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화투 이야기 1
화투는 일본의 카드의 일종인 "하나카루타(花かるた)", 지금은 일반적으로 "하나후다花札(はなふだ) 라고 부르는 것이 조선시대 말기에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입니다. 한 세트에 48장으로 구성이 되었고, 12개월 그때그때의 꽃이 4장씩마다 그려져 있습니다. 화투의 그림은 옛날 일본의 문화와 관계가 깊습니다.
일본에 카드 게임이 처음 상륙한 것은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1573年 – 1603年)로, 선교사가 총이나 기독교, 카스텔라 등과 함께 전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일본어 "카루타"의 어원은 포르투갈어로 카드 게임을 가리키는 "carta"입니다. 에도 시대(江戸時代/1603年 – 1868年)에는 도박이라는 폐쇄성과 당시의 물품 유통 실태로부터 일본 전국에 보급한 카드 게임은 각지에서 다양한 로컬 룰을 낳고, 그 로컬 룰에 합당하게 화투의 디자인도 바꾸어 갔습니다.
카루타에 대한 금지는 안에이(安永/ 1772年–1781年) 때부터 심하게 단속하여, 특히 간세이 개혁(寛政の改革1787年–1798年)에서는 매매가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화투는 이 금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고안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때까지 12장×4수트(suit)였던 것을, 화투에서는 숫자 및 수트의 기호를 감추기 위해서 4장×12개월로, 도안에서는 주로 교육용으로 이용되고 있던 와카(和歌/일본 고유 형식의 시) 카루타를 모티브로 했습니다. 그러나 화투도 바로 금지됐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금지령은 1831년입니다.
메이지(明治) 초기에는 여전히 화투는 금지됐으나, 1886년에 판매가 해금되어 그 해에 긴자의 카미가타야(上方屋)에서 화투와 규칙서가 출시되었습니다. 이후 화투는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한편 1902년에 "골패세(骨牌税/トランプ類税)"에 의해서 카드류가 과세되게 되어 "지방 화투"를 생산하던 일본 각지의 화투 제조사들은 도산했고, 지방 화투는 쇠퇴하여 가고, 각지에 전해지는 놀이 방법도 사라져 갔습니다. 또한, 닌텐도(任天堂)는 많은 지방 화투의 원판을 보유하고 있으며 발주도 가능합니다. 이 회사 사이트에 지방 화투의 원판이 파일에 수록되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말기에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최초로 전해진 제품이 닌텐도 제품의 화투라고 합니다. "화투"의 "화(花/일본어로는 "하나/はな" )"는 꽃과 새가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에 이 이름입니다.
원래 카드는 상류 계급의 놀이였기 때문에, 막부는 하류 계급의 상인과 서민이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막부의 눈을 속이고 도박 행위를 하기 위해서, 가게의 안쪽에 도박장을 마련했습니다. 가게에 들어가 최초에 "코(鼻/일본어로 꽃과 코는 "하나/はな"이기 때문에 = 화투)를 문지르는 신호"를 하면 주인이 "안으로 들어가십시오"라고 도박장으로 안내했다고 합니다. 도박 행위로 사용한다는 꺼림칙함에서 은어적 표현으로 화투 판매점에서는 꽃(花)=하나(はな)=코(鼻)로서 "도깨비(天狗)"의 얼굴이 내걸린 것으부터 패키지에도 일러스트가 그려지게 됐습니다. 1월(月) 소나무에 학/松に鶴
실제로는, 학(鶴)은 발가락의 구조와 몸무게 등으로 소나무를 올라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소나무에 올라타고 있는 것은 사실은 황새로 여겨지고, 옛날의 화가가 황새를 학으로 착각했다는 설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림을 확인하면, 학은 소나무에 올라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땅에 서있기 때문에 이 설은 전제부터 의문입니다.
중국에서 학은 조류 중 제일의 지위로 여겨 "일품조(一品鳥)"라는 별명도 있을 정도의 고귀한 새입니다. 학의 날개가 하얀 것에서 인간의 장수하는 사람과 연관하여 불로장수를 나타냅니다. 신선한 새로서 중국에서는 거북, 소나무와 함께 선호하는 경사의 새입니다.
곧잘 "학은 천년, 거북은 만년"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실제로는 학이 천년이나 사는 것은 아니고 중국의 사상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이 일품조를 주제로 여러 그림이 그려지고 예술 작품이 태어났습니다. 학이 파도가 밀려오는 바위 위에 서있는 모습을 그린 "일품당조/一品当朝(いっぽんとうちょう)"=출세를 나타내는 경사스러운 그림입니다. 백학이 구름 사이를 우아하게 비상하는 모습을 표현한 "운중백학/雲中白鶴(うんちゅうはっかく)"=고결한 인물의 비유에 사용됩니다.
고결이라는 것은 속사에 물들지 않고, 사리사욕으로 사물을 판단하지 않는 것이며, 고결한 사람이라는 것은 이런 일에 유혹되지 않는 인물입니다. 方西園-松鶴遐齢図 그리고 화투의 소나무에 학(松に鶴)의 모티브가 됐을 확률이 높은 중국의 그림 "송학장춘/松鶴長春(しょうかくちょうしゅん)",송학하령/松鶴遐齢(しょうかくかれい)"으로 불리는 그림입니다. 이는 두 마리의 학이 소나무에 자리 잡은 모습(한 마리의 그림도 있습니다).
장춘은 장춘화/長春花(ちょうしゅんか)=월계화/庚申薔薇(こうしんばら)로 일 년 중에 몇 번이고 꽃이 피는 상록수로, 여러 번 꽃이 피는 것에서 인생에서도 피크가 여러 번 올 것 같은 의미에서 중국에서도 선호되는 나무입니다. 소나무와 학과 월계화, 길한 것으로 채워진 그림이 중국과 일본에서 선호된 것 같습니다. 하령/遐齢(かれい)=장수, 장수불로(長寿不老)의 의미입니다.
역시 사람은 오래 살게 되면, 뭔가 한 가지 재주에 뛰어나거나, 박식한 사람이 되고, 좋은 일이 많고 즐거움도 증가하므로 기원할 마음도 강하게 되겠지요. 화투의 도안이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까지 다양한 경위에서 변천하여 갔습니다. 에도 시대 중기부터 회화의 세계에서는 모방의 시대가 이어지고, 새로운 모티브를 찾는 일도 적어지면서, 이미 완성된 테마의 물건을 자신의 작풍(作風)에 의해서 개성을 내면서 그리는 화가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 유입된 이들의 새로운 모티브에 일본인은 최상의 가치를 찾고 차례로 구도나 모티브의 비슷한 그림이 나왔습니다.
그런 시대 속에서 화투의 그림에도 쓰이게 된 것은 아닐까 합니다. 길한 물건을 선호하는 것은 중국인도 일본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소나무도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길한 나무로, 겨울에도 푸른 잎이 무성한 일에서 불로장수의 상징으로 애용되어 왔습니다. 실용성도 높고 가연성이 높은 것에서 일반 가정에서는 목욕물을 데우는 아궁이의 점화제, 도예가는 가마의 땔감으로 없어서는 안 될, 제2차 대전 중에는 항공기의 연료로도 검토된 정도입니다. 식품으로 애용되고 소나무 잎의 성분을 사용한 음료, 사탕, 과자, 건강 식품, 포도주나 홍차 등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전국 시대(戦国時代)에는 농성전(籠城戦)에 대비해, 소나무 껍질과 열매가 식용이 된다는 것에서 성의 뜰에 소나무를 심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태고의 시대부터 존재하는 종으로, 생물로 말하면 인간보다 오래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선배의 생물입니다. 소나무에 적단/松に赤短 "あかよろし(아카요로시)"라 쓰여 있습니다. "분명히 좋다(明らかに良い)"라는 의미인가라는 설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