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조하리의 창(Johari's Window)
올해의 화두는 단연 ‘소통(疏通)’이다.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소통이 중요 인프라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소통이란 서로가 바라보는 창(窓)을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의 관계를 설정하고 대화를 유지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소통의 창은 투명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사회의 원칙과 신뢰의 인프라가 만들어진다.
‘조하리의 창(Johari’s Window)’이라는 게 있다. 심리학자 조셉 루프트와 해리 잉검이 자신들의 이름들을 따서 만든 것으로, ‘조하리의 창(窓)’에 의하면 사람의 심리는 4가지 영역으로 설명된다. ①나도 알고 남도 아는 영역(열려진 창), ②나는 모르지만 남이 아는 영역(숨겨진 창), ③나는 알지만 남이 모르는 영역(가려진 창), ④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영역(모르는 창) (그림 1). 이상적인 소통은 자신과 다른 사람이 아는 것과 일치되는 ‘열려진 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알지만 자신만 모르는 ‘가려진 창’, 정반대의 ‘숨겨진 창’은 불통의 원인이 된다. ‘
조하리의 창’을 보면서 ‘소비자와 기업 사이에는 어떤 창이 존재하고 있을까 ’ 라는 질문이 떠올라, 조셉과 하리가 설명한 사람 간 심리 영역을 소비자와 기업의 영역으로 대치시켜 보았다. ①소비자도 알고 기업도 아는 영역(열려진 창), ②소비자는 모르지만 기업이 아는 영역(숨겨진 창), ③소비자는 알지만 기업이 모르는 영역(가려진 창), ④소비자도 모르고 기업도 모르는 영역(모르는 창)으로. 그렇다면 각 영역은 모습은 어떠할까
네 가지 영역 중 전통적으로 존재해 왔던 것은 ‘소비자는 모르지만 기업이 아는 영역(숨겨진 창)’이다. 여기에서는 정보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으로 인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중고차 시장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에 정보가 완전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파는 사람이 정보의 우위에 있게 된다. 시장가격보다 좋은 품질의 차라면 중고차 주인은 자신의 차를 팔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차의 품질이 시장 가격보다 낮다면 당연히 차를 팔 것이다. 따라서 중고차시장에 나오는 차들은 실제로 가치보다 밑도는 제품들만 남게 된다. 경제학자 죠지 애컬로프는 이러한 사실을 규명하여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의사와 환자 사이도 정보비대칭이 매우 심한데, 이렇듯 판매자는 알지만 소비자는 모르는 ‘숨겨진 정보’는 경제적 효율성을 저해한다.
위와 반대되는 ‘소비자는 알지만 기업이 모르는 영역(가려진 창)’의 모습은 이렇다.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려는 소비자에게 있어 보험회사는 정보열등자다. 사는 사람이 정보에 우위에 있다. 따라서 보험회사는 보험가입자별로 보험료에 차등을 두지 못하고 일률적인 평균보험료율로 계약을 맺는다. 그 경우 위험도가 낮은 가입자는 보험계약에 불만을 갖게 되고 보험회사에 자신을 사고율이 낮은 주체로 취급할 것을 요구하나, 보험회사는 이러한 식별에 높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 결국 위험도가 낮은 가입자는 보험시장에서 퇴장하고 높은 사고율을 가지는 가입자만 시장에 남게 된다. 이렇게 하여 사고율이 낮은 가입자는 시장으로부터 제외되고, 사고율이 높은 가입자만 보험에 가입한다는 보통과는 뒤바뀐 선택이 이루어지게 된다.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해 불리한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 역 선택(Adverse selection)의 문제가 발생되어 경제적 효율성이 훼손된다.
한편, ‘소비자도 알고 기업도 아는 영역(열려진 창)’은 소비자와 기업의 소통이 활성화되어 있고 두 주체가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완전경쟁시장(Perfect competitive market)으로 상정하는데, 여기에선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정상이윤이 존재할 수 있도록 일반균형의 상태가 성립된다. 최저평균비용과 가격이 일치하게 되고, 이는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되는 상태로 경제적 관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상태가 된다. 다만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지만.
‘소비자도 모르고 기업도 모르는 영역(모르는 창)’은 미지의 영역이다. 두 주체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느냐에 따라 그 모습은 달라질 것이다. 양자가 소통을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을 경주한다면, 소비자도 알고 기업도 아는 열려진 영역으로 발전해 나가게 될 것이다.
1994년 존 내시 이후 로버트 아우만과 토마스 셸링 교수가 1995년 게임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들이 규명한 최신 게임이론은 이렇다. 상대방이 정보를 모를 때만이 게임이론이 적용된다. 게임이론은 상대를 속이고 높은 이득을 올리는 고수의 방법론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게임을 이해하고 고수가 되고 모든 정보가 공개되면, 서로가 완전히 투명한 경지에 들어가게 되어 게임이론이 작용하지 않는다. 소모적인 협상 게임은 쉽게 끝나게 된다는 것이다.
‘조하리의 창’은 소비자와 기업들이 서로 ‘가려지거나 숨겨진 소통’이 아닌, ‘열려진 소통’을 함으로써, 상대를 속이는 소모적인 게임 상황에서 벗어나야 함을 일깨운다. 나아가 아직은 서로 모르는 영역에 대한 소통의 노력으로 열려진 영역을 더욱 확장해 나가야 함을 시사한다(그림 2).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 제대로 갖춰진 원칙과 신뢰의 인프라가 형성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