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당 선거테러 등 70년대 조폭활동
교도소 독방 13년…권력과 세상에 분노
사업성공 뒤 삼청교육대 폭로·북한돕기
조폭 출신이 세계평화상을 수상했다. 이상훈(57)씨 이야기다. 18개국 출신으로 구성된 ‘2007년 세계평화상 시상위원회’(위원장 레스터 울프·전 미 하원 8선의원)는 27일 “14년 재소기간 군사정권 퇴진과 민주화 운동을 펴고 삼청교육대생 학살사건 은폐 폭로와 피해 보상운동·북한 어린이 식량지원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해 이씨를 ‘열매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 상은 고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기념해 1989년 창설된 세계평화봉사단이 주는 상으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라빈 전 이스라엘 수상,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 등이 받았으며 우리나라에선 김영진 전 농림부 장관이 수상한 바 있다.
이씨 머릿속엔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고 했다. 20대 중반이던 1975년 신민당 박한상 의원 유세 테러, 부산 극동호텔 나이트클럽 사장 난자, ㅎ건설사 회장 납치 등 70년대 굵직굵직한 조폭사건엔 그가 빠지지 않았다.
그는 5공 초인 81년 포고령 13호 위반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된다. 때론 교도관 폭력에 대들고, 때론 삼청교육대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때론 동료 재소자의 억울함에 편들다 애초 3년 징역형이 세번이나 추가되면서 ‘13년 6개월 25일’로 연장된다. 줄곧 0.85평 독방에서 권력과 세상에 대한 분노와 좌절로 시간을 죽여야 했던 그는 93년 성탄절 특별가석방된다.
교도소에서 나온 그는 좌판을 펴고 시계를 팔았다. 그러나 세상은 14년 가까이 ‘빵’에서 보낸 그에게 녹록지 않았다. 실패였다. 안경과 가발장사에 손댔다. 교도소 생활이 남겨준 ‘뿌연 시력’과 ‘대머리’인 자신에게 딱 맞는 사업이었다. 감옥에서 익힌 무역실무 이론이 크게 도움이 됐다. “3년 정도 하니 기반이 잡히더라고요. 보석사업에 손댔지요. 러시아 호주 타이 싱가포르 등 수입루트를 찾아 제법 벌었습니다.”
돈 버는 재미에 빠지던 이씨는 “95~98년 중국 단둥지방을 왕래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곤 심장이 멈추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북한 여성이 중국 한족 가정에서 식모 등으로 일하면서 인간 이하의 취급 받는 걸 보면서 교도소에서 당한 일들이 떠올랐지요.” 그는 “평양 출신으로 자유당 시절 야당 생활을 하신 선친께선 ‘북한의 형제들을 외면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셨다”며 “북한 돕기에 나서게 된 건 운명 같은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현재 ‘남북 사랑의 빵 나누기 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에 전달한 밀가루가 100톤에 이른다. 250만명이 한끼 할 수 있는 분량. 2004년 용천역 폭발사고 때는 전국 재소자와 교도관들로부터 200여만원을 모금해 전달하기도 했다. ‘전국 5·6공피해자협의회’ 집행위원장도 맡고 있는 그는 2005년 ‘삼청교육대 피해보상법’을 이끌어내는 데 힘을 보탠 것에 남다른 자부심이 있다.
“북한의 320만 영유아들이 의약품과 식량이 부족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동전 한 닢이 그들의 생명을 구하는데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