해서 성을 잘내건 빈부귀천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라도 부처님과 차등이 없는 진여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그 생각만 두번째 생각으로 벌어지기 전에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동시에 이뭐꼬. 알수없는 의심으로 자기의 화두를 참구한다면 거기에서 육도윤회는 끊어지게 되는것입니다.
과거에 죄를 많이 지었는데 그 죄 많은 사람이 참선을 한들 어떻게 견성성불을 하며 그 뭐 이뭐꼬 좀 했다고 해서 어떻게 내가 그러한 무수한 많은 죄를 지었는데 지옥에 안떨어질수가 있는가?
이러한 생각을 먹고 미리 겁을 집어먹고 스스로 도업을 닦아서 이루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불보살께서는 그러한 죄많은 사람을 위해서 업이 두터운 중생을 위해서 이 사바세계에 출현을 하셔서 그 많은 법을 설하셨고 삼천년전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출현하신 그 부처님만이 아니라 그렇게 출현하신 정식으로 부처님으로 출현하시는 부처님뿐만이 아니고 온 법계에 인연있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형형색색으로 부처님과 보살님과 또는 아라한과를 증득한 그러한 성현들이 수없이 천백억화신을 나투면서 우리의 중생 앞에 출현을해 계시는 것입니다.
죄도 없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더 말할것도 없고 죄많은 사람일 수록에 업이 두터운 사람일 수록에 그런 불보살과 성현은 백배더 불쌍한 마음으로 어떠한 방법으로 이 중생을 제도할까?
그 중생에 알맞은 방편을 써서 제도하시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계시고 있는것 입니다.
우리 중생들 업이 두터운 우리 보잘것 없는 중생도 아들과 딸을 많이 두면 공부잘하고 착하고 좋은 아들은 마음으로 흐뭇하고 기쁘고 공부를 잘 못한다든지 몸이 어디가 불구자라던지 마음이 바르질 못해서 못된 일을 많이 한다던지 하는 그러한 자식에 대해서는 부모는 밤잠을 못주무시는 것입니다.
몇백배 몇천배 그자식에게 더욱 마음이 가는 것 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자식을 바르게 잡아줄까?
어떻게 해야 이 병신을 갖다가 바로잡아줄수가 있을까?
자나 깨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뜨거운 사랑과 자식을 아끼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생각을 미루어 보면 불보살과 성현들께서 우리 중생 죄많은 중생들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이 중생들을 제도하고 바른길로 이끌고 생사없는 해탈도를 증득하게 해줄수 있을까?
그생각 얼마나 그생각을 뜨겁게 가지고 계신것인가 우리는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종교에서는 자기만을 믿어야지 자기를 배반하고 믿지않는 중생은 자기를 비방하거나 자기를 배반하는 그러한 사람은 삼대까지 그 벌을 주어서 멸종을 시킨다고하는 그러한 경을 외도의 경을 내가 봤습니다만은 우리 부처님은 중생에 대한 보복이라고는 있을수가 없습니다.
우리 중생들 보고도 보복을 하지 말아라. 보복으로서 원수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보복을 하면 또 다시 다른 기회에 상대방이 나에게 또 보복을 하게되고 그 다음엔 또 내가 보복을 하고 해서 점점 점점 미움과 원망과 싸움은 더 커져서 나중에는 온 세계가 싸움의 세계가 되서 지옥으로 변할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
원수와 싸움을 없애려면 보복을 하지 말고 자비로서 바른마음으로서 상대방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어떠한 방법을 쓰면은 저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수 있을까? 이렇게 자비심을 가지므로서 용서함으로써 싸움은 없어진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부처님께서 당신을 믿지아니하고 당신의 가르침을 안믿는다고 해서 우리를 지옥으로 갔다가 지옥의 불구덩이에다 집어넣거나 더군다나 직접 부처님을 비방하고 욕한사람을 지옥에다 밀어넣지 아니할 뿐만아니라 그 사람의 자손까지 삼대까지 멸종을 시킨다고하는 그러한 일은 우리 부처님께는 꿈에도 생각할수 없는 일인것입니다.
불법을 비방하면 그러면 아무리 불법을 비방하고 삼보를 비방해도 그러면 지옥에도 안가고 상관이없구나. 인제는 마음놓고 불법을 비방을 해야겠다.
그러한 생각을 먹는 사람은 없겠습니다만은 불법을 비방하면 지옥에 가기는 갑니다.
부처님이 끌어다가 부처님이 그 중생이 불법을 비방하는 중생이 미워서 부처님이 지옥에 갔다가 밀어넣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지옥에 갈 짓을 했기 때문에 자기의 업에 의해서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다른 나쁜짓을 한것이 아니고 부처님을 비방했다 한 그 인연으로 그래도 부처님과 인연을 맺게 되는 것 입니다.
어떠한 형태로든지 부처님과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부처님을 비방함으로써도 부처님과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지옥고를 받고난 다음에는 반드시 견성성불을 한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을 비방하는 그 과보로 일단은 지옥에 떨어졌지만 지옥고 받은 뒤에는 부처님을 비방한 그러한 형식으로 부처님과 인연을 맺은 그 공덕으로 해탈도를 증득할수가 있다.
그러니 부처님과 만약에 좋은 인연 불법을 믿고 불법을 찬양하고 불법을 많은 사람에게 불법의 인연을 맺어줄려고 노력을 한 그러한 좋은 인연을 맺는 사람이라면 지옥에 과거에 지은죄로 지옥에 갈만한 죄업을 지은바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옥고를 면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정법에 의지해서 자기공부를 철저히 해서 금생에 결정코 대도를 성취하겠다고 하는 철저한 신심으로 노력을 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대도를 성취하게 될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첫째 이 공부를 할려면 무상을 철저히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무상이라 하는것은 덧없다 이말씀입니다. 이세상의 모든것은 영원성이 없어. 잠시도 그대로 있는 것이 없고 시시각각으로 변해가지고 결국은 없어져. 우리 눈에 태양은 언제나 한결같이 빛나고 있고 있는것 같지만 몇억년 몇억만년이 지나면은 저 태양도 언젠가는 불이 꺼질때가 오는 것 입니다.
원자 현미경같은 것으로 관찰을 하면 매일 같이 태양의 모양이 변해가고 있는것을 과학자들은 다 보고 알고 있는것 입니다.
저런 태양뿐만이 아니라 하늘에 번쩍이는 저 수많은 별들 달 이 지구도 시시각각으로 변해가고 있고 더군다나 우리의 몸뚱이도 해마다 어린이는 자라고 자란사람은 또 늙어가고 이것이 바로 무상한 증거인 것입니다.
하루 하루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주검에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고 있다고 표현을 할수도 있는것입니다.
진리에 입각해서 보면 진리를 깨달은 눈으로 보면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고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하나의 진리의 살아있는 진리의 모습에 지나지않는것 입니다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한 우리의 참나를 깨닫지 못한 사람의 눈으로는 그 진리의 살아있는 모습이 바로 생사요 그것이 무상의 무상으로 느껴지는 것이고 무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무상이라하면 덮어놓고 우리는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또 이 무상함 속에서 살면서도 전혀 무상한 것을 모르고 영원한줄 알고 우리의 몸뚱이도 영원히 살줄알고 우리 가지고 있는 모든 명예나 권리나 재산같은 것도 영원히 자기가 누릴줄 알고 거기에 빠져서 세월가는줄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만은 진리의 눈을 떠가지고 무상속에서 살면서 무상을 전혀 느끼지 않고 영원하게 살아갈수 있다면은 그런 다행은 없지만 탐진치 삼독에 얼켜서 오욕락에 빠져가지고 그래가지고 정신을 못차려서 그 무상한것을 영원한것으로 착각하는 나머지 무상한줄 모르다면 그것은 참 큰일날 일인것입니다.
분명히 우리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지옥과 천당 수라와 아귀 축생과 인도의 육도윤회가 분명한것이고 이것은 불법에 의해서 참나를 깨달은 대도를 성취하지 않고서는 천하없이도 이 생사의 고해에서 해탈할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불법을 닦을 사람은 첫째 무상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정말 괴로운것이라고 하는 것을 철저히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사제법문에 맨 첫머리에 있는 고제라고하는 진리다.
이 세상의 모든것은 무상한 것이요 괴로운 것이요 이 몸뚱이도 무상한 것이요 괴로운 것이다.
괴로운 것이라고 하는 것을 철저히 느낀다면은 도를 닦을 마음이 날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하면 이괴로움을 면할수가 있느냐?
괴로운 것을 면할려면 그 괴로운것은 어째서 생겨났는가?
그 원인을 알면은 그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이냐 하면은 우리의 탐진치 삼독심때문에 괴로움의 원인이 생겨난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어찌 욕심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수가 있겠냐?
돈에 욕심이 있고 있어야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돈을 벌려고 하고 명예나 권리에 대한 욕심이 있어야 공부도 열심히 해서 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도하고 박사도 되고 또 판사도 되고 장관도 되고 그러지 욕심이 없으면 에이 그까지꺼 돈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까지꺼 허망한 것 돈도 벌려고 하지 아니하고 무슨 명예나 권리도 허망한것 그까지것 소용없다 해가지고는 전혀 공부도 할려고 하지도 않고 그러면 그렇게 하므로서 무슨 도를 이룰수가 있겠느냐?
그러니 이 세상을 남부럽지않게 살아가려면 첫째 불같은 욕심이 있어야 하고 명예나 권리에 대한 그런 욕심도 있어야하지 그러한것이 없으면 의욕이 없고 희망이 없으니 전부다 있는것이나 먹고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말고 전 국민이 다 전 인류가 게으름에 빠져가지고 잠이나 퍼자고 일도 않하고 하면 집안이 무엇이 되며 국가가 무엇이 되겠느냐?
이렇게 생각하실런지 모르지만 정말 철저하게 무상한줄 깨닫고 명예나 권리나 또는 재산이나 색이나 그러한 오욕락이 영원성이 없는 허망한 것이라고 하는것을 오히려 그러한데 지나친 욕심을 부리고 탐착을 하면 악도에 떨어진다.
악도라는게 현실적으로는 정신적인 고통을 악도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면 금방 우리는 이해할수가 있을것입니다.
이 몸뚱이 살아있을 때에는 육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고통 갈등 이러한것이 바로 사후에는 지옥과 같은것입니다.
살아있을때에 정신적인 안온을 얻지 못한 사람 정신적인 해탈을 얻지 못한 사람은 그사람은 눈을 숨이 끊어지자마자 바로 지옥으로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괴로움의 원인인 육도윤회를 해가지고 그 고해에서 고통을 받는 그 원인은 우리는 그 무명심 무명업식으로 탐진치 삼독심의 불이 치성함으로해서 오욕락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한데에서 괴로움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그 어떻게하면은 그 괴로움을 없이 해서 영원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가 있느냐?
그것은 그러한 무명? 탐진치 삼독심 오욕락 그러한 마음을 갔다가 없이하면 된다.
없이할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그것이 바로 이 여러가지 염불을 한다던지 또는 경을 외운다던지 또는 어떤 주문을 외운다던지 이러한 기도를 한다던지 여러가지 수행법이 있지만 그 많은 수행법 가운데에 가장 수승한 수행법이 참선이라 하는것입니다.
참선은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꼭 머리를 깍고 깊은 산중에 들어가야만 되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있건 없건 나이가 많건 적건 지식이 있건 없건누구라도 일어나는 한생각을 돌이켜서 대관절 이 몸뚱이를 끌고다니는 이놈이 이무엇인고 이뭐꼬 이렇게 한생각을 돌이키면 이것이 바로 무명을 돌이켜서 보리로 돌아오는 길이고 생사고해에서 해탈의 언덕을 건너가는 길인 것입니다.
이 방법이 너무 쉽고 너무 평범하고 너무 간단해서 글읽기를 좋아하고 무엇을 연구하기를 좋아하고 이론적으로 따지기를 좋아하고 그런 현대 학문을 한 지성인들은 그 재미도 없고 맨날 해봤자 답답하기만 하고 무엇이 알아지는것도 아니니 차라리 그러한 참선을 하기 보다는 금강경이나 유마경이나 법화경이나 그러한 부처님 경전을 읽고 그것을 연구하고 해석을하고 교리적으로 연구를 하는 것이 훨씬 더 재미가 있고 알아지는것이 있고 또 누구 앞에 자신있게 불교에 대해서 이야기 할수도 있고 그러니 대부분 이러한 지성인들이 교리적으로 이렇게 연구하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참선은 3년을 하거나 10년을 해도 해갈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알수가 없고 알아진 것이 없고 오히려 알아지면 못쓴다고 그러고 그러니이거 누구앞에 3년동안내지 10년동안 참선을 했으면서도 참선이 무엇이냐 어떻게 하면 깨달을수가 있느냐? 깨달으면 대관절 무엇을 깨달으며 어떻게 되는 것이냐? 누가 물어봐도 아 난 잘 모른다고 모른다고 대답하기가 참 챙피하지 않는냐?
그러니 교리를 연구를 하면 경을 공부를 하고 외우고 해석하는 교리적으로 공부를 하면 자기도 차츰 한시간 공부를 하면 한시간 공부한 만큼 얻은 바가 있고 한달을 공부하면 한달을 공부한 만큼 무엇이 알아진것이 있고 누구 앞에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모두 발심을 해서 참 불교가 좋다고 이렇게 따라와주고 그래서 이 경을 공부를 하는 것이 좋다.
그래가지고 이 참선에 대해서는 등안히 하고 교만을 갖다가 숭상하는 그러한 분들이 있습니다만은 그러면 교와 참선은 다른 것이냐 교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이고 참선은 부처님께서 나를 깨닫기 위해서 지도하신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법이다 그말이여.
그러면 그 수행을 바르게하기 위해서 설하신 부처님 법문이 경전이라.
그러면 경전과 수행해나가는 수행법인 참선과는 둘이라 할수가 없다 이말이여.
둘로 나눠서 이것은 교고 이것은 선이다. 선이더 좋고 교가더 나쁘다.
교가 더 중요하고 선은 맞지않는 것이다.
이렇게 두가지를 놓고 분쟁을 하고 비방을 하고 차별을 둔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있을수가 없는 일이다 이 말씀이예요.
교도 올바르게 이해를 하고 올바르게 공부를 하면 참선을 철저히 하는 마음이 날수밖에 없는것이고 참선을 올바르게 하면 교가 하나도 버릴 말씀이 없어.
전부가 다 소중하고도 훌륭한 법문이다 이말씀이여.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 부터서 달마스님에게 이를때 까지 인도에 있어서는 무엇이 선조이고 누구는 ?이고 그러한 파당이 없었단 이말이여.
가섭존자나 아난존자나 ?해가지고 28대 달마스님에 이르기까지 선사이면 도리에도 다 통달을 했고 그런것이지 일부 어떠한 선에는 선은 가섭존자에 의해서 전해졌고 교는 아난존자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만은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사촌동생이고 출가해가지고 평생동안 부처님을 갔다가 시봉을 하면서 부처님의 법문을 다 듣고서 너무 총명이 좋았기 때문에 부처님이 설하신 그 많은 경전을 한구절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조르르 다 외웠습니다.
외울수가 있었기 때문에 경전을 결집을 할때 아난존자의 입을 통해서 그 많은 경전이 줄줄줄 외웠습니다.
그렇게 아난존자가 한구절 한구절씩 외우면 오백명의 아라한들이 대도를 성취한 성현들 아라한들이 과현 틀림이없이 우리도 그렇게 들었다. 이렇게 증명을 함으로써 한구절씩 한구절씩 부처님의 경전이 결집이 된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것이지 아난존자에 의해서 교종이라하는 그러한 파가 별도로 생기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아난존자는 교종에 종주나 종주가 아니고 ? 부처님의 정법을 이어받은 제2대 조사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은 부처님의 수제자인 가섭존자에게 전해졌고 그 가섭존자는 아난존자에게 그 참나를 깨닫는 정법. 정법의 법등을 아난존자에게 전했고 아난존자는 ?전했고 이렇게 해서 이렇게해서 28대 달마스님까지 전해내려 온것 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아난존자가 이교는 아난존자에 의해서 전해졌고 선은 가섭존자에게서 전해졌다는 말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인 것입니다.
그런대 그렇다면은 교도 부처님께서 설하신 훌륭한 법이라면 어째서 그러면은 경을 보는것 보다는 참선을 하는 것이 좋다고 용화사에서는 법회때마다 그런 말씀을 하니 왜 그랬느냐?
용화사에서도 금강경 또는 반야경 또는 법화경 화엄경 경을 갔다가 ?를 해서 경에 대한 해설도하고 강의도 하면 훨씬 더 좋지 않겠는냐?
이러한 생각을 하실런지 모르지만 그 경은 그 분량이 부처님께서 49년동안 설하신 그 팔만대장경이라고하는 방대한 경이 우리가 죽을때가지 그놈을 다 읽고 해설을 한다 해도 다 볼수가 없는 것이고 더군다나 낫낫히 다 이해할수는 더욱 없는것입니다.
현재 경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경이 한문으로 번역이 되어 있어서 한문을 여간 잘 하는 사람아니고서는 읽어도 다 알수가 없고 요새 차츰 경전이 번역해 나옵니다만은 번역해놓은 경을 읽어도 또 알수가 없습니다.
읽어도 알수없는 경을 다 또 읽을수도 없는데 그것을 읽다가 읽기만 하다가 우리가 죽어버린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가 직접 경을 알기어려운 그 경을 읽고 공부해서 대관절 부처님이 어떠한 말씀을 했으며 부처님께서 설하신 수행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 것인가를 자기의심으로 경전을 읽음으로서 알려고 하다가는 죽을때까지 읽어도 바른 수행법을 이해할수가 없습니다.
이경을 보면 이렇게 하라고 말씀을 하셨고 또 저경을 보면 저렇게 하라고 말씀을 하셨고 경마다 보면 그경이 최고라고 말씀을 하셨으니 대관절 그 경을 다 볼수는 없고 어느 경 한권이나 두권을 봤으면 좋겠는데 경마다 그경이 제일 좋다고 써졌으니 어떻게 우리가 갈피를 잡을수가 없다 그말씀이여.
그래서 우리 자신이 경을 읽어가지고 수행을 해나갈려고 하기보다는 이미 그러한 경을 잘 공부를 잘 했거나 또는 올바른 수행법을 스승으로부터 지도를 받아 가지고 자기도 옳게 수행을해서 옳은 수행법을 아는 그러한 선지식에게 구전심수로 수행법을 직접 지도 받아가지고 당장 그날 부터서 수행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가장 빠르고도 좋은방법이라 이것입니다.
그 수행법이 책을 봐가지고서는 해나갈수가 없다고 말을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그러냐하면 눈에 눈으로 볼수있는 길을 가는 갈때에도 처음가는 길은 자꾸 사람에게 물어봐야 하고 가다가 두갈랫길 세갈랫길 네갈랫길을 만나면은 사람한테 물어서 어디로가는가를 물어서가야하는 것인데 물어보지 않고 간다던지 또는 그 길을 잘 모르는 사람한테 물어봐가지고 잘 모르는 사람의 지시를 받아가지고 가다가는 엄한 길로 가게 된다 이말씀이여.
하물며 마음을 닦는 이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이여.
마음으로 닦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우리의 사람이 지은 업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긴모양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기 때문에 공부를 지어나가되 처음의 시작은 다 같은 방법으로 같이 해나가지만 한달 두달 석달 일년 이렇게 해나가다 보면 각기 다른 경계가 나타나게 되는것 입니다.
그럴때 책을 아무리 뒤져봐도 어떻게 하라고 구체적으로 쓰여있지 않습니다.
천상 믿을수 있는 자기가 믿어지는 스승이 있어야 처음에 시작할때에도 그러한 선지식한테 지도를 받아서 하고 공부를 해가는 도중에도 항시 옳게하는가 잘못해나가는가에 대해서 점검을 받고 어떠한 이상한 경계가 나타날 때에도 즉각 가서 그 상황에 대해서 보고를 드리고 이것이 잘못된것인가 옳은 것인가를 지도받아서 많이 못쓰게 되기 전에 즉각적으로 바로잡아 나가야만 허송세월을 아니할 뿐만 아니라 삿된 경계에 빠지지 않게 될것입니다.
한번 삿된 경계에 빠져놓으면 나중에 얼마 있다가 다른 선지식으로부터 너의 그 경계가 옳바르지 못하다를 하는 것을 지적을 받아도 그 말을 믿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자기 나름데로 경계에 맛을 붙여가지고 깊이 빠져 들어갔기 때문에 그러한 경계에서 빠져나오기를 대단히 아깝게 생각하는것 입니다.
내가 얼마나 애를 쓰고 공력을 들여서 얻은 경계인데 또 이 경계가 얼마나 좋고 좋은데 어떻게 이 경계를 아니라고하며 벗어날수 있을까?
나는 못 버린다. 해가지고 여간해서는 다른사람 말을 고지 듣지를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처님이 출현을 해도 그 사람은 제도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공부는 처음시작할때부터 바른스승을 만나서 지도를 받아가지고 옳게 시작을 해야만 하고 중간 중간에도 항시 선지식을 가까이 해서 점검을 받아야 하고 또 어떤 특이한 경계가 나타나 또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을때에도 반드시 선지식의 점검을 받아서 인가를 받아가지고 깨달은 뒤의 보림수행에 나가는데 있었어도 직접적으로 지도를 받아야만 부처님과 똑같은 또 조사와 똑같은 그러한 완전한 수행의 단계에 수행의 목적지에 도달할수가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달마스님께서도 ?에 말씀하시기를 ? ?이라.
이 도법에 있어서 사람만나기가 어렵다.
도를 닦는 수행에는 스승만나기가 어렵고 또 그런 선지식은 정말 옳바른 사상을 가지고 옳바르게 수행을 해나갈만한 그러한 좋은 제자를 만나기가 어렵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스승을 만났다고해서 스승한테 무엇을 얻을 것이 있는것은 아니지만 스승을 만나지 아니하고서는 옳바르게 수행을 해날갈수가 없기때문에 스승을 우선적으로 스승을 먼저 찾아야만 된다고 그렇게 강력히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 바른 스승을 만날수가 있을까?
무엇을 보고 바른 스승을 분별을 할수가 있을것인가?
그 스승이 미간에는 백호상이 번쩍이고 있고 몸에는 무슨 오색 찬란한 방광을 하고 있고 그런 이 부처님의 삼십? ? ? 팔십?를 갖춘 그러한 선지식이 어디에 나타나셨다면 밤에도 그 선지식을 알아볼수가 있겠고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도 대번에 알수가 있겠지만 선지식이 출현을 하실때에는 꼭 그러한 ?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화엄경에 53선지식처럼 때로는 승려로 태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어린 동자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창녀같은 그러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장자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신으로 귀신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이렇기 때문에 도무지 우리 신심이 없는 근기가 약한 중생의 눈으로서는 참 선지식을 분별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무상을 깨닫고 철저하게 발심을 해서 바른마음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성실한 마음으로 청정한 마음으로 선지식 찾아 만나기를 갈구하면 선지식은 언제라도 만날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그러냐 하면은 선지식이 한두사람이 아니고 이 우주 법계에 가득차 있는것이 바로 불보살의 화연심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심이 부족하고 우리의 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눈앞에 우리의 뒤에 왼쪽에 오른쪽에 눈으로 볼수 있는 모든 것 귀로 들을수 있는 모든것 삼라만상 ? ? 이 부처님이요 ? ? 이 ? ? 이 성현이 아닌것이 없건만 그것을 밤과 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상대하고 있으면서도 그 선지식을 알아보지 못하고 세월을 보내고 있고 업을 짖고 있는 그러한 안타까운 생활을 우리는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말씀드린 심수만경전이요 ? ? 우리의 마음은 경계에 따라서 움직이는데 그 경계따라서 일어나는 바로 그곳에서 화두를 챙기는 것. 이것이 바로 부처님을 만나뵈옵는 가장 요긴한 방법이요 선지식을 만나뵈옵는 가장 가깝고도 빠른 방법인 것입니다.
? ? 이 방법을 갖다가 최상승법이라.
이 방법을 갖다가 정법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최상승법을 믿고 정법을 믿고 실천을 해나가는 사람은 여러분 가정에서 선지식을 만나뵈올수가 있고 살아계신 부처님과 만나뵈올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직장에서도 선지식을 만나 뵈올수가 있고 관세음보살을 만나 뵈올수가 있는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여러분의 몸에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희노애락 그 좋은생각 나쁜생각 슬픈생각 노여운생각 이것이 팔만사천 번뇌심 번뇌망상입니다만은 이 최상승법을 믿고 공부해나가는 사람은 그 팔만사천번뇌가 바로 보리심으로 승화해버리는 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팔만사천마구니라 그러는데 팔만사천 마구니가 다른게 아니고 팔만사천번뇌를 갖다가 팔만사천마구니라 그러는 것이고 그 팔만사천번뇌를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서 자기의 본성으로 돌아가는 그 찰라를 갖다가 그것을 팔만사천법문이라고 그러는 것이여. 이렇게 분명한 것입니다.
무엇이 어려운 것입니까?
죄많은 사람이라해서 안될것이 없고 무식한 사람이라고 해서 안될것이 없습니다.
뒤로 시간을 미루지 말고 당장 이자리서 부터서 무슨 생각이든지 일어날것입니다.
집생각 지난생각 돈생각 자식생각 남편생각 별별생각이 일어나겠습니다만은 일어나는 그 생각을 놓치지 마십쇼.
그 한 생각 돌이키면 한 생각 성불인 것입니다.
그 한생각을 놓치면 그 한생각이 바로 마구니로 변하게 되고 그것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그 올가미에 걸려드는 것입니다.
지옥으로 한걸음 잘못딛여서 지옥으로 가느냐? 한걸음 잘돌려서 극락세계로 가느냐? 이 판가름이 화두를 드느냐 안드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정법이라 하는 것은 어렵지가 않습니다.
너무나 쉽고 평범한 것 입니다.
설사 재미가 없지만 이시간부터서 적극적으로 실천을 해보십쇼.
해보면 하루를 그렇게 해보고 한달을 그렇게 해보고 석달을 그렇게 해보면 해가다가 자기를 돌이켜 보십쇼.
어느새 과거의 자기가 아니라고하는 것을 느끼게 될것입니다.
모든 점에 있어서 향상이 되어 있을 것이며 모든 점에 있어서 승화가 되어가고 있는 자기의 모습을 깨닫게 될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돌아봤을때 뿐만 아니라 자기의 가족들이 볼때에도 또는 친구들이 볼때에도 직장에서나 어디를 가거나 그 사람은 벌써 마음씀이 달라져 갖고 있을것이며 얼굴에서 풍기는 모습이 달라져 갖고 있을 것이며 행실이 달라져 가고 있는것을 모든사람의 눈에 현저하게 나타날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마음갖기운동이 될것이며 이것이 사회정화운동에 기본요소가 될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우리 중생들에게 설해주시고자 하는 최고의 미묘법문인 것입니다.
이것이 아니고서는 해탈도를 증득할수가 없는것이면 이것이 아니고서는 세계평화도 이룩될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렇게 간단하고 명백하고 쉬운것인데 중생은 과거에 지은 업이 있어서 습이 있어서 그 한생각 돌리기가 그렇게 힘이 듭니다. 그래서 그 한 생각을 거리로 표현하면 공간으로 표현하면 십만팔천국토라. 이렇게 어마어마한 표현을 부처님께서는 쓰셨고 이것을 갔다가 때로는 삼아승지겁이라 이렇게 표현을 하기도 하셨고 그랬습니다.
무슨 극락세계가 십만팔천국토라하는 국토를 지금은 과학이 발달해서 우주선을 타면은 서방으로 십만팔천국토 나올때까지 무한으로 달려가보면 거기에 무슨 극락세계가 나타나겠습니까?
극락세계는 꼭 서쪽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며 삼아승지겁 이라하는 세월은 영원이하고하는 표현 끝이없다고하는 시간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이 조사 ? 정법 ? 최상승법이 있어서는 찰라멸각이라 그랬습니다.
찰라에 무량겁 죄업을 멸각 녹여없애는 것입니다.
일초직입여래지라. 한번 뛰어가지고 부처님세계에 뛰어오른다. 이렇게도 표현을 했습니다.
이렇게 볼때에 이 한생각 돌이키기가 그렇게 간단하고 쉽지만 실지로 해볼려고 하면은 그만큼 어려운 면이 있다고 하는 것을 그렇게 표현을 한것입니다.
그렇게 어렵다고해서 아니한다면 언제까지나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어렵지만은 또하고 잊어버렸다가 또 챙기고 또챙기고 또챙기고 해서 계속해서 되풀이해서 해가면 습관이 들것이고 습관이 되면 할려고 안해도 저절로 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일을 되풀이 해서 할때에는 나중에는 무의식중에도 되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기술이 그렇고 모든 운동도 그렇고 우리의 공부해나가는 우리 한생각 돌리는 이 공부도 자꾸 되풀이 하는데에서 나중에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득력이라 하는데 득력이라 하는것은 무슨 공부를 하니까 무슨 이상한 힘을 얻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려고 애를써도 잘 않되던것이 할려고 않해도 저절로 이렇게 화두가 들려지고 이것이 바로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이신 분은 속세의 인연으로 이 최상승법 정법에 깊은 인연이 있어서 이 법보전에 모여서 이 최상승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또 여러분은 듣게된 인연을 이렇게 맺게된 것이라고 소승은 생각을합니다.
이러한 인연이 날과 달로 더욱 굳어지고 깊어져서 이자리에 모이신 분은 결정코 금생에 대도를 성취하게 되기를 믿고 그렇게 간절히 축원을 하는 바입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일시에 대도를 성취하고 세세생생에 이 정법문중에서 다시만나서 또 도업을 성취를 하고 이래가지고 이 법계에 한 중생도 남는 중생이 없도록 우리의 목표를 설정을 할것을 다짐을 하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게송-
금생에 만약 이렇게 간절히 말씀드리는 이 말씀을 명심해서 이것을 실천을 아니하면 내생에 한이 ? 될것이다.
내생에 삼악도에 떨어져서 그때가서 아 내가 그때 왜 이 용화사 법보전에서 참선법문을 듣고 그때 열씸히 안해가지고 오욕락에 빠져서 허우적데다가 이렇게 악도에 떨어졌는가?
그때가서 후회를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선방앞에 신발만 한번 벗어놔도 악도에 안떨어진다고 했는데 이렇게 최상승 법문을 듣고 듣기만한 그 공덕으로라도 악도에 떨어질리는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만은 사람은 너무 자만심을 가지고 나아가면 실수를 하는 법이 있기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비를 치고 잠깐 입선을 하겠습니다.
편안하게 앉으십쇼.
반가부좌를 하십쇼.
허리를 쭈욱펴고 아금니를 지긋이 물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 데십쇼.
혀끝트리를그리고 눈은 평상으로 뜨고 숨을 깊이 들이마십쇼.
가슴이 벅차도록 들이마시세요.
코로 들이마셨다가 한참 참았다가 입으로 후하고 입으로 다 내뿜으세요.
다 내뿜었으면 또 코로 스르르륵 들이마시세요.
가슴이 가득 들이마셨다가 삼초동안 정지했다가 또 입으로 후하고 내뿜으세요.
다 내뿜었으면 또 한번 들이마시세요.
삼초동안 정지했다가 조용히 다 내뿜으세요. 이것이 준비호흡입니다.
다내뿜었으면 코로 들이 마시되 가슴을 그대로 나두되 아랫배 단전부위가 볼록해 지도록 들이 마시는 것입니다.
너무 가득 들이 마시지 말고 팔부쯤만 들이마셔 약 3초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뭐꼬하고 내쉬어 내쉬면서 아랫배는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다 내쉬였으면 스르르륵 들이마시고 이렇게 계속해서 해나갑니다.
법회끝에 다만 10분씩이라도 이렇게 같이 입선을 이렇게 하냐 하면 반드시 그 까닭이 있습니다. 과거세에 남해바닷가에 큰 고목나무가 있었는데 그 고목나무에는 500마리의 박쥐때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때마침 폭풍우 풍파가 쎄니까 배를 타고 장사를 하는 상선이 그 해변에 피난을 해가지고 그래가지고 그 고목나무 밑에서 밤새 불을 피면서 풍파를 피하고 있었는데 그 불이 잘못해가지고 차츰차츰 번져서 고목나무에 번졌습니다. 고목나무에 불이 붙으니까 그 오백마리의 고목나무 속에서 살고있던 500마리의 박쥐때가 영락없이 타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박쥐때들은 그 불이 타올라서 뜨거워서 곧 죽게됨에도 불구하고 그걸 도망가지를 아니했습니다.
왜안했냐하면 그 상인가운데에 밤새도록 부처님 경전 그 아 ? 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그 경 외우는 소리가 너무 좋아서 그소리를 듣기위해서 거기를 떠나지 않고 그 500마리의 박쥐가 고목나무속에서 질식해서 드디어 타죽었던것입니다.
그 인연으로 부처님이 열반하신뒤 400년 협존자가 그 대 ? 이라고 하는 ? ? ? 해설서데 ? ? 이라고 하는 경을 갔다가 결집을했는데 그 결집을 할때에 500명의 아라한을 모아 가지고 했는데 그 500명 아라한이 바로 그 고목나무에서 죽은 그 박쥐때들인 것입니다.
그 박쥐때들이 그 목숨을 바치면서 그 경전외우는 소리를 들은 공덕으로 마침내는 아라한과를 증득해서 성현이 된 것입니다.
또 부처님께서 열반하시자마자 그 해에 가섭존자가 상수제자가 되어가지고 제1회 제1결집을 할때에 500선승 500나한들이 또 모여서 또 제일결집을 했는데 그때의 그 아라한들은 과거세의 500마리의 기러기때인것 입니다.
500마리의 기러기때가 하늘에 날아가는데 임금님에게 바치기위해서 기러기를 잡기 위해서 그 ?가 그물을 쳐놨는데 그 기러기때의 왕이 그 그물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
래서 그 기러기를 잡아서 죽일려고 하는데 그 500마리중 한마리가 자기네 왕이 붙잡혀서 죽게되니가 자기의 목숨을 바쳐서 그 기러기왕 있는데다 던졌습니다.
그래가지고 왕을 갔다가 날개로 부둥켜 앉으면서 슬피울면서 우리 왕을 살려달라고 울부짖었고 나머지 498마리에 기러기때들도 슬피울면서 그 자리를 그 하늘을 떠나지 아니하고 빙빙 선회를 하면서 그왕을 살려줄것을 간청을 하면서 슬피울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러기를 잡아서 죽일려고 했던 그 ?가 그 기러기 두마리를 왕과 또한마리를 하늘에 날려주었던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그날 임금님 수라상에는 기러기 고기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어째서 오늘은 기러기 고기를 올리지 않았느냐? 내가 그 고기가 없으면 밥을 못먹는데 왜 고기를 안올렸느냐? 하니까 그와같은 사실을 임금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니까 임금님이 그 말씀을 듣고 그 미물의 중생도 그러 짐승도 자기 왕을 위해서 목숨도 던졌고 그 왕의 죽음을 슬퍼해서 그 하늘을 떠나지 아니하고 그랬다니 어찌 내가 앞으로 기러기 고기를 먹을수가 있단 말인가? 다시는 기러기를 잡지 말아라. 이렇게 엄명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때의 기러기가 바로 누구냐하면 전생에 ? ?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리고 몸을 던진 기러기는 아난존자고 나머지 기러기들은 아라한과를 증득한 성현이 되어가지고 부처님 열반하신 그해에 제1결집을 할때에 모이신 500선승들이신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이자리에서 다같이 ?스님의 법문을 듣고 또 이 산승의 참선에 대한 말씀을 듣고 그리고 법문 끝에 다 같이 10분동안 이렇게 죽비를 치고 입선을 한 이 공덕이 금생에 또는 세세생생에 반드시 우리가 함께 대도를 성취하는 그러한 깊은 인연이 될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시고 열씸히 공부를 해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