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룰 수 없는 이와 사랑에 빠졌을 때 너무나 사랑하여 이별을 예감할 때 아픔을 감추려고 허탈히 미소 지을 때 슬픈 노래를 불러요 슬픈 노래를
밤 늦은 여행길에 낯선 길 지나갈 때 사랑은 떠났지만 추억이 살아날 때 길가에 안개꽃이 너처럼 미소 지을 때 슬픈 노래를 불러요 슬픈 노래를 슬픈 노래를 불러요 슬픈 노래를
어린 아이에게서 어른의 모습을 볼 때 너무나 슬퍼서 눈물이 메마를 때 노인의 주름 속에 인생을 바라볼 때 슬픈 노래를 불러요 슬픈 노래를 슬픈 노래를 불러요 슬픈 노래를 슬픈 노래를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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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떠난 스페인 여행, 공항에서 그저 기다리는 시간... 이 노래를 만났다.
후배가 보내 준 유투부 영상, 김광석의 "슬픈 노래" 다음 재생곡이 "내 사람이여" 였다.
"내 사람이여"는 그렇게 우연히 만났다. 김광석 노래를 전부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왜 여태 이 노래를 몰랐을까?
절창이다. 정갈하고 간절하다. 김광석 이상으로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출국을 위해 깊어가는 인천 공항의 밤.
"슬픈 노래'와 "내 사람이여"를 들으면서 무언가 스르르 풀려가고 있었다.
아주 오랫만에 빗장을 풀고 마음을,
감정을 들여다 본다.
오랫동안 슬픔을 잊고 살았다 소스라친다.
슬픔을 떼놓을 수 있다면 심장도 내어 줄 수 있을 것 같던 시절이 있었다.
연모의 감정을 잘라내기 위해서 손끝 발끝을 단도리하며 새로운 몸짓을 익히고 애써 춤을 추던 긴 겨울이 있었다.
늘 그렇게 잘라내고 뜯어내고 털어내며 바람 속을 걷고 벼랑으로 벼랑으로 내쳐 달리던 길고 긴 여정들이 있었다.
내 긴 청춘이었다.
그리고 분노를 동반해야만 했던 공적인 슬픔의 시절이 왔다.
잦아든 길고 긴 허기의 시절 이젠 드디어 종착지에 다다르는 시점이 왔으려니, 더이상 관계의 약자 자리에 서지 않아도 되는 시절이 왔으려니. 이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좋았다.
밤 비행기를 기다리는 공항 대합실에서 이어폰으로 흘러드는 노래를 들으며 그 빈자리에 서서히 눈길을 돌린다.
투계같이 싸우는 일상, 강하게 담대하게 냉철하게 담담하게 견뎌야 하는 칼날같은 일상의 자리에서 훌쩍, 홀로 떠나려는 그 순간, 이 노래들에 의지해 정면을 응시하는 눈길을 떨구고 마음의 풍경을 곁눈질한다.
평온할 줄 알았는데...
이별한 많은 감정들을 회상해 보았다.
슬픔이 아니던가. 결국... 그립고 그리워, 읽고 또 읽고, 더듬고 또 더듬고, 포개어 보고 또 맞춰보고
그렇게 찾아가는 마음자리의 긴 여정의 끝은 외로움 그리고 슬픔.
그렇게 피워 올리던 연하고 여린 가지들로, 잎사귀들로 무성했던 바람 웅성이던 마음.
어느덧 매마른 잎새도 떨구고 말라가는 가지. 바람도 비켜가는 고적한 겨울 나무.
그래서 슬픔의 물가를 떠나 그리움의 허기 없이 말라가니 좋았던가?
...
이국의 땅을 홀로 다니며 다짐했다.
돌아가면 이젠 사람들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 잡고 어깨에 기댈거라고.
마드리드의 호텔에 여권을 두고 와 그라나다에서 바르셀로나까지 예약된 국내선 비행기를 타지 못하게 되고 18시간이나 걸리는 바르셀로나 행 버스표를 끊던 말라가 버스 대합실. 폴란드에서 여행 온 착하게 생긴 유대인 청년이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차표가 없어 홀로 남았다. 내 동행이 되고 싶었던가 친절하게 버스표를 알아봐 주던 청년이 물었다.
"마드리드 행 기차표를 환불하고 나서 버스 시간까지 여기 말라가에서 무얼 할건가요?"
외로움을 읽었지만 나는 체증에 다리 통증이 심했다. 먹지도 걷지도 못할 몸으로 청년과 함께하기 힘들었다. 그저 대합실 근처에서 안정을 취하고 싶었다. 나는 못들은 척 했고, 즐거운 여행이 되라고 청년을 보냈다.
그 후 터미널 인근 차로변 잔디밭에 짐을 부리고 책을 펼쳐 들었다. 잔디밭은 평온했고 꽃 무더기 밑에서 책을 읽는 여행자를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저녁이 왔고 밤이 왔고 나는 청년이 간절히 그리웠다. 어디를 다니고 있을까? 그 청년도 이렇게 사람이 그리울까? 그 순간 이름도 알지 못하는 이국의 청년이 세상 전부인 듯 그리웠다. 그 청년 역시 나와 동등한 마음이라면 이 그리움은, 외로움은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 한 존재가 한 존재를 세상의 전부인양 간절하게 그리워할 수 있다니. 난생 처음 그저 스치는 한 사람의 존재의 무게를 깨닫는다. 후회했고 미안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청년을 붙잡을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다.
18시간 밤버스에 흔드리면서 옆자리에 앉은 착하고 정갈한 초로의 스페인 아저씨의 어깨에 자꾸만 몸이 기울고 싶었다. 간절히 기대고 싶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옆 좌석,
까칠한 책식주의자 중년 남성의 어깨가 또 간절했다. 그렇게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는 일이, 손을 잡는 일이 가장 절실해지는 순간들을 흘러다니다 돌아왔다. 여기, 이 일상의 자리에선 감히 인정하지 않을 소망이었을테지. 절대로 용납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의 손을 감싸쥐고 그 사람의 어깨에 기대고 싶었던 소망이 또 나를 저버린 후, 절대로 의식에 올리지 않았던 몸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