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 남부 해안, 더르미의 바다는 유난히 깊고 푸르다.
이오니아 해를 마주한 절벽 위에 서면, 눈앞에는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지고 발아래에는 작은 반달 모양의 해변이 조용히 숨을 쉰다. 그런데 그 풍경 속에는 조금 낯선 형체가 하나씩 섞여 있다. 바위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둥근 콘크리트 돔. 바로 공산주의 시대의 흔적, 벙커들이다.
한때 이 땅은 외부 세계를 두려워하며 스스로를 가두던 나라였다.
엔베르 호자 정권 아래에서 알바니아 전역에는 수십만 개의 벙커가 지어졌다. 산 위에도, 들판에도, 마을 골목에도, 그리고 바닷가 절벽 위에도. 적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만들어진 콘크리트의 껍질들이었다.
하지만 세월은 언제나 방향을 바꾼다.
총구를 내밀던 작은 구멍은 이제 창이 되었고, 차가운 콘크리트 안에는 햇살이 스며든다. 철문 대신 유리문이 달리고, 군인의 침상 대신 하얀 침대와 부드러운 소파가 놓였다. 바다를 감시하던 벙커는 이제 바다를 감상하는 집이 되었다.
더르미 해안의 어느 절벽 위,
둥근 벙커를 개조한 작은 빌라에서 하루를 보내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과거에는 이곳에서 전쟁을 상상했을 사람들이, 지금은 같은 자리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신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짠 냄새를 실어오겠지만, 그 바람을 맞는 사람들의 마음은 완전히 달라졌다.
밤이 되면,
콘크리트 벽에 부딪혀 부드럽게 울리는 파도 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전쟁을 대비하던 구조물 속에서, 이제는 가장 평화로운 잠을 잔다.
어쩌면 여행이란 것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상처로 남아 있던 시간 위에 새로운 풍경을 덧입히는 일.
두려움의 흔적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일.
그래서 알바니아는 더 매력적이다.
벙커가 빌라가 된 나라.
과거와 현재가 같은 바다를 바라보며 공존하는 곳.
그곳이 바로 더르미 해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