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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떠날 준비
'오징어 낚시'의 추억이 밴 피니스떼레에서 돌아온 뒤, 인야의 생활 시계는 온통 한국으로 맞춰졌다.
바르셀로나에서의 4년.
그 긴 시간을 한두 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었으나, 몸은 이미 떠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공립 언어 학교의 수업은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간 맺어온 촘촘한 인연들을 하나하나 갈무리하는 일은 고달픈 숙제였다.
하지만 돌아갈 준비는 몸보다 마음이 먼저 앓는 법이었다.
밤이면 식은땀을 흘리며 자다 깨기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인야는 어둠 속에서 지긋지긋한 통증과 싸우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언제쯤 이 속병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난로를 켜야 할 만큼 서늘해진 거실에서 인야는 한국에서 가져와 심었던 마당의 코스모스를 바라보았다. 바르셀로나의 척박한 땅에서 4년째 씨를 받아 보존해온 그 가냘픈 꽃들이야말로 인야가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한국의 가을'이었다.
'우리 어머니... 이제 기력이 예전만 못하시다는데......'
형수님과의 통화 후 인야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속히 돌아가 어머니를 편하게 모실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도하면서도, 막상 돌아가서 방 한 칸 얻을 돈조차 없는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 다시금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언어학교의 최상위 과정인 E코스 수업은, 예상대로 첫날부터 인야를 압도했다.
4년을 살았어도 스페인어의 장벽은 여전히 높았고, 수업이 끝나면 그는 탈진한 채 G와 함께 했다.
휴가 때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대한 막막함을 나누기에 두 사람의 시간은 늘 부족했다.
쾌청한 가을날, 바다가 푸르다 못해 짙은 감색을 띠고 유혹했지만 인야는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휴가에서 막 돌아온 처지에 또 바다를 찾는 건 스스로에게도 염치없는 짓 같아 꾹 참아두기로 한 것이다.
해가 짧아지니 집은 일찍 어두워졌고, 그는 난로 곁에서 TV를 보다 스르르 잠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현실이 무거울수록 인야는 작업실로 숨어들었다.
120호의 대작 유화에 손을 댔다. '화가와 그림 앞에 선 모델들-II'를 시작했다.
하얀 바탕에 사람의 형태를 간단한 외곽선으로만 표현한 이 그림은, 이틀 만에 폭풍처럼 끝났다.
그림 속에서 안경을 쓴 채 모델들을 응시하는 화가는 바로 인야 자신이었다.
스페인을 떠나게 될 무렵에야 비로소 인야의 그림에 어떤 변화가 찾아오고 있었다.
결국 논문 문제로 지도 여교수와 얘길 했는데, 보통 깐깐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 그 여교수의 눈치를 볼 일도 없었다.
다만, 아직은 학교 과정이 완전히 끝난 상태가 아니라서, 그리고 지난 과제물 상황도 있고 해서 알아보니... 통과만 돼도 좋았을 성적은, ‘아주 우수하다’(Sobre saliente)였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크게 기뻐할 이유도 없었지만, 뭔가 의외라는 생각에... 차라리 머쓱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날 밤, 전에 팔았던 ‘어느 화가의 전시장 방문’의 잔금을 받았다.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기에 그동안(휴가 뒤) 쪼들렸던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
결국, 한국에 돌아갈 준비와 비행기표 값 등의 걱정거리가 없어진 셈이었다.
그동안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린다는 핑계로 매달려온 ‘논문 번역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갈리시아로 휴가를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결과가 불분명해 마음을 졸였으나, 인야가 돌아와 확인해보니... 모든 과제물이 통과되어 필요한 학점을 모두 이수한 상태였다.
이로써 이곳 대학교의 ‘박사 과정 수료’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셈이었다.
비록 그것이 최종 학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과정을 마침과 동시에 정식으로 ‘박사 논문’을 쓸 자격을 얻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체류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학교생활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스페인에 머물며 적을 두었던 시간의 열매는 딴 셈이었다.
만약 인야가 학업이 목적인 ‘유학생’이었다면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논문 준비의 시작이겠지만, 애초에 유학이 목표가 아니었던 그에게는... 이제 더 이상 이곳에 머물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구실이 사라졌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논문을 쓰려면 적어도 몇 년은 공부에만 매달려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그림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어머니를 위한 일이라 한들, 내가 어떻게 내 인생을 통째로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연로하신 어머니께서는 그저 어서 돌아오라고만 재촉하셨다.
하기 싫은 공부를 과정 수료까지 마친 것만으로도 어머니를 위해 할 만큼은 했다는 게 인야의 생각이었다.
여기서 학위까지 따겠다고 몇 년을 더 지체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인야가 맞닥뜨린 정직한 갈등이었다.
게다가 설령 어머니를 설득해 스페인 생활을 연장한다 해도, 만약 그사이에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인야 자신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돌이킬 수 없는 불효이자 과오가 될 것이 뻔했다.
결국 인야는 미련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굳혔던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무엇 하나 확실히 매듭짓지 못한 채 귀국길에 오르는 모양새라, 스스로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처럼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야는 지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결정 역시 어머니 때문이었다.
기력이 쇠한 어머니가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시겠는가. 이제는 자신의 길만 고집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 인야의 생각이었다.
스페인에서의 삶도 ‘과정 수료’라는 최소한의 마무리는 지었으니, 일단 돌아가 어머니 곁을 지키며 안심시켜 드리는 게 도리로 여졌고, 그런 뒤 어머니를 잘 설득하여 다시금 어디론가 떠나보리라는 마음인데... 그 ‘어디’가 바로 미국이었다.
왜 하필 또 미국인가라는 물음이 생길 수도 있겠다.
분명히 해두자면, 인야는 스페인이 싫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이곳에 더 머물며 전업 화가로서의 삶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4년의 스페인 생활은 그에게 역설적으로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를 가르쳐준 것으로,
이곳에 머무는 것 자체가 인생의 최종 목표가 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4년이 '정착'이 아닌 '떠도는 삶의 과정'이었다는 자각도 들었다.
더 넓은 세상을 두루 살펴보고 싶다는 갈망이 그를 자극했고, 더 큰 무대로 자리를 옮기고 싶었던 것이다.
세상이 어디 스페인과 미국뿐이겠는가. 인야가 모르는 세상은 너무나 많고, 갈 곳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스페인에서의 삶은 그저 하나의 과정으로 남겨두고, 이제는... 다음역을 향해 나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이상한 놈이지. 마흔이 다 되도록 정착할 생각은커녕, 끊임없이 떠돌 궁리만 하고 있으니......’
그 결심을 굳히듯, 인야는 마지막 행정적 단절을 시작했다.
위 ‘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 다행히 ‘십이지장 궤양’일 뿐 암은 아니라는 진단이 나왔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그동안 자신의 얇은 호주머니를 내내 축내기만 했던 ‘의료보험’ 혜택을 마지막으로 누린 셈이기도 했다.
그동안, 자신에게 혹시나 다른 병(암)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에 떨기도 했었는데, 마음도 가벼워진 것이다.
다음 날, 의료보험을 해약했다.
11월 말까지는 효력이 있다고 했지만, 인야는 은행 통장도 며칠 내로 해약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바르셀로나 생활을 정리하고 있었다.
뭔가 아쉬움이 남지만, 한국에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빨리 가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이제는 짐도 한국으로 보내야 하는데,
포장하는 일도 그랬지만... 해운으로 부칠 선박회사까지 운반하는 일도, 또 그 비용도 상당히 비쌀 것이었다.
뭐든, 쉽게 되는 게 없었다.
포도잎이 누렇게 물들어 떨어지고, 코스모스도 이젠 씨만 남아 더욱 을씨년스럽게 보이는 시절,
누리아가 급한 얘기가 있다며 인야에게 나오라고 했다.
그래서 갔더니 며칠 뒤 침방 S씨와 한국의 ‘침술협회 회의’에 참석차 한국에 간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인야의 마음속에도 한국으로 달려가고 싶은 간절함이 솟구쳤다.
'아, 한국은 이제 추수가 끝나고 늦가을이 저물어갈 무렵이겠지... 지금쯤 어머니는 내년 초 돌아올 아들에게 먹이려고 더욱 정성스레 김장 채소를 가꾸고 계실 텐데. 우리 어머닌, 내가 밭을 파거나 채소를 뽑아드리거나 어머니 옆에 앉아 푸성귀를 다듬어주는 걸 몹시 좋아하시는데...... 그러면 어머닌, 그동안에 있었던 집안일 등등을 나에게 다 풀어놓곤 하시는데...... 그런 어머니께 맞장구를 쳐주는 게 내 역할일지도 모르는데......'
그러던 하루 인야가 아침에 일찍 나가 시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양손에 무거운 비닐봉지를 들고 지하철을 탔는데,
순간적으로 일이 벌어졌다.
한 정거장에 기차가 멈추었는데, 언뜻 인야의 눈엔 웬 노파 한 분이 내리기 위해 지하철 손잡이를 돌리고 있었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인야는 뭔가 모를 불안감에 그 노파와 상황을 주시했는데,
그 분은 다른 문으로 뛰다시피 몸을 움직였고, 그 순간 지하철이 발차 신호를 울리며 열려있던 문이 닫히는 중이었는데...
다행히 그 출입문으로 방금 뛰어 들어왔던 노신사 한 분이 그 노파를 부축할 수 있었고, 이제 지하철은 달리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다음 역까지 가는 사이에 그 노신사는 그 노파와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가,
그 다음 역에서 그 노파는 내렸고,
인야는 어쩐지 남의 일 같지만은 않아서 그럼에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데,
인야가 내릴 역이 되어 그 문에 가서 보니, 그 노파는 손잡이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무리 열려고 해도 문이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순간 인야는,
“어머니!” 하고 속으로 부르짖고 있었다.
누구라도 노인네라면, 그런 상황에서라면 그런 실수를 저지를 수 있을 것이었기에... 자신의 어머니가 떠올랐던 것이다.
'아, 우리 어머니는 내가 보살펴 드려야 하는데......'
바르셀로나를 떠날 채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인야는 ‘편지’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가슴 한구석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설렘인 동시에 지독한 권태였고, 그리움인 동시에 도망치고 싶은 부채감이었다. 지난 4년, 이 낯선 이국땅에서 그를 지탱했던 것도 편지였고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것도 결국은 그 얇은 종이 뭉치들이었다.
따지고 보면 인야의 바르셀로나 시절은 시작부터 지독한 ‘불협화음’이었다.
새로운 삶을 찾겠다며 한국의 모든 끈을 훌훌 털고 도망치듯 떠나온 그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인야는 바르셀로나에 주소를 갖자마자, 아니 서울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한국을 향해 끊임없이 편지를 써댔다. 현지 주소가 나오기 무섭게 밤을 새워가며 지인들에게 편지 한 무더기를 써 부치는 자신을 보며,
'누군가는 "그럴 거면 뭐 하러 떠났느냐"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염치가 없어 겸연쩍은 웃음이 났지만, 그만큼 인야에게 편지는 절박한 생존의 줄타기였다.
그 시절 인야의 일과는 늘 우편함에서 시작되어 우편함에서 끝났다.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은 보름도 긴 법인데, 그는 며칠을 참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스스로의 우매함을 자책하곤 했다.
그것은 단순한 외로움만은 아니었다. 편지는 쓰면 쓸수록 기다림이 가중되는 ‘애물단지’였고, 가만히 놔두면 나을 상처를 굳이 건드려 덧나게 하는 ‘긁어 부스럼’이었다.
답장이 오지 않으면 그리움은 어느새 원망과 미움으로 변질되었고, 혼자 삐치고 서운해하다가도 어느 순간엔 성인군자라도 된 듯 그들을 용서하며 다시 펜을 드는 변덕을 부렸다.
그야말로 편지에 미쳐 ‘혼자 찧고 까불었던’ 세월, 사람에 굶주린 자가 탐닉한 마약 같은 중독의 시간이었다.
인야는 그동안 죽 생각해 왔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게 된다면,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내가 여기에 살면서 신세를 진 몇몇 중요한 사람들에게만이라도... 뭔가 마음의 선물을 해야만 한다.’
물론, 은혜만 받고 훌쩍 떠날 순 없다는 본심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뭐가 좋을까?’를 당연히 생각하게 되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 같은 사람이 그들에게 해 줄 선물로는 ‘그림’이 제일 좋을 수도 있고 또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란 결론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인야가 그려왔던 그림들 중 하나를 뽑아서 주고 갈 수도 있겠지만(그런 사람도 더러 있다.), 그것보다는 뭔가 더 깊은 의미를 찾고 싶은 생각이 더해져,
‘아주 중요한 몇 사람만큼은 바로 그 사람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결론도 내리게 되었다.
물론 인야가 4년을 살면서 그렇게 신세를 진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만, 그들 중 아랫집의 ‘호아낀’씨, 그리고 ‘깐 까라예우의 다섯 친구들’ 중에서도 ‘루이스(Luis)’와 ‘라울(Raul)’ 정도에게만은 그렇게 해야만 할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인데,
예를 들어 '루이스'의 같은 경우에도,
인야가 스페인에 살아오면서 루이스를 볼 때마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천사'가 있다면, 그게 바로 ‘루이스’구나!’ 할 정도로, 그는 정말 너무 좋은 청년이었다. 물론 그는 천성이 착하기도 했지만 인야에겐 두루두루 '해결사' 역할을 해준 사람이기도 해서, 오죽했으면...
‘만약 나에게 여동생이 있다면, 그에게 소개해주고 싶다.’ 할 정도로.
문제는, 인야 자신이 ‘초상화’를 즐겨 그리는 화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도 될까?’ 하거나, ‘내가 초상화를 그려 주면 그들이 좋아할까?’ 하는 자기 스스로의 의구심이거나, 솔직히 말하면 그림을 그릴 자신감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한국으로 보낼 짐까지 싸는 마당인데, 더 망설일 시간적인 여유도 없을뿐더러... 이렇게 미적댔다가는 하지도 못하고 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결국 용기를 내 일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여기서도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아랫집만 해도 ‘호아낀’의 초상을 그릴 거면, ‘아말리아’도 그려줘야 할 것이었고,
‘루이스’와 ‘라울’ 초상만 그리면, 그밖의 다른 청년들이(‘후안 마’ ‘다빗’ ‘크리스티안’) 섭섭해 할 것이어서... 그렇다고 그들 모두의 초상화를 그려주기에는 시간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마음이 내키는 것만도 아니어서,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일단 뜻은 굳혔기 때문에, 인야는 그들 각자에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자신의 뜻을 전하면서... 입단속을 시켜놓기도 했다. 특히 ‘루이스’에게.
그도 그럴 것이, 아랫집엔 인야가 이미 감사의 의미로 다른 그림 몇 점을 선물로 줘왔기 때문에, 아말리아는 그걸로 때우기로 했고, 호아낀 초상화만으로도 괜찮을 거라는 판단이 섰고,
동네 청년들 모두에게는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루이스에게 일단 비밀로 하라는 부탁을 해두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초상화 그리기가 시작됐다.
그러면서 인야는 한 번 호아낀을 직접 모델로 앉혀놓고 드로잉을 한 다음, 나머지는 사진을 이용한 초상화를 그렸고, ‘루이스’는 늘 바쁜 사람이라... 모델을 세울 수가 없어서 그냥 사진만 가지고 그리기로 했다.
‘라울’의 경우는, 그에게 사전 통보 없이... 인야 자신이 알아서, 사진을 참고로 초상 드로잉으로부터 시작했는데......
한국으로 보낼 짐의 포장을 끝내놓긴 했는데, 그 보내는 일도 문제가 많았다.
일단 그 집을 우체국에 실어다 주는 일은 아들 호아낀이 도와주기로 했는데, 일단 짐을 부치고 나면 한 가지 일은 또 끝나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우체국에 갔다가 또 일이 터졌다.
다섯 개 중 두 개의 상자가 500, 400 그램의 무게가 초과되어,
어떤 다른 것은 20 킬로 중 5킬로나 모자란 것도 있었지만 그건 통과된 반면 초과된 건 보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세 개만 부치고 두 개는 다시 집으로 가져올 수밖에 없는 불상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짐을 다시 꾸려 오후엔 아버지 호아낀이 우체국에 동반했는데, 우체국은 이미 일을 끝내고(4시경) 청소하는 부인들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놈의 나라는 뭐든 시민 편이 아니고 기업체나 관공서 위주다. 뭔가 일을 하려다 보면 제대로 쉽게 되는 적이 거의 없이, 항상 뭔가 장애물이 존재해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게 한다. 게다가, 자기들이 잘못했을 땐 웃음을 지으며 사람 일이란 실수가 있는 법이라며 관대한 것처럼 넘기면서, 소비자나 시민 개인이 잘못하면 냉정하기 이를 데 없는 행정이 저질러지곤 하니......'
12월이 되었고, 인야가 한국으로 돌아가려니, 그동안 4년을 살면서 알게 되었던 바르셀로나 현지 사람들과의 이별도 큰 문제였다. 물론 인야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과 이런저런 작별의 절차를 밟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돌이켜 보면 아쉬움도 크고 그리움도 밀려오곤 했다.
그 무렵, 인야는 자신의 머릿속이, 오직 바쁘다는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국의 형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한국에 돌아갈 비행기표와 유레일패스를 사 보내달라는 부탁을 했다.
비행기 표는 구정 며칠 전에 도착할 수 있는 걸로 사달라고 했고, 어차피 한국에서 살 수밖에 없는 유레일패스는 여기를 떠나기 전에 지난번 P가 왔을 때 함께 가지 못했던 ‘그리스’ 쪽 여행을 하고 떠날 생각이어서, '열흘치 사용권'으로 부탁했다.
그러니까, 이제 어느 정도 한국으로 돌아갈 날짜까지가 잡힌 상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산 동네 청년들의 초대로(인야가 떠난다는 이유로) 여기 ‘띠비다보(Tibidabo: 바르셀로나 외곽에 있는 산)’에 가서 유락시설물을 타고 놀다 저녁까지 먹고 돌아왔다.
인야는 개인적으로 그런 곳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기왕에 주어진 기회라... 그들과 함께 난생 처음으로 이런저런 탈 것들을 타고 색다른 즐거움도 느껴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몇 년 동안을 그저 있는지 없는지 관심조차 없이 지냈던, 그 산꼭대기에 있는 성당 종루(종루가 아니고 예수상)까지 올라 보았다.
물론 그러면서는 바르셀로나의 야경을 보며 속으로,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로구나......’하고도 있었다.
어느 날은 G와 해질 무렵까지 함께 있었다.
몸이 안 좋았던 그녀가 측은해 보였고, 그래서 더욱 가까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인야는, 스스로 독해져야 한다고 다짐을 했는데,
정을 떼는 일 역시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 안타깝기만 했다.
'어쩌다 그녀를 알아가지고. 왜, 다른 남자와 사는 그녀를 좋아해 가지곤......'
이제 인야는 G와도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시내에 내려가려고 인야가 ‘사리아’에서 버스에 오르는데, 푸근한 미소를 짓던 버스 운전기사가,
“듣기론, 이제 곧 여기를 떠난다면서요?” 하고 인야에게 묻는 것이었다.
“예?” 하고 놀랐던 인야는, “아, 예... 한, 두 달쯤 뒤에요......” 하고 대답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스페인이 싫은가요?” 하고 기사가 다시 묻는 거 아닌가.
그 말 역시 의외여서, 그렇지만 우습기도 해서 인야는 웃으며,
“그게 아니라, 이제 떠날 때가 되어서요.” 하고 대답해 주었다.
“여기서 좋은 아가씨를 만나 결혼해서 살아도 되잖아요?”
“글쎄요. 근데, 저는 한국의 늙으신 어머니께서 저를 기다리고 계셔서요......”
“아, 그런가요?”
“근데, 어떻게 제가 떠난다는 걸 아셨나요?”
“엊그제, 그 마을 노인들이 버스 안에서 그런 얘길 나누기에......” 하며 인야를 바라보는 얼굴이 너무 선해 보였다.
인야는 역시 웃으며 고개만 끄덕이며 뒤쪽의 좌석으로 걸어가면서도 묘한 감정의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아, 버스 기사마저도 저런 얘길 해주니... 고맙기도 하고 뭔가 아쉽기도 한 것 같고...... 여길 떠나기 막바지에, 저 기사에게도 뭔가 조그만 기념품이라도 하나 남겨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들, 끼리끼리 소문을 통해 동네 이웃들이 인야가 떠난다는 소식을 알고있는 듯했다.
그러는 중에도 아랫집 호아낀씨와 천사 같은 청년 루이스, 그리고 순박한 라울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은... 그에게 일종의 고해성사였다.
특히 루이스는 그에게 단순한 이웃 그 이상이었다. 어느 날 짐 부치는 일을 돕던 루이스가 불쑥 물었다.
“인야, 혹시 이 일을 하는데 돈이 필요하지 않아?”
“당연하지. 근데, 왜?”
“돈이 부족하면 내가 빌려줄까?”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랐던 인야가,
“루이스, 니 뜻은 고맙지만, 그럴 정도의 돈은 이미 마련됐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면서, 정말 고마운 마음으로 웃으며 말을 해주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얘기가 끝나고 그가 돌아가야 했는데 또,
“인야, 그 전에... ‘까나리아(Canarias)’ 제도의 ‘떼네리페(Tenerife)’에 가고 싶다고 했었지?” 하고 물었다.
“그랬지. 근데, 이제 늦었어. 거길 어떻게 가겠어. 한국에 돌아갈 정리하기도 바쁜데......” 하면서도, 인야는 그가 도대체 왜 그 얘기를 묻는지 의아했는데,
“사실은, 인야...” 하더니 조심스럽게, “내가 우리 은행 가까이에 있는 한 여행사에 알아봤는데, 거기 여행 특가 상품이 나왔는데, 3박 4일 일정으로 떼레리페에 가는 건데, 가지 않을 거야?” 하는 것이었다.
“왜?”
인야는 역시 뭔가 짚이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이상한 느낌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묻게 되었는데,
“인야, 내가.. 당신의 여기 스페인 생활을 마치고 돌아가는 기념으로 그 여행비용을 댈 테니, 떠나기 전에 한 번 갔다오지 않겠어?” 하는 것이었다.
“뭐라고?” 인야는 어안이 벙벙하다 못해 기가 막혀, “루이스! 도대체 너는 왜 그러는 건데? 왜, 맨날 나를 위해 뭔가를 해주려는 거냐고?” 하면서 다소 짜증스럽게 반응을 하자,
“아니, 인야... 당신이 거기에 아주 가고 싶어 했잖아. 그래서, 내가...”하는데도,
“루이스! 왜 나를 자꾸만 비참하게 만들려고 그래?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마!” 하면서 이번엔 목소리를 좀 높이자,
“너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인야.” 하더니, “내 초상화도 그려준다고 했잖아. 그래서...” 하는데, 그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인야는,
“야, 루이스! 그 초상화와 여행이 무슨 상관인데?” 하고 그를 역시 똑바로 바라보면서, “내가 여기 ‘깐 까라예우’에 4년을 사는 동안, 니가, 그리고 니네들이 나를 얼마나 도와줬는데, 그래서 나는 그게 너무 고마워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랍시고 그림을 그려주기로 하고 성의껏 준비 중인데, 그것도 값을 쳐준다는 거야?” 하고 목소리를 높이자,
“꼭, 그건 아닌데... 그래도 인야,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언제 그 ‘떼레리페’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겠어...... 그러니,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기에 다녀오면 좋잖아?” 하고 자기 뜻을 굽히지 않으려 했다.
“루이스! 자꾸만 그 얘기 하면 나, 화낸다! 왜, 나만 맨날 너한테 신세만 지게 하려는 건데? 나도 너한테 한 번 정도는, 좀 떳떳하게 뭔가를 해주고 싶어서 초상화를 그려준다고 했던 건데, 그것마저도 그렇게 나와 물물교환을 하자는 거야? 계산적으로? 그건 안 돼!”
“그게 아니고......”
“제발, 그 얘긴 다시 꺼내지도 마!” 하면서 인야는, “사실은 나는, 이 짐을 보내는 일을 끝낸 뒤...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리스’ 쪽으로 여행을 갈 거거든?” 하자,
“그래? 그럼, 돈은 충분한 거야?” 하기에,
“루이스, 니가 왜 그런 것까지 걱정하느냐고! 그러니, 이제 ‘여행 얘기’는 그만!” 하고 인야가 못을 박자,
루이스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를 바래다주느라 뒷문까지 올라가 문을 닫으면서 인야는,
“루이스, 정말 고마워... 너는 ‘살아있는 천사’야!” 하자,
“인야... ” 하고 뭐라 하려는데,
“루이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돌아가! 제발......” 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면서 자기 집 쪽으로 사라졌다.
사실, 인야가 아직은 그에게 보여주지 않았지만... 그의 초상화(유화 10호)도 거의 완성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초상화에 인야는 한 문구를 이미 써넣은 상태였다.
한글이었기 때문에 그(그들)는 이해를 못하겠지만, 인야는 어떻게든 자신의 마음을 그림에 담고 싶어(유치할지 몰라도) 고심 끝에...
‘이 세상의 좋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는 한글 문구를 초상화에 집어넣었던 것으로,
며칠 내로 그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넘기면서 그 말뜻도 전할 생각까지 해둔 상태였다.
그 다다음 날, 저녁 때 그 일로 바쁜 루이스가 왔고, 그림 운송문제 얘기를 했다.
그런 뒤, 인야는 슬쩍 그에게 초상화를 끝냈다는 말과 함께 그림을 꺼내왔다. 그러자,
“인야, 이게 나야?” 하고 깜짝 놀라면서도 감동한 모습이 역력했고, “이거, 고마워서 어떡한다지?” 했는데,
“루이스, 너는 나에게 수많은 고마운 일을 했었잖아! 그러니, 이것 갖고 너무 부담 느끼진 마!” 하면서, 초상화에 적어 넣었던 ‘이 세상의 좋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는 한글 문구의 뜻을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그림을 들고 가게 된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인야에게 뭔가 그에 따른 보상 얘기를 하려고 했지만,
“루이스, 이 초상화만큼은 아무 조건도 없고, 아무런 보답도 필요 없어!” 하고 그를 보냈다.
이로써 인야는 그에게 할 수 있는 자신의 최대 성의표시를 (일단)끝냈던 것이다.
특별히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인야는 이미 호아낀씨의 초상화는 완성을 했고... 루이스의 경우 보다 먼저, 초상화를 그 집에 넘긴 상태였다.
그렇지만 '라울'의 경우는, 시간도 부족해서... 드로잉 세 점을 한 것으로 대처하기로 했는데, 처음부터 본인에게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었기에... 여전히 라울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상당히 차가운 날이었다.
그런데 시내 어딜 가도 가게마다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놓은,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어 있었다.
크리스마스.
인야는 그저 뭔가 그 날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졌다.
성인이 된 이래, 자신에겐 그 날이 어떤 커다란 감동으로 와 닿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늘 그저 그런 기분으로 보내왔고, 여기 스페인에 와서도 그 기분은 마찬가지였다.
그렇듯, 크리스마스란 인야에겐 그저 남들의 잔치일 뿐이었다.
괜스레 어수선하기만 한......
이제 열흘 여의 남은 일을 마무리하면 인야는 그리스로 향할 것이었다.
그 길고 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야만 비로소 바르셀로나를 떠나는 비행기에 오를 수 있는데,
남은 유럽에서의 생활을 후회 없이 보내고 싶다는 간절함만이 가슴에 차 있었다.
그리스 여행을 앞두고 인야는 모처럼 홀로 시간을 보냈다. 집안 청소를 하고 종이에 그린 그림들을 정리하며 어수선한 마음을 다잡았다.
해가 짧아진 탓인지 낮은 화살처럼 지나가고, 인야는 ‘어둠’이라는 편리한 핑계 뒤에 숨어 할 일들을 다음 날로 미루곤 했다.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
인야는 93년의 궤적을 복기했다. 유럽을 여행했고, 그림에 작지 않은 변화가 있었으며... 고단했던 학교 과정도 마무리 지었다.
무사히 한 해를 마감하게 된 것을 감사하며, 그는 94년의 소망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어머니가 더욱 건강하시길. 그림이 잘 풀려 좋은 결실을 맺길. 그리고 가능하다면 좋은 사람 만나 결혼했으면......”
이웃들의 초대도 거절한 채 혼자 맞이한 밤, 인야는 무덤덤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며 조용히 새해를 기다렸다.
그리고 첫 날,
인간들이 그어놓은 ‘한 해’라는 틀 속에 '1994년'이라는 숫자가 새겨졌다.
하지만 인야에게 변한 것은 없었다.
바르셀로나 생활 5년 차에 접어들었다는 사실과 그만큼 늙었다는 자각뿐이었다.
전날의 거절이 미안해 아랫집 호아낀 씨의 초대를 받아 점심을 함께했다.
이제는 내 집처럼 편안해진 그들의 식탁을 떠나면, 이 따뜻한 정이 얼마나 그리워질까.
안달루시아의 뻬드로에게서 온 새해 인사 전화를 받으며 인야는 생각했다.
세상에는 참 좋은 사람들도 많다고.
다음 날,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며칠을 애타게 기다렸던 소식이었다.
“내일 비행기 표를 사서 바로 부치마.”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 그리고 앞으로 열흘 여 그의 마지막 유럽여행인 될 '유레일 패스 열흘 분' 티켓.
그리고 덴마크에서 G의 엽서가 도착했다.
성탄을 축하하는 그녀의 글씨를 보며 인야는 쓰게 웃었다.
‘너는 나를 잘 모른다.’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가득했지만, 인야는 무언가 해 먹을 의욕을 잃었다.
찬밥에 김 한 장을 싸서 입에 넣으며 그는 의무적으로 끼니를 때웠다.
다가올 그리스 여행의 무게와 떠나야 한다는 실감이 교차하는, 바르셀로나의 무거운 겨울밤이었다.
한국으로 그림을 보내는 일이 이들의 잦은 ‘피에스따(Fiesta: 축제)’ 때문에 지연되고 있었다.
그 일을 끝내고 다른 일 정리도 한 뒤에 그리스 여행을 가려했던 인야는, 그 일이 미뤄져서... 다른 일마저 갈피를 잡지 못한 상태로 어수선하게 연초를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서울에서 보냈을 비행기표와 유레일패스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 초조해지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마침내 ‘사리아’에 사는 '침묵의 집' 주인을 찾아가 자신의 떠남을 알리면서... 총 정리를 했다.
물론 그동안 자신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해 주었던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 유화 작품 한 점을 선물로 주는 일도 잊지 않았고.
그런데 봄이 시작하려는지, 여기도 ‘매화’인지, 그 비슷한 꽃이 벌써 피기 시작하고 있었다.
일요일엔 산동네 성당엘 갔다.
미사를 하기 위함은 아니었지만, 이제 며칠 내로 여행을 떠나게 되면... 인야 자신이 한국으로 떠날 때까지 일요일을 이 마을에서 보낼 일이 없을 터라,
신부님을 비롯한 마을의 이웃(특히 노인들)들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물론, 인야에게 ‘성당 작업실’을 사용하게 해 준 보답의 의미로 성당에 그림(액자까지 끼워둔) 한 점을 기증하면서.
조금 일찍 성당에 가서 미사 시작 전에 신부님께 그런 말씀을 드렸고, 미사를 끝내면서... 신부님이 이웃들에게 그 얘기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식으로.
이미 아는 이웃들도 있었지만 모두들 놀라기도 서운해 하기도 하면서...
30 여명의 이웃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공식적인 작별인사를 했던 것이다.
인야는 애써 웃음을 지으려고 했지만 콧등이 시큰해지기도 했던 자리였다.
아무튼 이 절차로 인야는 ‘깐 까라예우 마을’과 공식적인 작별도 한 셈이었다.
그런 뒤 인야는 또, 이미 약속이 잡혀 있던,
아르바이트하는 한국 아이들 세 집의 엄마들과의 송별 점심초대로, 오늘은 중국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올라왔다.
그러니까 최근까지 바쁜 와중에도 아르바이트에는 또 열심일 수밖에 없었는데,
돈이 있어야 여행을 갈 수 있기 때문이기는 했지만, 또 갈 때까지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치려는 의도이기도 했다. 더구나 그동안 1년 반 정도 그 아이들 부모들이 인야에게 너무 잘해준 보답의 의미도 있었기 때문에... 인야도 최선을 다했던 것으로,
오늘은 공식적인 송별회를 가졌던 것이고, 수업이 이틀 정도 남아 있어서 그 일도 곧 마무리를 지을 것이었다.
그런 뒤 다시 마을로 올라와, 성당 작업실에 있던 그림 큰 것들을 비닐 종이에 포장하여 우선 호아낀씨 집에 갖다 놓았고(나중에 트럭에 실으려면 굳이 '침묵의 집' 계단으로 가져 올라올 필요가 없어서),
저녁에는 집안에 있는 잡다한 물건들을 정리하느라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1월 10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하늘은 우중충한 빛깔로 인야를 맞이했다.
오랜 연말 방학 끝에 개학한 학원에 가느라(여행 갈 때까지 다니기로 했다.) 내려가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리아에서 버스를 탔는데, 비록 얼마 안 되는 거리였지만 그 버스 운전기사의 친절로(종점인 까딸루냐 광장에서 내리려는데, 그 버스가 차고로 가는 길에 인야만 태워) 학원 가까이에 내려주어서, 인야는 비를 맞지 않고 학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기사는 인야가 떠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이미 인야가 조그만 드로잉 한 점을 선물까지 했던 상태로), 인야와의 작별 인사를 '시내버스를 택시처럼 운행'했던 선물이기도 했던 것이다.
학원을 마치고 나온 람블라 거리에는 비가 그치고 신선한 햇살이 내려앉아 있었다.
맑은 빛을 받으며 걷는 그 길은 묘하게 생경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우체통부터 살폈으나 여전히 비어 있었다. 한국에서 보냈다던 DHL 우편물이 올 때가 지났는데 소식이 없으니 초조함이 극에 달했다.
그 와중에도 삶은 이어졌다.
미술 수업을 받으러 온 중학생 제자에게 자습을 부탁하고는 서둘러 루이스의 차에 몸을 실었다.
해운화물 사무실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고단했다.
세상을 옮기는 일에는 절차마다 돈과 시간이 필요했다.
녹초가 되어 뒷문으로 들어오던 길, 마침내 우체통에서 DHL 도착 통지서를 발견했다.
비행기 표와 유레일패스.
인야의 탈출구이자 운명 같은 종이 뭉치들이었다.
그날 밤 11시, 인야는 또 하나의 상자를 포장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갑자기 G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눈치였다. 아니면 인야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도 몰랐다.
지난번 크리스마스카드에 적어 보냈던 말이 혹 인야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았나 걱정도 하는 듯했다.
그렇지만 인야는, 그런 그녀를 마구 대하고 있었다.
"내 한국의 주소나 전화번호 같은 건 남기지 않으리라. 앞으론, 결코 편지도 하지 않으리라......"
그래도 그녀는,
"인야, 우리... 이대로 헤어질 순 없지 않아? 마지막으로 식사라도 함께 하고 싶어......" 했는데,
"음... 그건, 생각해 보겠다."고 짧게 대답만을 해주었을 뿐이다.
그렇게 하나 둘 떠날 준비가 마무리 돼가고 있었다.
더구나 마지막 힘든 일이었던, 4년의 결실인 그림들을 드디어 배에 실어 보냈다.
트럭에 그림을 싣고 항구로 향하는 행정적인 절차는 루이스가 도왔지만, 실제로 큰 트럭을 끌고 와 팔을 걷어붙인 이는 동네의 첫 번째 집의 마놀로 큰 아들 라울이었다.
한 달쯤 걸릴 거라면서, 그 이후에 한국에서 찾으면 된다고 했다.
그동안 너무 애를 태우던 일이 끝나 후련하고 시원했던 반면,
‘이젠 끝이구나!’ 하는 허전함이 더욱 인야를 휘감았다.
그리고 그동안 1년 반여를 가르쳤던 아이들 둘의 마지막 수업을 했고, 언제나처럼(그날은 더욱 신경을 쓴) 저녁을 성의 있게 대접받고... 두 가족의 인사를 받고 나오는 것으로 끝을 냈다.
그리고 이젠 마지막 정리인, ‘여행을 떠나는 일’만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인야에게는 그림을 항구로 실어가는 일도 중요했지만, (당시엔 그냥 지나쳤지만 훗날 생각해 보니)더 중요한 일도 하나 있었다.
그게 바로, ‘마놀로네 집에서의 식사 초대’였다.
인야가 그동안 숱하게 그 집 부자(아버지 마놀로와 아들 라울)와 교류가 있었지만, 그 대부분이 아들 라울과 있었던 일이었는데,
인야가 그 마을을 떠날 때가 되어서야, 4년 만에 처음으로... 그 집에 식사초대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마놀로와도 그동안 상당히 자주 얼굴을 마주했지만(특히, 호아낀씨와 함께 하는 술자리 등에서), ‘갈리시아(Galicia)’ 사람의 특징이 그래선지, 아무튼 마놀로는 내내 인야에게 무뚝뚝하기만 했는데(단 한 번 살갑게 대해온 적이 없었는데),
그 무렵에야 생뚱맞게 자기 집에 초대를 해와서,
사실 인야는, 아버지 마놀로만을 봐서는 그 초대에 응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아들 라울 때문에(그가 인야를 얼마나 많이 도와주었는데) 마지못해 수락했던 건데,
라울의 어머니이자 마놀로의 처 ‘까르멘(Carmen)’ 역시 갈리시아 여인으로 4년 동안 같은 동네에 살면서 얼굴만 알았을 뿐... 단 한 번 얘기해본 적도 없을 정도로 서먹한 사이였는데도,
그날 인야가 그 식탁에서 받은 대접은 상상 이상으로 융숭했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소 닭 보듯 하던 이방인과 현지인 부부가 마침내 ‘터놓고 지내는 친구’가 되는 순간, 동시에 이별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기도 했다.
이날의 짧은 식사는 훗날 인야의 인생에 긴 그림자를 남기게 되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수년마다 스페인을 찾을 때면, 마놀로네 집은 인야에게 ‘무사통과’인 친정 같은 곳이 되어 주었던 것이고,
더군다나 갈리시아 뽄떼베드라에 있는 그들의 본가까지 들락거리며... 온 가족과 형제처럼 지내게 될 줄은, 그날 식탁에 앉아 있던 인야로서는, 꿈에도 몰랐던 일이었다.
G한테 전화가 왔다. 그런데 말끝에,
“인야, 나.. 너한테 화나 있어.” 했다.
웃으면서 하는 말이었지만, 시사하는 바가 컸다.
물론 인야는 냉랭했는데,
그것은 어쩌면 스페인에서의 지난날을 통째로 도려내어 어머니가 계신 한국으로 온전히 돌아가기 위한 그만의 처절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뒤 또 전화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안달루시아’의 뻬드로였다.
인야가 스페인을 떠나기 전, 한 번 더 그를 보러 바르셀로나에 오리라고 했는데... 그 때엔 인야 자신이 바르셀로나에 없을 터라서(그리스 여행 중)...
아예 오지 말라고 했다.
루이스의 도움으로 일들이 많이 정리되었다.
이제 다음 날 밤 여행을 떠나면, 한국에 돌아가는 일만 남는 상태였다.
그런데 인야는 또, 막 ‘페르난도(Fernando)’씨 집 저녁식사에 초대받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논문 번역 일을 도와준 ‘미리암’의 집이기도 했는데, 그 집에도 인야는 그림 한 점을 보답으로 선물했고, 그 일에 따른... 그 집에서의 식사초대를 치른 뒤였던 것이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하나, 미지의 땅 그리스로 떠나는 여행뿐이었다. 그 여행이 끝나면, 이 바르셀로나 시절도 영원히 닫히게 될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