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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잃은 해동청 2
이윽고 지함이 고개를 들었다.
지함은 빙그레웃었다.
"어떻소? 내 나이 벌써 쉰이 넘었는데
무엇을 더 할수 있다고 나옵니까?"
송순은 자못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아주 좋은 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탄탄대로이니 어서 한양으로 올라가십시오."
지함의 말에 송순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긴,환갑이 지난 나이는 덤이라고 했다.
환갑을 넘어살기가 어려운 시절,
송순의 나이 이미 쉰을 넘기고있었다.
비슷한 연배의 화담 역시
죽음을 앞두고 있는상태가 아닌가.
"여보게. 늙은이를 놀리지 말게나.
내가 살면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산다고 그러나.
기껏 한두 해 어디 말단에서 봉직하다 세상을 뜨면
그걸로 족한것을, 탄탄대로라니…"
송순은 지함의 말을 그저 기분 좋으라는 덕담으로만
여기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런데도 몹시 기분이들뜨는 것이
표정에 역력히 나타났다.
"화담과 달리 출세를 꿈꾼 적도 있었네.
김안노가죽고 나서
고개를 북으로 돌려보기도 했지.
세상이흉흉하여 이를 바로잡으려면
나라도 한양으로올라가야 된다고 생각을 했었다네.
허나 그렇게 큰욕심을 내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이어지더군.
이젠 아예 꿈도 꾸지 않는다네.
어쨌든 자네, 제법 배포가 크구만그래."
"무슨 말씀이십니까?
면앙정 선생께서는 저보다도
더 오래 사실 분이십니다."
"점점… 아예 이 늙은이를 망령난 사람으로
몰아가는구만."
"허허허. 오래 산다는 데 뭐가 그리 싫으신가?"
화담이 껄껄 웃으며 끼어들었다.
화담이 유쾌하게말을 받았지만,
지함은 괜한 소리를 했다 싶어 후회가들었다.
"이보게, 화담 선생. 내 환갑 넘어 산 노인치고
망령들지 않은 늙은이를 보지 못했네.
창창한 이선비보다 내가 더 오래 산다니
나보고 망령이나들으라는 얘기가 아니고 뭔가 그래?"
자그마한 정자가 무너져내릴 듯 웃음꽃이 피었다.
지함은 정색을 하고 말을 이었다.
"분명히 아흔을 넘도록 천수를 누리실 겁니다.
되도록 말에 치이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말(馬)은양화(陽火)이니
선생님의 음수(陰水)와는 상극입니다.
허나 어쨌든 천수를 다 누리시고 떠날 것입니다."
"거 듣기에는 좋은 소리구만.
그러나 사람 목숨긴들 어디에 쓰겠소?"
"아닙니다. 선생님의 일은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지금까지는 일을 할 길을 닦아오신 것뿐입니다.
이후에 한번쯤 귀양갈 일이 생길지 모르겠으나
큰고생은 하지 않으실 겁니다.
명종과 썩 어울리는사주여서
대체로 왕과 가까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때저희를 모르는 척이나 마십시오."
"자네를 잠룡(潛龍)이라 이르는군.
너무 오래기다린 용이 급히 하늘에 오르다가 잘못돼
이무기나되지 않을까 걱정이군. 허허허."
화담도 송순도 껄껄 웃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을 어찌 알겠는가.
운명이란느닷없이 찾아와서
사람의 일생을 완전히 뒤바꾸어놓는다.
제 하고 싶은 대로,
제 생각대로만 살아가는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시에 찾아오는 운명을대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함이 사주를 짚는이유였다.
"하여간 모처럼 덕담을 들었으니 내 선물을 하나함세."
송순은 정자 한 켠에 놓여 있던 가야금을집어들었다.
손가락이 쉰 살 먹은 노인의 것답지 않게매우 고왔다.
그 손가락이 줄을 타자
고운 음률이잔잔히 흘러나왔다.
뒤란 댓잎이 가야금 음률을 타고 바스락거리는듯했다.
돌담의 이끼 하나하나까지 기나긴 잠에서깨어날 듯했다.
어디선가 두루미 한 마리가 날아와
연못가에 사뿐히내려앉았다.
두루미는 목을 길게 빼고 정자쪽을돌아보았다.
바람도 멎고 세월도 멎고 모든 것이 움직임을멈추고
가야금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일행은 하룻밤을 송순의 처소에서 지냈다.
**
정휴와 전우치, 남궁두는 부지런히 길을 걸어서
지리산으로 남명 조식을 찾아갔다.
조식은 산천재(山天齋)에 있었다.
"선생님, 저는 자성이라는 중이옵니다만
혹 산천재로 화담 선생이 오지 않으셨는지요?"
"화담의 제자요?"
"그렇지는 않으나 화담 선생의 제자를 압니다.
화담선생께서 돌아가시면서
그 제자에게 전해주라는 책이한 권 있는데,
아직 전하질 못했습니다."
"화담이 죽었단 말이오?"
"예. 지난 봄에 그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런데 화담이 여기에 오지 않았느냐고 묻는 건
또무슨 말이오?"
"예. 화담 선생님을 뵈었다는 사람이 있어서…"
"이상한 일이로군."
"저도 그게 이상하여 여기까지 찾아온 것입니다."
"죽은 사람을 찾아 왔다? 거참, 이상하군.
도대체스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 건지
난 알아들을 수가없소.
하여튼 아직은 이곳에 오지 않았소."
"허나 해남에서 며칠 전에 묵으셨다고 하니
근일에이곳에 오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곳에 묵으면서 기다려 보시오.
화담이온다면야 내가 더 반가울 일이고."
그렇게 해서 정휴 일행은 산천재 한 켠에 짐을풀었다.
이튿날 조식이 정휴를 불렀다.
"어젯밤 늦게 이 서찰이 왔소이다."
정휴가 조식의 서재로 들어가자
조식은 서찰 한통을 내보였다.
정휴는 조식이 내미는 서찰을 읽어보았다.
"자네에게 가려다가 몸이 몹시 불편하여
한양으로올라가네.
인연 닿는 대로 다시 옴세. 화담"
서찰은 분명히 화담이 보낸 것이었다.
화담이 살아 있다는 것인가. 그럴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서찰은 무엇인가,
정말 화담이 보낸것이란 말인가.
"보시오. 화담이 보낸 편지요. 스님 말이 틀린것이오."
"아닙니다. 틀림없이 제가…"
그러나 정휴는 뒷말을 더 잇지 못하고 입을다물었다.
서찰의 글씨가 틀림없이 화담의 필체였기때문이었다.
정휴는 하는 수 없이 남궁두와 전우치에게
그 말을전했다.
"우린 인연이 없는가 보네."
남궁두와 전우치는
화담을 만날 기회가 없어졌다는사실에
몹시 서운해 했다.
"아니, 그런데?"
"왜 그러나?"
"누가 내 바랑을 만졌나?"
"글쎄. 모르겠네. 우리가 자는 새에 누가들어왔었나?"
정휴는 얼른 바랑을 집어들어 안을 살펴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홍연진결>이 없었다.
"<홍연진결>이 없어졌네."
"무어라고? <홍연진결>이 없어졌다고?
"그렇다면누가 훔쳐갔단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걸 어쩌나?
홍성에서도 그 고생을 해서 다시찾았는데..."
정휴의 안색이 금세 새하얗게 변했다.
"가세. 빨리 한양으로 가세.
화담 선생이 한양으로간다고 했으니
일행은 틀림없이 가회동 지번 형님댁으로 갈 것일세.
가서 빨리 전하세.
화담 선생이살아 계시다면 그분에게 알려야 하네.
그래야 책을찾든지 다시 쓰든지 할 게 아닌가."
정휴가 두 사람을 잡아끌었다.
"잠깐. 침착하게 생각해 보세.
남명 선생께 이사실을 말하고
도움을 청하는 게 순서 아니겠나?"
"그러세.
그러면 학인들을 탐문해서 혹 찾아낼 수있을지 아는가?"
그래서 세 사람은 조식에게 책을 도둑맞았다고고했다.
" 책을 잃어버렸다?"
"예. 화담 선생이 이지함 선비에게 전해주라는책입니다.
<홍연진결>이라고 합니다."
이지함이라면 화담 하고 함께 다닌다는 선비말이오?"
"그렇습니다."
"예끼, 이 사람들. 늙은이를 놀리지 마시오.
이제보니 영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로군.
아니 화담이 그선비와 함께 다닌다면
구태여 책을 당신들한테 전해달랄 게 뭐가 있소?
자기가 직접 주면 될 것을…"
" 화담 선생님이 돌아가시면서 제게…"
"그만들 두시오. 어서들 나가시오.
머리만혼란스럽소.
이거 원, 도깨비 장난하자는 것도아니고…"
조식은 역정을 내며 정휴 일행을 물리쳤다.
정휴일행은 하는 수 없이 산천재를 물러나왔다.
정휴의 머리 속은 의구심이 가득 차 터질지경이었다.
"뭔가 있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럴 리가 없네.
당장한양으로 달려가세. 가서 알아보세."
정휴는 진실을 꼭 밝히고야 말리라는 오기가 솟구쳐올랐다.
"그러세."
세 사람은 또 허탕을 치고 산천재를 떠났다.
**
이튿날,
화담 일행은 송순과 함께 지리산 산천재로향했다.
지리산에 있는 산천재는 영남의 선비들이 모여
시론(時論) 도담(道談)을 나누는 곳이었다.
그곳에주석하는 남명 조식은 학덕이 워낙 높아
경상우도의퇴계 이황',
경상좌도의 남명 조식'으로 불리며
영남의 2대 거유(巨儒)로 손꼽혔다
더불어 호남까지 명성이 뻗쳐 호남의 선비들도
산천재에 많이 찾아들었다.
호남의 대유학자인기대승(奇大升) 같은 이도
도반이 그리우면 찾아오곤했다.
면앙정 송순도 가끔 들러 한양에서 흘러내려온
소식을 들었다.
화담 일행이 산천재에 오르자
조식은 깜짝 놀라서뛰어나왔다.
"아니, 몸이 불편해서 한양으로 간다더니?"
"괜찮아졌다네. 예까지 와서 자네를 못 보고 가려니
억울해서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더군.
그래 억지로걸음을 옮겨보았네."
"하여튼 잘 왔네. 자네들은 잠깐 여기 있고,
화담자네만 잠깐 이리로 와보게."
조식은 화담의 소매를 잡고 그의 처소로 들어갔다.
"어제 어떤 중이 여기에 왔다 떠났는데,
화담자네가 죽었다고 하더군.
자기 손으로 시신을 직접파묻었다는 걸세.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남명, 소미성(少微星)은 안녕하신가?"
"왜 딴소리인가?"
"소미성도 보아 하니 때가 되어 가더군."
"소미성을 보고 예까지 내려온 게로군.
나도태사성을 보았다네."
"저런,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다더니
이렇게들키고 마는군."
"허나 소미성은 아직 살아 있지만
태사성은 이미빛을 다 잃었네.
그렇다면 자네 이 몸이환영(幻影)인가?"
"남명은 천문만으로 수를 누리시는가?
내겐천수(天壽)에 지수(地壽)까지 있다네. 허허허."
화담과 조식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껄껄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는 산천재로 나왔다.
조식이 지함과 박지화를 불렀다.
"허허허. 들어오시오.
영남과 호남의 걸출한인재들이 여기 다 모여 있소
면앙정, 자네도 어서들어오시게."
화담 산방에 비하면 산천재는 시설이 훌륭했다.
청기와 지붕에 반들반들한 마루,
시원한 발에 이르기까지
산천재는 여러 사람이 드나들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번듯번듯했다.
화담이 먼저 지함과 박지화를 조식에게 소개했다.
뒤이어 조식은 산천재 학인들을 차례로 소개했다.
"선생님, 그간 별고 없으셨는지요?"
조식이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하는 중간에
홍안의선비가 앞으로 나서면서
화담에게 안부를 여쭈었다.
"그래, 고맙군."
"서찰은 받아서 잘 처리했습니다."
"무슨 서찰을 또 보냈나?"
조식이 화담에게 물었다.
"자네에게만 서찰을 띄울 수 있나.
정개청, 이사람이 내 제자 아닌가."
"저런, 그랬었지."
정개청(鄭介淸)은 기축년(己丑年, 1529년) 생.
이제열여덟이었다.
나주 금성산 아랫마을에 살면서 아전노릇을 했다.
초시에 합격하기도 했으나 벼슬길이열리지 않아
아예 세상을 등졌다.
그는 제주로 건너가 한라산에 토굴을 파고
용맹정진하였다.
그러다가 머리를 삭발하였다.
중이 된것이다.
그뒤 여기저기 떠돌면서 풍수지리를 익혔는데
팔도 지리를 모르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던 중 보성에서 한 여종을 만나
가사를벗어버리고 장가를 들었다.
그때부터 다시 유학에뜻을 두어 기대승을 찾아갔다.
그러나 기대승은
이학보다 기학에 기울어 있는 그를
받아들이지않았다.
그 뒤 그는 박순을 찾아갔다.
박순은 화담을찾아가보라고 일렀다.
그래서 화담 산방에 입실, 두해를 머물다가
산천재로 내려온 것이었다.
정개청이 고개를 숙이면서 뒤로 물러났다.
"이 사람은 서치무, 역술에 관심이 많다오.
주역에푹 빠져 있지요."
조식은 마지막으로 서치무를 소개했다.
역술,주역에 관심이 많다는 말에
지함은 서치무를 자세히보았다.
기골이 장대한 젊은 선비였다.
텁수룩한수염에 부리부리한 눈이 사내다웠다.
선비라기보다힘께나 쓰는 장사 같아 보였다.
조식이 한양 이야기를 꺼내면서
화담, 송순,박지화, 지함이
모두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화가 점점 무르익어가자 지함이 한마디 나섰다.
"남명 선생님. 이 좋은 산천재에서 학인들과 더불어계시니
재상이 부럽지 않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화담이 호랑이 한 마리를끌고다니는군.
솔직히 고백함세. 내가 세상에 나가지않는 것은
세상이 싫어서가 아닐세."
"임천(林泉) 선비께서 한양 이야기에
귀를기울이시는 것은 어떤 이치입니까?"
"이거 늙으막에 할퀴고 찢기고 상처만 나게되었구려."
화담이 조식에게 농을 던졌다.
"변명을 하지 않으면 큰일나겠구먼.
나는 내 학문이완성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그래서 이렇게산천재를 열고
팔도의 유생들을 초청하여 이야기를듣는 것이라네.
내가 강의를 한다고 하나 그것은 내게강의를 하는 것이오,
내가 무엇을 말한다고 하나 내게하는 말에 지나지 않네."
"아직 공부가 덜 된 때문이옵니까?"
"아무렴. 그러니 지리산에서 속리산으로
자네스승과 어울려 쏘다니기도 하지 않았겠는가.
아직은나 하나 깨우쳐내기도 어렵네.
그게 임천하는우리네의 속사정이라네.
그러다 보니 한양에서들려오는 소식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네.
왜냐하면한양도 늙은 이 몸이 살고 있는
내 나라 땅이기때문일세.
자네도 그렇지 아니한가?"
"그만 하세
거유 남명이 그렇게 변명하지 않아도흠날 것 없다네."
다시 화담이 나서서 논쟁을 말렸다.
그러나 지함은 모를 일이었다.
지함, 화담, 송순, 조식, 남명, 정개청, 서치무…
다 벼슬길을 뒤로 하고 임천에 뛰어든 사람들 아닌가.
지함의 길은 숲이나 계곡 같은 곳에 있지 않았다.
그의 길은 백성 사이로,
제 목숨 하나 부지하고살기에도 버거운 사람들
사이로 나 있었다.
산천재에서는 화담과 조식의 토론이
사흘이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
학인들도 자리를 뜨지 않고
대학자들의 도화 법담에 귀를 기울였다.
**
한양에 올라간 정휴 일행은 가회동으로 달려갔다.
"지번 형님, 혹시 지함 형님이 돌아오지않았습니까?"
정휴는 지번에게 인사를 할 사이도 없이
지함이왔느냐는 물음부터 던졌다.
지번과는 홍성 시절에만나고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아니, 자네 정휴로군. 언제 입산했는가?"
"몇 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함 형님은?"
"급하긴. 지함이는 왜 찾는가?
유람 떠난 지가 벌써언젠데?"
"제가 해남으로 지리산으로 찾아다녔습니다.
지리산에서 화담 선생이 몸이 안 좋다고
한양으로갔답니다."
"하여튼 화담이든 지함이든 아무도 안 왔네."
"우리가 너무 빨리 온 모양일세."
남궁두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지함이 오기로 했다면 사랑에 묵으면서
며칠기다리게나.
걸음이 늦어도 하루 이틀 후면도착하겠지.
그런데 지함이는 왜 그렇게찾아다니는가?"
"예. 화담 선생이 돌아가시면서…"
"화담 선생이 돌아가시면서라니? 그게 무슨말인가?"
"제가 금강산에서 나와 송도에 가보니
화담 선생이돌아와 계셨습니다.
몸이 불편해서 그냥돌아오셨다구요.
그러다가 얼마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사월 초닷새 청명일이었습니다."
"무슨 소릴 하는 겐가? 사월 초닷새 청명일이라면
그때는 화담 선생이 우리집 별당에 계셨다네.
한사흘인가 내방객도 모두 물리치고
그 방에 혼자계시면서 수도를 하셨다네."
"혼자 계셨다구요? 그런 다음에는요?"
"사흘 만에 별당에서 나오셔서는 수원 쪽으로
길을떠나셨다네.
그땐 이미 청명일이 지난 때지.
그러니 자네 말이 이상하지 않은가?"
"허 참. 저 역시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군요.
답답하기만 할 뿐입니다."
"답답하긴 이 사람아. 내가 답답하네그려.
화담을본 이가 어디 나뿐이던가?"
정휴는 머리 속이 뒤죽박죽된 듯했다.
"형님, 가겠습니다."
"아니 지함이를 만나야겠다면서 가긴 어디를 가나?"
"송도로 가겠습니다.
가서 화담 선생의 묘를 파보겠습니다.
화담 선생의 묘를 열어 제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제가 묻은 분이 화담선생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었는지…"
정휴는 씩씩거리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답답함을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전우치도남궁두도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답답해 하는 정휴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도 참게나. 며칠 있으면 이리로 올라온다면서?
그때 만나서 화담인지 아닌지
얼굴을 직접 들여다보면될 게 아닌가?"
"그러세. 정휴. 그게 좋겠네.
아, 도를 닦는다는스님이
그렇게 조급해서야 되겠는가?
마음을가라앉히고 기다려보세."
하는 수 없었다.
기다리면 모두 밝혀질 일이었다.
답답한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송도로 달려가고싶었으나
정휴는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정휴, 남궁두, 전우치 세 사람은
지번과 세상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랑에서 화담 일행이 도착하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