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기찰 마을, 금정구

[pretty]

   내 고향마을 기찰, 금정구

                          박 선 자

  친구가 기찰 마을에 살고 있다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절로 탄성이 일었다.

 “아, 기찰 마을!” 내가 태어난 곳이다. 오래 동안 잊고 지냈던 유년의 그림들이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듯 살아나 그려진다. 수십 년이 흘러 할머니가 되었는데, 마치 컴퓨터에 저장해 놓았던 파일을 열어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니 진실로 놀랍다.

 나는 금정 초등학교와 동래구에서 금정구로 옮긴 동래여자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은 서울에서 다녔다. 우리 형제 칠 남매와 우리 아이들 삼 남매도 금정초등학교 출신이다. 시댁도 금정구 서동 452번지,고색창연한 고택으로 종갓집이었다. 지금은 인구가 많아져 금정구가 되었지만, 어린 시절은 동래구였다. 금정구를 떠난 기간은 대학생활 사 년뿐이었으니, 참으로 긴 인연이다.

 부산시 금정구( 당시 동래구) 부곡동 기찰 마을에서 세 살 위인 오빠 다음에 나는 맏딸로 태어났다. 오빠가 동래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온천장 입구에 있는 아버지가 경영하는 봉림정미소 집으로 이사하였다.

 위로 아들 둘을 잃고 셋째로 태어난 오빠를 태어나자마자 시렁에 얹으면 명이 길다 하여 시렁 위에 올려졌고 “실근”이라 불리어졌다. 학교에서 부르는 이름은 달랐다.

 할머니께서는 치성을 잘 올리는 어실 댁을 항상 곁에 두고 지극정성으로 오빠를 키우셨다. 남존여비 사상과 가문을 이을 자식을 바라는 마음이 그득한 할머니에게 손자인 오빠가 전부였다.

 내가 태어나자 손녀라 서운하다며 들여다보시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40세까지 하시는 사업마다 잘되어서 우리 형제들이 태어날 때마다 논과 밭을 샀다고 기꺼워 하셨다.

 내가 태어난 해에 밭을 사서 포도밭 일구는 공사를 하였다. 공사에 쓰는 철사 뭉치와 콘크리트를 집 마당에 내려놓는 소리가 꽝꽝거리고 시끄러워 산모인 어머니에게 거슬렸지만, 말을 할 형편이 아니었다.

 갓 태어났을 때 동글동글 예쁘던 아기가 날이 지날수록 젖을 먹지 않고 울음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며 살갗은 쪼그라들어 죽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는 무섭고 불쌍했지만,어쩔 줄 몰라 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아버지께 전말을 말하면 흘긋 보고는

“아무래도 사람이 안 될 것 같으니 사람을 사서 버려야 되겠다.”하였다. 숨을 할딱할딱 힘겹게 쉬고 있는데, 어머니로서는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몸은 쪼그라들고 손가락 발가락만 자꾸 길어지는 것 같아서 할머니에게

“어무이요 아무래도 애가 아니고 거미가 환생한 것 같네요. 한번 보이소. 손가락 발가락만 길어짐니더.” 하여도 보아주지 않아서 슬프고 서운했단다.

 그 와중에 큰아버지께서 다니러 오셨다. 아버지는 딸을 낳아 첫 칠이 지났는데 젖도 못 먹고 자꾸 작아지니 사람이 안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큰 아버지는 큰어머니에게 동생이 딸을 출산했는데,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다하니 어서어서 다녀오라 하셨다.

  동생 집에 오신 큰어머니께서 아기를 이리저리 한참을 살펴보고 놀라며 아무래도 아기가 부정을 탄 것 같다며 자세히 살펴보라 하셨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조그만 아기 몸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철사 줄로 칭칭 감아 놓은 자국처럼  골이 진 살갗에 불그스레한 줄이 선명하게 보였다. 어머니는  부정을 탄 것으로 단정하고 할머니에게 말씀드렸다. 놀란 할머니께서 자세히 살펴보고 정성을 들여 젯밥을 짓고, 앞마당에 삼신할머니에게 올리는 상을 차렸다.

 상 옆에는 철사 뭉치와 포도밭에 쓰는 자재를 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님과 칠성님, 삼신할머님 전에 비나이다. 어리석은 중생이 아무것도 모르고 저질은 죄이니 부디 용서하시고 어린 아기를 살려 주시옵소서~~.”반복하여 간절히 빌었다. 아버지에게는 물 한 양동이를 덮어씌우며 잘못했다고 큰절을 하며 빌게 하였다.

 이튿날, 신기하게도 캑캑거리며 몸부림을 치다가 '콱'하고 콧구멍으로 갓난쟁이에게서 나왔다고 상상할 수 없는 코딱지처럼 생긴 커다란 것이 튀어나오더니 숨을 쌕쌕 쉬면서 차츰차츰 살아났다 한다.

 진짜 부정을 탄 것이지 알 수 없지만, 그 시절은 아기가 태어나면 머리맡에 삼신상을 차리고 대문 밖에 금줄도 치며 일을 할 때에는 가려서 했다.

 환경오염이란 단어도 없었던 청정한 시절은 여러 잡신이 있어서 인간의 생활에 관여 했는지 모를 일이다.

 자라면서 일을 마치고 들어오시는 아버지에게 두 손을 뒤로 번쩍 들고 온몸을 숙이며 서툰 말로 “아브지, 잘 다녀오심 겨” 인사하는 모습이 철기(잠자리의 사투리)가 날아가는 것으로 보이는등, 예쁜 짓을 많이 하여 사랑을 받았다.

 대학입학국가고사를 치러가던 날에 할머니께서 메밀 한 가마니를 덕석에 펴놓고 찾으셨다는 다섯 모난 귀한 메밀을 넣은 빨간 주머니를 주시면서 지니고 가면 시험에 붙을 것이라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태어났을 때 딸이라 홀대한 것이 마음에 끼어서 그리하셨을 것 같다.

 일학년 겨울방학을 맞아 내려오니 할머니를 모신 빈소만 있었다. 어머니는 학기말 시험에 지장 있을까 연락하지 않았다 하셨다. 병석에서 동지에 끓인 팥죽을 잘 두었다 먹이라는 당부를 하시며 나를 보고 싶어 하셨단다. 빈소에 절을 올리니 정말 할머니가 그리워지고 보고 싶었다. 학사모를 쓰고 찍은 대학 졸업사진을 보신 작은아버지께서는 “알라 때 선자를 내다 버렸으면 어째겠는교” 하셨다니 나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는 집안 식구들에게 늘 기억 되고 회자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세상 빛을 본 내가 지금 금정구 장전동 지하철 부산대학 역 근처에 살고 있다. 결혼 이 년 후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맏 시숙이 서동 본가로 들어가면서 비워진 집으로 우리가 이사하였다. 그날, 나와 또래인 남편의 오촌 조카가 “숙모님, 이 집에서 나무 옷 입을 때까지 살아도 되게심더” 하던 말이 아직 귓전에 맴돌고 있는데 그가 한 달 전에 세상을 떠났다. 조카의 말대로 이집에서 수십 년을 살고 있다. 참으로 길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어린 시절 동무들과 학교로 가는 비포장도로에 가끔 트럭이 지나가면서 뽀얀 먼지를 하얀 구름 덩이처럼 뿜어내었다. 우리는 트럭이 뱉어내는 뿌연 먼지와 석유 냄새가 좋아서 입을 크게 벌리고 마시며 자동차 뒤를 따라 달리기를 하였다. 철부지 시절의 기억이다.

 그때 기찰 마을에서 아버지 정미소가 있는 온천장 입구로 가는 길은 무척 멀었다. 신작로를 따라 한참 걸어가며 군인부대가 있었다. 조금 더 가면 가마실 동네가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수물 마을을 지나고서 오시게 마을이 보였다. 오시게 마을을 돌아가면 온천장 입구 아버지의 정미소가 멀리 보였다. “아하, 다 왔구나!” 생각되어 마구 뛰어서 갔다.

 학교가 파하면 오시게 들판에 있는 논에 새를 보러 갔다. 추수철이 되면 참새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며 익어가는 곡식을 먹어치웠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논에 허수아비를 세우고, 줄을 엮어 깡통을 달아 참새 떼가 날아오면 요란하게 흔들며 “휴~야~,” 고함을 지르며 쫓았다. 아버지는 새를 보고 있으면 과자와 간식을 사 주시고 새를 잘 본다고 하셨다.

 우리 옆 논 주인아저씨는 빈 지게를 지고 지나가다 새 보는 나에게 “몇 학년이고?.” 묻고는 지게 작대기로 글자를 쓰고 읽어보라 하셨다. 쓰는 글자마다 척척 읽으면 “니 참 글자를 잘 익네.” 하고 칭찬을 해 주어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마주칠 때마다 글을 읽어보라 하셨다.

 해가 질 무렵이면 아버지의 자전거 뒷좌석에 타고 기찰의 우리 집으로 왔다. 아버지의 허리를 꼭 붙잡고 울퉁불퉁한 자갈길 신작로를 달리면 뿌연 먼지를 마셔도 신이 나서 학교에서 배운 노래도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기분이 좋아서 다리를 까불거리다 자전거 바퀴에 발목이 끼어 큰 상처를 입었다. 그때의 상처 자리가 아직도 흐리게 남아 있다. 그 뒤로 새를 보러 가지 않았다.

  6, 25 전란 후 피난민에게 학교를 내어주고 날씨가 맑으면 교실이 되었던 금정산, 금정산으로 오르는 길은 큰 바위들이 엄청 많았다. 바위 사이로 흐르는 맑고 깨끗한 계곡물에는 물방개와 가재, 피라미들이 헤엄을 쳤다. 까만 점이 박힌 올챙이 알 덩어리가 동동 떠 있어 잡으며 물컹했다. 그곳이 방과 후 우리의 놀이터였다. 어쩌다 고학년 남학생들이 소나무 가지를 꺾어 던져주는 송곳을 빨아 먹으면 얼마나 달콤했던 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가끔 기찰 동네를 지나가면 우리 집터와 내가 태어날 때 일구었다는 포도밭이 있던 곳과 동무들과 쑥을 캐러 다니던 논둑을 기억할 수 있었다. 어릴 때 하늘이 손에 잡힐 듯 높게 보이던 동네 뒷산은 벌거숭이산이 되어 산꼭대기의 서낭당과 우뚝 선 소나무 한그루가 마을을 지켰다. 어린 우리가 자주 모여서 놀았던 아랫당산과 마을의 수호신인 엄청 큰 고목 소나무가 있던 부곡동사무소 위치와 온천천으로 가는 길도 어렴풋이 확인 수 있었다.

 지금은 초등학교 사학년 때에 금정산 자락에 기공식을 한 부산대학교가 부산 제일의 대학교로 발전했다. 거대한 캠퍼스와 주변의 수많은 상가와 아파트가 숲인 양 들어선 도시로 변모하여 그 시절의 모습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기찰 마을도 그때를 상상할 수 없게 변하였다.

 부곡동에서 오륜동 들어가는 숲길과 수원지의 모습이 그나마 그 당시를 조금 추억하게 할 뿐이다. 온 지역이 상전벽해요, 천지개벽이 일어난 듯 변했다.

 금정구는 부산의 명산인 금정산이 있고 온천천이 흐르고, 부산 최고의 부산 대학교를 비롯하여 각 급 학교와 좋은 교육시설이 갖추어진 교육구이며 살기 좋은 문화의 요지다. 동무들과 풋감을 주워서 꽉 깨물면 약간 떫은 풋향기의 설익은 맛을 추억으로 써놓는 수첩 같은 곳이다. 쑥을 기차게 잘 캐던 옥남이와 한여름에 겨울 핫옷을 예쁜 옷이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자랑하던 아끼꼬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보고 싶다. 그들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내 고향 기찰 마을은 급변하는 도시화로 비록 어릴 적 기억의 흔적은 송두리째 사라졌지만, 유년의 앨범을 안고 평생을 살고 있으니 금정구는 나와 깊고 질긴 인연으로 맺어진 곳이다. 그래서 내 고향 금정구가 참 좋다.

[희망]

태어난 곳에서 일생을 산다는 것이 쉬운 것 같아도 마음대로 안됩니다.
정든 곳을 지키며 머무는 것도 인연과 복이 함께 해야 하나 봅니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행운입니다. 부산의 거북등과 같은 금정구에서 일생을 좋은 추억을 안고
정든 사람과 살으시는 복이 전생에 심은 것이 많으신가 봅니다.

어린아기가 재앙신에게 부정이 범해지면 그렇게 병든 사람처럼 된다고 합니다.
아마도 청정한 시대니 소음과 이상한 요란이 막 태어난 아기에게 피해가 간나 봅니다.
과학적으로 증거가 안되지만 과학적으로 밝혀 질 때가 올 것입니다.
미신은 아닌 거 ㅅ같습니다.

[희망]

여러가지 기이한 이야기까지 우리의 삶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긴 것 같은 진실들이 재밌습니다.
글 쓰신다고 수고 하셨습니다.

[박호]

흑백사진같은 추억담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화이트]

정말 정겨운 옛 이야기 입니다. 추억담을 잘 읽었읍니다. 너무나 생생한 이야기가 재미가 솔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