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표지가 왜 이렇게 까맣게 나왔지...
소액이지만 이제야 현금이 좀 생기고 있다.
1월이면 또 빚잔치 하고 손에 쥔 것 없겠지만
없으면 없는대로 주식과 코인, 금, 현금까지 다양하게 분산투자해 보려고 한다.
잡다한 지식들이 어느 순간 입체적으로 그려질 때가 있다.
상상이든 환상이든 예상이든 예측이든 허상이든...
앞으로 경제는 계속 어려울 것이고 국가가 보증하는 통화는 힘을 잃어가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각국의 중앙은행도 정부와 따로 노는데
슬슬 기업과 개인으로 돈의 힘이 이동하지 않을까 싶다.
소위 말하는 암호화폐와 전통적인 화폐였던 금이 부각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코로나 때 사놨던 책을 이제야 읽는 중이다.
금이 어떻게 전통적인 자산으로 자리를 잡아왔는지 시간적 순서대로 서술하고 있다.
통화량이 많아 오히려 은이 더 가치가 높았던 때도 있었다고 하니
전통은 전통대로, 변화는 변화대로 흐름을 잘 살펴야겠다.
아, 소비만 하던 제국의 몰락(로마와 스페인 정도?)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미국은 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금도 사자.
2/2
와 정말 오랜만에 완독.
세계 경제가 더욱 힘들어질 거라 생각하고 살 궁리를 하고 있는데 머릿속은 복잡.
대출 낀 부동산만 2채 있고 현금이 없는 지금 뭘 할 수도 없음.
그나마 내년부터는 소액이나마 현금을 운용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답답...
금 얘기를 가볍게 읽어보려 했는데 결국 세계 경제와 연결. 환율 얘기를 중심으로 마무리 하게 됨.
중국 저자라 그런지 위완화... 중국뽕이 좀 느껴짐.
사실 중국이 많이 크긴 했지...
아무튼 위기에서 금이 꽤 든든한 보험이 될 거라 생각함.
굳건하게만 느껴지는 달러가 사실은 그냥 신뢰 기반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함.
금화 은화에서 금본위제를 중심으로 한 화폐를 거쳐 달러 중심으로 한 화폐체계에서 우리는 살았었음.
그런데... 그 화폐체계의 중심이 되는 달러가 무너지고 있음.
지금의 화폐 체계는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음.
결국 사람들은 또 다른 형태를 찾을텐데...
또 여러 우연과 반목과 알력들이 만들어 내는 흐름 속에 던져지겠지.
암호화폐가 의외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아니면 아예 사라지거나.
결국 가장 믿을만한 건 일단 금 밖에는...
현금 생길 때 일정 비율대로 계속 사둘 생각임.
33. 금의 특성을 깨달을수록 사람들은 금이 화폐의 기능을 담당하기에 탁월한 매개체라는 사실을 체감했다. 금은 보관하기 편리하고 쉽게 파손되지도 않는다. 또한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그 존재를 알고 최고의 가치를 지닌 매개체로서 널리 사랑받는다.
37. 금과 은의 공급량이 수시로 변하고 이로 인해 가치의 변동이 극심해져 이 제도도 매우 불안정했다.
45. 거대한 제국의 응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통일된 화폐가 필요했다./ 크로이소스보다 다리우스 1세가 한 수 위였다. 그는 금화 앞면에 제국 수도의 상징이 아니라 자신의 초상을 새기고 '다레이코스'라고 이름 붙였다. / 다리우스 1세야말로 가장 진정한 의미의 금본위 화폐 제도를 수립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79. 네 번째 십자군 동정은 비잔틴의 상업적 지위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고, 지중해 무역 구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81. 얼마 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기고 천 년 고성의 이름을 지금의 이스탄불(이슬람의 성이라는 뜻)로 바꾸었다.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천 년 이상 이어온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의 소멸을 의미한다.
85. 이 시기 서방에서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신대륙 발견 등 역사적인 3대 사건이 일어났다.
88. 사료를 살펴보면, 1400년에서 1500년까지 서유럽 경내의 상품 물가는 20~50% 하락했다.
91. 15세기, 중국의 해상능력은 유가사상을 뒷받침하는 도구였다. 즉, 큰 규모와 첨단 기술을 갖춘 배는 국가의 위신을 선양하는 도구인 셈이었다.
96.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사람은 과감하고 결단력 있게 행동한다
102. 콜럼버스 일행이 큰 섬에 도착했을 때, 그는 현지의 원주민이 그 섬을 '쿠바(Cuba)'라고 부르는 것을 듣게 된다. 쿠바의 발음이 '지팡구(cipangu)'와 비슷하게 들려 콜럼버스와 선원들은 목적지가 가까이 있다고 믿었다. - 당시 일본을 부르던 말로 Cipangu - Zipangu - japan이 일본 명칭의 유래라고 함. (하나도 안 비슷한데...)
104. 콜럼버스가 살았던 시대에는 콜럼버스가 스페인과 전 유럽에 막대한 부(신대륙 발견)를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행운은 피렌체 출신 아메리고 베스푸치에게로 돌아갔다. 콜럼버스의 발견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아메리고는 콜럼버스가 갔던 곳을 자세히 사찰한 후 기행문을 한 편 썼다. 그는 그곳이 인도가 아닌 '신대륙'이라고 단정했다. 1507년, 독일 학자 발트제뮐러는 아메리고의 말을 근거로 신대륙을 '아메리카 대륙'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로써 콜럼버스의 착오는 정정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카리브 해 연안의 섬들을 '서인도 제도'라고 부르고, 아메리카 대륙의 언주민들을 인디언이라 부른다.
125. 다시 말해, 마젤란 해협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가 아니고 두 바다는 푸에고섬의 남쪽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3세기가 지난 후, 남극 대륙이 발견되어 사람들은 드레이크를 기념하기 위해 남아메리카와 남극 대륙 사이의 이 광활한 해역을 '드레이크 해협'이라 이름 붙였다.)
129. 스페인 해군은 함대가 나란히 전진하다 함수가 폭격을 가한 후 적함에 가까이 가 근접전을 펼치는 구식 횡대전술을 펼쳤다.
--- 왜 이런 걸 다 체크해 놨지... 뭔가 이상하네 ㅡㅡ
134. 스페인 사람들은 소비할 줄만 알았지 축적할 줄은 몰랐다.
135. 스페인은 금과 은을 생산 자본을 확대하는 데 이용한 것이 아니라 주로 다른 나라의 상품을 소비하는 데 이용했다. 이러한 행위는 오늘날의 미국과 매우 흡사하다. / 그러나 당시 스페인의 소비는 오늘날 미국의 소비와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 재정 적자에 허덕이는 미국은 각종 금융파생상품에 힘입어 조폐기에서 마구 찍어내는 달러로 구매력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162.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도가 세 개인 국가다. '삼권분립'의 방식에 따라 입법, 사법, 행정수도를 각각 케이프타운, 블룸폰테인, 프리토리아로 정했다.
169. 그러나 뜻밖에도 근대 역사상 최초의 자원 전쟁은 바로 금광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이것이 역사상 유명한 '보어 전쟁'이다.
175.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금광인 랜드 금광까지 관할하게 됨으로써 전 세계 경제의 숨골을 쥐게 되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황금으로 런던은 세계 금융업과 황금 거래의 중심지로 빠르게 부상했다.
182. 그레셤의 법칙: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기이한 현상 / 그는 금과 은 두 가지 화폐가 서로 배척하는 현상 이외에도 한 가지 금속 화폐의 유통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 완전화폐와 불완전화폐가 등가로 사용되는 것으 ㄹ발견했다.
196. 뉴턴의 보고서가 영국이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금본위제를 수립하도록 하는 결과를 불러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 뉴턴은 적어도 파운드와 황금 간에 적당한 비율을 수립했고 금본위제의 형성에 기초를 다졌다.
198. 전쟁은 과거의 것을 파괴하는 동시에 새로운 것의 탄생을 촉진한다.
204. 개인은행인 잉글랜드 은행의 핵심 이념은 바로 국왕과 왕실의 개인 채무를 국가의 영구 채무로 전환시키고, 국민의 세금을 담보로 국가화폐를 발행하는 것이다.
208. 국가의 신용만 튼튼하다면 금이나 은과 연동하지 않은 새로운 화폐인 지폐를 유통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
210. 1717년 새로 설립한 서방회사는 루이지애나의 상업독점권을 획득했다. 기한은 25년이고 회사 자금은 1억 리브르로 제한되었다. 이 회사는 프랑스 국민과 외국인에게 국채를 이용해 주식을 구매하도록 장려했다.
212. 프랑스는 금, 은화 시대에서 지폐 시대로 완전히 진입했기 때문이다. / '백만장자'라는 단어는 이 시대 프랑스에서 생겨난 말이다.
220. 지금은 당시와 같은 선의의 협력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협력의 분위기가 견고하게 정착해 있었다. / 이런 원조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고정 환율을 바탕으로 금으로 태환이 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많은 국가의 경제정책의 초석이었다.
225. 1914년 6월 28일,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부인이 병탄한 지 얼마 안된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암살되었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베어링 은행을 구제할 때의 협력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세계는 서로 총칼을 겨누며 전쟁을 개시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참전국들은 모두 금을 통제한 뒤 중앙은행으로 최대한 집결시켰다. 자유로운 주조와 태환도 불가능해졌다. 일부 국가는 군비 지출로 인해 늘어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대량으로 은행권을 발행했다. 각국은 금 수출을 제한하거나 혹은 금지하는 조치를 앞다투어 취했다. 따라서 금본위제의 기초인 금의 자유로운 태환이나 주조, 수출은 크게 위축되었고 전형적인 금본위제는 파괴되었다.
234.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점차 부상하기 시작한 미국은 전 세계 금융 질서를 주도하기 시작한다.
235. 195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는 세계 경제와 무역, 금융 구도를 지탱하는 3대 축이다. 그중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은 브레턴우즈 통화체제에서 비롯되었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전후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체계를 말한다.
239. 케인스의 중앙은행은 방코르를 인출해 무역적자를 해결하려는 채무국으로부터도 이자를 받고 방코르 채권을 축적한 채권국에서도 이자를 받을 계획이었다. 이 설계는 채권국과 채무국에 동등하게 조정압력을 행사해 채무국은 국내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게 하고, 채권국은 인플레이션 대가를 치르더라도 국내 수요를 늘리게 하는 것이다.
242. 그리하여 회의에서 각국은 완전히 독립된 기구, 즉 국제부흥개발은행이라는 세계은행을 만들어 장기융자를 제공하는 데 동의했다.
새로운 협정을 통해 미국의 달러는 고정 환율에 따라 금과 태환이 가능한 유일한 화폐가 되었다. 금 1온스당 35달러로 고정되었고, 여타 국가의 화폐는 달러와 연계했다.
251. 1960년 10월, 런던 금값은 투기꾼들의 작전으로 한때 온스당 40.60 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자 서방 국가들이 달러로 금을 대량으로 구매했고, 그 결과 달러위기가 일어났다. 미국의 금 보유고는 178억 달러까지 급감했고 신용도도 크게 하락했다.
252. 골드 풀의 주요 목표는 금값이 온스당 35.20달러를 초과했을 때 더 이상 오르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다. 35.20달러는 뉴욕에서 운반해 온 운송원가가 포함된 가격이다.
253. 그러나 베트남 전쟁이 계속 악화되어 FRB는 달러 공급량을 계속 확대했다. 범람하는 달러는 빠르게 골드 풀의 재산 대부분을 잠식했다. 대세가 이미 기울었다고 판단한 프랑스는 먼저 골드 풀을 탈퇴했다. 뿐만 아니라 달러의 구매력이 나날이 떨어지자 프랑스 정부는 소유하고 있던 달러를 금으로 바꾸었다. 1962년부터 1966년까지 프랑스는 FRB에서 근 30억 달러에 달하는 금을 파리로 운반해 갔다. 1967년 11월 말, 골드 풀은 총 10억 달러어치, 약 900톤에 이르는 황금의 손실을 보았다. 이때의 달러는 세계적인 신용 위기에 처해 있었다.
259. 만일 달러를 금으로 교환하는 것이 계속 어렵다면 황금만큼 믿을 만하지만 달러보다 나은 자산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둥근 것을 네모로 만드는 것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262. 시뇨리지의 전통적 정의는 화폐의 액면가와 화폐 제조 원가 사이의 차액을 말한다. 죽, 일단 사람들이 불완전 화폐를 받아들이면 발행자는 화폐 발행의 이윤을 얻게 되는데 이 이윤을 통상적으로 시뇨리지라고 한다. 거시적 의미의 시뇨리지는 화폐 발행을 통해 화폐를 소지한 사람의 화폐가 실질적으로 절하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화폐를 소지한 사람에게 세금을 징수하는 것과 같다.
266. 해박한 경제제식을 갖춘 자크 뤼에프의 도움으로 드골과 그의 참모들은 금값이 온스당 70달러까지 상승해야 하며 만일 그렇게 된다면 전 세계의 화폐성 황금은 달러롸 환산했을 때 두 배 가격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 그러나 드골이 주도하는 해결 방안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했다. / 드골의 방안은 서방 세계에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은 세계 1,2위의 황금생산대국 남아프리카와 구소련에게 단번에 큰 부를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275. 1971년 8월 9일, 영국의 경제대표가 미국 재무부를 찾아와 30억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것은 닉슨이 최후의 결단을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6일 후, 즉 8월 15일 일요일 저녁, 닉슨은 대통령 휴가지 캠프 데이비드에서 소위 '신경제정책'을 발표했다. / 미국은 달러와 금을 연계시키기로 한 국제적인 약속을 더 이상 이행할 힘이 없습니다. / 인류는 마침내 진정한 의미의 순수한 달러본위제 시대를 맞이했다. / 인류 역사 이래 전 세계는 드디어 법정 화폐 시대에 진입했다. / 그러나 그들은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구속력이 없는 달러와 변동환율제가 미국에게는 더 이득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279. 중심환율: 각국 통화의 대미 달러 기준 환율
281. 자메이카 협정: 과거 금과 관련된 모든 규정을 삭제하고 금은 더 이상 화폐의 가치를 정하는 표준이 아니며 금의 공식가격을 폐지하여 시장에서 자유롭게 금을 사고팔 수 있다고 선포했다. 또 국제통화기금에 반드시 금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규정도 삭제했다. / 이후 전 세계 화폐체계는 킹스턴 체제로 진입했다.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통화질서는 세 단계로 구분된다. / 첫 단계는 / 브레턴우즈 체계다. 두 번째 단계는 / '스미스소니언 체제'다. 세 번째 단계는 / 킹스턴 체제로 자유변동환율제가 정착되었다. 킹스턴 체제에서 달러는 더 이상 금과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288. 인류 역사상 이렇게 심각하게 미래를 저당 잡힌 나라는 없었다. 세계가 불안에 떠는 이유는 미국이 자국민의 재산만 볼모로 삼은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 국민의 재산까지 볼모로 삼았기 때문이다. / 채무의 화폐화로 인해 미국이 지폐를 얼마나 찍어내느냐에 관계 없이 다른 국가들은 이를 받아들여야 했다.
290. 고삐 풀린 달러는 결국 전대미문의 시장과열을 불러일으키고, 그 결과 금융 경제에서는 붕괴가 잇따를 것이다. "우리는 결국 모두 죽는다"는 케인스의 풍자적인 말은 앞으로 하나의 예언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 금은 예전처럼 응분의 자리를 되찾을 것이다.
311. 17세기 이후 경제의 거대한 발전이 반드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영국과 미국 두 나라는 오히려 강도가 약한 디플레이션 상태에서 산업혁명을 완성했다.
312. 1900년 이전, 당시 세계의 모든 산업화 국가라 할 수 있는 50여 개 국가가 금본위제를 시행했다.
314. 처음 금본위제를 채택한 영국도 뉴턴의 수학적 기초가 이 제도의 탄생을 앞당겼을 뿐 처음부터 이 제도를 찬성한 것은 아니었따. 금본위제는 진정한 시장경제가 발전하면서 인류가 선택한 산물이고, 황금은 인류가 신뢰하는 성실한 화폐다.
315. 빌더버그 클럽: 미국, 유럽 제국에서 경제, 재계, 왕실 관계자들 약 100~150명이 모여 다양한 국제 정치 경제 문제를 토의하고 비밀리에 정책을 결정하는 모임.
321. 원유를 통제한다는 것은 모든 국가를 통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식량을 통제하면 모든 사람을 통제하는 것이고, 화폐를 통제하면 세계를 통제하는 것과 같다.
329. 일본의 거품 경제에 대해.
341. 양털 깎기: 양의 털이 자라는 대로 내버려 두다가 어느 날 한꺼번에 털을 깎아서 수익을 챙기는 것
343. 어느 나라의 화폐든 속도는 다를지언정 장기적으로는 모두 금에 대해 평가절하될 것이다. 그러므로 금은 근본적으로 국민의 재산을 보전할 수 있다.
356. 언제나 그랬듯이 황금이라는 '난세의 영웅'은 경제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부의 피난처'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