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2월 9일부터 일자 다리로 거듭나고, 26일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금일, 2월 27일, 레깅스 위에 보조기 차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치마 입고,
목발로 무장하고, 총알 택시 타고, 새벽 어둠을 가르며 신나게 출근했습니다.
흡사 지구를 구하기 위해 보자기를 펴는 원더우먼, 아니 그냥 박쥐 같습니다.
엄마의 한숨이 뒤통수로 계속계속 따라옵니다.
3주 아직 안됐는데, 출근이 가능합니다. 저는 10시간 내내 앉아서 일을 합니다만 일부러 운동하려고
여기저기 왔다갔다 합니다.
가끔씩 다리를 쭉 펴기 위해, 책상 밑에 상자 하나 놓아두고 뻐근해질 때마다 올려 놓습니다.
사무실에서는 목발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스타일이 너무 망가져서...^^
신기하게도 걸을 만 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치질 걸린 여자 같습니다.
점심에는, 명동의 무시무시한, 파도처럼 일렁이는 사람들의 물결 속을 헤치고,
치과에도 다녀왔습니다. 어떤 상큼한 총각이 다가오더니 택시도 잡아 줍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각설하고, 수술 후의 통증은 말 할 수도 없습니다.
조금 오바고요.^^
깔끔하게 제 경우를 순서대로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그래도 아픈건 아픈거니까..
1. 수술 후 엉덩이와 꼬리뼈(약 7일동안)
- 어쩔 수 없는 고통인 것 같습니다. 그저 시간이 가 주기를 바라는 수 밖에요..
옆 침대, 앞 침대 할머니 펑펑 욕창 터지십니다. 바라보고 있자니 무섭게 겁이 납니다.
2. 잠 못 이루는 밤
- 딱 이틀정도, 수면제 복용 안 해 봤습니다. 뜬눈으로 그날 밤을 홀라당 지샜습니다.
그렇다고 낮에 잠이 오는 것도 아닙니다.
위에 2번과 아래 2번, 어떤 것이 원인인지 모르게 함께 옵니다.
다음 달이면 중국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MP3 PLAER에 잔뜩 파일도 담아왔습니다만
첫날 밤 한번 듣고 때려 치웠습니다. 차라리 노래 파일이나 담아올 걸,
무리였습니다.
2. 무릎 보호대의 압박, 아니면 뻗쩡 다리?????
- 작고 마른 체구인데, 도대체 이것이 왜 이렇게 성가시고 아픈지...
이것 때문에 잠을 못자겠는데도 반드시 착용하고 자랍니다.
다리에서 후끈후끈 열이나고, 무릎과 발가락에서 용암이 분출할 것만 같습니다...
3. TV
- 18시간 TV가 켜져 있습니다.
연속극 재방송 소리에 급기야 심각한 두통이 수반 됩니다.
방송사별, 계단식으로 편성되어 있는 아침드라마는 끝까지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MBC에서 "주몽"이라도 나오면, 병원식 극장이 따로 없습니다.
불까지 끄고 보십니다.
움직일만해지자 어둠과 함께 본관 1층으로 내려가 불 켜 놓고 맴맴 돌아다녔습니다.
며칠 지나니 몰담배 환자 아저씨 한분과 인사를 주고 받았습니다.^^ "이제 잘 걸으시네요!!"
퇴원 이틀전 당직 아저씨한테 들켜서 혼나고, 몰담배 피우는 여환자로 오해를 샀습니다.
엄한 news people 한권 옆구리에 끼고 가다가 죽는 줄 알았습니다. (선생님 기사가 실려 있는)
이건 아닌데.......
4. 상기의 것 외 통증들은 이래저래 견딜만 합니다.
수술 부위의 통증 역시 예상보다 견디기가 괜찮습니다. 각오했던 바였으니까요..
볼일 역시 나름대로 준비를 단단히 했었습니다.
입원 첫날, 전날의 송별회?? 덕에 알콜 냄새 폴폴 풍기며 어찌어찌 병원으로 갔는데,
선생님께서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인실에서 구토와 설사로 첫날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술병이 끝난 밤이 되니,
'쾌X' 유제품을 사들고 온 친구와 역사적인 내일을 기리며 또 건배를 외쳤습니다.
"O다리의 마지막 밤을 위하여!!"
그러나 지난 며칠동안을 더듬어 볼때,
저에게 꼭 아팠던 시간만 있던 것은 아님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6인실에서 지낸 십여일 동안,
같은 병실의 모두를 내 환자로 여기는 간병 아주머니들의 가슴 뭉클한 배려,
저보다 훨씬 아플텐데도 웃음과 격려를 보내주시는 같은 층의 모든 할머니들,
옆에서 보면서,
얼마 후 언젠가는 닥칠 내 부모의 간병이 이제는 아주 막연하고 두렵지만은 않아졌다는
사실은 너무나 소중한 것들 입니다. 물론 오래가지는 않을테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임선생님 덕분에 예상치도 못했던
일자다리로의 부활은 저에게 참 다른 세상이 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자신있게 세상을 살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 드리고,
이제는 전국의 명산, 아니 세계 일주, 저기 킬리만자로까지 다녀올 꿈도 당당히 꾸어봅니다.
먼저, 마치 기린처럼 그물망을 형성한 두 다리의 때를 밀어내야겠습니다.
목욕탕에 갈 수 있는 그날만을 기다리며..........운동 열심히 할 것 입니다.
여러분 모두 새로운 다리로 인해 조금 더 넓은 땅을 밟기를 바라겠습니다.
첫댓글 마치 파노라마를 보는듯한~ 경험담.. 잘 읽고 갑니다.. 무섭다가도.. 글읽고 다시 힘을 얻게 되네요... 벌써 출근하시려면 힘드실텐데.. 당당하고 명랑하신것같아.. 보기 좋네요... 수술후에 내 모습도 저랬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네요.... 저도 그러렵니다.. ^^
워 정말 재밋게 글써주셧네요 하하핫
"마치 기린처럼 그물망을 형성한 두 다리의 때를 밀어내야겠습니다" <- 이말이 왤케 잼있는지요~ 표현이 잼있고 참 적나라하게 쓰셨어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