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순교자 성월을 맞이하여 지난 9월 12일 우정의 길(한실 교우촌~ 백화산 중턱)그리고 17,18,19일 믿음의 길(문경 관아~상주 옥터)에 이어 25일 순교의 길인 여우 목 성지에서 문경 관아까지 걸었습니다....
* 사진은 순례를 함께한 로잘리 자매님께서 올린(다시 세상 특별한 순례길로)것과 중복되지 않는 사진들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가을의 햇살이 우리에게 다가 옵니다.
순교자 성월에 순교자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분들이 드러내신 신앙의 용기와 기쁨이 우리에게 실천하는 좋은 기회로 다가 오길 바래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순례를 마치고 커피 한잔의 여유를 가져봅니다..
그동안 순례객을 위한 휴식공간이 마땅치 않아 이번 기회에 기존 봄이네 카페를 새롭게 단장하였습니다...
순례객을 위한 샌드위치와 커피과 마련되었으니 많이 이용해 주세요~~
그리고 다음은 여우목 성지와 관련된 순교자들입니다..
1. 성 이윤일 요한(1823~1867) - 103위 성인 중 103번째
성 이윤일 요한은 충청도 홍주 출신의 태중 교우로 경상도 문경 '여우목골'에 살며 회장으로 활동, 1866년 병인박해 11월 가족 및 마을 교우 30여 명과 함께 체포되어 문경 관아에서 3일 간 혹형과 고문을 받은 후 배교하지 않은 교우들과 함께 상주로 이송되었다.
상주에서 다시 한실 교우촌 김 회장 형제와 함께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어 김 회장 형제와 함께 1867년 1월 21일 대구 남문 밖 관덕정에서 참수형을 받고 45세 나이로 순교하였다.
그의 시신은 후손에 의해 처음 대구 비산동 날뫼 뒷산으로 이장됐다가 경기도 용인 미리내 성지 무명순교자 묘역을 거쳐 1987년 대구 성모당에 안치됐다. 이후 성인은 대구대교구 제2 주보성인이 됐으며, 1991년 관덕정순교기념관 성당 제대에 봉안됐다.
2. 서치보 요셉(1791~1840)
서치보 요셉은 경상도 초대 교우 서광수의 손자이며 서인순 시몬의 부친이다. 충북 청원에서 박해를 피해서 이곳 문경 여우목으로 피난해 성 이윤일 요한과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1840년 9월 19일 49세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 서인순, 명순, 철순, 익순, 태순이 그의 아들들이다. 한편 서철순의 아들이 일제 강점기에 국책보상운동을 제창했던 서상돈이다
3. 서인순 시몬 (1808∼1868)
1840년 9월에 부친 서치보 요셉이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를 모시고 4명(명순,철순,익순,태순)의 동생들과 함께 풍기로 이사를 가서 그곳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경신박해 때인 1860년,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다시 온 가족들을 데리고 경산 모개골 교우촌으로 이사를 갔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관헌에게 잡혀 대구감영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868년 4월 29일(음) 60세의 나이로 옥사하였다.
그 후 그의 유해는 처음에는 경산 모개골에 안장되었고 후에 부친의 묘소가 있는 여우목으로 이장해 왔으며, 1999년 9월 18일 여우목에 새로이 산소를 마련하여 부친 서치보 요셉과 함께 이장하여 모셨다.
- 서익순(요한)은 절두산에서 백지사형으로, 서태순(베드로) 상주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서태순(베드로)은 한실교우촌의 회장이었던 김아우구스티노, 그리고 서유형 바오로, 박루치아와 함께 현재 “하느님의 종 133위”시복 추진 중이다.
4, 복자 박경화 바오로(1757∼1827)ㆍ박사의 안드레아(1792∼1839)
박경화(바오로)는 충청도 홍주현(현 충남 홍성군)의 양반 집안 출신으로 박사의(안드레아)의 부친이다. 1794년 말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자 박경화는 주 신부를 찾아가 세례를 받고 교회 서적을 열심히 읽으며 교리를 가르치고 전교에 힘썼다. 그리고 60세에 가족을 데리고 충청도 단양 가마기(현 충북 단양군 적성면 하리)로 이주해 9년간 교우들과 공동체를 이뤄 신앙생활을 했다. 정해박해가 일어나자 경상도 상주 멍에목(현 경북 문경시 동로면 명전길 일대)으로 이주했으며, 그해 4월 말 교우들과 함께 주님 승천 대축일을 지내다가 체포되어 상주를 걸쳐 대구에서 71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아들 박사의 또한 상주를 거쳐 대구로에 압송돼 아버지와 함께 여러 차례 형벌을 받았지만, 신앙의 힘으로 참아냈다. 특히 고령의 아버지를 보살피고자 관장에게 함께 형벌을 받도록 해달라고 요청해 허락을 받은 뒤 아버지를 돌본 일화는 유명하다. 박사의와 그의 동료들은 12년간 대구 감옥에 갇혀 있다가 1839년 5월 26일이 돼서야 참수형을 받는다. 그의 나이 47세였다. -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복자품에 올랐다.
첫댓글 교우촌을 이루며 신앙을 지키다가 참수형으로, 생각만으로도 절절한 백지사형으로, 국채보상운동으로 국가를 위기에서건지고자 했던 애국심으로 신앙을 지켰던 신앙선조들이 계셨던 안동교구 문경성지를 순례한 축복에 감사드립니다.
그 길이었기에, 그 길에서만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정경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그리스도 신앙인의 향기나는 삶을 살며 실천하도록 늘 깨어있겠습니다.
순례 후 카페에서 오미자차와 오미자빵등으로가졌던 휴식은 정말 달콤했습니다. 문경성지를 찾는 순례객들에게 정말 좋은 휴식처가 될 것 같아요~ 대~박을 기원합니다.
잘다녀오셨네요. 순례길 함께 걷고싶어요.
그런데 10월 순례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찬미 예수님!
지난 과거나 현재에서나 자유가 없는 수감생활의 고통은 하루가 천년같이 길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려 12년간을 감옥에 갇혀 지내시면 서도 주님만을 향한 그 마음은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궁금해지면서 나도 그렇게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번 해 보게 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