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쇠라,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
- 쇠라,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굉장히 유명한 그림 두 점을 올려봅니다. 모두 아시는 것 처럼 쇠라의 작품이지요..쇠라는 많은 작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후에 더 유명해진 작가라고 하더군요. 실제로 동시대의 인상주의 작가들도 쇠라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고 합니다..몇몇 인상주의 작가들은 쇠라의 작품이 자신의 그림 옆에 걸리는 것 조차 극도로 싫어했다는 얘기도 있고..뭐..쇠라 자신도 매우 닫혀 있는 사람이었다고 미술사학자들은 말하더군요..대체로 예술가들의 삶은 그러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점묘법으로 유명한 저 두 작품에 대해서는 '점묘법'이란 기법 자체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홀로 놀러나온 여자들의 직업에 대해 관심을 두는 사람들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원숭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더군요.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가장 인상깊은 동물이 원숭이인데..신기하게도 X선을 투과시켜보면, 원숭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밑그림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왜 원숭이만 유독 밑그림이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이 원숭이에 특히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이겠지요.
뭐, 그렇다고 이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그런 의문점들 때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림이 보여주는 목가적인 분위기를 맘에 들어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색채감이 너무 아름다워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특히 저같은 경우는 후자에 해당하는데, 후에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샤갈 못지않게 쇠라의 색채는 정말 화려하면서도 신비롭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쇠라가 살았던 당시에는 빛과 색채에 대한 연구가 화학자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고, 화가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던 색의 대비 등을 좀 더 이론화 하고 체계화 하려는 노력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쇠라도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런 까닭에 쇠라는 빛과 색채에 나름의 깊은 조예를 가지게 되었고, 많은 연습과 실험 끝에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와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된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예단해봅니다.
점묘법에 나타난 각 점들은 실제로 색채의 향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색의 대비를 통해 색이 시각적으로 좀 더 독특해지고 아름다워지며 화려해지는 것이죠. 저 많은 점들을 인간이 직접 찍어낸다는 것도 엄청난 중노동이었을텐데, 그 점을 찍어낼 때 '색의 대비'까지 생각했다는 것을 떠올리면 쇠라의 능력에, 아니 인간의 능력에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만의 개똥철학의 관점에서, 그리고 저만의 개똥법학적 관점에서, 이 그림을 보는 또 나름의 감상이 있습니다.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뭐 이런 것이죠.
저의 모친께서 말씀해주신 것에 따르면, 점묘법은 모두 점을 찍어서 그림을 완성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 밑그림에 색칠을 해 놓은 다음 그 위에 점을 찍는 것이 바로 점묘법이고, 실제로 쇠라도 그런 방식을 통해서 저 두 작품을 완성한 것이라 하시더군요.
그냥 이런 생각이 듭니다. 쇠라의 수많은 점들이 이 사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개인들이라 가정한다면, 그들은 그저 홀로 유유히 빛나는 별들이 아니라, 쇠라의 색의 대비들처럼 서로 서로 존재하기에 더 찬란하게 빛나는 별들이 아닐지..(뭐 어느 영화의 대사에 나온 것처럼 실제로 혼자 빛을 내는 별들은 별로 없으니까요..)
그리고 쇠라의 수많은 점들이 서 있을 수 있는 토대인 '밑그림과 색칠'은 바로 법과 제도의 영역이 아닐지. 그래서 법과 제도는 개인들이 서로 서로 비추면서 화려하게 빛날 수 있게 끔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어줘야 하는 것은 아닐지..뭐 이런 막연한 공상을 해봅니다.
첫댓글 하나의 훌륭한 명화감상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그림과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림의 미학과 법제도의 미학을 연결시킨 점도 흥미롭네요. 저는 글을 쓸 때,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글이나 음악이나 미술 모두 한 편의 '작품'이지요. 아름다운 음악이나 그림에 내재한 어떤 미학적 구성처럼, 글에도 그러한 가능성을 희망해 보는 것입니다.
예전에 진중권교수님이 미학오디세이를 쓸 때 대위법적 방식으로 글을 썼다고 하시더군요. 좀 아쉽게도 전 별로 그 책에서 대위법적인 걸 느끼진 못했지만..^^;; 글을 쓰는 분들은 다 그런 걸 한번쯤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 올려주신 글들은 언제나 감탄하며 읽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ㅎㅎ 교수님 저랑 취향이 비슷하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