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정연희/한국싱잉볼학교 대표, 아시안프렌즈 이사)는 17년 전 처음 인도 네팔을 방문 한 뒤로 거의 해마다
한 두 차례 네팔 오지 마을과 티베트 유목민 아이들의 겨울학교와 인도 대장장이마을에 갑니다.
저는 싱잉볼 소리에 빠져서 싱잉볼을 해외 여러나라를 다니면서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네팔
오지마을 여인들이 만든 쐐기풀 스카프와 인도 대장장이 마을에서 만든 싱잉볼을 공정무역으로 판매합니다.
몇년 전 전세계 싱잉볼 시장의 90%를 감당하는 인도 대장장이 마을로 떠났습니다.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는 싱잉볼과 싱잉볼 만드는 장면만 보였고, 두번 째 방문했을 때는 싱잉볼을 만드는
분들의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와 그들의 자녀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아래는 2년 전 두번 째 이 마을을 방문했을 때 쓴 글입니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연결이 되었어요.
겨자씨 한 알이 마음에 떨어진 날
싱잉볼을 만드는 마을 한 가운데는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가 있다.
문도 울타리, 운동장도 없지만 마을 사람들은 큰 나무와 창으로 강이 보이는 아름다운 곳에 학교를 지었다.
처음 학교를 찾아갔을 때, 전교생이 40명이란 이야기를 듣고 오리온 초코파이를 준비했는데 ,학교에 와보니
학생수가 150명이 넘어서 그림책만 기증했다.
학교 선생님들을 만났다.
강이 보이는 복도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모두 같은 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마을은 대대로 대장장이 마을이니까요. 이 일을 하는 아이들의 부모들은 강인한 사람들입니다.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학교를 다녀갔지만
모두 사진만 찍고 말없이 갔어요. 단 한 명도 아이들과 지역 주민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심있게 물어보거나
지원한 적이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다음에도 와서 이 아이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다면 아이들이 밥을
먹기 전에 손을 씻을 수있는 수도 시설을 설치해주세요. 부탁합니다“
순간 내 마음에 겨자씨 한 알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은 전교생이 쓰는 낡은 부엌과 인도 정부가 설치한 우물을 보여주었다. 마중물을 부어 물을 올리는 옛날식
수동펌프 한 대가 덩그마니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인도 아이들은 손으로 밥을 먹는다. 볼일도 손으로 처리한다. 아이들이 손을 씻을 물도 시설도 공간도 모두
부족해서 배탈. 장염. 설사로 자주 결석을 하는데 여긴 병원도 없다.
선생님은 현지 사정보다 자기가 주고 싶은 것을 들고 온 선의로 가득찬 외국인에게 그림책보다 손 씻을 물이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어딘가 간절해보이는 그의 시선을 외면하면서 강물에 눈길을 두었다.
그후 싱잉볼을 가르칠 때면 우리가 쓰는 아름다운 치유의 도구가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왔는지 제작 과정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그럴 때마다 싱잉볼 마을 사람들과 그 요청이 생각났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선생님이 요청한 씨앗이 싱잉볼 수업시간에 이야기하고 글로도 쓰고 기도하는 동안 점점 자라 가슴에서 손발로 내려갔습니다. 손발로 움직이는 사랑에는 힘이 있는데 그만한 준비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2년 동안 싱잉볼을 가르치면서 비용을 모아 비행기티켓도 사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책도 사고 공사비도 마련해서 드디어 지난 3월 8일 학교와 부엌에 수도를 설치하러 인도로 떠났습니다.
싱잉볼 마을 초등학교에 벵갈어 그림책 선물
싱잉볼 마을의 초등학교는 인도에서도 매우 낮은 카스트에 속하는 씨족마을 학교에요. 이곳 아이들은 대부분의 공립학교처럼 그림책이나 이야기책을 볼 기회가 없습니다. 게다가 지방 벵갈어를 쓰기 때문에 서점에서는
그림책을 구할 수 없어서 콜카타에 있는 헌책방 거리에 들렀어요. 다행히 헌책방을 돌아다닌 끝에 몇 군데에서
벵갈어 그림책을 80권 정도 살 수 있었어요. 헌책들이라 정가의 절반 정도에 책을 구해서 기뻤고요.
다시 반나절이 걸려 싱잉볼 마을로 찾아갔어요.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오후였습니다.
학교 앞에는 아름드리 큰 나무가 있고 뒤로 강이 흐르고 마을 안에 80개의 싱잉볼 공방이 있는데, 중앙에
초등학교가 있어요. 가난한 마을 사람들은 강가에 나와 목욕을 하고 빨래를 하는데 비닐 봉지와 쓰레기들이
떠다니며 오염이 심해서 안타까웠어요.
학교에 들러 선생님들을 먼저 만나뵙고 책을 전달했습니다. 2년 전에 기증한 책들도 보여주셨는데, 표지 한 장
찢어진 곳 없이 잘 관리되고 있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전교생에게 책을 돌려서 읽게 한다는데
아이들이 이미 보유한 책들은 여러 번 읽은 터라 새 책을 매우 반가워했어요.
그림책을 처음 본 저학년 아이들은 매우 흥분하고 기뻐했어요. 그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인드라 전차 위에 올라 탄 아르주나가 아수라에게 활을 겨누는 '마하바라타' 서사의 한 장면을 보고 들뜨고 흥분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어요.
TV가 없는 데다 그림책이라곤 처음본 아이들의 설레는 얼굴들이 책도 꿈도 이야기도 환상도 마실 물과 빵만큼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죽음앞에서 떠올리고 싶은 순간
이튿날 수도공사 하는 날 아침, 땅을 파는 기계가 대도시에서 왔고, 별다른 구경거리가 없는 마을 사람들이
학교로 몰려들었어요. 선생님과 아이들, 마을 어른들이 보는 가운데 기계 앞에서 코코넛과 꽃을 바치며 사고없이 공사가 잘 진행되게 해달라고 기도드렸어요. 그리고 후원금을 보내놓고 기다려주신 분들을 떠올리며 감사하다고
마음으로 함께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첫 삽을 뜨고 땅속으로 드릴이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암반을 만나 바위가 깨지면서 땅 속에서 돌가루가 안개처럼 솟았올랐어요. 땅을 깊이 팔 수록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빨리 물이 나오길 바랬어요.
청년들이 보호장비 없이 땅을 파서 쇠파이프를 넣고 고정하는 일을 맨손과 맨발로 했습니다. 땅거미가 질
무렵에는 지쳐 보여 지켜보는 것이 미안할 정도였어요.
기다리다 해가 져서 숙소로 돌아갔어요. 방에 누워있을 때도 물을 찾아 땅을 파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어요.
다음날 점심때 드디어 지하 280m 아래에서 물이 솟구쳤어요. 물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탄성을 지으며 박수를 쳤습니다. 발을 적시며 물이 흐르고 아이들이 환하게 웃습니다.
죽음 앞에서 이 순간을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다가와 조심스레 하얀 수도꼭지를 돌려봅니다. 맑고 깨끗한 물이 쏟아집니다. 아이는 투명한 물이
신기한 듯 손을 갖다댑니다. 조그만 아이의 입이 놀라움으로 벌어집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히 그냥 쓰는 깨끗한 물이 인도 15억 인구 절반 이상에겐 너무 큰 비용을 들여야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싱잉볼을 만들어 온 마을 전체가 먹고 사는 이곳도 그랬습니다.
떠나는 날 마을 대표가 후원자들의 이름을 모두 쓴 현판을 대리석에 새겨 달아주셨습니다. 현판 마지막에 이런
문구를 적었습니다,.
[한국싱잉볼학교와 이 마을은 싱잉볼로 깊게 상호 연결되어 있습니다.
싱잉볼을 만드는 분들에게 사랑과 존경과 감사를 드리며 아이들을 위해 이 물을 기증합니다.]
이렇게 긴 시간이 흐르며 이 마을 전체가 제 마음에 마치 고향처럼 들어왔고, 저는 어느새 마치 도시로 돈벌러
갔다가 금의환향한 마을 사람들 중 한 명처럼 공동체에 받아들여졌습니다.
그곳에서 돌아온 뒤 책걸상없이 마대자루 위에서 공부하는 유치원과 저학년 아이들을 위해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아주는 일. 그리고 싱잉볼 공방의 열악한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쇳가루와 석탄으로 폐가 상당히 좋지 않음)
부분을 아시안프렌즈와 함께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