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MZ 평화의 길 33코스 역방향 제3부
죽정생태습지-월안마을-원당리쉼터-원당마을-
동해북부선공사현장-송정리복지회관-송정교회-
송정보건진료소-송강교-건봉사삼거리(20251022)
건봉사삼거리-건봉권역다목적교류센터-송강1교-
송강쉼터-송강리마을회관-송강교(20251028)
20251022~20251028
1.코스 소개 : 생략. 제1부 참조.
◆여행정보(주의사항)
- 주요경로 : 건봉사 5.4Km 송강쉼터 7.4Km 이승만 대통령 별장 3.6Km 대진항 3.0Km 통일안보공원
- 길이 19.4km, 소요시간 7시간, 난도 보통
- 이용방법 : 방문 전 반드시 읽어보세요! : 33코스는 일부구간(건봉사에서 송강 쉼터)이 군통제지역으로 차량 이동은 가능하나 도보 이동이 불가합니다. 우회로(32-1코스 및 33-1코스)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5.15.~10.31. 매주 목, 토요일 걷기 프로그램 운영, 운영일 기준 3일 전까지 전화예약이 가능하며 5인 이상 모집시에 운영됨. 예약방문 시 참가비 무료, 간식 제공, DMZ 평화의 길 기념뱃지 증정, 완보인증서 발급) 이용문의 : 강원 고성 DMZ 평화의길 송강쉼터 033-682-6822 / 고성군청 033-680-3365
2.송강쉼터, 우리 좋은 슬픈 날
제3부(죽정생태습지~송강쉼터~건봉사삼거리) : 죽정생태습지에서 평화의 길 33코스 남은 구간을 이어간다. 관찰길을 따라 죽정생태습지 남출입구로 나가면 평화의 길 표지판은 수로(水路)의 둑방길을 따라가도록 안내하고 있다. 일행은 수로의 다리를 건너 월안천(원당천) 둑방길로 진행한다. 어떻게 진행할까? 평화의 길은 수로의 둑방길로 진행하도록 되어 있으나 월안천 둑방길로 진행하여도 무방하며 원당리의 경계가 되는 월안천 다리에서 평화의 길과 재회한다. 길손은 잠시 망설이다가 월안천 둑방으로 나가 주변을 살핀 뒤 수로의 둑방으로 되돌아와 수로의 둑방길을 따라 죽정리 들녘을 가로질렀다. 북쪽으로 죽정리 마을이 자리하고 국도 제7호선 동해대로는 죽정리 들녘을 남북을 가로지르며 남쪽 원당리 지역으로 이어간다.
거진읍 월안리는 원당리에 통합되었다. 그럼에도 옛 흔적을 지닌 월안천이 흐르고 월안(月安)마을을 지나는 도로명은 월안길이다. 월안(月安)의 '달안'은 '다라니'라 불리며 지금도 월안마을을 다라니마을로 불린다고 한다. 월안천은 최근에 원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월안천이라 이르는 게 나을 것 같다. 국도 제7호선 동해대로가 월안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이름은 월안교(月安橋)이다. 월안천 둑방에서 동해대교 월안교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우리 이름인 '다라니다리'라고 부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안천의 다리를 건너 월안길을 따라 거진읍 원당리 월안마을을 통과한다. 동쪽에 펼쳐진 화진포호는 남쪽 호안(湖岸)에 막혀 있다. 쉬지않고 가을비는 내리고 짙은 안개는 화진포호에 수묵화를 그리며 피어난다. 화진포 둘레길은 원당리 서안(西岸)의 월안마을을 지나 원당리쉼터로 이어지고, 밭에는 깻단들이 널려 있다. 예전에는 깻단을 소각했는데 최근에는 깻단을 파쇄(破碎)하여 퇴비로 사용한다고 한다. 비닐에 덭인 깻단들은 하염없는 가을비의 사랑에 젖어 그리움의 눈물을 흠뻑 머금고 있다. 월안마을의 폐농가는 가을비가 내리는 탓에 길손의 가슴을 더 아프게 쓸어내린다.
원당리쉼터에는 화장실과 사각정자가 설치되어 있다. 원당리쉼터에서 국도 제7호선 동해대로의 횡단보도를 건너면 평화의 길을 단축할 수 있다. 일행은 그 길로 이어가지만 길손은 정코스를 밟아 원당리쉼터에서 화진포 둘레길을 따라간다. 원당리쉼터는 화진포호 서안(西岸)과 남안(南岸)의 꼭짓점이다. 화진포호 남안(南岸)의 화진포 둘레길은 거진읍 화포리로 이어지는데, 평화의 길은 원당리쉼터에서 화진포 둘레길을 잠시 따라가다가 화진포호 남안의 원당리에서 화진포 둘레길과 헤어진다. 현내면 초도리 대진중고등학교 후문 앞에서 이곳까지 동행한 화진포 둘레길과 아쉽게 작별하고, 동해대로의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거진읍 봉평리와 현내면 죽정리를 잇는 봉정로로 나간다.
거진읍 원당리 봉정로 북쪽에서 평화의 길은 남쪽 원당리 들녘으로 나간다. 이 지점에서 동해대로 횡단보도를 건너와 평화의 길을 단축하는 코스와 만나게 된다. 원당리 들녘을 가로지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레미콘 공장 같은 건물이 남쪽에 보인다. 가까이 가서 살피니 레미콘 공장이 아니라 동해북부선 강릉~제진 철도건설 현장이었다. 화진포로 이어지는 터널을 뚫고 있다. 공사 현장을 지나 거진읍 원당리와 송정리를 잇는 송정고개를 넘으면 거진읍 송정리에서 동쪽 거진읍 봉평리로 이어지는 넓은 들녘이 펼쳐진다. 저 아래쪽에 자산리와 거진리 지역이 있을 것이고, 자산천이 거진리와 송포리를 잇는 거진1교 아래에서 동해 바다에 유입되며, 그 북쪽에 거진항이 자리할 것이다. 평화의 길 32-1코스 우회로를 탐방할 때 자산천의 거진1교 위에서 서북쪽으로 자산리, 봉평리, 송정리 지역을 올려보았는데, 짙은 안개 속에서 동해 바다 방향을 가늠한다.
송정고개를 넘은 길은 송정리 건봉사로로 나가서 건봉사로를 따라 서북진한다. 송정리복지회관, 송정교회, 송정보건지소, 수목화(水木花)송정마을 오토캠핑장 앞을 지나 자산천의 송정교를 건넌다. 자산천은 거진읍 냉천리 건봉산에서 발원하여 송강저수지를 거쳐 송강리 송강교 아래서 거진읍 용하리를 지나온 산북천을 합수하여 송정리, 봉평리, 자산리를 굽이돌아 거진리와 송포리 사이의 거진1교 아래서 동해 바다에 유입된다. 자산천은 거진읍 지역을 관통하는 하천으로 1975년 준공된 상류의 송강저수지는, 거진읍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주요 저수시설이라고 한다.
송정교 서단에서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왼쪽 길은 남쪽의 거진읍 석문리로 이어지고, 오른쪽 길은 북쪽의 거진읍 냉천리 건봉사로 이어지는 건봉사로이다. 평화의 길은 건봉사로를 따라 거진읍 송강리 송강마을로 이어간다. 건봉사로는 벚나무 가로수가 조성되어 있어 봄날이면 만개한 벚꽃들이 휘날리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빛날 것이다. 건봉사로는 자산천을 따라가는 길이다. 자산천 동북쪽으로는 원당리, 용하리, 산북리가 자리하며 자산천은 송강리 송강보를 지나 용하리와 송정리로 흘러온다.
우산을 받쳐들고 힘겹게 걸어간다. 송강마을이 저만치 보이고 송강교를 건넜다. 이제 10분 정도면 33코스 탐방의 목적지인 송강쉼터에 도착한다. 그런데, 보도여행팀 대장의 지휘로 안내버스가 송강리 버스정류소로 내려온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1분이다. 꼴찌로 도착한 길손은 항변할 의욕을 잃고 송강리 버스정류소에서 버스를 탑승하였다. 할 말이 없다. 이런 봉변이 있을 수 있을까? 이번 탐방은 오후 6시 송강쉼터에서 건봉사로 출발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약속 시각을 지켜야 하고, 마지막 1명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른 탐방객은 모두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으니 1명은 다수를 위해 10분을 희생하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번 탐방은 34코스와 33코스 2개 코스를 역방향으로 탐방하여 송강쉼터에서 끝내며,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건봉사 삼거리로 가서 인증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데 상당수 탐방객이 33코스 1개 코스만을 탐방하였다. 그들이 일찍 도착하여 기다린다고 하여 2개 코스 종주를 목표로 한 탐방객이 6시 출발 시각보다 50분이나 빠른 5시 10분 정도에 도착할텐데, 그 10분을 단축하려고 버스를 지휘하여 송강쉼터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송강리 버스정류소로 내려오는 짓을 감행하는 보도여행팀 안내자를 리더라고 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빨리 출발하고 싶었다면, 탐방에 앞서 송강쉼터 출발 시각을 앞당겨 탐방객들에게 알렸어야 했다. 그러면 탐방객들은 그 시각에 맞추려고 노력할 것이며, 길손 또한 그 시각에 맞추려고 빠르게 진행하였을 것이다. 비정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정상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불쌍하고 가엾기 짝이 없다. 길손은 33코스 탐방을 만회하기 위해 홀로 송강쉼터를 다녀왔다.
3.탐방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5.1km
전체 소요 시간 : 3시간 43분
죽정생태습지 관찰길을 따라 죽정생태습지 남쪽 출입구로 이어간다.
남출입구 이정목의 평화의 길 진행 표지판이 오른쪽을 가리키고 있으나 건너편 월안천(원당천) 둑방길로 진행해도 무방하다.
관찰길 출입구 알림판에 게시된 'E.M 발효액'이 무슨 뜻일까? E.M은 'Effective Microorganisms(유용 미생물)'의 약자라고 한다.
효모, 유산균, 광합성 세균 등의 여러 유익한 미생물들이 들어있는 EM 발효액을 하천에 방류하면 생활하수, 농축산 하수 등 악취를 유발하는 유해 물질을 분해하는 자정 능력이 생겨나 하천이 정화되고 악취가 감소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월안천(원당천) 둑방길로 나와서 거진읍 원당리 월안(月安, 다라니)마을을 바라본다. 일행이 월안천 둑방길을 따라가고 있다.
원당리(源塘里)는 동쪽으로 화진포가, 서쪽으로 용하리와 노인산이 자리 잡고 있으며, 남쪽으로 송정리가, 북쪽으로 현내면 죽정2리가 각각 위치한다. 마을 앞에 큰 못이 있어서 원당리(源塘里) 또는 원댕이라고 불렸으며, 뒷산이 반달형이어서 동반월동(東半月洞)과 서반월동(西半月洞)이라 불리던 월안리(月安里)는 1916년 8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 때 원당리(源塘里)에 편입됐다. - 고성문화원
월안천 둑방길의 죽정생태습지 남출입구에서 죽정생태습지 관찰길 출입구를 살핀다. 중앙 뒤에 고성산이 흐릿하다. 월안천 둑방길을 따라가도 무방하지만, 평화의 길 표지판 방향대로 생태습지 관찰길 출입구로 되돌아가서 평화의 길 정코스를 따라간다.
월안천 둑방길에서 죽정생태습지 관찰길 출입구 앞으로 되돌아와 다리를 건너 왼쪽 둑방길을 따라간다. 중앙 뒤에 고성산이 보인다.
왼쪽에 수로(水路)가 있는 둑방길을 따라 죽정리 들녘을 통과한다.
수로의 둑방길을 따라 현내면 죽정리 들녘을 지나며, 앞쪽의 동해대로와 월안천 위를 지나는 월안교를 확인한다.
수로(水路)의 둑방길에서 죽정리 들녘과 그 뒤 죽정마을을 확인한다. 왼쪽 위에 국도 제7호선 동해대로가 지난다.
수로 둑방길에서 오른쪽 수로의 다리를 건너 왼쪽 뒤 월안천 둑방길로 이어간다. 위에는 동해대로의 월안교가 지난다.
평화의 길은 월안천 둑방길을 가로질러 월안천의 다리를 건너 거진읍 원당리 월안마을로 이어간다.
죽정생태습지 관찰길 출입구에서 왼쪽 건너편의 수로 둑방길을 따라왔다. 오른쪽 월안천 둑방길을 따라오면 이곳에서 재회한다. 이정목 날개는 화진포둘레길 시점 4km·종점 5km, 죽정리쉼터 2.7km, 원당리쉼터 0.8km 지점임을 알려준다.
월안천 둑방에서 월안천과 그 위를 지나는 국도 제7호선 동해대로의 월안교를 살핀다.
월안천 둑방길에서 월안천의 다리를 건너 거진읍 원당리 월안(다라니)마을로 이어간다.
거진읍 원당리 월안길을 따라 월안(月安, 다라니)마을을 지나간다.
월안(月安, 다라니)마을에서 월안들녘과 그 뒤 화진포호를 살핀다. 건너편 화진포호 동안(東岸)은 거진읍 화포리 지역이다.
거진읍 원당리 다라니(月安)마을 밭에 들깻단들이 널려 있다. 들깻단은 말린 뒤 태우지 않고 파쇄되어 퇴비로 사용된다.
월안길을 따라 거진읍 원당리 원당마을 동북쪽 화진포 가에 있는 다라니(月安)마을을 지나간다.
월안길을 따라 거진읍 원당리 월안마을의 마지막 농가들을 지나간다.
월안마을 마지막 농가들 중 입구의 두 채는 폐농가이다.
월안마을 마지막 농가를 지나 화진포호를 살핀다. 건너편 거진읍 화포리 왼쪽 끝의 김일성별장과 중앙 왼쪽의 응봉이 가늠된다.
화진포둘레길이 화진포호 맨 남쪽 호변을 거진읍 원당리에서 화포리 지역으로 돌아간다.
거진읍 원당리 월안길을 따라 원당마을로 내려간다.
월안길 동쪽에 사각정자와 공중화장실이 설치된 원당리쉼터가 있다.
월안길은 오른쪽 국도 제7호선 동해대로 앞에서 끝나고, 평화의 길은 왼쪽 원당리쉼터 앞으로 화진포둘레길을 따라간다. 평화의 길을 단축하고자 하면 동해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원당 들녘으로 나가 거진읍 송정리로 넘어가는 들길을 따라간다.
평화의 길은 갈림길에서 왼쪽 화진포둘레길을 따라 거진읍 원당리 원당마을을 지나간다.
오른쪽에 원당리쉼터가 있으며, 왼쪽 동해대로 입구의 갈림길에서 월안길과 작별하고 화진포둘레길을 따라왔다.
화진포호 남안(南岸)의 거진읍 원당리 화진포둘레길을 따라간다.
화진포호 남안(南岸)에서 화진포호를 살핀다. 왼쪽 위 월안마을과 그 뒤 죽정생태습지, 중앙 맨 뒤 이승만별장이 가늠된다.
화진포둘레길 옆 감나무에 대봉감들이 노랗게 익어 주렁주렁 달려 있다. 평화의 길은 앞의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왼쪽은 화진포 남안(南岸) 호변으로 이어지는 화진포둘레길, 평화의 길은 오른쪽 동해대로 방향으로 이어간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콩밭 옆 거진읍 원당리 들길을 따라 동해대로 방향으로 이어간다.
중앙에 원당리 들녘을 가르며 국도 제7호선 동해대로가 달린다. 평화의 길은 왼쪽 숲 가장자리로 이어간다.
오른쪽 뒤 갈림길에서 화진포길과 작별하고 숲 가장자리 들길을 따라 동해대로 방향으로 이어왔다.
국도 제7호선 동해대로의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동해대로 서쪽으로 나간다.
동해대로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거진읍 봉평리와 현내면 죽정리를 잇는 봉정로를 따라 올라간다.
봉정로 동쪽에 국도 제7호선 동해대로가 지나고, 평화의 길은 봉정로에서 왼쪽 송정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들길로 이어간다. 중앙 뒤 원당리 원당마을 월안길에서 동해대로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오면 평화의 길을 단축할 수 있다.
봉정로와 작별하고 원당리 들녘을 가로지르는 원당리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간다.
앞쪽에 있는 건물이 레미콘 공장 건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동해북부선 '강릉~제진' 철도건설 현장이었다.
동해북부선 '강릉~제진' 철도건설은 총 연장 111.7km를 2027년까지 완공하며, 강릉-주문진-38선-양양-속초-간성-화진포-제진 등 8개 역이 신설된다고 한다.
동해북부선 '강릉~제진' 철도건설 현장으로 화진포로 이어지는 터널 공사가 진행 중이다. 동해북부선 '강릉~제진' 철도 구간은 1937년 일제 강점기 때 개통했다가 1967년 폐지된 이래 약 50년 넘게 단절되어 왔다. 동해북부선 '강릉∼제진' 철도가 개통되면, 고속열차 기준으로 강릉역~제진역 약 51분, 수서역~제진역 약 2시간 5분, 부산 부전역~제진역 약 3시간 26분이 예상된다고 한다.
동해북부선 '강릉~제진' 철도건설 현장 옆을 지나 송정리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올라간다.
송정고개로 올라가다가 돌아서서, 동해북부선 '강릉~제진' 철도건설 현장 옆을 지나 걸어온 고갯길을 뒤돌아본다.
거진읍 원당리에서 거진읍 송정리를 이어주는 고개를 넘는다.
송정고개를 넘어 내려가면 거진읍 송정리 송정마을이 자리한다.
송정마을로 내려가는 길에서 남동쪽을 바라보면 거진읍 송정리와 봉평리에 걸쳐 드넓은 들녘이 펼쳐지고, 앞에는 농산물을 보관하는 듯한 대형 창고가 있다.
송정리 북쪽에 송정마을이 자리한다. 평화의 길 역방향은 송정마을을 거쳐 올라간다.
송정리(松亭里)는 동쪽으로 봉평리, 서쪽으로 송강리, 남쪽으로 석문리, 북쪽으로 원당리가 각각 위치하고 있다. 마을의 중심 일대에 노송이 많아 풍치 좋은 정자를 이루고, 마을 앞 하천에는 맑은 물이 흐르며 앞산에는 냉정(冷井)터(일명 냉장골)가 있어 송정리(松亭里)라 부르게 되었다. 1914년까지는 오현면(梧峴面)의 소재지였다.『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삼거리(三巨里)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산이름을 남수황산(南峀隍山), 보 이름을 대평보(大坪洑)로 각각 기록하고 있다. 이 마을 동쪽에 예부터 있었던 동대리(東垈里, 속칭 동터) 바람부리는 일제강점기 중엽에 이산(離散)되어서 현재는 농지가 되었다. - 고성문화원
송정고개를 넘어 농산물을 보관하는 듯한 대형 창고를 지나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거진읍 송정리에서 동쪽 거진읍 봉평리 지역으로 들녘이 드넓게 펼쳐진다.
봉평리(蓬坪里)는 동쪽으로 거진리, 서쪽으로 송정리, 남쪽으로 자산리, 북쪽으로 화포리가 각각 위치하고 있다. 옛날 이 마을에는 쑥이 많았으며 서방의 딴봉 밑에 연못이 있다 하여 봉호리(蓬湖里)라 불렀는데, 이는 마을 앞 논과 공동묘지 앞 논밭에 농사를 짓기 위해 겨울이면
천수(天水)를 많이 담아 이것이 봄철까지 만수(滿水)가 되어 마치 호수를 이루었으므로 용수구미(龍沼峴)로 구전되어 오다가 봉호(蓬湖)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 봉호 바깥쪽 들에 있는 마을을 외평리(外坪里)라고 불렀는데 봉호리(蓬湖里)와 외평(外坪), 자산(慈山)을 합해서 봉평리(蓬坪里)라고 했다. 들 이름(坪名)을 대평(大坪)이라고 했다. 옛날 오현면(梧峴面)이었을 때 산세를 좌우한 봉평리와 화포리를 합쳐서 오현리(梧峴里)라 불러오다 그 후 지형 상 연유로 두 마을의 앞과 뒤의 고개(峴)를 사이에 두고 각각 분리했으며, 1916년 서편에 있는 밧두루마을(外坪里)과 합해서 봉평리(蓬坪里)라 명명했다. 최근 국도 7호선 도로 확장으로 마을이 양분되었다. - 고성문화원
거진읍 원당리~송정리를 잇는 길을 따라 송정리로 내려와 건봉사로와 만난다. 평화의 길은 건봉사로 오른쪽으로 서진한다.
건봉사로에서 동쪽 거진읍 봉평리 방향을 바라본다.
송강리 방향의 건봉사로를 따라 거진읍 송정리 송정마을을 통과한다.
건봉사로를 따라 송정리복지회관 앞을 지나간다.
건봉사로를 따라 송정교회 출입구 앞을 지나간다.
송정보건진료소 앞 버스정류소를 지나 송정보건진료소로 이어간다.
거진읍 송정리 송정보건진료소 앞을 지나 송정교로 이어간다.
송정교 동단 남쪽은 水木花송정마을 오토캠핑장 가는 길, 송정교 동단 북쪽은 水木花송정마을 수목펜션 가는 길이다.
건봉사를 따라 거진읍 송정리 자산천 위의 송정교를 건넌다. 중앙 뒤쪽에 건봉사가 자리한 건봉산이 있을 것이다.
자산천은 거진읍 냉천리 건봉산에서 발원하여 송강저수지와 송강리를 거쳐 산북천을 합수하고, 송정리를 굽이돌아 흐른다.
자산천은 송정리를 굽이돌아 봉평리와 자산리를 거쳐, 거진리와 송포리를 잇는 거진1교 아래에서 동해로 유입된다.
송정교 서단에서 왼쪽길은 거진읍 석문리로 이어지는 길이고, 평화의 길은 오른쪽 건봉사로를 따라 송강리 방향으로 이어간다.
벚나무 가로수의 건봉사로를 따라 거진읍 송정리 들녘을 지나간다.
거진읍 송정리 들녘 뒤 자산천 건너편 산 너머는 거진읍 원당리 지역이다.
건봉사로 서남쪽의 송정리 들녘이 서북쪽의 송강리 들녘으로 이어지며 위쪽 송강리 지역에 축사들이 있다.
건봉사로는 서북쪽으로 이어지다가 서남쪽으로 돌아나간다. 그 돌아가는 곳에서부터 거진읍 송강리 지역이다.
거진읍 송정리에서 송강리로 넘어와 자산천과 건너편 거진읍 용하리 들녘을 살핀다. 중앙 뒤에 고성산이 가늠된다.
용하리(龍下里)는 동쪽으로 송정리가 있으며, 서쪽으로 수동면, 남쪽으로 송강리가 위치하고, 북쪽으로 산북리가 자리 잡고 있다. 노인산(老人山) 밑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하산북리(下山北里) 또는 아랫산두라고 하였다. 마을 뒤에 용의 형상을 닮은 암산이 있으며 마을 앞에는 늪(湖)이 있었으므로 옛적부터 용호촌(龍湖村)이라 불러왔는데 1916년 8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하산북리(下山北里)와 합하여 용하리(龍下里)라 부르게 되었다.『조선지형도』에는 하산두(下山頭)로 기록되어 있다.『간성군읍지』와『관동지』에는 용호리(龍湖里)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 토기를 만드는 토기점(土器店)이 일제강점기 말부터 1973년까지 있었다. - 고성문화원
건봉사로를 따라 거진읍 송강리 들녘을 가로지른다.
건봉사로는 송강교를 건너 송강마을로 이어간다.
송강교 동단 입구 남쪽에 송강리 표석과 2001 친환경시범마을 표석이 각각 세워져 있다.
자산천은 송강리 들녘을 굽이돌아 송강교 아래로 흘러내린다.
자산천은 송강교 아래를 흘러 바로 아래쪽에서 용하리 지역을 흘러온 산북천을 합수하여 송정리로 흘러간다.
건봉사로의 송강리 버스정류소 아래의 이정목에서 평화의 길은 왼쪽 자산천 둑방길로 이어간다. 이곳에서 DMZ 평화의 길 33코스 역방향 탐방을 어쩔 수 없이 마친다.
트레킹 안내버스를 타고 DMZ 평화의 길 33코스 출발지인 건봉사 삼거리로 올라갔다.
DMZ 평화의 길 32코스 종점이며 33코스 시점인 거진읍 냉천리 건봉사 삼거리에 평화의 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DMZ 평화의 길 고성 구간과 32코스 안내판이 각각 세워져 있으며, 고성 구간 안내판 아래에 33코스 방문인증 QR코드가 붙어 있다.
건봉사로는 탑고개를 넘어 간성읍 탑현리 방향으로 이어진다. DMZ 평화의 길 33코스 역방향 탐방을 이렇게 마친다.
2025년 10월 28일 DMZ 평화의 길 32코스를 홀로 탐방하였다. 32코스 탐방을 마치고 33코스의 송강쉼터를 찾아갔다.
거진읍 냉천리 건봉사 삼거리의 DMZ 평화의 길 안내판 앞에서 건봉사 가는 길 방향을 살폈다.
건봉사(乾鳳寺)사는 520년(법흥왕 7) 아도(阿道)가 창건하고 원각사라 하였으며, 533년(법흥왕20) 부속암자인 보림암(普琳庵)과 반야암(般若庵)을 창건하였다. 758년(경덕왕 17) 발징(發徵)이 중건하고 정신(貞信)·양순(良順) 등과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우리 나라 만일회의 효시이다. 신라 말에 도선(道詵)이 중수한 뒤 절의 서쪽에 봉형(鳳形)의 돌이 있다고 하여 서봉사(西鳳寺)라 하였으며, 1358년(공민왕 7) 나옹(懶翁)이 중건하고 건봉사라 하였다. 1464년(세조 10) 세조가 이 절로 행차하여 자신의 원당(願堂)으로 삼은 뒤 어실각(御室閣)을 짓게 하고 전답을 내렸으며, 친필로 동참문을 써서 하사하였다. 1878년 4월 3일 산불이 일어나서 건물 3,183칸이 전소되었는데, 1879년 대웅전·어실각·사성전·명부전·범종각·향로전·보안원·낙서암·백화암·청련암을 중건하였다. 현재 고성 건봉사지는 1982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6·25전쟁 때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불이문은 1984년 강원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 고성문화원
거진읍 냉천리 건봉사 삼거리 DMZ 평화의 길 33코스 시점에서 승용차를 타고 송강리 방향으로 건봉사로를 따라간다.
냉천리(冷泉里)는 동쪽에는 석문리, 남쪽에는 간성읍 탑현리, 서쪽에 수동면 고진동계곡, 북쪽에 송강리와 용하리가 있다. 대찰인 건봉사(乾鳳寺)가 있는 마을로써 찬 샘이 있으므로 찬샘골 또는 냉천동(冷泉洞)이라 하였고, 관모봉(冠帽峰)과 건봉령(乾鳳嶺)에서 신비롭게 흐르는 맑고 찬 샘물이 사찰과 마을 중심을 흐르므로 냉천리(冷泉里)라고 불렀다.『간성군읍지』,『관동지』,『조선지지자료』에는 지형이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고 하여 장항리(獐項里) 마을이 있었는데 송강리와 연접하고 있었다. 1916년 8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장항리와 냉천리가 병합하여 냉천리(冷泉里)로 개칭되었고 오대면(거진면)에 편입되었다. 산은 청상봉(靑裳峰, 치마산), 감로봉(甘露峰)으로, 고개 이름은 건봉령(乾鳳嶺)으로 각각 기록하고 있다. 1989년도 민통선이 북상함에 따라 건봉사에 승려들의 거주가 시작됐고, 현재는 활발한 건봉사 복원사업으로 점차 옛날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지만 냉천골 사하촌(寺下村)은 송강리저수지(현 거진저수지) 축조로 인해 많은 지역이 물속에 잠겼다. - 고성문화원
송강저수지 방향으로 건봉사로를 따라간다.
건봉사로의 송강저수지1교를 건넌다.
송강저수지1교를 건너며 거진읍 냉천리 송강저수지를 살핀다. 왼쪽 뒤에 노인산이 솟아 있다.
송강저수지는 1971년 축조를 시작하여 1975년 12월 31일 준공되었고, 제방길이 138m, 제방높이 31.1m, 저수량 2,672천㎥, 유역면적 1,250㏊이며, 송정, 송강, 송포, 영북 지역 340㏊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 고성문화원
민통선 지역을 나와 내려오면 건봉권역 다목적교류센터가 있다. 이 교류센터는 거진읍 송강리 622번지(313.6㎡)에 위치하며 주민복지활동과 축제행사장, 정보화센터, 농산물 판매장, 짚공예 체험장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거진읍 송강리 송강쉼터 위쪽 자산천의 송강1교 앞에서 민통선 앞까지 둑방길로 이어지는 33코스 탐방로를 올려본다. 왼쪽 뒤에 건봉산을 어림하는데, 그 아래에 건봉사가 있을 것이다.
해발 908m 건봉산(乾鳳山)은 고성군 중부의 거진읍과 수동면 경계에 위치한다. 향로봉과 함께 천연기념물 제247호 ‘향로봉·건봉산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지리지와 고지도에는 건봉산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고 건봉사(乾鳳寺)에 대한 내용만 수록되어 있다.『여지도서』의 간성군에는 건봉사의 뒷산이 금강산이며 군의 서쪽 20리에 위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해동지도』를 비롯한 고지도에서는 진부령(陳富嶺) 동쪽에 건봉사가 묘사되어 있다.『조선지지자료』에서는 간성군(杆城郡) 오현면(梧峴面)에 위치한 건봉령(乾鳳嶺)과 건봉사가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 볼 때 건봉사의 이름을 따서 이 산을 건봉산이라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건봉(乾鳳)은 건봉사를 창건한 아도화상이 “건방(乾方)에 고개가 있고 큰 돌이 봉황(鳳凰)이 나는 모양과도 같다.”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건봉사는 오늘날에도 ‘금강산 건봉사’로 불리며 고성8경(건봉사·천학정·화진포·청간정·울산바위·통일전망대·송지호·마산봉)의 제1경으로 손꼽힌다. 520년(신라 법흥왕 7)에 창건된 절로 창건 당시 원각사(圓覺寺)라 불렸으나 1358년(고려 공민왕 7) 건봉사라 개칭되었다. 사명대사가 석가모니의 치아 사리를 가져와 봉안하는 등 조선시대 4대 사찰로 꼽혔으나 한국전쟁 당시 거의 소실되어 최근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다. 능파교(보물 제1336호), 불이문(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5호), 옛건봉사터(강원도기념물 제51호) 등이 있다. - 고성문화원
거진읍 송강리 들녘 건너 중앙에 방금 지나온 건봉권역 다목적교류센터가 보인다. 중앙 오른쪽 맨 뒤의 작은까치봉을 어림한다.
오른쪽 스피커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 송강마을 주민대피소이며 송강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왼쪽 뒤에 노인산이 솟아 있다.
송강마을 주민대피소 건물 벽에 코리아둘레길 송강쉼터 벽화가 장식되어 있고, 그 옆에 DMZ 평화의 길 송강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오른쪽 뒤 거진읍 산북리 지역에 노인산이 솟아 있다.
평화의 길 33코스는 자산천 둑방길을 따라가다가 건봉사로로 나간다. 왼쪽 창고 건물 뒤에 송강리마을회관이 있다.
자산천 둑방길에서 송강마을 주민대피소와 송강쉼터를 뒤돌아본다. 오른쪽 맨 뒤의 작은까치봉을 어림한다.
송강쉼터 남쪽으로 자산천이 흐르고 송강1교가 자산천 위를 가로지른다. 맨 뒤의 건봉산 능선이 시원하다.
자산천 둑방 북쪽에 송강리마을회관이 자리한다.
자산천 남쪽에 태양광발전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거진읍 송강리 송강마을이 건봉산 산줄기 동남쪽에 평화로이 자리한다.
송강리(松江里)는 동쪽으로 송정리, 서쪽으로 수동면, 남쪽으로 석문리, 북쪽으로 용하리가 각각 위치하고 있다. 마을 앞에 큰 내가 흐르고 소나무가 무성하다고 하여 송강리(松江里)라고 하였다. 학봉산 아래 있는 대대골(大谷村)과 고래(古來) 동구(東口)섬이라 부르던 몽강촌(夢江村)을 합하여 상거리(上巨里)라 불러오다가 1916년 8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되롱골과 노루목을 병합하여 송강리(松江里)라고 했다. 수복 당시 이 마을이 뒤늦게 입주가 허용되어 옛 송강초등학교는 송정리로 옮겨졌다. 마을 남쪽에 해당하는 산에는 송림이 우거져 있었으나 1986년 대형 산불로 인해 많은 수목이 소실되었다.『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산 이름은 오시동산(烏時洞山), 골짜기 이름은 문리골(文利谷), 교룡골(蛟龍谷) 또는 회룡동(回龍洞), 보(洑) 이름은 송강보(松江洑)라고 기록되어 있다. - 고성문화원
자산천 둑방길을 따라 건봉사로의 송강리 버스정류소 앞으로 이어간다.
자산천 둑방길을 따라 건봉사로로 나와서 걸어온 자산천 둑방길을 뒤돌아본다.
건봉사로의 송강리 버스정류소 아래에 자산천 둑방길 출입구가 있으며, 평화의 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평화의 길은 자산천 위의 송강교를 건너 건봉사로를 따라간다. 자산천은 거탄천(巨呑川)에서 자산천(慈山川)으로 개명되었다.
자산천은 맨 왼쪽 거진읍 용하리(龍下里)의 산 모퉁이를 흘러온 산북천을 바로 아래에서 합수하여 송정리 지역으로 흘러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