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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http://cafe.daum.net/GnSalsa/D1pn/66)
맘보(Mambo)의 시작 (http://cafe.daum.net/GnSalsa/D1pn/67)
1세대 맘보 댄서들은 1950년에서 1960년대 초까지 활동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여러 민족의 배경을 가진 댄서들이 유입되었고, 그들은 가지각색 스타일의 춤을 맘보에 통합 시켰습니다. 그래서 맘보가 처음엔 화려한 룸바나 손 스타일로 시작했음에도, 곧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빠르게 발전해나갔습니다. 이 댄서들이 현재의 뉴욕 온투(On2) 맘보의 기초를 세웠고, 주로 브로드웨이에 있는 팔라디움 무도회장(Palladium Ballroom)을 거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이 새로운 뉴욕 댄스가 발전하는데 가장 중요한 장소였던 팔라디움은 1952년에 맘보 포맷으로 완전히 전환한 후 “맘보의 고향(Home of the Mambo)”으로 자신들을 홍보하였습니다.
티토 푸엔테(Tito Puente)와 티토 로드리게스(Tito Rodriguez)의 오케스트라들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초까지 팔라디움(Palladium) 하우스 밴드로 활동하였습니다. 위대한 마치토(Machito)와 같은 쿠바인들도 팔라디움(Palladium)에서 맘보를 연주하긴 했지만, 맘보를 쿠바의 뿌리에서 끌어올려 뉴욕에 확고하게 이식시킨건 푸엔테(Puente)나 로드리게스(Rodriquez)와 같은 뉴욕 푸에르토리칸들이였습니다. 이들은 맘보에 특별한 열정을 불어넣었고, 확고한 뉴욕 푸에르토리칸 장르로 만들었습니다. 쿠바인인 페레즈 프라도(Perez Prado)가 '맘보' 자체를 상징했다면, 푸에르토리칸 티토 푸엔테(Tito Puente)와 티토 로드리게스(Tito Rodriquez)는 뉴욕에서 '맘보의 창의적인 성취'의 상징이였습니다. 둘다 브라스가 강한 스윙 빅밴드를 아프로쿠반 리듬과 함께 결합시켰고, 프라도(Prado)에 의해 만들어진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편곡을 만들어냈습니다..
티토 푸엔테(Tito Puente, 제일 왼쪽)와 티토 로드리게스(Tito Rodriguez, 제일 오른쪽)
그들 음악을 들으러 오는 댄서들은 팔, 다리, 머리, 손 등을 이용해 현란한 스타일을 만들어내며 음악에 반응하였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팔라디움에 공연하러 오는 전문 댄서들이나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팔라디움(Palladium) 댄스 컨테스트에 참가하려는 아마추어들에 의해 더 발전해나가게 되었습니다.
팔라디움(Palladium)은 음악과 댄스의 질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종의 출입이 허용되는 곳으로도 유명했습니다. 1950년대에 맘보 음악을 트는 유일한 나이트클럽이 아니였음에도(아폴로 극장(Apollo Theater)나 할렘의 사보이 무도회장(Savoy Ballroom) 역시 "맘보의 날"을 제공했습니다.), 모든 민족의 사람들이 섞이는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이런 차별 없는 분위기가 문화적 경계를 넘어 아이디어와 스타일의 상호 교환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온투(On2) 댄스를 발전시키는데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팔라디움(Palladium)은 댄서들뿐만이 아니라 음악가들에게도 중요한 곳이였습니다. 티토 푸엔테(Tito Puente)도 그곳을 통해 “맘보의 왕(the King of Mambo)”라는 별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 티토 푸엔테(Tito Puente)의 음악에 맞춘 국내 공연 영상 하나 볼까요? ㅎ
음악 - "맘보의 왕(The King of Mambo)" Tito Puente - Cuban Nightmare
(지야 댄스 컴패니에서 클래식한 의상, 클래식한 안무로 공연을 했네요 ㅎ)
팔라디움(Palladium)의 많은 공연 댄서들과 컨테스트 우승자들은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팔라디움(Palladium) 댄서들은 다양한 민족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고, 다양한 댄스 스타일을 연습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양성은 당시 뉴욕에서만 가능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의 댄서들이 활용하는 발레와 맘보의 혼합, 드라마틱한 스페인의 플라멩고 스텝과 스타일링의 활용, 볼룸 댄스로부터 유래한 아크로바틱 리프트는 모두 당시 오기(Augie) & 마고(Margo)의 캬바레 댄스팀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오기와 마고는 이 독특한 스타일 덕분에, 세명의 대통령(닉슨, 케네디, 영국여왕) 앞에서 뿐만이 아니라 티비 공연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맘보 음악과 춤 사이에 공생 관계가 존재했던 이유중의 하나는 티토 푸엔테가 댄서의 필요성에 대해 예민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는 그가 볼룸 및 탭 댄서로서의 배경이 있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맘보 음악과 춤은 서로의 나눔과 상호 관계를 통해 성장해나갔습니다. 예를 들어, 푸엔테와 같은 연주자가 빠른 템포의 인상적인 솔로 퍼포먼스를 해서, 댄서에게 즉흥적으로 좀더 복잡한 스텝을 만들어내도록 요구하였습니다.
오기(Augie)와 마고(Margo)
오기(Augie) & 마고(Margo)의 짧지만 그들의 춤을 볼 수 있는 영상. 앉아턴의 원조네요 ㅎㅎ
조조 스미스(Jo-Jo Smith)는 “맘보 재즈”라는 특별한 스타일을 만든 재즈 댄서입니다. 이 스타일은 오늘날 가장 탁월한 인스트럭터 중 한명인 에디 토레스(Eddie Torres)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루이스 "마퀴나" 플로레스(Luis “Maquina” Flores)는 푸에르토리코에서 태어났지만 스패니쉬 할렘에서 자랐습니다. 플로레스는 쿠반 룸바 동작을 그의 맘보 스타일에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빠른 풋웍 스피드 덕에 "마퀴나"("Maquina" 스페인어로 "기계", 영어로 "Machine")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마퀴나는 라틴 허슬의 선조격인 조지 바스코네스(George Vascones)를 포함한 훌륭한 댄서들을 많이 키워냈습니다. 이외에도 프레디 리오스(Freddie Rios), 어니 엔스리(Ernie Ensley) 그리고 호라치오 리암보(Horacio Riambau)는 지금도 활동하는 몇 안되는 훌륭한 1세대 공연자들입니다.
아마도 가장 널리 알려진 팔라디움 댄서는 "쿠반 피트"(Cuban Pete)로 더 많이 알려진, 페드로 아귈라(Pedro Aguilar)와 그의 파트너 밀리 도네이(Millie Donay) 일겁니다. "쿠반 피트"라는 별명은 동명의 유명한 노래 및 영화로부터 붙여졌습니다. 전통적인 룸바와 프리스타일에 탭, 재즈, 아크로바틱, 거기에 락앤롤 댄스까지도 함께 사용한 쿠반 피트의 스타일은 눈에 띄게 두드러졌습니다. 이탈리아 여자인 도네이는 열다섯살 때 팔라디움 맘보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면서 쿠반 피트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둘은 퍼포머로서 Catskills 호텔에서 유명했고, 티토 로드리게스, 마치토와도 함께 공연을 하였습니다. "라이프" 매거진은 '새로운 댄스에 대한 열광'의 대표적 예로 이 둘을 묘사하였습니다.
쿠반 피트(Cuban Pete)와 밀리 도네이(Millie Donay) (쿠반 피트는 2008년에 세상을 떠났군요..)
첫 맘보 공연팀도 이 세대에서 등장하였습니다. 오기와 쿠반 피트는 'Mambo Devils'이라는 팀을 구성하였습니다. 마이크 라모스(Mike Ramos), 조 센테노(Joe Centenno)와 함께 아니발 바스퀘즈(Anibal Vasquez)가 만든 'The Mambo Aces'는 10년동안 팔라디움 뿐만이 아니라 Roseland, Savoy, Tropicana 등에서 공연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티토 푸엔테, 마치토, 조 로코(Joe Loco)와 1954년에 함께 투어 및 공연을 하며 미국 전역에 맘보를 보급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앤드류 재릭(Andrew Jarric), 마이크 라모스(Mike Ramos) 그리고 프레디 리오스(Freddie Rios)는 나중에 'Cha-Cha Aces'라는 팀으로 공연을 했습니다. 이 팀은 발레의 팔, 손 제스쳐, 아프로쿠반 몸 동작, 탭 풋웍을 결합시키고, 탭댄스와 차차를 혼합시키면서 유명해졌습니다.
마이크 라모스(Mike Ramos) & 프레디 리오스(Freddie Rios)
2000년대 70대가 넘는 나이에 "Palladium Mambo Legend"로 다시 활동을 한 1세대 댄서 마이크 라모스(왼쪽) & 프레디 리오스(오른쪽)
팔라디움(Palladium)은 1966년 문을 닫았습니다. 문을 닫은데에는 마피아 관련 문제, 주류 판매 라이센스 상실, 주인인 하이먼(Hyman)의 자금 부족, 맘보로부터 파생된 차차(또는 차차차)와 같은 새로운 댄스의 인기 상승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팔라디움은 여전히 뉴욕에 그 자취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뉴욕 푸에르토리칸들이 춤을 췄던,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 댄스가 섞이는게 허용됐던 팔라디움이 아니였다면 지금의 온투(On2) 맘보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쿠반 피트, 밀리 도네이, 루이스 "마퀴나", 오기&마고와 같은 댄서들이 볼룸, 발레, 플라멩고, 탭, 린디홉, 룸바 등을 결합하였고, 결국 이것이 여러가지 기법들이 채택되고 열정적인 지금의 온투(On2) 스타일의 토대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1세대 팔라디움 댄서들의 춤을 보시죠 ㅎ
(잭키 대노이스(Jackie Danois), 애니발 바스퀘즈(Anibal Vazquez),톤델라요(Tondelayo), 도티 아담스(Dottie Adams), 테디 브라운(Teddy Brown), "쿠반피트" 페드로 아귈라(Pedro Aguilar), 밀리 도네이(Millie Donay) 등)
- '1세대 맘보 댄서들 : 더 팔라디움’ 끝
다음편 보기 : 2세대: 살사/허슬의 시대(1)
첫댓글 이번편은 꽤 기네요..ㄷㄷㄷ 그래도 팔라디움 댄서들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는 좋은 내용이였습니다..ㅎ
Palladium Mambo Legend 할아버지들의 과거 활동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구요 ㅎ
어휴.... 고생하셨습니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안날것 같았는데..ㅎㅎ다 이해하기는 어렵긴 한데 읽고 보고 듣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감사해용.
역시 울 쪼 백조된거 맞그만ㅋㅋㅋ
어제 고마워 다리도 아픈데 내가 무리시켰네 ㅠㅜ
미안해!!!
방대해서 반복해서 봐야할듯.
으흐흐
66년이면 사실 부갈루 음악이 떠오를 시기인데 이게 팔라디움으로는 연결이 안되긴했나보네.
엇 부갈루 얘기는 다음화에 잠깐 나오는것 같던대 ㅎㅎ
글고보니 아직 Eddie Torres 는 나오지도 않음 ㄷㄷㄷ
에디할배님 커밍 쑤~우~운^^
오 재밌어요! ㅋ ㅑ발쌤 감샤합니다!! ㅋㅋㅋ 조곤조곤 옛날 이야기 듣는 느낌적인 느낌!
춤의 기본인 발레부터 스탭 스타일링 ~~등 살사의 완성이네요^^요즘 춤이 더 좋아져서 관심도 많아지고 ㅋㅋ
팔라디움 좋다~~체계적인 정리에 감사~~
중간중간 영상도 보면서 글읽으니 넘 좋아용~ ㅎㅎ 1세대 팔라디움 댄서의 배깐셔츠 의상 보고 웃고 갑니다 ㅋㅋㅋ
이번편도 정말 잘보았습니다 ^^ ㅎㅎ 영상도 재밌네요 !
앉아 턴 대박 ㅋㅋㅋ 저 옷만 아니면 해보고 싶군요~ ^----^
할베들 느므 귀요미~~~
좋은글 감사!
팔라디움의 이야기에 강남 턴바 떠오르네요 ㅎㅎ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강남턴가 생긴 시기를 전후로 많으것들이 바뀐거 같아요 ㅎㅎ
아직 쏙쏙 들어오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후 다시 읽어보면 감회가 새로울듯하네요....좋은글 감사합니다...^^
Tito Puente 음악의 공연영상 하나 추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