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원경과 함께한, 도덕봉, 금수봉, 빈계산
1. 일자 : 2012. 11.
24(토)
2.
장소 : 도덕봉(534m), 금수봉(532m), 빈계산(415m)
3.
행로 및 시간
[수통골(11:20)
-> 탐방센터(11:30) -> 계단 전망대(12:10)
-> 도덕봉(12:20) -> (계룡산 원경)
-> 가리울골 삼거리(12:38) -> (중식
13:20-35) -> 자티고개(13:39) -> 금수봉(14:08) -> (계단 길) -> 성북동 삼거리(14:34) -> (계단 길) -> 빈계산(14:46) -> 수통골(15:40)]
4.
동행 : 홀로, 안전산악회
<
대전 근교 산행을 준비하여 >
오랜
시간 준비했던 변산 산행계획이 금요일 오전 전화 한 통화로 무너져 버린다. 이번에도 성원이 차질 않았다는
이유다. 변산에 가는 몇 군데 산악회를 더 알아보다 포기하고 대안을 찾아 나선다. 이미 가본 산은 다시 가기 싫고, 너무 먼 곳에는 마음이 가지 않던
차에 ‘안전’에서 대전 유성 부근의 산들을 간다 하여 일단
예약을 한다. 도심 부근의 400-500미터급 3개의 산, 도덕봉, 금수봉, 빈계산이 오늘의 목적지이다. 늘 그렇듯이 인연을 맺고 나니, 낯설었던
지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대전 부근에 이런 산들이 있었나 싶다. 아무래도 오늘 산행은 분위기가 내가 사는 안양/산본/의왕 부근의 수리산, 모락산, 백운산의
그것과 닮았을 것 같다.
가야 할 길을 그려본다. 수통골에서 출발, 도덕봉, 가리울
삼거리, 금수봉, 성북동 삼거리, 빈계산을 거쳐 다시 수통골로 원점회귀 하는 9km 거리의 코스이다. 수통골 탐방로를 따라 암릉 길을 따라 도덕봉에 오르면 대전시가지가 한눈에 펼쳐질 것이다. 이후
길은 가리울삼거리, 자티고개, 금수봉까지 능선을 따라 진행하게
되는데 산정상에 만들어진 산책로라 할 만큼 경사가 완만하고 편안한 구간이다. 빈계산을 지나 수통골로
하산하면 총 4시간 30분의 호젓한 도심 뒷산 트레킹이 완성될
것이다.
< 희망사항 >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토요일 아침 기온이 올해 들어 가장 낮게
내려 간단다. 다행히 날씨는 청명할 것 같다. 온통 무채색뿐인
초겨울 산, 회색 빛 숲에 코발트 빛 하늘의 은은한 색감은 칙칙함을 받쳐주는 든든한 후광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사실 처음 변산의 대타로 생각한 오늘 오를 산이, 정보를 찾아볼수록, 충분한 가치가 있는 보배로운 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부디 생각이 현실로 이어지기를 바래본다. 출발 전 날 밤 지도를 보다가 이곳 산들은 계룡산
국립공원에 소속된 산임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가문 있는 집안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모든 것이
다시 보인다.
< 대전 가는 길에 >
8시 30분 복정역 평소보다 1시간
늦은 시각, 한 무리의 산객들이 서성이다 버스가 오자 모두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45인승 버스가 꽉 차고 승용차 1대까지 따라 붙는다. 다인승 낡은 버스와 회원 대부분이 노인네이고 주최측은 그리 친절하지도 않다.
무엇이 이토록 이 산악회를 번성하게 만드는지 연구 대상이다. 저렴한 가격, 오지 산행 중심의 행선지, 비교적 성의 있는 밥(그나마 요즘에는 없어졌다.) 등으로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버스 안은 만원이다. 오래된 버스에서 나는 쿰쿰한 냄새에 익숙해질 무렵 유성IC를 나온다. 올림픽 축구장이 나타나고 한밭대학교를 지나 오늘의 들머리 수통골에 도착했다.
첫인상은 대도시 인근 음식점 많은 번잡한 유원지이다. 곳곳에서 목격되는 계룡산국립공원 안내판이
그나마 산 길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차들이 길가를 점령한 번잡한 도로를 따라 탐방센터로 걸어가는
것으로 오늘 산행을 시작한다.
<
수통골에서 금수봉 >
출발 전 기대대로 날씨가
참 좋다. 싸늘한 기온이지만 코발트색 하늘은 이 계절의 축복이다. 도로
길을 10여분 걸어 산길에 접어든다. 초입부터 된비알이다. 소나무와 마사토가 산길의 코드다. 해발 100미터 어름에서 시작한 길은 점차 가팔라지고 15분여 호되게 나를
시험한다. 내려다 보는 풍경이 조금씩 열린다. 유성IC 일대의 조망이 확 트인다. 축구장도 보이고 대학 캠퍼스도 발 아래
바로 있는 듯하다. 돌 길의 연속이지만 시원한 풍경과 함께 해 힘든 줄 모르겠다. 올려다 보는 풍경에 거친 바위 암릉이 목격된다. 그 위가 도덕봉인가
보다. 전체적인 조망은 건물의 밀도라든가 고속도로 인근이라는 점이 수리산과 닮아 있다.
계단이 나타난다. 암릉을 따라 길이 나 있다. 곳곳에 사진 찍기 좋은 전망대가 나타난다. 길에 대한 평가가 한
등급 상승한다. 수리산 보다는 등급이 높은 산이다.
< 도덕봉 오름 길에 본 유성인근 전경 / 도덕봉 >
도덕봉에 도착했다(12:20). 오를 때의 멋진 경치와는 달리 봉우리는
표지석도 없는 평범한 곳이다. 잠시 머무르다가 이내 자리를 뜬다. 이제부터
금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이 시작될 것이다. 북서 방향으로 범상치 않은 풍경이 펼쳐진다. 좌측 높은 봉우리 위에 군부대 통신 시설물이 보이고 우측으로 능선이 이어지더니 화강암으로 된 3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아! 이곳은 계 룡 산. 지금 나는 계룡산의 최고 풍경 자연성릉을 보고
있는 것이다. 원경에 들어오는 산 줄기가 예사롭지 않다. 감동이
밀려온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것이라 더욱 놀랍다. 설악산의
산 줄기는 점봉산에서, 지리산은 웅석봉, 덕유산은 적상산, 치악산은 백덕산에서 볼 때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듯이 계룡산은 이곳 도덕봉 능선에서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오늘 산행은 나머지가 별 볼 일 없다 하더라도 결코 후회되지 않을 듯하다.
비록 잎은 떨어졌지만 나뭇가지에 가려 감질나던 계룡산의 전경은 작은 바위 전망대에서 시원하게 모습이 드러난다. 특히 삼불봉의 기상이 놀랍다. 세 개의 거대한 화강암 암봉이 멀리서도
그 위용을 오롯이 드려내고 있다. 길은 우측 밑으로는 동학사로 금잔디고개를 넘어가면 갑사로 이어질 것이다. 예전에 발 길이 닿았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 산에서도 추억을 먹고
산다.
걷기에 한 없이 좋은 길과 멋진 풍경들이 한동안 이어진다. ‘변산의 대타’란 생각은 없어지고 ‘황홀한 계룡산’이
계속된다. 길과 경치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덧 가리울골 삼거리다(12:38).
‘가리울’그 의미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숲이
우거져 하늘을 가린다는 뜻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 계룡산 자연성릉 원경 / 계룡산을 배경 삼아 >
가리울 삼거리를 지나도 조금은
멀어지긴 했지만 계룡산의 풍경과 함께 길을 걷는다. 제법 높은 봉우리를 넘고 나니 소나무가 멋진 바위
길이 나타난다. 바로 앞에는 또 다른 커다란 봉우리가 솟아 있다. 환한
빛을 받은 주변 풍경이 훤하다. 주말 오전을 이리 멋진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 빛과 소나무와 봉우리가 있는 풍경 / 이어지는 계룡산 원경 >
내려섰으니 다시 올라서야 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 다행히 길은 봉우리의
허리와 어깨를 돌게 되어 있다. 눈에 보이는 대로 험악하지는 않은 것이 우리네 사는 이치와 닮아있다. 다시 평지 능선 길을 걷는다. 오늘 산행에서는 거리에 대한 부담이
없다. 머리 속에 미리 갈무리해 둔 것도 없고 굳이 거리와 시간을 따지지 않아도 될 만한 길이다.
1시를 지나며 적당한 식당자리를 물색한다. 그럴듯한 곳은 이미 주인이 있고, 적당한 낙엽 숲 밑에 자리를 깐다. 유성시내를 내려다 보며 김밥과
떡과 컵라면을 차와 곁들여 먹는다. 꿀맛이다. 소사(小事)에 만족하는 삶이 좋다.
< 자티고개 >
이어지는 산 길 낙엽 틈새로 작은 진달래 꽃잎 하나가 봉우리를 머금고 피어나고
있는 것이 목격됩니다. 겨울을 향해 달려가는 이 계절에도 꽃망울을 피우는 생명의 섭리는 이렇게도 신비하고
경이롭다. 순간, 애처로운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당장 오늘 밤이 되면 불어 닥칠 혹한을 이 연약한 분홍꽃이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마음이 아려온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다시 길을 나선다. 머지
않은 곳에 자티고개가 나타난다. 불교 용어로 ‘자티’ 란 말이 ‘태어남’이라
하니 부디 생명의 싹을 잘 갈무리하여 내년 봄을 맞길 기원해 본다.
이제 금수봉까지는 1.4km, 길
사정이 좋아 큰 어려움 없이 나아간다. 작은 오르막이 이어진다. 이곳을
넘으면 금수봉 일 것이다. 12시 10분 무렵 금수봉에 도착했다. 정상석 대신 팔각 정자가 이곳이 금수봉임을 말해 주고 있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대전시가지의 모습이 시원하다. 멀리 군부대가 있는 봉우리가 보문산일 것이다. 그리 높지 않은 산으로 둘러 쌓인 넓고 평탄한 지형은 풍수에 문외한인 내 눈에도 길지(吉地)로 보여진다.
< 금수봉에서 본 대전 시가지 / 빈계산 가는 길에 >
<
금수봉에서 수통골 >
산행에 나선지 얼추 3시간이 지나고 있다. 기대 이상의 산행이다. 풍경도 그렇고 부드러운 능선 길도 그렇다.
금수봉에서 빈계산으로 향한다. 한동안 내리막 길이 이어진다. 좌측으로 여전히 계룡산의 풍경이 펼쳐지지만 점점 멀어져 간다. 작은
전망대에 서서 계룡산과의 마지막 인연을 사진에 남긴다.
계단 길이 이어진다. 색다른 풍경이 연출된다. 멀리 산너울이 지고 그 밑으로 저수지도 보인다. 정면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 하나가 목격된다. 빈계산이다.
< 멀리서 본 빈계산 / 청설모 >
금수봉이 해발 532미터였는데 한참 내려간다. 그 끝은 성북동삼거리 안부이다. 고도는 300미터가 체 되지 않는다. 빈계산까지는 0.4km, 긴 계단이 이어진다. 산행을 준비하며 더 높은 도덕봉이나 금수봉이 아닌 곳에 왜 ‘산’의 칭호를 부여했을까 의아해 했는데 직접 그 길을 걷다 보니 이해가 된다. 산은
절대 높이가 아니라 ‘비고(比高)’가 중요하다. 빈계산은 힘겨움이 느껴질 만큼 솟아 있으며 지형적으로도
금수봉과는 확연히 독립적이다. 빈계는 산이 맞다.
길가 한 켠에 청솔모 한 마리가 무언가를 쪼아 먹고 있다. 인기척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먹이 앞에서는 위험의 감지 능력도 옅어지나 보다.
덕분에 쉽지 않은 사진 한 장을 건졌다. 청솔모는 긴 오르막을 잠시 잊게 하는 청량제 역할을
해 주었다.
빈계산에 도착했다(14:46) 높다란 소나무가 시야를 가릴 정도로 울창하다. 이제 수통골 주차장까지는 1.8km,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산행은 마무리 될 것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하산 길에
나선다. 지나온 길의 풍경을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를 지나 터벅터벅 길을 내려선다. 신축 아파트 건물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 길은 그러나 쉽게 끝이 나지 않는다.
길고 보기보다 쉽지 않다. 그래, 빈계는 산이
맞다. 아무 곳에 산의 명칭이 붙여지진 않는다.
< 빈계산 정상 풍경 / 지나 온 산 줄기 >
<
에필로그
>
3시 40분 무렵 수통골 주차장에 내려 오는 것으로 오늘의 산행은 마무리 되었다. 지나
온 산 길은 지난 내장산 산행마냥 ‘ㄷ’자형 능선 종주 길이었다. 초겨울 맑은 날씨 속에서 꿈 같은 능선을 계룡산 자연성릉의 풍경과 함께 했다.
오늘의 산행이 엔진이 되고 동력이 되어 일상의 삶의 과정에서, 새로운 에너지로 분출될 것을 기대해 본다. ‘일상’이라는 말에는 늘 긴장감이 돈다. 긴장감이란 좋게 생각하면 대상에
대한 겸허함과 지극한 정성과 설렘이라 한다. 늘 긴장감을 갖고 깨어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