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4:6,7 / 생명의 잠재력
요한복음 14장 6,7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기독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 중에 '생명(life)'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가리켜서 '생명의 종교'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생명’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 생명 또는 삶은 생물이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의 과정 및 상태를 말하나 학술적으로 생과 사의 경계는 확실치 않아 계속 논쟁 중이다. 반면에 성경은 생명을 세 가지로 말씀한다. 바이오스(헬); 육체와 함께 살아있는 동안의 존재에 관한 생명. 조에(헬); 육체에 매이지 않는 영원한 생명. 푸쉬케(헬); 한 개인에게 국한 된 제한된 생명.) 성경은 육체적, 과학적 의미의 생명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혼을 불어넣으신 생명...(창2:7)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즉 영혼을 가진 생명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유한한 육체의 생명을 넘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우리는 깊이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주께서 말씀하신 이 ‘생명’에 담겨 있는 생명의 능력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독교는 말씀이 단지 글이나 말씀으로만 머물러 있는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종교가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생명의 진리가 되시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풍성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종교입니다. 다시 말해서 머리로만, 지식으로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진리가 내 삶과 전 인격과 인생을 새롭게 만드는 종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진리, 복음의 내용을 지성적,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인식하기를 강조하고, 윤리 도덕적인 내용으로서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믿는다고 신앙고백을 할 때, 그 고백 안에는 곧 말씀이 내 생활을 변화시키고, 나의 전인격이 변화되어,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영원한 생명의 삶, 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자로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음을 세상에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늘 우리에게 세상과 구별된 삶, 거룩한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거룩; 구별되었다. 남과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구별되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라는 의미이다.)
잘 알고 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삶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단순히 글로만, 말씀으로만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참 생명의 진면목을 볼 수도 체험할 수도 없습니다.
깨달음이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해, 성경적인 지식을 쌓는 일에만 중점을 두게 되면,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종교인이 될지는 모르지만, 거기에는 우리 삶 전체에 적용되는 생명의 변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머리로 알고 깨닫고 믿으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순서가 반대가 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롬10:17)입니다. 즉 우리의 믿음이란 세상은 결코 줄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그런 차원, 하나님나라의 영역에 우리가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영적인 차원입니다.
분명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달리 영적 차원의 삶이 있습니다. 과학이 증명할 수 없고 인간의 지식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영적 차원...바로 우리에게 주신 새 생명이 가진 생명의 능력입니다.
(롬1:16)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이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다만 우리는 아직 온전히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기에 잠재력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잠재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속에 숨어 있는 힘.’이라고 정의합니다. (사실 잠재력이라는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적 용어로 사용; 가능적인 것이 발전하기 이전의 단계인 잠재력이 가능성을 실현시킨 단계를 실제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불렀다. 종자와 꽃의 예를 들면, 아직 성장하지 않은 종자는 잠재력이며, 그 종자가 꽃이 된 단계는 실제라는 것)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받은 생명의 잠재력은, 인간이 가진 숨어있는 어떤 능력이나 힘이 아닙니다. 우리의 잠재력은 전적으로 위로부터 오는 능력이며, 이 능력이 믿음 안에서 우리의 삶 가운데 실현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성화(성도가 일생을 살면서 그의 신앙적 삶이 거룩하게 되어가는 과정이나 행위를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힘을 통하여 인간이 성결하게 되는 선물이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래서 신학자 바빙크는 ‘성화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구별된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설교를 들을 때 감화 감동이 있다가도 교회를 벗어나면 또다시 세상적인 삶에 습관처럼 빠져 버리는 태도를 고치도록 우리는 열심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해는 갑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는, 최첨단의 과학과 문명 속에서, 엄청난 인간능력이 발휘되고 있는 것을 직접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없어도 다 잘해 나갈 수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게다가 지금의 시대흐름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의 영들’이 저들의 모습을 당당하게 들어 내놓고 전파하고 있습니다. 오컬티즘, 신비주의는 세상과 사람들이 적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는 사악한 계교의 하나라고 하는데,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것들, 오컬티즘, 신비주의, 나아가 사탄주의까지도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나이키, 사탄의 운동화가 화제가 된 일이 있다. 그 자세한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은 설마하고 지나치지만, 그 실상을 보면, 래퍼 닐 라스 엑스가 ‘나이키 에어맥스97’을 666켤레 한정판으로 협업제작하여, 1018달러(약115만원)에 판매하여 완판 된, 이 운동화는 사탄의 별을 상징하는 펜타그램 장식과 숫자 666과 NUKE10:18을 그려 넣었으며, 에어쿠션에는 실제 사람의 피를 넣었다. (눅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신발을 신는 자들이 사탄이라는 것.)
이런 시대적 흐름과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믿는 자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능력, 그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하며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무한한 생명의 잠재력을 믿어야합니다. (요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어려운 구절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보다 큰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그리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고 훈련하여 발휘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성경을 늘 가까이 해야 합니다. ‘성경은 사람에 관한 하나님의 방식을 계시한 것이며 이해와 총명을 주기 위하여 의도된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을 이해하게 만들며 지식을 깊게 하며 총명을 가지게 한다.(로이드 존스)’ 이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능력, 그 잠재력에 대한 새롭고 올바른 인식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무한한 가능성, 생명의 잠재력을 소망 가운데 날마다 개발하고 노력하여 주 안에서 자랑함이 넘치는 감격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또 말씀합니다. (요14:14,15)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이 말씀은 믿음대로, 믿음 안에서 말씀을 생활 속에 활용하라는 것이며, 동시에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란 ‘주님의 능력을 붙잡는 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며, 말씀을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 가운데 실행해 나갈 때 우리는 놀라운 기도응답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잠재력은 인간의 능력과 힘과는 그 차원이 다릅니다.
(요14:16-18)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능력, 그 잠재력은, 내 노력과 지혜에 근본을 둔 것이 아니라, 보혜사 성령이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놀라운 힘을 발휘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성령 하나님을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불같은 성령, 바람 같은 성령, 기름, 물, 비둘기, 또 말씀을 성령의 검으로 표현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능력이고 힘입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능력을 덧입혀 주십니다. 우리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그렇게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를 지키십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우리의 능력과 힘의 근원이 되시는 성령 하나님이 뒤에서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늘 어려움과 고통과 낙심과 좌절이 있습니다. 넘어지고 주저앉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가 낙심하고 좌절하고 무기력해졌을 때에, 보혜사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인도하시는 영으로, 확신을 주시는 영으로, 또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영으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잠재력, 생명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우리 안에서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또한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 이 비전, 이 소망을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가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생명의 능력, 그 놀라운 잠재력을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가슴에 품고,
생명의 잠재력을 개발하고 발휘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승리의 삶을 이루어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