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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떠나기 혹은 길 찾기 -이승하 시의 불교적 회감
이은봉
이승하의 시들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내포를 지니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는 시를 매개로 한 그의 사유의 체계가 그만큼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것을 뜻한다. 작품 속의 그의 사유가 쉽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 않는 것도 다름 아닌 이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시인 이승하가 자신의 시에서 오늘의 현실과 관련하여 끊임없는 성찰과 반성을 시도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이는 그의 시가 지금 이곳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로부터 발상되어 왔다는 것을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고에서 살펴보려고 하는 이승하의 신작시 11편은 이러한 맥락으로부터 상당히 일탈해 있는 듯 보인다. 결국은 구체적인 삶의 현실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지만 여기서 고찰하려고 하는 그의 신작시들은 일단 아득한 과거, 즉 신라시대의 불교적 의미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시를 통해 시인이 불교의 형이상학적 진리, 그것도 아득한 신라 시대로부터 비롯된 의식지향을 보여주는 까닭은 무엇인가. 물론 필자에게는 아직 이러한 질문에 대해 명확하고도 체계적인 논리가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따라서 여기서는 시행의 전후관계를 살펴가며 복잡하고 다양한 그의 의식세계를 두서없이 추적해 보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본고에서 논의하려고 하는 이승하의 시 11편은 기본적으로 불교적 회감에서 발상되고 있다. 일련의 불교적 명상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 이번의 그의 신작시들이라는 얘기이다. 종교적 영적 체험은 본래 신비적이고 비의적이어서 과학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체험에 바탕하고 있는 그의 시에 대해 여기서 사족을 덧붙이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모한 일인지도 모른다.
최근에 들어서는 종교적 영적 체험을 두뇌활동의 한 현상으로 이해하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두뇌가 뇌 신경계의 화학적 변화나 특별한 정신적 활동에 의해 영적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예컨대 두정엽의 활동이 정지되면 사람들은 우주와 하나가 된 듯한 종교적 몰아의 경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인간의 두뇌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 한 종교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고, 사람들은 절대적인 진리를 계속해서 추구하게 될 것이라는 논의가 얼마간 설득력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의 시가 보여주고 있는 불교적 의식지향에 대한 논의도 아주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막연하고 부족한 대로 다소간은 설득력을 갖는 논의를 진행해볼 수는 있으리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승하의 11편의 신작시들이 기본적으로 존재 찾기, 진리 찾기의 형식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의 존재나 진리는 다행스럽게도 이미 익숙한 '길'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 다소간은 독자의 접근을 용이하도록 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의식지향이 일종의 여행시, 기행시의 구조 속에서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도 조금은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시에 드러나 있는 여행의 과정이 서정주의 그것처럼 맹목적인 떠돌이로서의 의미망을 갖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의무감도 갖지 않는 무책임한 떠돌이로 인생을 파악해온 서정주의 경우와는 달리 그의 시에 함유되어 있는 여행은 일정한 정도의 목적의식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의 목적의식이 존재 찾기 혹은 진리 찾기라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그의 시들은 비록 존재 혹은 진리를 찾아 떠나는 정신적 여행의 과정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일정한 공간적 방향을 갖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 귀결점에 따라 이는 대강 5개의 작품 군으로 대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불교미술의 보고인 둔황의 막고굴을 찾아가는 과정의 심리적 체험을 담아내고 있는 작품들이다. [혜초의 길] [혜초의 시간]이 그것으로, 이때 그는 1200년 전에 천축국으로 법을 구하기 위해 떠났던 신라 출신의 고승과 혜초와 정서적으로 동일성을 느끼고 있다. 두 번째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정골을 모신 국내의 5대 적멸보궁을 찾아 나서며 체험하는 깨달음을 담고 있는 작품들이다. [적멸보궁 앞에서 별을 보다] 연작시 5편이 그것으로, 이들 시는 영취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중대,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의 적멸보궁 앞에서 별과 마주하며 획득하는 진리를 담고 있다. 세 번째는 신라의 향가인 [혜성가] [도솔가]를 인유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 작품들로, 시의 제목도 신라 향가의 그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당대의 현실과 오늘의 현실을 유비적 상상력으로 결합시키고 있는 이들 작품에 함유되어 있는 내포들은 그만큼 오늘의 현실적인 기원들과 관련되어 있다. 네 번째는 대표적인 불교예술의 하나인 범패와 법고춤으로부터 소재를 얻고 있는 작품들이다. 제목부터 [범패―朴松庵 님께] [법고춤]으로 되어 있는 이들 시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어떠한 가치들보다도 우월한 것이 종교적 정진과 진리라는 점이다. 마지막은 {삼국유사}의 사찰연기 설화에서 발상의 기원을 두고 있는 작품들인데, 오늘의 시각에서 설화의 모티프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엄장이라면 먼저 간 광덕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노힐부득이 달달박박에게]가 그것으로, 오늘의 구체적인 삶과 관련하여 진리를 인식하는 시인의 안목이 반영되어 작품이라고 파악된다.
이들 작품은 아득한 과거의 것들로부터 소재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퇴행적 시간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러한 시간의식에 대해 객관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언어로 설득력이 있는 논의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필자에게는 없다. 다만 개인적인 입장에서 이러한 시간의식이 그다지 기껍게 생각되지 않는다는 점만은 여기서 밝혀 두려고 한다. 쓸데없는 복습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들 작품을 즐길 만한 독자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생각을 끝내 지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 시에 함유되어 있는 고사들, 예컨대 신라시대의 예술이나 사건, 여행이나 설화들의 경우 일종의 수식이나 의장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별다른 의미가 없는, 즉 시인의 의도와 전혀 무관한 일종의 관습적 장식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본래 시라는 것이 의미나 주제보다는 의장이나 수식, 형식이나 기표 속에서 완성되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시는 본래 일의적 획일성 속에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하면 이승하의 이들 작품 또한 그 나름의 독특한 아우라를 형성하는 가운데 개성 있는 의식지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때의 아우라가 비록 과도할 정도로 추상화되어 있다는 지적을 면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원래 추상화는 상징화와 맥을 함께 하기 마련이 아닌가. 그의 시가 계속해서 독자들을 붙잡아 두고 있는 것도 실제로는 이러한 점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과 관련하여 본고에서 살펴보려고 하는 이승하의 시들 가운데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혜초의 길]과 [혜초의 시간]이다. 이들 시는 각기 '우루무치에서 투루판까지'라는 부제가 달려 있어 더욱 독자들의 관심을 끈다. 이들 부제로 미루어보면 예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둔황 막고굴의 불교미술을 찾아가는 시인의 여행체험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둔황의 막고굴은 불교미술의 보고일 뿐만 아니라 혜초의 {왕오천국국전}이 "장장 1200년" 동안이나 "봉인되어 있던"([혜초의 시간]) 공간으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고 있는 것이 이들 시인데, 여기서 시인은 일단 자신의 자아를 혜초에게로 투사함으로써 상상력을 구체화한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여정 위에 혜초의 여정을 덮어씌움으로써 심리적인 동일시를 얻고 있다는 뜻이다.
[혜초의 길]의 경우 이러한 동일시는 착종된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드러난다. 이 시의 경우에는 화자가 시인 자신이면서 동시에 혜초일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시인 자신의 것으로 파악하기에는 과도할 정도로 진지하고 정중한 어조를 취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가령 "영원의 法을 찾아 부르튼 발 앞으로 옮기면" 등의 구절에 의해서 확인된다. 예컨대 "돌아보니 길은 모래바람에 사라지고/걷다보니 길은 끊겼다가 다시 나타난다" 등의 구절에 드러나 있는 화자가 온전한 시인 자신일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시의 화자가 시인 자신의 어조를 긴밀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것까지 부인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시인 자신에 의해 적절히 가공된 존재가 이 시의 화자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의 화자는 또한 "내가 나서야 길이 비로소 길이"라는 매우 소중한 깨달음을 보여주고 있다. 주체에 의해 포착되지 않는 진리, 즉 주체와 함께 하지 않는 진리는 진리일 수 없다는 것인데, 물론 이러한 깨달음이 오직 이 시의 화자에 의해서만 온전하게 획득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이 주체에 의해 발견되지 않는 타자는 타자일 수 없다는 이치, 타자에 의해 수용되지 않는 주체는 주체일 수 없다는 이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시의 3연 1행을 장식하는 "나의 길은 하지만 마을로 나 있지 않다"와 같은 구절이라고 해야 할 듯싶다. 1, 2연의 "다음 마을", "사람 사는 마을"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에 대한 묘사 끝에 이어진 이 구절에서 화자는 자신의 길이 "마을로 나 있지 않다"고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을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喜怒哀樂의 공간으로 공동체의 원초적인 형태이다.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마을 속에 가족이 존재하고, 가족 속에 개인이 존재하며, 개인 속에 자아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마을이 단순히 공동체의 상징만이 아닌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점들과 관련하여 생각하면 이 시의 예의 구절이 내포하는 바는 자못 의미심장해 보인다. 이 시의 화자가 파악하는 길이 마을 밖의 어느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의 전후의 문맥으로 보면 길의 행방으로서 그가 "영원한 法"의 세계를 따로 설정해 두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영원한 法"의 세계는 '영원한'이라는 수식어들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물리적인 시간 밖의 세계, 곧 무시간의 세계를 뜻한다. [혜초의 길]에서 보여준 '길'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혜초의 시간]에 이르러 이내 좀더 세분화되어 '시간'에 대한 반성적 성찰로 전화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유에서 기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혜초의 시간]에서 그는 우선 "산맥을 넘고 사막을 지나온 시간/바위가 돌이 되듯 세월 부서지고/돌이 모래가 되듯 시간 쌓였으리"와 같은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축적된 시간의 부피로부터 사유의 실마리를 푼다. 말하자면 "둔황 막고굴에 봉인되어 있던/혜초의 시간 장장 1200년"에 대해서 먼저 반성적 성찰의 촉수를 닦는다는 것이다. 1200년의 시간을 주체의 인식 안으로 끌어들였을 때 가장 가깝게 다가오는 것은 그 동안 수없이 거듭되어온 生老病死로서의 윤회의 실제이다. 이 작품에서 그가 "그 동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죽어가면서 참 많이도 울었으리"와 같은 구절을 보여주는 것도 사실은 이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부피나 크기와 관계없이 시간 자체를 인식의 밖으로 밀어낼 수 있다면 인간은 서방 정토를 오늘의 이 세상에서도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에서는 "서방정토를 꿈꾸며 그렸을까 둔황 벽의 그림을"이라고 하며 반문하고 있지만 "둔황 벽의 그림을" 그린 주체들의 경우 실제로는 이미 시간의 밖에서 살았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새삼스러운 얘기이지만 이는 동시에 시간의 노예가 아니라 시간의 주체로 살았다는 것을 뜻한다. 이 시의 화자가 "시간은 바람처럼 왔다 물처럼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땀 흘리며 그려내는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는 결국 몰아지경의 정작의 모든 예술행위가 영원 속에, 다시 말해 정지된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시간에 대한 이러한 체험은 물리적인 시간과는 거리가 먼 경험적인 시간으로부터 기인한다. "둔황 막고굴 속에 봉인되어 있던/혜초의 시간 장장 1200년"이 새로우면서도 새로울 것이 없는 까닭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진리라는 것은 본래 무시간적일 수밖에 없다. 영원을 존재하는 것이 진리라면 그 영원에 시간이 틈입할 수 없는 것과 이는 마찬가지이다. 시간의 초월 혹은 시간의 밖에 존재한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면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정골을 모시는 적멸보궁도 동일한 상징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적멸보궁 앞에서 별을 보는 마음을 담고 있는 5편의 연작시에서 그가 추구하고 있는 세계도 결국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뜻이다.
자장율사에 의해 당나라 청량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받들어진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정골을 모시고 있는 전각인 적멸보궁은 우리 나라에 모두 5개가 세워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승하의 연작시 [적멸보궁 앞에서 별을 보다] 5편은 다름 아닌 이들 5개의 적멸보궁을 찾아가서 별과 관련하여 느끼는 불교적 회감을 담고 있다.
그는 일단 먼저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율사가 맨 처음 자리를 잡은 영취산 통도사의 적멸보궁 앞에서 별과 관련된 각성을 피력한다. [적멸보궁 앞에서 별을 보다 1]의 세계가 그것으로, 독자들을 배려하여 이 작품에서 그는 적멸보궁의 내력부터 담아내는데, 2연의 내용이 다름 아닌 그것이다. 그러한 다음 3연에 이르러 그는 "부처가 寂滅의 낙을 누리고 있는 이 보궁 앞에서도" 여전히 망상에 시달리고 있는 자신의 자아를 강하게 채찍질한다. 아직도 "반야의 지혜는 저 별들보다 멀리 있다"고 다짐하면서 자신의 자아를 뜨겁게 성찰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연에서는 이 별들과 관련하여 시간 안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성부터 먼저 발견한다. 유한한 존재로서 시인 이승하의 자아가 이 시를 통해 꿈꾸는 세계가 무한의 세계, 곧 영원의 세계라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가 보기에 인간의 세상은 아직 "캄캄한 혼돈의 땅"이고, 그리하여 "세상의 시간은 아직도 미명"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러한 인식을 지니고 있는 그의 자아에게 "저 완벽한 질서의 하늘"이 일종의 존재의 모범으로, 목표로 다가오는 것은 자못 당연하다. 그가 보기에는 하늘의 질서를 얻는 것, 다시 말해 "하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곧 무한을 살아가는 것, 곧 영원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가 "그러니…… 가자!/무한을 향해 열려 있는 저 하늘의 마음을 향해."라고 노래하고 있는 심리상태를 알기가 별로 어렵지 않은 것은 다름 아닌 이 때문이다. 시간 밖의 세계를 향해, 영원의 세계를 향해, "하늘의 마음", 천심을 향해 열려 있는 시인의 마음을 넉넉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뜻이다.
뒤를 잇는 연작시 [적멸보궁 앞에서 별을 보다 2]는 오대산 중대의 적멸보궁 앞에서 별을 바라보며 느끼는 불교적 회감을 담고 있다. 이곳의 적멸보궁은 "사리탑마저 없는 적멸보궁"이라는 점에서 좀더 시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가 보기에는 아예 유색계로서의 상징도 없이 무색계로서의 진리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말하자면 色卽是空의 色도 없이 空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이곳의 적멸보궁인 셈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입으로 "불사리의 위치 알 필요가 없다고/부처는 어디에나 있다고" "수백 수천 광년의 거리를 달려와/너를 만나서 별이 된/이름 모를 사람들이 다 부처라고/김 뿜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기본적으로 원형적 질서로서의 "하늘의 마음", 즉 천심(天心)을 바라보는 시인의 안목과 관련되어 있다. "적멸보궁 앞으로 무진장 모여드는 별 별/별별 사람이 다 생전에 보았을 저 별이/질서를 지켜 내가 지금 살아 있구나"라고 하는 구절들을 통해서도 이는 잘 알 수 있다. 어쩌면 그는 주역에서 말하는 "天行健 君子以自彊不息"(하늘의 운행이 굳건한 것처럼 군자는 힘써 자강불식하라)의 마음으로 하늘의 질서를 파악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면은 이어지는 연작시 [적멸보궁 앞에서 별을 보다 3]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별은 "번뇌의 불씨를 꺼드리기 위"한, 다시 말해 "流轉의 불씨, 幻滅의 불꽃을/죄 꺼뜨리기 위"한 일종의 모범으로, 기준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들 구절은 무엇보다 우주의 질서, 곧 진리에 대한 그의 인식의 실제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설악산 봉정암의 적멸보궁에서 바라보는 별의 경우 시인에게는 곧바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정각의 상징, 진리의 상징이듯이 여기서는 별 또한 정각의 상징, 진리의 상징이 되고 있는 셈이다. "스스로를 태워 빛을 냄으로써/본연의 마음자리 그 고요함 속으로/나를 되돌리려 하"는 것이 그가 파악하고 있는 별의 내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가 "별의 수를 헤아리지 않고/돈을 헤아리는 동안에"는 "늘어나는" 것이 "새치"일 따름이라고 생각하는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자기 스스로를 "正覺에 못 이르는 한 마리 짐승"이라고 받아들이는 시인이 "온몸을 떨면서/하늘 향해 손을 내"미는 것도 동일한 이유에서라고 생각된다.
이승하의 작품들에서 적멸보궁의 진신사리는 곧바로 부처님의 법, 곧 진리를 상징한다. 모든 진리는 불변의 것이고, 무시간의 것이고, 영원의 것이라는 얘기는 앞에서도 논의한 바 있다. 그런데 정작의 불변의 것, 무시간의 것, 영원의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각에 도달해 있는 것이 이어지는 연작시 [적멸보궁 앞에서 별을 보다 4]에서의 시인이다. 이 시에 이르러 그는 "부처가 남긴 사리들도/분자와 원자와 핵으로 되어 있어 수천 년을 움직이고 있을까", 하는 매우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질문은 물질과 정신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반야심경의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원리에 따르면 이내 부처님이 남긴 진리도 "수천년을 움직이고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전이되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그의 시의 이들 구절은 모든 "물질은 결코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운동의 상태에 있다"고 하는 F. 카프라의 저서 {현대물리학과 동양정신}에 의지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생명이 없는 돌이나 금속도 섬세하게 확대해 보면 언제나 활성으로 충만해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근본적으로 모든 물질은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F. 카프라는 세계의 이러한 실상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을 뜻하는 불교의 윤회와 관련시켜 논의함으로써 독자들을 긴장시킨다. 세계에는 집착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불교의 전통적 사유조차 윤회와 연결시켜 이해하고 있는 것이 F. 카프라이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동양사상에서 흔히 "유동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실재를 도라고" 부르는 것도 윤회의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존재들이 "불가해하고 불가사의한/뗄래야 뗄 수 없는 우주망 속에서/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시인의 진술도 실제로는 윤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해야 옳다. 사실 그렇다. 모든 존재들은 시인 이승하가 자신의 시를 통해 말하고 있듯이 "움직임으로써 에너지로써"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물론 그의 이러한 인식도 역시 F. 카프라의 예의 저서로부터 기인되고 있다. "동양의 신비가들은 우주를 분리시킬 수 없는 하나의 그물(網)으로 보았는데 그 상호작용은 정적이 아니라 동적이다"라는 언급하고 있는 것이 F. 카프라이다.
윤회로서의 이러한 진리를 인식하고 있다고 해서, 즉 적멸보궁 앞에서 별을 보고 있다고 해서 곧바로 대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승하 자신도 잘 알고 있듯이 때가 되면 "적멸의 경지에도 들 수 있"고, "法悅도 있"을 수 있지만 "자유로 태어나지 않은 이 세계에서"는 "별을 보면서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마련이다. "여전히 불안정하게 헤매거나/줄기차게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이 현존의 인간이라는 것을 이미 그가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때'는 결국 죽음의 때일 수밖에 없다. 그가 이 시의 이어지는 구절에서 "죽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말하고 있는 것도 실제로는 이러한 연유에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인 이승하가 생각하기에는 죽음이라는 것도 하나의 윤회의 과정일 따름이다. 生老病死로서의 윤회의 과정을 겪는 것은 별이라고 해서, 즉 진리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그이다. 이어지는 연작시 [적멸보궁 앞에서 별을 보다 5]에서 그가 별을 "태어나고 죽어간/생명체"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다름 아닌 이에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별의 윤회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는 "부처가 화엄경을 설한 그 옛날" "밤하늘에서 빛났던 별들이/오늘도 무리 지어 내 머리 위로 몰려와/맑은 목소리로 설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별들에 대해 이 시의 결구에서 "고맙구나 고마워"라고 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것은 그가 이미 윤회의 질서와 함께 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정신이 이러한 경지에 이르러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경지에 이른 것으로 그가 완벽한 깨달음을 획득했다고 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해서는 그 자신도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여전히 미지의 것, 신비의 것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 우주 일반이기 때문이다.
우주 일반에 대한 이러한 비의적 태도는 향가에서 인유의 원천을 얻고 있는 [혜성가]에 이르면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신라 진평왕 때의 일로 삼화지도(三花之徒)에게는 흉조로 생각되었던 혜성의 출현이 융천사가 노래를 지어 불음으로써 길조로 바뀌면서 왜병의 침략도 막았다는 배경설화를 갖고 있는 것이 본래의 [혜성가]이다. 물론 이승하의 [혜성가]도 기본적으로는 혜성의 출현과 관련하여 발상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생각하면 이승하의 이 시는 일종의 패러디 시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시에는 '삼화지도의 혼백에게'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말하자면 이 시에는 삼화지도(三花之徒), 즉 居烈郞, 實處郞, 寶同郞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청자가 전제되어 있는 셈이다. 1200여 년 전 신라의 화랑인 이들 세 사람을 불러내어 혜성과 관련된 화자의 생각을 토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인 것이다.
전체적인 구도나 시공의 선택도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 시인은 세계의 일들이 알 수 없는 것 투성이, 즉 신비적이고 비의적인 것 투성이라는 고백하고 있다. "자네들이 태어난 해와/내가 태어난 해의 간격을/나 알 수 없네", "새 별의 태어남이/방랑의 시작인지 끝인지/나 알 수 없네" 등의 구절이 그 구체적인 예이다. 이처럼 여기서 그는 미지의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세계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고백함을서 자신의 내면을 비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일백 번을 다시 태어나도/내 아무 것도 모르리라는 것/그것을 알고 있다"는 그의 고백이 한결 높은 정신차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으로 보인다. 마침내 그의 이러한 자각은 [내가 엄장이라면 먼저 간 광덕에게 이렇게 말하겠다]에 이르러 "앎이란 하나같이 올가미더라"라는 인식에까지 이르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은 그로 하여금 그간의 조금은 추상적인 세계들로부터 발을 빼지 않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앞의 시에 드러나 있는 것처럼 세계는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자각이 그로 하여금 무엇보다 이러한 반성과 성찰에 이르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말미암아 그의 정신차원이 나날의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로 돌아오게 된 것은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혜성가]와 마찬가지로 신라의 향가로부터 영감을 얻고 있는 [도솔가]의 세계가 분단된 민족 현실에 대한 사유를 토대로 하고 있는 것도 실제로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앞의 시 [혜초의 길]에서 그는 "나의 길은 하지만 마을로 나 있지 않다"라고 노래한 바 있지만 그의 길 역시 결국은 마을로 나 있지 않을 수 없게 된 셈이다.
향가로서의 [도솔가]는 경주의 하늘에 해가 둘이 나타났는데, 월명사로 하여금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함으로써 그 변고를 물리쳤다는 경덕왕 대의 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설화의 핵심 모티프인 경주에 해가 둘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이승하는 아마도 나라가 둘로 쪼개졌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결국 그는 이 배경설화로부터 오늘의 분단 조국의 현실과, 그에 따른 고통을 유추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특히 "왕조가 바뀌고 편을 나누어 싸우니 땅이 나뉘고/서로 탐하고 성내니 오호 말법의 시대로다", "반은 땅에 묻혔으되 반은 하늘을 우러르는 장승과 미륵상" 등의 구절에 의해 확인이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자신의 시에서 이러한 고통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락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그가 이 시에서 통일에의 의지, 평화에의 의지 자체를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높은 것들 아래로 내려와 아름다운 나라 낮은 것들 위로 올려 무궁히 평화로운 나라"를 꿈꾸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기쁘고 서로 아껴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리"라는 서원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정작 그는 자신의 시 [도솔가]가 월명사의 그것처럼 해가 둘인 하늘의 변고, 즉 오늘의 분단현실을 일거에 불식시키는 주문으로 작용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자가 보기에는 [범패]에서 친일파였던 조부의 죄를 씻기 위해 부처님께 귀의한 뒤 평생을 불교 음악에 정진해온 朴松庵 님의 생애를 기리고 있는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의 정신차원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노스님이 아픈 과거를 씻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십년을 익혀/오십년을 공들"여 이룩한 범패의 경지를 높게 바라보는 그의 안목에서 이는 특히 확인이 된다. 그가 보기에는 범패를 갈고 닦는 일이나 법고춤을 갈고 닦는 일이 공히 화두선에 못지 않은 깨달음의 과정인 것이다. 또 다른 그의 시 [법고춤]에서 "두들기다 두들기다 보면 깨달을 날이 있을까"와 같은 표현이 가능했던 것도 이러한 측면에서의 선에 대한 인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염불선이 가능한 만큼 범패선이며 법고선도 가능하리라는 뜻이다. "앞에서 이어온 것들 뒤로 전하"는 것, "뒤로 처진 것들 앞으로 이"어가는 것도 "마음으로 다스리는 우주"의 일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하면 순수하고 정직하게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진리에 이르는 첩경인지도 모른다. 고통의 현존을 아무런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정작의 진리에 이르는 빠른 길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내가 엄장이라면 먼저 간 광덕에게 이렇게 말하겠다]에서 그가 "뱉어내도 뱉어내도 몸에 고이는/이 몸 달뜨게 하는 욕정만이/씹고 또 씹은 약초처럼 달더라."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도 실제로는 그러한 인식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세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三國遺事} 卷第三의 '南白月 二聖'의 설화에 인유의 원천을 두고 있는 그의 시 [노힐부득이 달달박박에게]에서도 마찬가지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시의 서정적 주인공인 노힐부득이 한 여자를 받아들이는 보시와 관련하여 달달박박에게 "오늘 나는 주린 혼 하나 찾아왔기에 거두어주었다네 쉬어가라 편히 자고 가라고 아아 수줍게 나는 베풀었다네"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도 동일한 깨달음에서 비롯되었으리라는 것이다. 사실 그렇다.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순수하고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만큼 곧바로 진리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없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하면 지공무사의 마음, 순결하고 무구한 마음, 즉 시의 마음이 부처의 마음임을 알 수 있게 된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부처가 될 수도 있고 야차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인식을 그는 위의 시에서 "마음이 똥이 되고 송장이 되고 능히 佛을 이룬다네"라고 노래하고 있다. 결국은 그도 이 시에 이르러 원효의 一切唯心造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시인 이승하의 길 떠나기와 길 찾기가 도달한 이러한 정신의 경지는 크게 새롭지는 않지만 매우 값지고 훌륭한 소득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그곳이 바로 불교적 회감 혹은 과거와의 동일성으로부터 출발한 그의 시정신이 도달한 경지의 실제인 것이다. 그의 시가 내포하고 있는 이러한 정신차원은 기본적으로 오늘의 세계 일반에 대한 매우 진지한 반성과 성찰과 맞닿아 있다. 그러한 점만으로도 이는 크게 주목을 받아 마땅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