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 장군 팔만대장경 수호 공적비>, 해인사
1984년 3월 5일 미국 배우 윌리엄 파월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34년 출연작 〈그림자 없는 남자〉를 통해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대실 해밋의 동명소설 〈The Thin Man〉을 원작으로 한 이 추리 코미디 영화는 시리즈로 구상되어 4번이나 더 제작될 만큼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은퇴한 형사 닉과 노라 부부의 부창부수 좌충우돌과 주고받는 언사는 관객을 즐겁게 한다. 반쯤 알콜 중독자인 닉이 현안만 발생하면 날렵하게 깨어나 민첩하게 행동하는 장면은 관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림자 없는 남자〉가 폭발적 호응을 얻게 된 데에는 닉 역의 윌리엄 파월과 노라 역의 미르나 로이가 보여준 명연기도 큰 밑거름이 되었다. 두 사람의 찰떡 같은 콤비 플레이는 극중 닉과 노라에게 실존의 부부 이상 가는 생동감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무릇 공동체는 구성원끼리 ‘죽’이 맞아야 대업을 이룰 수 있다. 닉과 노라가 그랬고, 파월Powell과 로이Loy가 그랬다. 하지만 1954년 3월 5일 타계한 김영환金英煥 대령의 생애는 그렇지 못했다. “생각이 어울리는 명령권자를 만났으면 그의 삶이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김영환 대령은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나라의 인물’이다. 해인사 일주문으로 다가가는 도중에 〈김영환 장군 팔만대장경 수호 공적비〉가 있다. 오가는 관광객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입에는 ‘문화’를 달고 살지만 실존 생활은 ‘배금’에 철저히 물들어버렸으니 어쩔 것인가.
1951년 9월 18일 편대장 김영환 대령에게 가야산 폭탄 투하 명령이 떨어진다. 김영환 대령이 긴급 출격한다. 폭격기 3대가 뒤따른다. 공중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폭탄을 터뜨리는 순간 팔만대장경이 한 줌 잿더미로 변해버릴 형국이다. 그는 빗발치는 명령과 부하 조종사들의 거듭되는 건의를 묵살하고 해인사에 투탄을 하지 않는다.
미군 군사고문단의 항의를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총살도 아닌 포살砲殺”로 김영환 대령을 처형하라고 했다. 주위의 만류로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는 끝내 비행 중 사고로 순국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그가 타계하고 56년이나 지난 2010년이 되어서야 팔만대장경 사수 공로를 인정해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그게 그토록 오랫동안 심사숙고해야 내릴 수 있는 결정인가? ‘대통령 이승만’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자체도 김영환과 궁합이 맞지 않은 듯하다.
해인사 일주문 앞 <세계문화유산 해인사 고려대장경 판전>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