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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김성동
어느날 그(지산)는 무서운 형상을 한 부처를 법운에게 보여 준다.
"이것이 부처님의 얼굴이야. 지금 이 시간에도 숱한 중생들이 배고파서, 병들어서, 옥에 같혀서, 금력과 금력 가진 자들에 억눌려서 신음하고 있는데, 1,000년을 두고 침묵의 미소를 짓는 불상은 부처가 아냐. 번뇌에 쌓여 고통스러워 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부처가 참부처지."
먹고 살기위해 어제까지의 우방마저도 경쟁자로 마주서는 이 살갑고 냉혹한 시대에 캐캐묵은 이데올로기로 국가의 장래를 저당잡히는 이 나라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고, 예전 6.25 전후 그 현장을 다시 되돌아 보고자 이데올로기 소설을 펼쳐보았다.
광장/최인훈
이명준은 월북한 공산주의자 이형도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민주주의 만족통일전선 선전 책임자로 있으면서 중류 부르조아의 생활을 누리고 았었다.
월북한 이명준은 노동신문 기자가 된다. 그러나 곧 북쪽이 정열이 사라진 잿빛 공화국이라는 사실과, 아버지가 젊은 여인과 재혼하여 평범한 부르조아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에 커다란 환멸을 맛본다.
6.25가 발발하자 명준은 정치보위부 간부로 서울에 돌아왔다. 그리고 인민군 간호병으로 참전한 은혜와 다시 만나 사랑을 나누지만 그녀는 낙동강 전투에서 사망하고, 명준은 포로로 잡힌다.
마침내 휴전이 성립되고, 명준은 거제포로수용소에서 남.북한 대표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중립국인 인도로 보내 줄 것을 요구한다.
그때 17만명에 이르는 포로들 중 중립국으로 가겠다는 사람은 공산군쪽에서 86명, 유엔군에서 2명뿌누이었다.
드디어 인도로 가는 배위에서 명준은 출항 순간부터 따라오는 갈매기 두마라가 자신을 엿보고 있는 환각에 시달린다.
큰 갈매기와 꼬마 갈매기를 향해 총을 쏘려던 그는 문득 그 꼬마 갈매기를 딸처럼 느낀다. 그리고 그는 마카오 근해에서 투신함으로 생을 마감한다.
몽실언니/권정생
몽실이네는 해방 후 외국에서 들어 온 거지 가족이다. 어머니 밀양댁은 날품팔이 남편을 버리고 몽실과 집을 나와 댓골마을 김씨에게 재혼을 했다.
그리고 아들을 낳자 김씨는 몽실을 구박했다. 그로인한 싸움에서 김씨는 마루에서 몽실을 밀어뜨려 몽실은 다리 병신이 되고만다. 이를 안 고모는 몽실을 친아버지 정씨에게 데려다 주었다.
정씨는 남의집 머슴살이를 하다 몇년 후 북촌댁에게 새장가를 들었다. 북촌댁은 착한 여자였다.
몽실은 처음으로 행복을 맞보았다. 6.25가 발발하고 정씨는 군대로 끌려가고, 북촌댁은 딸을 낳고 굶어 죽는다.
전쟁이 끝나고 군대에 간 아버지는 포로로 잡혔다가 절름발이가 되어 돌아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야 한다.' 라고 몽실이는 다짐하며 깡통을 처고 장터거리로 나가 구걸을 했다.
댓골로 시집간 친어머니는 아기를 사산한 후 심장병으로 죽었다. 몽실이는 배가 다른 동생들과 씨가 다른 동생들을 다 데리고 함께 살았다.
몽실이는 구걸질을 열심히 했으나 아버지는 병이 깊어져 병원 문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죽었다.
동생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몽실이는 다시 흩어진 동생들을 찾아 나선다.
삼십년이 지났다. 몽실이는 곱추인 구두수선쟁이와 결혼을 해서 남매를 낳았다. 배다른 동생이 폐결핵으로 요양소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에 닭찜을 싸들고 요양소를 찾아간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조세희
아버지가 난장이인 행복동에는 영수, 영호, 영희 삼남매가 살고 있다.
어느 날 행복동에는 철거장이 날아들고 철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철거 후의 보상으로 아파트 입주권이 주어지지만, 엄청난 입주비로 그림의 떡이다. 입주권을 팔아 본들 전세 돈을 빼주고 나니 남는 것이 없다.
아버지의 약한 기력으로 대신 어머니가 생겨를 떠 맡지만 역부족이다.
세남매는 학교를 그만 두고 모두 공장에 다녀야 했다. 막내 영희는 입주권을 산 사내에게 고용되어 동거를 시작한다. 영희는 금고에서 입주권을 훔쳐내어 집으로 돌아오지만, 아버지가 굴뚝에서 떨어져 죽은 사실을 안다.
난장이 가족은 버려진 공업도시, 썩은 바다에 접해있는 은강시로 이사를 한다.
그들은 각각 은강그룹에 의탁하여 가족의 생겨를 유지한다.
그러나 난장이 가족이 죽으라고 일한 대가는 4인 가족을 기준한 도시근로자의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푼돈이었다.
작업환경도 최악이고, 공원들은 철야작업시 잠을 쫒기위해 수면제를 먹어야 했다.
영수는 수 없이 울며, 협박받으며, 구류까지 살며 은강에서 일을 하였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불합리한 사회의 음모를 인식하게 된다.
이를 개선코자 공장내 서클을 조직하던 영수는 고용주측 폭력배들에게 폭행을 당하게 된다.
영수는 은강그룹의 회장을 살해하기 위해 결심하였으나, 회장의 동생을 회장으로 오인하여 칼로 지르고 붙잡힌다.
그리고 법정에선 영수는 공소사실을 인정함으로써 그에게 사형이 선고된다.
영자의 전성시대/조선작
고아원을 도망쳐 나와 거지 생활을 하던 영식은 청계천 2가의 조그만 철공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 철공장 주인집의 식모 영자를 꼬셔볼까 궁리 중이다. 추석날 아침 영자에게 극장 구경을 가자고 말을 걸었지만 퇴짜를 맞고 말았다.
결국 영식은 영자의 마음을 얻지 못한채 군대를 가게 된다. 그리고 제대 후 같은 유가족 출신인 창녀 창숙을 찾아 나섰다. 목욕탕에서 때밀이 생활을 하면서 서울의 사창가를 헤매던 중 오팔팔에서 엉뚱하게도 영자를 만나게 된다.
영자는 한쪽 팔이 없는 병신이 되어 있었다. 버스 차장일을 하다 사고로 외팔이가 된 영자에게는 창녀로 살아가는 가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남자들이 찾아주지 않았다.
영식은 영자에게 의수를 만들어 주고 서방 노릇을 했다. 원피스 속에 적당히 감추어진 의수를 달고 영자는 눈부신 활약을 한다.
영자로서는 전성기가 온 것이다. 영자는 전셋방 값만 모은다음 발 씻고 영식과 살림을 차리겠다는 각오를 했다.
그럭저럭 영자는 부지런히 돈을 모았고, 그 돈은 포주인 나이롱 아줌마에게 맡겼다. 이십만 원이 목표였다.
겨울로 들어서면서 불도저 작전이라는 경찰의 철저한 단속이 시작되었다. 영자는 안절부절 못했다. 가까스로 탈출한 영자는 공동목욕탕에서 영식과 더부살이 생활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창녀촌에 불이 난다. 나이롱 아줌마에게 맡겨둔 돈을 꺼내려 불구덩이에 뛰어든 영자는 새벽녁에 시체로 발견 된다.
영식은 이를 악물고 울음을 삼켰다. "이 바보야, 누가 널보고 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랬어 누가."
그러나 영자는 장난기 섞인 말투로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불은 내가 질렀는걸요"
장난감 도시/이동하
소설의 배경은 6.25를 격고난 1950년대 달성공원과 자갈마당이 나오는 대구의 어느 거리이다.
장남감 같은 하꼬방 동네에서 격은 어린시절의 추위와 물만 마시고 참아내는 배고픔, 알콜 중독으로 비틀거리는 어른들, 그 어른들의 매질에 우는 아이들, 곰표 또는 무궁화표 밀가루로 만든 풀빵, 사카린에 색소를 풀어 넣은 거리의 냉차, 군용 반합을 든 거지아이와 손톱이 새까만 구두닦이 아이, 전지분유를 나누어 주던 천막교회와 노란 옥수수가루를 나누어 주던 천주교성당, 거리에 나딩굴어 있어 얼어 죽은 사람들의 변사체, 사창가를 헤매는 소년들의 거칠고 버림받은 성, 루핑 자루를 누덕누덕 기운 판자촌의 기나긴 장마...
정말 한많은 과거사인데, 우리세대는 그나마 기억에 있지만 젊은 사람들은 먼 아프리카의 일인줄로만 여길 것이다.
'우리들은 천막교회와 성당을 열심히 드나들면서 전지분유나 노란 옥수수가루를 얻어왔다.
성당에서는 옥수수가루가 떨어지면 드럼통만한 가마솥을 서너 개 걸어놓고 누런 옥수수를 대량으로 끓여내고 있었다. 마태복음에서 기록된 빵과 물고기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언덕 위 천막교회에서 더 이상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다. 그무렵 어머니의 뱃속에는 썩은 사과 같은 아이가 들어 있었다. 어느 날 저녁에 어머니는 운명하셨다. "태아가 떨어졌군요"라고 의사는 말했다. 누나는 밤새도록 울었다.
1년 형기를 마친 아버지가 돌아왔다. 아버지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조차도마찬가지였다.
누나는 밥을 얻어먹기 위해 두부공장 집 병신 아들의 마누라로 내정되어 민며느리로 들어갔고 나는 구두닦이를 시작했다.'
태백산맥/조정래
1948년 10월. 여순사건과 함께 좌익에 의해 장악되었던 벌교가 다시 진압세력인 군경에 수중에 들어가자 좌익 군당위원장 염상진은 하대치, 안창민 등과 산속으로 퇴각한다.
하대치는 염상진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오척단신의 용맹한 전사다. 그들은 율어면 분지에 평등의 땅 '해방구'를 만들었던 산사람들이다.
비밀당원으로 상부의 밀명을 받고 벌교로 잠입하게 되는 정하섭은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진 곳에 살고있는 무당 딸 소화를 이용하고, 둘 사이에는 사랑이 싹튼다.
염산진의 동생 염상구가 감찰부장으로 있는 청년단은 좌익세력을 차단하는데 앞장선다. 형에게 열등감과 불만을 동시에 품고 성장한 염상구는 형의 직계 행동대원인 빨찌산 강동식의 아내 외서댁을 능욕하고, 벌교를 주름 잡으며 갖은 만행을 저지른다. 외서댁은 그의 아이를 낳은 뒤 빨찌산으로 입산한다.
무고한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는 것을 보다 못한 벌교의 유지 김범우는 수습위원회 대표 최이승에게 희생을 줄이도록 호소하지만, 오히려 빨갱이로 몰리게 된다.
이승만 정권이 농지개혁에 실패하자 농민들의 불만은 갈수록 높아지고, 이 과정에서 소작인 강동기는 지주를 삽으로 내리찍고 산으로 들어가 빨찌산이 된다.
반면, 양심적 우익을 대표하는 인물인 지주 서민영은 자기 소유의 논을 모두 소작인들과 공유하도록 한다. 그는 국군 벌교지구 사령관 심재모로 하여금 모든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도록 하는데 앞장선다.
6.25의 발발과 함께 벌교는 염상진 등에게 장악되고, 좌익세력들은 인민의 해방을 감격스럽게 맞이하지만 산하는 또다시 살육의 참상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중도적인 민족주의를 고수하던 김범우와 손승우는 빨찌산의 길을 택하게 되지만, 김범우는 미군에게 붙들려 강제로 통역관으로 일하며 부도덕한 행태를 목격하게 된다.
전쟁은 유엔군의 참전과 중국의 개입으로 교착상태에 빠지고, 전선은 38선 부근에서 대치상태가 지속된다. 퇴로가 막힌 인민군과 빨찌산 세력이 지리산 일대에 근거지를 두고 무장투쟁을 계속하지만, 군경의 진압작정에 따라 이들의 투쟁은 점차 무력해지고 염상진은 퇴로가 막히자 부하들과 함께 수류탄으로 자폭한다. 그리고 그의 목이 벌교읍내에 내걸린다.
염상진이 염원했던 '인밈해방'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죽은 자는 목이 잘려 살아남은 자에게 용기와 희망을 안겨 주고 땅 속에 묻힌다.
염상진을 추종했던 하대치 등은 염상진의 무덤 앞에서 새로운 투쟁의 결의를 다지고, 언젠가는 밝아 올 역사의 새벽을 향해 어둠속으로 사라져 간다.
흑산도/전광용
설 쇠고 첫번째 조금이 지난, 새벽 눈이라도 내릴 것 같은, 그러나 철에 고깝지 않게 포근한 달밤, 인실네 마당에는 큰애기들의 강강수월래가 그칠 줄을 모른다. 갯가에서는 징소리가 더 세차게 들렷다. 오늘 밤이 용왕제 전이다.
평나무 등이 빽빽하게 우거진 나왕산 개울이 구렁이처럼 갯벌로 꿈틀거리며 흘러내리는 까막개 마을사람들은 대대로 바다에 나서 바다에서 죽는 삶을 이어간다. 복슬이 아버지도 그랬고 용바우 아버지도 그랬다.
원수같은 바다에 끝없는 저주를 보내면서도 바다가 삶의 터인 그들에게 바다에 대한 지성은 곧 그들의 신앙이었다. 그러기에 해마다 정초에는 가장 험 없고 깨끗한 젊은이들이 용왕제 집사로 뽑혔다. 용바우도 금년에 이 정성스러운 일에 한몫 거들었다.
용바우는 열다섯에 배를 탔는데, 그로부터 벌써 10년이 흘렀다. 어렸을 때부터 허물없이 지내던 복술이가 요즘 용바우 앞에서 옷고름을 물지 않으면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복술이 나이 열아홉이었다. 용바우는 어느새 복술이가 제 물건처럼 소중해졌고, 복술이도 용바우가 노상 싫지는 않았다.
이튿날 먼동이 트기 전부터 눈이 내렸고, 당산에서 용왕제가 올려졌다. 복술이는 보름이나 쇠고 따나라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보름 전에 만선이 되어 돌아오겠다며 그는 두철이 털보영감과 떠났다.
배들이 돌아왔다. 그러나 열흘이 넘어도 용바우가 탄 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두 달이 넘었다. 마을 사람들 입에선 이젠 털보영감이나 용바우 이야기가 점점 사라져갔다. 그러나 복술이만은 날마다 나왕봉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녀는 용바우가 꼭 살아 돌아올 것만 같았다.
그 사이에 작년 여름 물을 실어간 갠자꾸의 곱슬머리가 복술이를 찾아오곤 하였다. 그가 다녀간 뒤 보따리를 풀어보니 빨랫비누 담배갑이 나왔다. 사흘째 찾아온 곱슬머리는 내일 저녁 목포로 떠나는 갠자꾸를 타고 함께 뭍으로 가자고 했다. 뭍으로 나가는 것은 복술이의 소원이었다.
이튿날 복술이는 끝내 까마바위로 나갔다. 그러나 막상 까막바위에 선 복술이의 눈앞을 고래등 같은 용바우의 모습이 가로막고 있다. 할아버지의 가래침 소리도 목덜미를 잡는 것 같았다. 용왕당과 마루와 갯벌이 머릿속에 감돌았다. 복술이는 갑자기 마을쪽으로 달아났다. 용바우가 내일 틀림없이 돌아올 것만 같았다.
까막개의 아낙네들은 그리다가 목마르고 기다리다 지쳐서 쓰러지면서도 바다와 더불어 살았다. 복술이 어머니도 그랬고 복술이도 그랬다. 흑산도! 그것은 발목을 숙명처럼 잡아매는 이름이었다.
소시민/이호철
6.25 당시 이북에서 홀로 피난 온 주인공 나(이호철)는 처음으로 부두 노동을 하다가 완월동의 한 제면소에서 일하게 된다. 제면소 주변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제면소는 당시 부산 거리의 축소판으로, 이전에 무엇을 해 먹던 사람이건 이곳으로만 밀려들면 어느새 소시민으로 탈락하기 마련이었다.
단순하고 무식하며 전쟁의 혼란속에서도 원조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팔아 소자본을 이룩한 제면소 주인, 소자본가로서 먹을 것 걱정은 없으나 복잡한 가정문제로 신경질을 부리고 성적 불만을 적당히 해결하는 주인 여자, 일제시대 지원병으로 버마전선까지 끌려갔다 온 일이 있고 지금도 일본군을 절대 절명의 존재로 생각하며 전란의 소용돌이를 피안의 불로 바라보면서 주인에게 순종만 하는 신씨, 고등교육을 받은 후 징용도 다녀오고 남로당에 가담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제면소에서 찌들고 있는 정씨, 옛날 정씨의 부하로서 제면소 시절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고 마침내 정전 지지 테러에 가담하는 김씨, 지식인 출신으로 제면소에서 기식하다가 자살하는 강영감, 지주 아들로 소시민적 허세가 강한 곽씨, 전쟁에 남편을 잃고 제면소 식모에서 양공주가 된 천안댁 등 온갖 계층의 인물들이 제면소를 중심으로 혼란기에 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비 정상적인 애정행각에 빠지기도 했던 나는 마침내 정씨의 동생 정옥을 만난으로써 순수한 사랑을 회복하기 시작하지만, 정옥은 병들어 죽고 만다. 정씨의 괴로움과 무너짐은 점점 심해갔다.
그는 심한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살아 가고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때는 정씨와 동지였던 김씨는 천안댁을 강제로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동거하며, 제면소를 그만 두고 장사를 하느니 정치를 하느니 동분서주했고 실제로 이승만 대통령을 지지하는 데모대에 휩쓸려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는 결국 천안댁까지 버리고 만다.
완월동 제면소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흘러 가는지 모른 채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에게도 영장이 나오고 결국 나는 제면소를 떠나게 된다.
그로부터 15년후, 나는 다시 부산을 찾게 되는데, 그곳에서 정씨의 아들을 만나 정씨가 우물에 빠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죽음은 자살인지 실족사인지를 알 수 없는 죽음이었다.
또한 완월동 제면소 자리는 근래까지 제면업을 했던 듯 국수기계와 국수솥이 걸려 있었고, 밀가루 창고 자리에는 복덕방이 차려져 있었다.
그 복덕방에는 늙은 신씨와 주인 부부가 함께 살고 있었다. 양공주였던 천안댁은 양장점 주인이 되어 있었는데, 서울에서 납품업을 하다가 최근에 무슨 바람이 불어 그 일을 그만 두게 되었다는 김씨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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