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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지를 캐고, 꽃봉오리를 피우는 삶”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본체μορφή”는 본질적인 속성과 성품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하나도 빠짐없이 소유하셨다는 의미입니다. ①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존재自存하십니다.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십니다. 생각思, 뜻意志, 능력能力, 도모圖謀를 위해 어떤 존재나 어떤 것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으십니다. ② 또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십니다. 존재하지 않던 때가 없으십니다. 시작도 없으십니다. 끝도 없으십니다. 찰나刹那조차도 끊어진 적이 없으셨습니다. 역사와 함께 시작된 시간을 완전히 초월하여 존재하셨습니다.
③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십니다. 이제까지 변함없이 항상 계셨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이 계십니다. 이후에도 변함없이 항상 계실 것입니다. ④ 한계가 전혀 없으십니다. 오로지 당신의 본질과 뜻에 의해서만 얽매이십니다. 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들에 대한 보편적이고도 완벽한 지식을 가지고 계십니다. 당신이 지으신 세계 안의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인간 곧 저와 여러분을 아십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아십니다.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거나,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되는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아십니다.
영원 전부터 어디에나 동시에 계셨고, 현재도 어디에나 계시고, 미래에도 어디에나 계실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⑥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 때나, 어디에나 계십니다. 분산, 팽창, 증식, 분열 없이도 지으신 세계의 구석구석을 관통하십니다. 동일한 시간에 도처到處에 동시에 임재 하십니다. 모든 공간을 지극히 작은 틈도 없이 완벽하게 꽉 채우십니다. ⑦ 또 예수 그리스도는 전능하십니다. 당신의 거룩한 본성에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어떤 일이든지 능히 다 할 수 있으십니다. 다만, 당신의 거룩한 모양과 형상을 담아놓은 인류를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으십니다.
당신이 들 수 없을 만큼 무거운 바위를 만들 수도 없으십니다. 본성과 어긋나는 일은 단 하나도 할 수 없으십니다. ⑧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절대 주권으로 지으신 세계를 다스리십니다. “주권”은 천지의 창조주로서 원하는 행사에 대한 절대적인 권리와 권위를 가진다는 개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있었고, 현재에 있고, 미래에 있게 될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思, 뜻意志, 능력能力, 도모圖謀의 지배를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허락 없이는 단 하나의 일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⑨ 또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이십니다.
누구나 다 사랑하십니다. 은혜와 긍휼과 자비를 값없이 선물로 베풀어주십니다. ⑩ 예수 그리스도는 선이십니다. 선의 최종적인 기준이십니다. 생각하시고, 뜻하시고, 능력을 발휘하시고, 도모하시는 모든 일들은 하나같이 다 선합니다. ⑪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십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완벽하게 구별되셨습니다. 당연히 죄는 지극히 작은 흔적조차도 없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본체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아니 무조건 갖춰야할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면 거룩입니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다른 속성과 성품은 의미 없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본질상 하나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완벽한 하나이십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과 동등同等한 지위를 포기하셨습니다. 영원한 영광을 포기하셨습니다. 존재가 시작되면 의미가 주어지고, 존재가 끝나서 사라지게 되면 의미까지 없어지는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하나님으로서의 속성인 영광과 권위와 권능을 포기하셨습니다. 종의 형체를 취하셨습니다. 종의 외적인 모습만 취한 것이 아니셨습니다.
종처럼 위장한 것도 아니셨습니다. 종에게 천형天刑 곧 천벌처럼 주어진 본질적인 속성을 취하셨습니다. 자기 스스로는 어떤 생각도 할 수 없고, 어떤 뜻도 정할 수 없고, 어떤 능력도 행사할 수 없고, 어떤 것도 도모할 수 없는 그야말로 주인의 명령에 죽고 살아야하는 완벽한 종이 되셨습니다. 영원 전부터 스스로 누리고 있었던 권리와 특권을 완벽하게 포기하셨습니다. 죄의 본성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다른 모든 인간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모양과 형상을 소유한 참인간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기까지만 당신을 낮추지 않으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하여 당신을 거룩한 희생 제물로 내놓으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당신이 창조한 피조물들에 의해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모욕과 조롱과 멸시와 함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하여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가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감히 흉내조차도 내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막8:34b)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거룩한 희생 제물로 내놓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사순절 절기 첫 번째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鄭玄宗는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문학과지성사 / 2028)라는 자신의 네 번째 시집에 수록된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이라는 제목의 시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나는 가끔 후회 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저는 가끔이 아니라 정말 많이 “더 열심히 파고들 걸, 더 열심히 말을 걸 걸, 더 열심히 귀 기울일 걸, 더 열심히 사랑할 걸”이라고 후회합니다. 주어졌던 순간에, 만나게 되었던 사람에게, 하게 되었던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후회하고 또 후회합니다.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그때 저는 마치 반벙어리 같았습니다. 귀머거리 같았습니다. 우두커니 같았습니다. 그 순간들을 더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더 열심히 하지 못했습니다. 후회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심할 때는 견디기 힘든 자책自責까지 말려오기도 합니다. 자책 때문에 무기력 증에 빠지질 때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모든 순간이 다 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주어졌던 모든 순간은 다 노다지 일 수도 있었습니다. 꽃봉오리일 수도 있었습니다. 저의 열심을 통해서 아름답게 피어날 수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사모하며 기다려도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해야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는 모든 순간 노다지를 캐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주어진 순간순간 아름다운 꽃봉오리를 피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다.”(빌2:5)라고 외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철저히 비우셨습니다. 자신을 철저히 낮추셨습니다. 하나님이 종이 되셨습니다. 왕자와 거지는 잠시 옷만 바꿔 입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종이 되셨습니다. 그야말로 존재의 극단적인 변화입니다. 철저한 변화입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을 위해서 얼마나 간절한 사랑을 하셨는지 그대로 보여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비롯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혼이라는 노다지를 캐셨습니다. 꽃봉오리를 피우셨습니다. 창이란 창은 다 두꺼운 커튼으로 가렸습니다.
방은 어둡다 못해 침침하기까지 했습니다. 그곳에 인근 여러 지역의 교회에서 모여든 스무 명의 지도자들이 맨바닥에 둘러앉아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몇 십 리씩 걸어온 이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온종일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려온 이의 몸은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비밀 모임이었습니다. 누구도 모임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일부러 시간 간격을 두고 도착했습니다. 발각이라도 되는 날에는 재산과 직업과 가족은 물론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섬기는 교회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문간에 앉아 있던 단단한 몸집의 형제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소위 보안 책임자였습니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거나, 이상한 움직임이 느껴질 때마다 그가 나가 상황을 확인하고 들어오곤 했습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그가 입을 열었을 때, 굳은 표정 뒤에 숨겨져 있었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그는 고문으로 악명 높은 이단이 자신이 섬기던 성도들 가운데 몇 명을 잡아 갔다고 말했습니다. 이단 단체는 납치한 성도들을 외딴곳에 가뒀습니다.
혀를 자르는 것쯤은 예삿일로 여겼습니다. 그야말로 잔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시작할 때부터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리며 성도들에게 닥친 위험을 설명하던 그는,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이단의 공격에 맞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과 함께 순서를 마쳤습니다. 한 형제Jian는 잘되던 병원을 정리했습니다. 의사나 의료시설이 전혀 없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가난한 이들의 건강을 보살피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복음을 전하고, 또 가정 교회 지도자들을 훈련시키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목숨을 담보로 일생일대의 모험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다른 자매Lin는 전도 자체가 불법화되어 있는 캠퍼스에서 은밀하게 제자들을 만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밥줄이 끊어질 수도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가정 교회로부터 파송 받은 그들Shan/Ling은 무 교회 지역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매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가족들에게 다시는 고향 땅을 밟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어요. 몹시 험악한 곳으로 복음을 전하러 갈 작정인데 거기서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크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형제는 한술 더 떠서 “저희 가족들은 으레 그럴 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하며 믿음을 지켜온 분들이거든요. 늘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무엇을 드려도 아깝지 않은 분이라고 가르쳐 주셨어요.”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날, 몇 미터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저희 일행이 몸을 실은 빵차 곧 일종의 택시는 짙은 안개 사이를 뚫고 골목 여러 저기를 돌았습니다. 이동 경로를 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도착한 작은 공간에는 많은 성도들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었습니다.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된 형제는 아예 들어가기를 포기한 채 빗속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성도들 역시 멈추지 않고 계속 내리던 비를 우산도 없이 몸으로 맞으며 안을 뚫어져라 주시했습니다. 예쁘장하게 생긴 꼬마 여자 아이로부터 칠십대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작은 난쟁이 의자와 흙바닥에 줄지어 앉은 성도들은 그들만 알고 있는 곡조로 성경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지붕은 야트막했습니다. 조명이라곤 천장 한복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백열등에서 나오는 빛이 전부였습니다. 그것마저도 희미했습니다.
서로 누가 누구인지 얼굴조차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수정으로 만들어진 멋진 강대상도, 빵빵하게 울려 퍼지는 음향 시설도, 멋들어지게 화음을 구사하는 찬양 팀도, 기타도, 주보도, 안락한 의자도 없었습니다. 냉난방을 위한 시설도 없었습니다. 여름에 찾았을 때는 비 오듯 흐르는 땀으로 목욕 하고, 겨울에 찾았을 때는 옷을 여러 겹 껴입어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혹독한 추위와 싸우면서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현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현대 성도들이 추구하는 조건은 어느 것 하나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다만 하나님 백성들과 하나님 말씀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쉽게 납득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는 그것만 있으면 충분했습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쁜 마음으로 지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저와 여러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지구촌에는 하나님 말씀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무수히 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굵은 빗줄기가 퍼붓듯 쏟아져 내리는 아프리카 열대 우림 속에서도, 쪼그리고 않을 수밖에 없는 메마른 중동의 도시 한 모퉁이에서도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 있으면 충분히 만족합니다.
매서운 혹한의 추위와 폭염 속에서도, 희미한 등불 아래서도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 곧 전인격을 다 동원해 여호와 하나님 한 분에게만 집중합니다. 자신의 전부를 다 쏟아 부어가며 섬깁니다. 그런 그들이 농사 일로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지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굵어질 대로 굵어지고, 마치 짐승 발톱처럼 굵게 변한 손톱 밑까지 까맣게 물들어 버린 투박한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할 때마다, 찾아와줘서 정말로 고맙다며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할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몰라서 몸부림쳤습니다.
금방이라도 폭풍처럼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눈물을 참아내느라 몸부림쳤습니다. 몇 달 동안 이어질 거지 전도 여행을 한 끼의 밥값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밝은 얼굴을 하고 떠나는 그들을 배웅할 때마다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90도로 고정된 채 뒤로 젖혀지지 않는 의자에 앉아 꼬박 스물네 시간씩이나 달려온 그들이 얼마나 놀랍고, 고맙고, 감사했었는지 모릅니다. 자신들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위험까지 무릎 쓰며 찾아왔느냐고 말할 때는 가슴이 너무나 먹먹했습니다.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주겠다고 찾아갔었던 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었는지 모릅니다.
가르치겠다는 마음으로 그들을 만났던 제가 오히려 그들을 통해서 지금보다는 조금도 치열하게 자신을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은혜를 흘려보내기보다는 오히려 은혜를 충만하게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 숨겨져 있는 무수히 많은 영혼이라는 노다지를 캐내고 꽃봉오리를 피워내는 위대한 역사는 이렇게 기꺼이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쁜 마음으로 지고 그야말로 이름 없이 빛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고 있는 그들의 거침없는 희생과 헌신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자신을 부인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질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온전히 따를 수 있는 복된 삶, 거룩한 영혼이라는 무수히 많은 노다지를 캐내고 꽃봉오리를 피워낼 수 있는 복된 삶,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도 결코 후회하지 않는 복된 삶, 무엇보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참혹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무척이나 외로웠을 길을 묵묵히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고 가슴에 새기는 복된 사순절 절기를 보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