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5.
불락사 법고전
승용차 한 대 공간을 찾기가 어렵다. 부처님오신날이니 쉽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큰길 입구에서 사찰까지 길 양쪽으로 빼곡히 주차되어 있다. 북적이는 신도들 사이를 뚫고 오르막을 올라 이것저것 모두 미루고 점심 공양부터 했다. 몇 가지 나물에 고추장 한 숟갈인데도 맛있다.
정선아리랑이다. 전각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다. 부처님오신날과는 거리가 있는 노래여서 의아스럽다. 이런 날은 찬불가나 목청 좋은 스님의 독경 소리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가야금병창, 판소리, 찬불가, 사물놀이 등 국악이 이어진다. 불락사(佛樂寺)라는 사찰 이름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 듯하다.
불기 2568년 부처님오신날, 불락사 제40회 산사문화예술제라는 현수막이 법고전 처마에 달려있다.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 문화관광체육부, 구례군, 하동군이 후원한다고 적혀있다. 법고전은 전면이 뻥 뚫린 기둥 하나 없는 전각이다. 십여 개의 계단 아래 법고전 마당에는 백여 개의 의자를 놓아 야외무대를 꾸몄다.
사찰에는 전각마다 주인이 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집이다.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담당하는 아미타 부처님 집은 극락전, 아미타전, 무량수전으로 편액을 단다. 약사전, 만월전, 유리광전에는 약사여래 부처님이 주불이고 절대 진리의 비로자나 부처님은 비로전, 광명전, 대적광전 화엄전 등의 주인이다. 관세음보살은 관음전이나 원통전, 지장보살은 명부전, 나한은 응진전 문을 열면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다.
법고전(法鼓殿)이라는 전각은 처음이다. 슬그머니 무대 쪽으로 올라 법당 안에 모셔진 부처님을 살핀다. 주불은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협시보살은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다. 그런데 주불과 협시보살 사이사이에 작은 불상 두 분을 모셨다. 전통적 불상 배치법과는 다르지만, 깊은 뜻이 있을 듯하다. 법고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매우 궁금해진다.
“스님! 대웅전 대신 법고전인가요?”라고 물으니 “부처님 가르침이 북소리 타고 널리 퍼져.”라며 화두 같은 한마디를 던지고 바삐 손님맞이를 하셨다. 그때는 몰랐다. 국내 최초 산사음악회의 효시라 불리는 불락사 주지 상훈 스님이셨다. 스님은 1989년 불락사를 창립하여 우리나라 전통 불교음악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산사음악회 40회를 개최하는 등 불교음악의 현대화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포교의 중심에 음악이 있다. 불락사의 즐길 락(樂)과 법고전의 북 고(鼓) 둘을 합치면 만사형통이다. 불법을 즐거운 마음으로 멀리멀리 전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