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6)
2006-06-05 13:11:32
93차 수리산 정기산행기
2006. 6. 5. / 서상국
* 일시 : 2006. 6. 4(일) 수리산
* 참가 : 인식(대장), 신림, 택술, 상국. 이상 4명
* 코스 : 수리산역 - 오른쪽 출구로 나가서 아파트단지 왼쪽으로 쭈욱 감 - 등산로 따라 정자 나오는 곳 - 슬기봉 - 태을봉 - 관모봉으로 내려오다가 길을 잘 못 들어 그냥 병목안동네로 내려옴
오전 9시 30분 산행시작, 오후 2시 하산 완료.
1.
토요일 오후, 혼자 집근처 불곡산을 다녀오는데 펭귄에게서 전화가 왔다.
“Tv... 현충일날 오대산 간다고 그라는지, 내일 수리산에 아~들이 아무도 안 올 모양이네? Tv 그라몬 나도 오대산 안 간다!”
"몇 사람이 되든 형편 되는대로 가자.”
“그래도 그렇지, 내가 대장인데... 일마들이 와 안 가노? 이거 돌아삐겠네.”
늦은 밤에 다시 펭귄의 전화. 이번엔 술이 좀 취했다.
“이것들이 내가 전부 전화를 한 번씩 했는데... 안 받는 놈은 나노코... 하이튼 전화를 다 때맀거든. 끅. 신림이가 온다캤고 나머지는 한 놈도 안 간다네. 끅.”
“펭귄아, 아~들 안 와도 된다. 아~들 작게 왔을 때 우리끼리 비싼 거 시키묵자. 회도 사묵고 뭐 묵고 싶은 거 있으몬 다 묵지, 뭐. 돈은 내가 가~이꼬... 그라몬 안 되겠나? 그자?”
펭귄, 갑자기 술이 깨었는지 훨씬 밝은 목소리로
“그래, 맞다! 우리 회 묵고 돈 다 써삐자! 캬캬.”
‘펭귄이 대장인데 체면 좀 세워주면 좋으련만 아이들 전부 스케줄이 바쁜 모양이다. 그는 그렇고 술 너무 많이 마시면 펭귄 또 고전할 낀데....’
그런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2.
일요일 아침 7시 15분 집을 나섬.
마을버스로 오리역, 지하철로 서현역, 걸어서 펭귄 타는 곳까지 가서 333번 버스로 공포의(?) 범계역, 다시 지하철로 수리산역 도착 시각 8시 30분. 지각 안 하려고 신경을 썼더니 너무 빨리 왔다. 털레털레 오른쪽 출구로 내려가 나무 벤치에 누워 어제 마신 술, 후유증이 있는지 없는지 숨을 골라본다. 소주만 마셔서 그런지 다행히 별 이상 없어 보인다.
택술이와 신림이는 서로 산행 참가여부를 모르고 각자 출발했는데 사당역에서 정말 우연히 만나 거의 정시에 도착했고, 15분에 펭귄 도착. 벌금 3,000원으로 빵을 샀다.
산행 안내판 앞에서 펭귄대장이 오늘의 산행코스를 설명한다.
“이렇게 파란색 줄 따라 갔다가 여기 정자가 있는 곳에서 슬기봉을 바로 타는 게 아니고, 요만큼 뺑뺑 돌아서 요게서 올라가자.”
뭔가 이상한 낌새를 차린 신림이 질문.
“와 그리 멀리 돌아가는데?”
“응 그게 말이야. 어쩌고저쩌고.”
좀 돌아내려가서 경사가 약한 코스를 타자고하는데 아무래도 그건 예정시간 4시간보다 훨씬 더 걸릴 것 같다. 자기는 아니라 하는데 우리가 보기엔 펭귄대장님이 좀 횡설수설하는 것 같다. 간밤에 전화기를 통해 건너오던 술 취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다시 들린다. 뭔가 불길한 예감.
9시 30분에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면서 본격적인 산행시작. 새소리 듣고, 흉내 내어가며 녹음 우거진 길을 산보하듯 상쾌한 마음으로 걷는다. 단체 사진 한 장 찍었는데 찍어주던 젊은 양반, 성미도 급하지. “하나, 둘, 셋!” 엄청 빠른 템포로 외치면서 퍽! 찍더니만 흔들려서 못 쓰게 되었다.
부지런히 40분쯤 걸었더니 아까 펭귄대장이 얘기하던 정자가 나온다. 거기서 바로 슬기봉을 향해 치고 올라간다. 오르막 30분 걸려 도착한 슬기봉 정상은 군부대 초소가 있어서 구경하지 못하고 태을봉으로 가는 길목에서 펭귄대장을 기다린다. (10:40)
-멀리 보이는 태을봉까지 1.8Km 남았단다.
중간에 칼바위가 멋있어서 먼저 올라가 친구들 독사진을 한 장씩 찍어주다. (11:15)
칼바위 지나고 어느 순간, 다시 펭귄이 안 보인다.
땡볕이라 그런지 태을봉까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태을봉 바로 아래 아찔한 바위를 통과하고 그늘에 자리를 폈다.
막걸리2통, 캔 막걸리 2개, 천년약속 한 병. 멸치와 고추장, 오이를 안주로 캬! 하면서 술맛좋다며 감탄하고 있는데 펭귄대장님이 우회하는 길을 두고 용감하게 바위를 타고 넘어오는 게 보인다.
우리를 보고 얼굴이 확 피더니만 다가와 그냥 내 뒤에 펄썩 주저앉는다. 이쪽 그늘진 좋은 자리로 오라해도 땀에 젖은 수건을 짜면서
“아고 아고, 일단 좀 쉬고 보자. 요게서 고~까지 일 미터도 못 가겠다. 아 Tv... 어제 술을 많이 묵었나? 밸로 많이 안 묵었는데... 와 이리 데노. 끙.”
태을봉에서 관모봉까지는 가깝다. 얼마 안 걸릴 텐데 관모봉이 안 나와 시야가 터진 곳에서 방향을 보니, 아차! 앞장섰던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보다. 되돌아가긴 너무 힘들고 그냥 내려가기로 했다. 계속 내려오니 병목안 동네다. 지난 1월, 혼자 수리산으로 산행을 왔을 때 여기서 시작했던 터라 곳곳이 눈에 익었다. 지고 난 백발의 할미꽃, 패랭이, 꿩의 다리 같은 들꽃도 구경하면서 눈요기를 하고 산행을 마무리한 시각이 오후 2시. (총 4시간 30분 걸렸고 순수 산행시간 3시간 30분정도.)
3.
범계역 2번 출구.
회를 맛있게 먹고, 당구 한 게임. 권박은 목욕탕.
다시 평촌으로 옮겨 권박과 합세, 4명이서 호프...
신림이 먼저 가고 다시 자리 옮겨 또 호프....
집에 오니 밤 11시 10분.
산에서는 그렇게 맑은 날씨였는데 이상하게 집에서는 천둥 번개가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