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설교(68)
양과 염소의 비유 ....
본문 : 마 25:31-46 (신 44)
마태복음 25장에는
예수님의 비유 세 가지가 나옵니다.
열 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가 그것입니다.
이 비유들의 공통점은...
주님께서 장차 재림하시는 날에 대비하여 ....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관해
교훈하신 말씀입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대략 세 가지 질문을 받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기름, 곧 신랑되신
주님을 맞이할 믿음을 준비하였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열 처녀 비유’를 통해 ....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등불과 함께
기름도 넉넉히 준비하고 있어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너는 내가 맡겨준
일을 잘 감당했느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를 통해
주인으로부터 다섯 달란트를 받았든지,
두 달란트를 받았든지,
한 달란트를 받았든지 최선을 다해
활용하여 이익을 남겨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비유는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함을 가르치시는 비유입니다.
이렇게 믿음을 지키고 사명을
잘 감당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세 번째로 무엇을 물어보실까 ?
그 질문은 오늘 본문인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살아가는 동안 네 이웃을
주님을 대하듯 사랑했느냐”고
물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오늘 본문을 보면 .....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를 나누듯이.....
사람들을 크게 오른편과 왼편으로
나눈다고 하셨습니다.
<본문 31-33절 읽어라>
31절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절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먼저 31절을 보면....
재림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묘사하십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초림과 재림의 차이점입니다.
예수님이 초림하실 때는
정말 낮고 천한 종의 모습으로
겸손하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그저 다 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재림의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재림의 주님은 오실 때부터가
그야말로 승리한 장군의 모습으로
장엄하게 오십니다.
자기 영광으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영광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영광으로 오십니다.
또 '혼자 오시느냐?' 아닙니다.
“모든 천사와 함께” 오시는데
구름 타고 영광 중에 오십니다.
그리고 오셔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십니다.
이것은 재판석을 뜻합니다.
세상 법정에도 재판할 때 보면
재판장은 아무 자리에 앉아서
재판하지 않습니다.
재판 석 중에서도 제일 상석 중앙에 앉아
모든 판결을 선언하십니다.
이어 같이 주님은 당신의 재림하는 모습을
‘심판주’의 모습으로 분명히 묘사하고 계십니다.
<양과 염소를 나누시는 주님>....
‘심판주’로 오신 예수님께서 첫 번째 하시는 작업은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과 같이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양과 염소로
‘각각’(개인적으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심판받을 자를 ‘양과 염소’로 구분하는
것은 몇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은 낮과 밤의
일교차가 심한 데 .....
- 양은 추위에 강하지만.....
- 염소는 추위에 약해서
따뜻한 곳에 재워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낮에는 양과 염소가
풀을 뜯어먹으면서 큰 무리 없이
섞여 지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밤에 잠을 잘 때는
목자들이 양과 염소를 구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양이 워낙 차이가 나니까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별할 때에
실수할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이 모든 민족,
각각의 사람을 심판하실 때에는
실수가 없음을 나타내는 비유입니다.
또한 양과 염소는 성격상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양은 온순합니다.
양은 다투지 않습니다.
양은 순종하는 자의 상징입니다.
양은 제멋대로 가지 아니하고
목자가 가라는 데로 갑니다.
양의 특징은 희생입니다.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하며
그를 위해 조용히 자기를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양은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합니다.
반면 염소는 다투기를 잘합니다.
툭하면 주인에게 끌려가면서도
옆의 놈들을 받아치는데 ...
그 조그마한 뿔 하나를 가지고
그것이 대단한 것인 양 자꾸 싸움질을 합니다.
왜 싸웁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편견 때문에,
고집 때문에 싸웁니다.
또 순종하지 않습니다.
청개구리의 심보를 가졌습니다.
제 멋대로 하려고 합니다.
염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자기를 나타내고 자기를 자랑합니다.
이와 같이 염소는 다투기를 좋아하고
이기적이며 교만한 자를 상징합니다.
<오른편과 왼편으로>....
그래서 ‘심판주’로 오신 주님은
모든 민족, 각각의 사람을 양과 염소로 나눈 뒤 ....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그 왼편에 둘 것이라는 말씀하십니다.
오른편은 의로운 자리를 표현하고,,,,,,,
왼편은 저주받은 자리로,,,,,,,
또 오른편은 보호와 능력,,,,,,,,,,,,,,,,,
왼편은 무관심과 내버려둠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상에 우편 강도는 구원을 받았지만
왼쪽 강도는 버림을 받았습니다.
본문에서 오른편은 의인의 자리로,,,,,,
왼편은 저주받는 자리로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오른편은 구원에 자리요,
왼편은 멸망의 자리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오른편과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따로 말씀합니다.
34절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41절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오른편과 왼편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 오른편 곧 양에 속한 사람들은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지만...
- 왼편 곧 염소에 속한 사람들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갑니다.
<구분의 기준은?>.....
그러면 그 구분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예,....
주님께 어떻게 행했느냐가
그 기준입니다.
먼저 주님은 오른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합니다.
<본문 35-36절 읽어라>
35절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절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그리고 왼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합니다.
<본문 42-43절 읽어라>
42절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절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주님께서 양과 염소로 나누신 기준은......
① 내가 주렸을 때
음식을 주었는지, 아닌지 ....
② 내가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는지, 아닌지 ....
③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영
접해 주었는지, 아닌지....
④ 내가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는지, 아닌지....
⑤ 내가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혀 주었는지, 아닌지 ....
⑥ 내가 옥에 갇혔을 때
찾아와 위로해 주었는지, 아닌지 하는 것들입니다.
즉 주님께 어떻게 행했느냐에 따라
양과 염소로,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으로 나뉜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본문 37-39절 읽어라>
37절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절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절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4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오른편에 있던 자들도,
왼편에 있던 자들도 의아해 합니다.
자신들은 주님을 그렇게 대접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왼편에 있는 자들은
그 기준이 잘못되었다고 항변합니다.
이에 주님은 ‘임금’의 입을 빌려
명쾌한 답을 내놓습니다.
40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본문 45-46절 읽어라>
45절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십니다.
주님은 ...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이 지극히 작은 자'를
'너희 형제 중에 하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작은 자는 주님의 형제입니다.
바울 사도도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엡6:6-7절 읽어라>
6절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절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만약 예수님이 찾아오셨다면
어지간한 사람은 다 대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자에게는
인간적으로 볼 때 무시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소외되고 버려진 자,
곧 지극히 작은 자에게 선행을 한 것이
곧 자기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실천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내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내가 부모, 형제, 친구, 이웃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받은 사랑을 기억할 때 ...
또한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우리는 마 25장을 통해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우리에게
물으실 예상 질문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기름, 곧 신랑되신 주님을 맞이할
믿음을 준비하였는가?”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너는 내가 맡겨준 일을
잘 감당했느냐?”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질문은
“살아가는 동안 네 이웃을
주님을 대하듯 사랑했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예상 질문을 알려주셨으니
거기에 맞는 답을 준비하는 것은
우리 성도들의 몫입니다.
기름을 준비하십시다.
맡겨진 사명에 충성하십시다.
누구를 대하든 주님을 대하듯이
사랑으로 행하십시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오실 때에
창세로부터 예비된 영원한 나라를
상속받으시는 ...
우리 금산교회 모든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