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두레박 신부의 영적일기(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삶의 기적이 시작되는 최고의 날….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선교사 12명을 체포한다는 명목으로, 당시 천주교인 8,000명과 그들을 돕는 부녀자와 아이들까지 최소 2만 명에서 최대 12만 명까지 처형당하였습니다.
“마을 장정들에게 마을 마당 한복판에 통나무 기둥을 세우고 범인을 묶어 매어 꼼짝을 못 하게끔 합니다. 그러고서 물에 적신 창호지를 천주교인들의 얼굴에 붙입니다.
한 겹 두 겹 붙여나가면 숨을 쉬기가 차츰차츰 어려워집니다. 그렇게 해서 서서히 죽어가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때 얼굴에 붙이는 종이를 ‘도모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천주교인은 아무리 ‘도모지’를 얼굴에 붙여도 한 사람도 배교를 한다거나 다른 천주교인들이 어디에 있는지 입도 열지 않았다 해서, ‘아무리 해보아도 안 된다.’라는 뜻의 ‘도무지’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가 생겼습니다.
우리는 종종 ‘도무지’는 부정을 나타내는 말과 함께 사용하는데, 너무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도무지’라는 말을 못 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도무지’ 안에 ‘하느님을 굳게 믿는 기적 같은 순교자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들으시고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습니다.
여기서 ‘외딴곳’ ‘물러가셨다.’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피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군중은 예수님께서 외딴곳으로 가셨다는 소문을 듣고 쫓아 따라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라오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며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기적을 보면 거기에 늘 ‘군중의 아픔을 불쌍하게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적이 일어나는 곳에는 ‘예수님의 마음’이 있고, 그 마음으로 인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의 기적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가져다 나누어 주어라.”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와 아이들 외에 남자만 오천 명가량 먹이시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찬 빵은 누구의 몫일까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준 이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은혜로운 것은 제자들은 몰랐지만 이미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줄 때부터, 예수님께서는 이미 주실 몫을 준비해놓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덜 먹고, 덜 쓰고 사랑으로 나눌 때,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더 좋은 몫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멘.
사랑하는 고운님들!
이제 예수님께서는 고운님들에게 자리를 잡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제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을 신뢰하고 예수님 앞에 나아올 때 고운님들에게 삶의 기적이 시작되는 최고의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주님, 저에게는 가진 것이 이것밖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언제든지 고운님들의 삶에서 어렵고 곤란한 상황을 만나고, 그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없을 때, 그 상황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있고 하느님의 영광이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은 고운님들이 행한 대로 갚아주시고,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서 17장 10절 말씀입니다.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을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그러니 고운님들은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임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순교자의 후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운님들은 오늘도 ‘하느님을 굳게 믿는 기적 같은 순교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최고의 날을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저 두레박 사제도 예수님의 마음을 보고,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내는 최고의 날을 시작하며, 몸과 마음이 아픈 고운님들과 아픈 이들을 돌보는 고운님들, 그리고 고운님들의 자녀에게 주님의 치유와 회복의 은총이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영적일기를 마무리하면서….
작은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감사의 기도로 축복하시어, 고운님들을 통해 그 작은 것을 나누는 것을 통해 예수님의 마음을 보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적 같은 최고의 날을 시작하면서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강복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고운님들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https://youtu.be/dYkff2Y4oQM
루카 복음(137)
예수님과 군중
6장 17절….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이 구절에 나타난 ‘평지(페디누)’라는 말로 인해 20절 이하의 말씀을 보통 ‘평지 설교’, 또는 ‘평지 수훈’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평지 설교’는 마태오 복음의 ‘산상 설교’와 거의 같은 내용을 선포하고 있으니,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마태오 복음의 ‘산(오로스)’과 항상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된 구약의 ‘하르’는 ‘산’ 뿐만 아니라 산 위의 넓고 평평한 지역도 의미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두 복음서의 기록은 서로 보완 관계에 있다 할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 올랐다가 내려오시면서 산 중턱의 평평한 지역에서 말씀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이 부분은 예수님을 따랐던 백성들의 출신지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매우 넓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티로와 시돈은 페니키아 지역에 있는 도시로서, 이 두 지역은 한때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지역 전도 사명을 행하시던 중 가신 적이 있었고(마태오 복음 15장 21~29절 참조), 바오로 사도 역시 이곳을 선교 여행 중에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사도행전 21장 3~7절 참조).
6장 18절….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예수님의 사명에서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는 기적은 이 땅에 실현된 하느님 나라의 증거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마태오 복음 12장 28절 참조).
왜냐하면 바리사이들과 벌인 베엘제불 논쟁에서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기적을 가까이 다가온 하느님 나라의 증거로 제시하셨기 때문입니다.
6장 19절….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이미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던 군중은 예수님과의 신체적인 접촉만으로도 병을 치유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듯합니다.
실제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짐으로 병이 나았습니다(루카 복음 8장 43~48절 참조).
따라서 군중이 예수님을 앞다투어 손을 대려고 애를 썼던 것은 일단 예수님을 통한 치유의 희망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일은 루카 복음 6장 20절을 공부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고운님들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편안하게 잘 주무시고 멋진 꿈을 꾸세요. 그리고 오늘 다가올 좋은 일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 큰 소리로 세상을 향해
외쳐보십시오.
나는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라고
세상에 희망을 주기 위하여
첫댓글 주님,저에게는 가진 것이 이것 밖에는 없습니다사랑하는 고운님들!
이제 예수님께서는 고운님들에게 자리를 잡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제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을 신뢰하고 예수님 앞에 나아올 때 고운님들에게 삶의 기적이 시작되는 최고의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주님, 저에게는 가진 것이 이것밖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언제든지 고운님들의 삶에서 어렵고 곤란한 상황을 만나고, 그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없을 때, 그 상황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있고 하느님의 영광이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은 고운님들이 행한 대로 갚아주시고,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서 17장 10절 말씀입니다.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을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그러니 고운님들은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임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순교자의 후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