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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100년 9월 20일 일반법회
> 제목: 정산종사법어 제8 응기편(應機編) 제 14장
> 보산 김제원 교무님 설법
> 타이핑: 백도원
장 성진(張聖鎭)이 묻기를 [마음은 항상 어떻게 가지오며 언행은 어떻게 하오리까.] 말씀하시기를 [항상 넉넉한 마음과 넉넉한 언행을 가질지니라.]
- 정산종사법어(法語) 제8 응기편(應機編) 제 14장
1. 모산 장성진 (母山 張聖鎭,
1924-2010) 대봉도
모산님은 사리연구력이 아주 깊었던 분입니다. 상주선원에서 강의나 강좌가 있으면 주로 변의품과 인과품 법문을 주로 모산님이 다 하셨습니다. 철학과를 나오신 것도 있지만, 유난히 그런걸 좋아하셨어요. 그런 부분에 대한 법문을 많이 해주신 분입니다. 원불교에도 철학과를 나오신 분들이 몇 분 있는데, 철학과를 나온 사람들은 좀 자유스런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모산님도 그러셨습니다. 모산님께서 총부에 계실 때 주로 어디서 계셨냐면, 대각전 앞에 우측에 보면 성불당이라고 있어요. 그 우측방을 쓰셨습니다. 그 옆에 종각 치는 간사가 왼쪽에 살고, 당신은 우측에 많이 사셨고, 상주선원에도 많이 계셨고 그렇죠. 모산님은 젊은 시절에 대종사님을 뵈셨네요. 정산종사님 밑에서 공부를 하시고 출가제안을 받았는데, 못하셨다가 십 년도 훨씬 넘어서 출가를 하신 그런 어른입니다. 이분은 참 다른 사심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오롯하게 이 공부하는 재미, 또 많은 분들에게 이 법문을 공양하는 재미로 사신 어른입니다. 보육원에도 계셨고, 동산선원에서 후진들의 교육도 하셨고, 또 중앙선원, 중앙훈련원에도 계시면서 교무님들 교육을 많이 시키신 분입니다. 교당은 원평, 정읍, 화해, 용각에 근무하셨는데, 보니까 중앙선원, 중앙훈련원, 상주선원 등 주로 교무님들의 교육 기관에 거의 근무하셨네요.
그리고 모산님은 저하고도 인연이 많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다가 군에 가기 전에 놀고 있으니까 저희 아버지가 총부나 가보라고 그래요. 그때가 원불교 뎅기는 둥 마는 둥 할 땝니다. 뭣인지도 모르고 가서, 상주선원의 우측에 적성당이라는 곳의 방을 제가 썼습니다. 거기서 한 달 정도 있으면서 출가자 같이 살았습니다. 새벽에는 선하고 청소하고 총부 식구들하고 같이 식사하고, 오전에는 총부의 여러 분들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강한 분야들이 있어요. 그때 상주선원 원장님이셨던 모산님은 변의품이나 인과품 법문을 주로 하셨고, 불조요경에 강한 분들은 불조요경을 강의하시고, 다른 분들은 대종경이나 정전을 강의해주셨습니다. 제가 원불교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아버지가 가라고 해서 가서 그렇게 했었습니다. 그때 당시 원불교 학과 생은 현재 같이 안 살고, 상주 선원 바로 앞에 지금은 정화정사가 된 그곳이 남자 기숙사였어요. 그때 제가 거기 간 것이 제가 이 길로 오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때로는 멋도 모를 때 하는 것도 필요한 거 같아요. 아무 것도 모르는데 가라니까 가서 오전에는 공부하고, 오후에는 작업하고, 저녁에는 대종사님 거처하셨던 곳에서 염불을 했습니다. 그렇게 이 주 지나서 일기 대조를 하는데 계문이 거의 거스를게 없더라구. 왜냐면 계문 어길 경계가 없는 거여. 그 안에 살지,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지, 공부는 하지, 일과 대로 따라 가지. 뭐 계문 어길 일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그때 염불 끝나고 좌선할 때 수양의 맛을 보게 됐었습니다. 이런 게 진경이구나. 이런 게 내가 없어지는 경계구나. 그 뒤로 아직까지 제가 수양의 재미를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산님께서는 다음 생에는 아주 지혜가 더 밝으실 거에요. 연구를 엄청 많이 하셨어요. 대도론 책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 연구를 하셨을까 할 정도로, 연구가 넘쳐버릴 정도로 그렇게 연구를 하신 어른이십니다. 다행스럽게 자녀분들이 여럿 출가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출가 여행 가는 변산선원 원장님도 따님이시고, 해남교당 교무님도 따님이시고, 기념품 센터에 근무했던 분도 따님이십니다. 사모님이 고생하셨죠. 정토님께서 하숙치시고… 그래도 자녀들이 엄마들이 고생하고 그렇게 넉넉하게 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출가를 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대봉도 법훈을 받으셨습니다. 이분은 돌아가기 전까지도 계속 연구하셨어요. 예를 들면, “인과보응의 도와 불생불멸의 도라고 해놓고, 교리도에는 왜 인과보응의 신앙문하고 불생불멸의 수행문 안하고 진공묘유의 수행문이라고 했습니까?” 하는 등의 질문을 계속 하셨습니다. 이 분은 연구력이 있기 때문에 질문하길 좋아하셨습니다. 질문 덕분에 정산종사 법문에 나오게 됐고, 오늘 우리가 모산님을 함께 공부하게 됐습니다. 모산님은 저희 누나가 출가하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저하고 저희 누나가 출가하니까 아버님이 상주선원 운영위원을 하셨어요. 일년에 오십만원인가 내면 되니 운영위원좀 하시죠 하셨습니다. 상주선원은 총부에서 돈을 대준 게 아니고 이렇게 모산님이 인연을 모아서 모산님이 지은 겁니다.
2. 정산종사법어 제 8 응기편 제 14장
(1) 넉넉한 vs. 각박하고 조급한
마음과 언행에 대해서 물으셨죠. 어떻게 가지고 어떻게 합니까 하고. 우리가 결국은 마음이 들어서 말을 하게 되고, 그 말이 실행으로 나타나게 되지요. 어떻게 그것을 해야 하냐는 핵심을 물으신 거죠. 정산종사님께서 아주 쉽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마음을 항상 넉넉하게, 말과 행동도 넉넉하게 하여라. 넉넉하게. 자 넉넉하게 그래 버렸네. 그럼 넉넉하게의 반대말은 뭐에요? 생각나는 대로 불러봐요. 빨간색으로 써봅시다. ‘편협하게’ ‘부족하게’, 또? ‘속 좁게’, ‘쪼잔하게’, ‘형편없게’, ‘소심하게’, ‘치사하게’, ‘찌질하게’, 허허허. 제가 몇 개 추가하자면, ‘각박하게’, ‘바쁘게’, ‘조급하게’, ‘촉박하게’ 등이 있겠습니다. 맞아요? 이게 단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여러분 넉넉하게 사셨어? 아니면 이 단어들처럼 이렇게 반대로 사셨어? 마음은 넉넉하게 살았어? 이렇게 살았어? 말은 넉넉하게 했어? 이렇게 했어? 아, 이랬다 저랬다 상황 따라서, 행동도 그랬어요? 행동도?
그러면, 다시 또 묻습니다. 오늘 같이 해봅시다. 이렇게 넉넉하지 않게 하는 원인이 뭡니까? ‘불안해서’, ‘과욕 때문에’, 또! 어째서 안 넉넉해, 말도 마음도 왜 그렇게 조급하고 촉박할까? ‘몰라서’, 또? ‘불편하면’, ‘아프면’, ‘인색해서’, ‘가난해서’, ‘환경 때문에’, ‘화가 나서’, ‘주의심이 없어서’, ‘기분 나빠서’, ‘감정이 상해서’, 또! ‘걱정돼서’ 본인이 옛날에 했던 거 점검해보면 나올 거 아니여. 지금 학문하는 시간 아니여. 본인이 옛날에 안 넉넉하게 살았는데 왜 그렇게 했는가, 왜 그렇게 급하게 행동했는가. 그러다가 엎어진 사람, 치 박은 사람 많잖아! 돌아서서 그때 좀 따뜻하게 말할 건데 너무 각박하게 말했나 싶기도 하고. ‘미운 마음’, ‘나만 생각해서’, ‘이기심’ 또? ‘비교하는 마음 때문에’, 그려 ‘상대심’, ‘비교심’ 좋네. 잘 나오네. 앞으로 법회를 이렇게 봐야겠어. 이렇게 하니까 조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만. 하하하. 또? 참여 안 하는 사람 점수를 까버려야 하나, 참여 안 하는 사람 공양하라고 벌을 줘야 하나. 하하. ‘속이 좁아서’, ‘인색해서’; ‘편협해서’, 또 요. 그만할까? ‘괴로워서’, ‘자기중심적이라서’, ‘습관적으로’ 그래요. 아~ 내가 공부를 잘 시켰구먼, 쫙쫙 나오네. 연구력이 대단들 해. 많이 해봐서 그런가? 이렇게 많이 해봐서 그런가? 하하하. 하여간 잘 나오네 오늘. 진작 이렇게 법회를 볼걸 그랬네. 뭐라고 설교 하느라 애썼네 내가. 자, 없어요? 그만할까요? 아쉬운 거 있으면 더 넣을게. ‘원망심’. 왜 넉넉하지 못하게 마음을 쓰고, 왜 넉넉하지 못하게 말을 하고, 왜 넉넉하지 못하게 행동을 하느냐! 마음과 말과 행동이 속도 차이는 있어요. 마음을 낸 것을 말로 하게 되고, 그 말이 반복이 되면 행동이 되는 거지요. 속도 차이는 있으나 이것은 같죠. 이 원인은 마음에만 말에만 행동에만 따로 적용되지 않고 같이 적용되지요. 맞지요? 마음도 습관이 있거든.
그럼 반대로 갑시다. 눈 감아 보세요. 반대로, 여유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여유 있다는 것이고 어떤 마음을 가져야 여유 있다는 것인가 생각해 봅시다. 흰 색으로 써볼까요. ‘심력이 있다’, ‘편안하다’, ‘이타심’, ‘감사심’, ‘배려심’, ‘긍정’ 자 또? ‘자비심’ 또? 이것이 더 많을 것 같은디? ‘광에서 인심 난다’ 광에서 인심 난다고? ‘여유’가 있다 이거죠? 또! ‘사랑하는 마음’, ‘존경하는 마음’, ‘서원이 있을 때’. 또? 한번도 말 안 한 사람 누구더라? 정아씨 말했어요? 하하 참여해주세요~ 왜 은서는 한번도 말 안 해? 목타원님 뭐? ‘경계가 없을 때’ 즉. 편안할 때네. 이겼을 때? 달성했을 때 보면 여유 없던데? 넉넉하지 않던데? 금메달 따면서 이야 할 때 보면 여유 아니여. 승리의 환호지. ‘성과가 있을 때’ 아 그 소리네. 자, 그만 할까요? 내가 보태볼까 인자? 내가 우리 교법으로 보탤게요.
(2) 넉넉하려면, 삼학!
아까 넉넉하지 못한 이유들의 핵심이 뭐냐면, 수양의 부족이에요. ‘욕심이 많을 때’, ‘인색할 때’, ‘기분이 어쩔 때’ 그게 다 뭐냐면 결국에는 수양의 부분이거든요. 묶어버리면 수양이에요. 또 하나는 ‘몰라서니’ 어쩌구는 연구력의 부족이지? 그리고 막 ‘습관’이고 뭐고 이런 소리 했죠? 이건 뭐에요? 취사지. 세상 사람들이 수양, 연구, 취사 따로 있는 거고 세상이 따로 있는 줄 알아. 아니여, 우리의 삶이 다 거기에 같이 연결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보는 시각이 조금 차이가 있지. 생사문제, 생사해탈을 봅시다. 생사해탈은 인과와 영생의 부분이지. 이게 둘이 탁 만나지면 생사해탈은 되겠죠. 각박함이 왜 있어지냐 할 때, 욕심이 많아서도 그렇지만 이 영생의 문제에 대한 관점에서 시공간이 좁으면 좁을수록 사람이 각박해져요. 예를 들어 드릴께요. 부처님이 어떻게 부처님이 됐냐. 오 백 오십 생을 닦았다고 그래. 그러니까 우리 대산종사님께서 뭐라고 그랬냐. ‘부처님이 오백 생 닦아서 부처님이 되셨으면, 나는 오천 생, 오억 생이라도 닦겠다.’ 고 하셨습니다. 보통사람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오억 생이 올까? 지구가 그 안에 망하지 않나? 지구는 언젠가는 망할 겁니다. 지구는 망해도 오억 생은 살 수 있습니다. 이 말 이해할랑가 모르겄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꼭 지구에서 이렇게 사는 것만이 사는 게 아니거든요. 항상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아서 사는 생만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크게 놓고 보면 한 생 사는 것이, “눈 감아 보세요.” “눈 떠봐요.” “그걸 빨리 해봐요.” 한 생이 그렇다 그래요. 한 생 사는 것이 눈 떴다 감았다 하는 것과도 같다고 그랬어요. 그런 사람은 어떨까요? 여유가 있을까 없을까? 오히려 그런 사람이 여유가 있어요.
거꾸로 여유 있는 사람 예를 들어줄까? 숙제가 있는데 여유가 있어. 습관을 고쳐야 하는데 여유가 있어. 법위 향상 해야 하는데 여유가 있어. 여유라고 해서 다 좋은 게 아니여. 이 세상에 여유 같이 좋은 게 없지. 여유가 행복이야. 수양력의 핵심은 여유거든요. 행복한 사람은 여유로운 사람이야 결국은. 정신 물질 육신으로 여유가 있는 것이고, 내 마음에 정말로 여유가 있는 거야. 옛날에 어떤 부잣집 할아버지가 쌀을 내서 방아를 찧는데, 일꾼한테 한 가마니를 놔두라고 그러는 거야. 일꾼이 아니 왜 한 가마니는 놔두라고 그러냐고 묻자, ‘놔둬라. 쥐도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니냐.’ 그랬어요. 정산종사님 법문입니다. 나중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쥐가 나중에 마당에서 뭘 갖고 노는 거에요. 그래서 일꾼이 ‘영감님, 영감님. 쥐가 이상한 거 하고 있어요’ 하고 그러니까 영감님이 ‘뭐?’ 하면서 방에서 나왔어요. 그 순간에 오래된 집이 팍 무너져 버렸어. 정산종사님께서 뭐라고 하셨냐면, 하다못해 그런 축생들도 다 보은을 한다. 베풀면 다 보은을 한다.
내가 어릴 적 생각하면 좀 미안해. 영광에 땅콩이 많이 나거든. 봄에 쥐불놀이 할 때 쥐 구멍에다가 막 연기를 피워요. 그리고 앞에다가 그물 같은 걸 놓고 기다리면, 쥐가 기침 하다가 못 참으면 톡 튀어 나와요. 그럼 그걸 잡아서 구워먹지. 그러고 그 구멍을 파서 보면 나락이라던가 땅콩이라던가 하는 것이 한 주먹 나와요. 그 작은 쥐구멍 안에서 이마만큼이 나와요. 가들은 뭐 한거여. 겨우살이를 여유있게 하려고 저축을 했지. 그런데 천하의 나쁜 놈이 그걸 잡고, 나락도 땅콩도 파버리고 했지. 참 내가 나쁜 놈이여. 내 얼굴의 점 같은 게 다 그런 걸꺼야. 이 피부에 안 좋은 것들이 그 과보일 것이여. 내가 달게 받아야 혀. 사람이 사람 위주로 생각하면 그렇게 보이지 않게 축생에 대해서 인색해지죠. 유정물이, 또는 일체 사은 전체가, 우주 허공법게 유상무상이 전부다, 금강경에 나오죠, 유생무생 온통 우주 전체가 사은의 은혜 덩어리요. 모두가 다 영기질로 한 덩어리요 그게. 근데 그런걸 몰라. 연구력이 부족한거지. 그리고 욕심에 가리지. 욕심에 가리니까 연구력이 부족하고, 연구력이 부족하니까 욕심에 가려. 서로 맞물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죄업을 짓고 그런 짓거리를 했거든. 그렇죠?
대종사님이 영산에 방언 공사할 때, 일년 전부터 뭐 한 줄 아세요? 영산 방언 쪽을 바라보면서, “우리 여기 공사한다 빨리 가라.” 라고 일년 전부터 그러셨다고 그래요. 이해하시겠어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공장 하나를 짓는다고 합시다. 예전에 우리 원지천님 공장에 가서 독경을 했는데, 사람들이 잘 몰라요. 그 공장을 지으면 허공중생, 지상중생, 지하중생, 또 몸 못 받은 영혼들, 유주무주 고혼들이 다 거기 있거든. 고것을 독경을 해가지고 해원을 하고 다 풀어줘야 하거든. 사업을 좀 크게 하는 사람들은 그걸 다 알아요. 자기가 느낌으로 알아요. 그래서 기도 안하지 못하고 그런 공사를 헐라면 다 기도하게 돼있어. 그런 육도윤회 한 기운 한 이치의 세계를 모르거든. 그러니까 넉넉한 마음이 있기 보다는 욕심대로, 그냥 현상의 보이는 것 밖에 몰라. 현상에 보이는 것은 우주 만유에서 요만큼 밖에 안돼. 여기 과학도가 있지만, 과학도가 착각하는 것이 많아요. 과학 덕택에 우리가 생활에,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잖아요. 생각해봐 옛날에는 경전하나 구하려면 히말라야 산맥을 넘고 천산산맥을 넘고. 그거 하나 일생 베끼고 사경하나 하다 죽기도 해요. 지금은 딱 쳐버리면 되지. 누가 만들었어. 과학자가 만들었잖아. 전기를 만들고 컴퓨터를 만들고 인터넷을 만들고. 그걸 또 알게 해주는 수많은 교육자가 있고. 그런데 이 분들이 인정하는 사람도 있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보이는 것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과학의 한계가 있다. 그 과학의 한계를 넘어서는 무시무시한 세계가 있는데 말이죠. 대종사님이 앞으로 견성한 과학자가 내 법을 증명할 것이다 라고 하셨지요.
정산종사하고 대타원 김인의화 할매하고 둘이 조실에서 이야기 한 걸 말해줄게요. 정산종사님께서 김인의화 할매를 한번씩 불러서 두 사람이 이야기 하면 한 시간 두 시간씩 막 웃으면서 이야기 한데요. 그런데 시자였던 이산 박정훈 교무가 들어보니까 뭔 소린지를 모르겠더라는 거야. 정산종사님은 옛날에 중국 쪽에 많이 계셨던 것 같아. 서가모니 부처님 당대에는 별로 없었나봐. 삼천년전 중국 이야기를 대타원님하고 어제 이야기 같이 하니까 시자가 알아들을 수가 있나. 뭔 놈의 소리인지를 몰라. 이 우주 광활한 마음, 허공의 세계의 마음을 알면 여유가 있어질 것이다. 그리고 생로병사가 정말 눈 떴다 감았다 하는 순간이요, 더 나아가서는 생로병사가 없고, 생멸이 없고, 순환무궁할 뿐이여. 이 육신은 있을 때 정말 소중하지. 이 마음을 담는 그릇이요, 덕을 담는 그릇이요. 이 것 통해서 우리가 복을 짓고, 이 몸을 통해서 낙원 세상을 만들어 가기도 해요. 그러나, 또 한편에서 보면 이거 육신은 그냥 물질 지수화풍 사대로 묶어진 것이여. 거기에 정신이 들어가고 기운이 들어가서 운용하고 사는 거지. 그런데 그냥 이 육신이 단줄 알고, 아까 인색하게 각박하게 그렇게 살아요.
그 다음 말하는 것도 그래요. 제일 마음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흔하게 범하기 쉬운 게 말이에요. 사람들이 잘못해놓고 미안하다고 말 안하데. 살아보니까. 미안하다고 말하면 될 것을. 법원에서 재판하는 경우의 삼분의 일이 미안하다는 말을 안해서 재판하는 거에요. 이해하세요? 그 말만 하면 재판 안해도 되요. 그 말을 안해요. 참 자존심, 못난 자존심들이 그렇게 심한가 모르겄어. 마음이 툭 터지질 못하고 나라는 것에 꽉 잡혀서, 못난 자존심에 묶여서 잘못했다는 말을 못하는 거야. 잘못했다는 말을 윗사람한테만 하는 거야? 아니여. 나도 우리 간사한테 잘못하면 미안하다고 합니다. 내 자식한테, 나 우리 상희한테 미안하다고 한 적 있어요. 내 자식한테, 내 며느리한테, 내 손자한테도 내가 잘못하면 미안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 내가 윗사람이네 하고 있어? 그것도 아까 그 인과와 영생을 모르는 거여. 성품자리에는 뭣이 없어요. 이 생에서야 내가 선배고 후배지. 전생에는 거꾸로 일수도 있고. 얼마든지 그러거든. 그래서 천지 같은 광할한 마음을 가진다면 한가하고 넉넉한 마음은 손쉽겠다. 그리고 생사문제에 대해서도 정말로 작게도 보고 크게도 보고, 순환하는 대소유무로도 봐야지. 그렇게 하면 이게 수월하지 않을까. 왜 여유가 없을까?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니까 이 생에 끝내줄라고.
지금 스페인은 뭘로 돈을 많이 버냐면, 가우디라는 사람이 스페인 성당을 설계를 했어요. 그 양반 돌아가셨죠? 진작 돌아가셨을 거야. 그 성당을 아직도 짓고 있어. 짓고 있으면서 관광지야. 뭔소리여? 그만큼 배포가 있는 거에요. 시간적으로 길게 잡은 거야. 우리는 그냥 자기 때 그걸 할라고 앞에서 했던 거 다 걷어버리고, 자기 때 그걸 할라고 해. 내가 그 사람들 이해는 돼. 왜 자기 때 할라고 그러겠어. 못나서만 그런거 아니여. 내가 그때 안 하면 또 후대가 다 갈아 엎어버리거든. 워낙 자존심이 처처불상으로 강해가지고. 나라는 상에 갇혀버리면 특히 그래요. 나라는 상에 갇혀 버리면 내 이름을 내려고 하고, 내가 할라하고, 나 때 할라하고. 근데 가우디 같은 사람은 그리 안해. 가우디는 지금도 더 가우디는 죽고 나서도 더 이름이 드러나 버리잖아. 제가 독일에 갔는데, 참 놀란게 있었어요. 철도를 놓겠다는 거야. 어떻게 하냐. 철길을 놓기 위해서 철길 주변에 둑을 쌓고 거기에 나무를 심어요. 나무가 다 자라고 나면 거기에 철길을 놓습니다. 그게 몇 년 입니까? 독일가니까 그렇게 일을 하더라고. 독일이 유럽을 먹여 살리잖아. 독일이 미국보다 더 잘 살수 있었어요. 일본 사람들은 참회를 않지만, 독일 사람들은 우리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살상을 했으니까 우리가 참회를 한다고 돈을 퍼 부어줬어요. 그리고 그들이 살상했던 유태인 수용소 제가 가봤거든요? 일본 사람들은 거기 안 옵니다. 일본 국가에서 거기 못 가게 해요. 거기 가니까 자기들이 어떻게 유태인들을 괴롭혔는가 사진으로 걸어놨어요. 자기네들이 총살한 장면..일년 후의 얼굴이 십 년도 더 산 얼굴이야. 수용소에서 일년 만에 십 년도 더 산 얼굴로 바뀌어요. 그래서 전쟁 끝나고 나서 우리가 잘 못했다고 거기 있었던 공무원들 싹 사형시키고, 처리를 해요. 참회를 해요. 일본은 참회도 않고, 우리나라는 앞잡이 했던 놈들이 다시 하고 있고. 아이고, 참말로 그렇게 수준차이가 날까.
내가 뭔 얘기 하다가 여기까지 와버렸다냐. 옛날에 한종만 교수님이 원불교 학과 교수님이신데 제가 항상 수업시간에 앞에 앉았어요. 수업 중에 당신이 막 열 받아 가지고 말하다가 너무 간 거 같으면, 내가 어디까지 갔냐 하실 때 내가 ‘안가르켜줘요’ 그랬었는데.. 그 생각이 나네. 우리가 국이 좁으면, 넉넉하지 못하고 국이 좁으면, 유태인과 유태인 아닌 사람을 구분하고, 남과 여를 구분하고…저는 원불교의 이런 여유로운 모습을 상상합니다. 뭐냐면, 정남정녀는 숭남숭녀가 챙겨주고 (숭남숭녀는 결혼한, 결혼했던 교무들), 숭남숭녀는 정남정녀가 제도를 마련해서 챙겨주고. 제가들의 권리는 출가들이 제가가 요구하기 전에 챙겨주고, 출가들의 복지는 제가가 챙겨주고. 이번에 청운회가 출가교도님들 복지 문제 얘기한다고 하더만. 어떻게 지가 지 머리를 짤라. 출가들이 어떻게 찌질하게 자기 복지를 얘기해. 제가들이 해줘야지. 근데 제가들이 나는 모른다 하고 내 코가 석자라 하고. 출가자는 또 자기 거 요구하고 있고. 여자들은 결혼한 남자 교무들 뭐 해달라고 하니까 우리도 해달라고 그러고 있고. 얼마나 여유 없는 좁은 마음이냐. 이제는 인지가 터지니까 나라의 국도 터지고, 남녀 문제도 터지고, 노소 문제도 터지고, 출제가 문제도 다 터지고. 대종사님은 일원 회상을 만들기 위해서 오신 거에요.
사람이 죽을 때도 말이죠, 생사문제를 미리 단련하지 않으면 그거 참 여유 있게 가기 어렵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 한번 해볼까요? 착각하는게 뭐냐하면, 죽기 전에 마음 챙기면 된데. 물론 최후일념 챙겨야지. 근데 최후 일념 챙길 기운 있어? 제가 많이 가서 돌아가시기 전에 독경 많이 해봤거든요. 돌아가시기 전에 하는 동작이 있어요. 막 숨을 가래 끓듯이 하면 돌아가시기 직전이야. 그 때, 최후 일념이 최초 일념이니 그 시간에 온전만 생각 챙겨?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챙겨? 요양병원에 들어갈 때 챙겨? 언제 챙겨요? 딱 답을 말해봐. 언제 챙겨요? 지금 챙겨야지. 지금! 교당 발로 걸어올 수 있을 때 챙기는 거야. 지금은 안 챙기고 나중에 언젠가 챙기겠다고 하면 착각이여. 지금 챙겨야 되. 챙겨도 젊을 때일수록 효과가 빨라요. 젊은 사람은 바쁘다고 안 챙기고 나이 먹은 사람은 아프다고 안 챙기고. 누가 챙겨? 어? 제가는 돈 번다고 바쁘다고 못 챙기고, 출가는 일한다고 바쁘다고 못 챙기고. 누가 챙겨? 창의적인 생각이 넉넉한 마음에서 나온다 그래요. 인심도 곳간 이야기 하셨지요. 곳간에 여유가 있어야 인심이 나오는 거야. 하나 더 들어가 볼까? 어떻게 해야 곳간에 뭐가 차 있어? 나도 인심 쓰고 싶고, 말도 이렇게 하고 싶고, 나도 보시하고 싶어. 있어야지. 어떻게 해야 있어? 그럼 거꾸로, 왜 없어? 그 사람은? 대종경 앞부분에 대종사님이 아주 쉽게 얘기해놨어. 불공 잘하고 못한다. 잘사는 사람은 불공 잘하는 사람이요, 못하는 사람은 불공 못하는 사람이다. 뭔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거여. 내가 왜 못사냐? 불공 못했구나. 복 지으라 그러면 핑계 대고 도망가 버리고, 일하라 그러면 바쁘다 아프다 그러고. 언제 불공할 거야? 작복(作福)을 해야 복을 받지? 작복 할 때는 도망가 버리고, 언제 복을 짓냐. 복 있으면 여유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복 있다고 여유 있게 하는 건 아닙니다. 많이 봤어 나. 돈 있다고 불사한다고. 가난한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그거드만, 저 사람은 돈 있으니까 불사를 쉽게 한다고 생각해. 완전히 거꾸로 생각한 겁니다. 돈 없는 사람이 불사하기 더 쉽습니다. 액수는 작지만. 돈 있는 사람이 불사하기 더 어렵습니다. 쓸 데가 더 많거든요. 돈의 가치를 더 잘 알아요. 더 할 일도 많아요. 착각하는 게 그거더라고.
진짜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이에요. 이해 할랑가 모르겠네. 여기서 누가 지금 제일 돈 많겄어? 지금 여기서 누가 제일 부자여? 정답이여. 돈이 누가 제일 많냐. 재벌하고 나여. 재벌이 돈이 제일 많고 출가자가 돈이 제일 많아요. 돈이 제일 많다는 것은, 대(大))와 무(無)는 하나에요. 이해할랑가 모르겠네. 없기 때문에 제일 많아요. 제일 많기 때문에 오히려 없어. 제가 원남교당 근무할 때 이건희씨 바지도 입었어요. 나보다 좀 작아요. 이건희씨 바지를 짧게 입어. 골반바지 처럼 혁대가 아래로 내려가게 입으시더라구. 그 양반은 지갑에 돈 없어요. 근데 돈 많지요. 없는데 많아요. 저도 돈 없어요. 은행에 가니까 안해주더라니까. 근데 돈 많아. 없는 것 같아요? 사람이 왜 눈이 두 개 인줄 알죠? 하나는 보이는 것을 보고,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는 겁니다.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은 지금 내 말을 이해 못할 거에요. 교무님 돈도 없으면서 그런 소리한다고 그럴거에요. 그런데 다른 쪽 눈으로 보면 내 말이 이해 될 거에요. 재벌하고 나 같이 출가자는 무재의 사주에요. 재물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재물이 허벌나게 많아. 범부가 재산 해 봤자 얼마에요? 우리나라 평균 따져 봤자 몇 억 안됩니다. 내가 이 생에 쓸 돈이 얼마겄어요? 아마 제가 이 생에 한 오백억 쓸걸요? 내 입으로 들어오고 내 손으로 들어온 돈은 아니지만, 내가 활용할 수 있는 돈이 훨씬 많아. 내가 더 부자요. 없는데 있어. 알랑가 모르겄네.ㅎㅎ
그래서 오늘 여유 있는 마음, 넉넉한 마음, 또 넉넉한 말, 또 넉넉한 실천행. 이 넉넉함을 이왕이면 인과와 영생을 놓고 바탕해서 하면 가장 넉넉해져요.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넉넉해지려고 하냐면, 인과와 영생을 보기 보다는, 막 현실적으로 노력해서 곳간에 좀 여유 있게 채워놓고 나중에 ARS눌러 주고 여유 있게 쓰겠다. 이런 사람들은 아직은 여기까지 모르는 사람이에요. 일원상 진리를 신앙하는 사람은 인과의 영생으로 놓고 봐서 판단해가지고 여유를 만드는 거지, 내가 현실적으로 노력만 해 갖고 어느 정도 챙겨놓고 거기서 조금씩 나눠주겠다고 하는 사람은 아직은 인과와 영생을 모르는 사람이다.
내가 조금만 더 이야기 할게요. 채워 놓고 쓰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게 동시성이라는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야. 인과와 영생이 동시성이고, 자와 타가 동시성이고, 영과 육이 동시성이에요. 그래서 복을 언제 짓냐? 동시성입니다. 이걸 아셔야 하는디. 예를 들어, 학사를 해요. 그럼 방법이 두 가지가 있어. 아끼고 아껴서 안 쓰고 안 써서 나는 일체 돈을 안 써. 그리고 보는 사람들마다 도와 달라고 그래. 그러면 잘 모으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거기에 집중 하니까 돈이 모아지겠죠. 그런데 그렇게 해 봤자 몇 푼 안되. 진짜 학사에 돈을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해? 쓸 자리를 써야지 돈이 더 들어 오는 거야. 돈은 굴려야지 들어오는 거여. 아낄 건 아끼면서 굴리는 거여. 우리 교우님들은 다 아실꺼야. 그러니까 내가 돈을 모아가지고 나중에 복지으리라 하는 사람은 인과와 영생을 모르는 사람이고, 여유 있는 마음이 아니야. 그 마음이. 그리고 나는 내가 지금 형편이 어려우니까 나중에 내가 유지금 더 내고 백년 성업 하겠다. 나중에 뭐 어떻게 하겠다. 나중에 뭐 하겠다 하는 사람들.. 내가 얘기 안 했어? 나한테 부도수표 날린 사람들 이름하고 말들 내가 다 적어가지고 내놓으면 엄청 두꺼운 책이 될 거야. 나 이미 지금 교당 몇 개 세웠어요. 청년들이 주로 그랬지. 교무님 나중에 제가 돈을 벌면, 조건이야, IF, 만약 그런다면 교무님께 한 층 해드리겠습니다. 또 어떤 놈은 한강에다 몇 층 빌딩 올려주겠다고 한 놈도 있었어. 그 놈이 지금 어디 갔네. 교무님 이렇게 작게 할 필요 뭐 있습니까, 한강에 한번 지어봅시다. 여럿이었어.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 아까 언제 내생 준비해? 언제라 그랬어? 지금! 언제 복지어? 지금! 근데 앞에 조건이 붙어. 내 형편에 맞게. 형편도 안 맞게 막 들고 오면 그것도 골치 아퍼. 그것도 과한 거여.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질문 있어요? 결국 여유로운 마음과 언행은 우리 삼학 공부에 있더라. 그 삼학 공부의 꽃은 뭐에요? 불공에 있더라. 명절 잘 쇠시고 봬요. 우리 교당만 우리 교당에서 기도를 안 하는가 몰라. 얼른 와서 독경해놓고 가서 밥 먹으면 좋은데. 어째 기도를 잘 안 해? 아직 이 음계에 대해서 진리에 눈이 덜 떠져서 그런가? 그러지 않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