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교는 백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일본 불교계의 정당·정통성을 부여하는 존재로서는 중시되지 않았다. (일본에게) 변방이었던 백제로부터 수준 높은 사상을 수용했다고 하기보다는 무시할 수 없었던 고구려로부터 수입됐다고 하는 것이 국가적 자존심에 상처가 적다고 본 것으로 해석된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와 동양미술사학회는 1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백제 불교문화가 일본 열도에 끼친 영향’을 주제로 2013한일학술심포지움을 개최했다.
행사에서 최연식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교)는 ‘삼론학 강요서의 유통을 통해 본 백제 불교학의 일본 불교에의 영향’에서 이같이 말하며 백제의 삼론학이 일본 교학 형성·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강조했다.
| | | ▲ 1일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열린 한일학술심포지엄에서는 백제불교가 일본 열도에 끼친 영향에 대한 국내외 학자들의 논문이 발표됐다. |
일본서 활약했던 백제 출신 혜총 관륵은 삼론학 종장
백제는 일본의 불교 수용에 큰 역할을 했다. 일각에서 일본 내 특정 불상의 연원이 한국불교와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켜 일본불교가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수입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백제가 일본에 끼친 영향은 틀림이 없다는 것을 재확인시킨 것이다.
최 교수는 “일본 불교계가 삼론학 전래와 삼론학파 형성을 고구려 승려 혜관의 간코지 삼론 강의를 최초로 여기고 있고, 그의 가르침을 받은 지조와 지장의 제자 도지의 중국 유학의 결과로 보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7세기 일본에서 활약한 혜총, 관륵 등 백제 출신 승려에 대해 삼론학 종장이었다고 소개하면서도 일본 삼론학 형성에 관해서는 중시되지 않아왔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대승사론현의기>가 현재 확인되는 최고(最古) 삼론학 강요서로서 나라시대 전체에 걸쳐 빈번하게 필사됐고, 헤이안시대까지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며 <대승사론현의기>가 찬술된 백제불교가 (고구려불교보다) 일본불교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가람배치만 봐도 백제 양식 일본 전래 분명
한나래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6~7세기 백제와 일본 사찰건축 비교연구’를 통해 백제 사찰의 가람배치와 축조기법에서 발견되는 규칙성과 유형을 일본 고건축에서 찾아 보였다.
한 학예연구사는 백제 사찰과 일본 6~7세기 사찰과 유사성을 가람배치와 축조기법으로 나눠 설명했다. 탑과 금당을 남북일직선상에 배치하는 (백제식) 1탑 1금당 가람배치 양식이 일본 사찰에서 시텐노지식 가람배치로 8개 사찰에서 확인된다는 것이다.
한 학예연구사는 “1탑 1금당 가람배치 외에 다른 양식도 발견되지만 이는 백제 가람을 참고했으나 조영여건 및 주체에 따라 여러 가람양식을 폭넓게 채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 | | ▲ 한정호 동국대 경주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백제 불교가 일본뿐만 아니라 통일신라 불교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소개했다. |
백제 불교, 일본뿐 아니라 통일신라에도 영향
한정호 교수(동국대 경주캠)는 ‘백제 불전장엄이 신라와 일본에 미친 영향’을 주제발표 했다.
한 교수는 백제 지역 사지 벽화편 가운데 익산 제석사지 출토 대나무 벽화편을 일본 호우류우지(法隆寺) 다마무시노즈시 사신사호도와 연결했다.
또, 부여 부소산성사지 출토 벽화편에 그려진 새를 비둘기로 비정한 후 <시비왕본생담> 일부로 간주했다. 그러면서 “백제 불전 내부 벽화는 정형화된 설법도 형식보다는 본생도 등 불교설화 형식의 그림이 다양하게 그려졌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한 교수는 백제 불교와 일본 불교의 공통점을 건축적 요소와 금속장식 문양의 유사성에서 찾아 보였다. 이어 통일신라 감은사석탑 사리기 내함과 송림사 석탑 사리기 등 보장형사리기에 보이는 이중방형천개를 본보기로 들어, “(백제가 일본불교에 영향을 끼친 것에서 더 나아가) 백제 멸망 후 유민들은 통일신라 불교미술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강조했다.
황룡사 9층목탑 조성때 백제 소조불 기술도 신라 전래
최성은 교수(덕성여대·동양미술사학회장)은 ‘백제 소조상의 양상과 그 전파’를 통해 “백제 소조상이 통일신라는 물론 일본 하쿠호시대 소조상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한반도에서 소조상 조성은 6세기께 고구려에서 시작됐다”며 평양 토성리출토 도제소조불좌상 틀, 평남 평원군 원오리 절터 출토 소조불상 등을 예로 들었다.
백제의 소조불은 부여 정림사지, 능산리사지 출토 소조상들을 근거로 들어 6세기 중엽으로 추정했다.
최 교수는 “백제 소조상 제작기법은 6세기 후반부터 신라에 영향을 줬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선덕여왕때 백제 아비지와 그의 장인 200여 명에 의해 황룡사 9층목탑이 세워질 때 목탑 건축기술과 함께 소조상기법이 신라에 본격적으로 전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백제의 발전된 소조상기법은 백제 멸망 후 일본으로 건너간 유민들에 의해 일본열도에도 전해졌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일본 하쿠호시대 소조상 단편들은 그 제작기법과 조성형에서 볼 때 백제소조상 계승이라고 할 만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하시다데쓰로 교수(교토부립대)의 ‘백촌강 전투 이후 일본 도래계(渡來系) 사원에 보이는 백제불교의 영향’, 최문정(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전용호(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의 ‘백제 사비기와 일본 아스카 시대 궁원 비교연구’, 이병호 학예연구관(국립중앙박물관)·김남중 교수(전북대)의 ‘ 백제에서 본 아스카데라(飛鳥寺)에 파견된 와박사(瓦博士)의 성격’도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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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백제의 불교가 일본에 끼친 영향이 지대함은 옛날 국사시간에서 배웠었지요. _()_
일본이 아무리 백제불교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역사적사실과 유물유적은 어쩔 수 없지요.
백제는 문물과 기술이 뛰어나 일본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지요. 또한 신라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었지요. _()_
이는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지요. 백제인은 진취적 기상이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다만 백제에 대한 역사적 사료가 많이 망실되어 없는 것이 한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