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2월 4일 '시인' 김지하가 태어났다. 아니, 이런 표현은 틀렸다. 그냥 '아기' 김영일이 태어났다. 그가 자라서 시인 김지하가 될지 일반인 김영일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본 군국주의 교육칙어를 본뜬 것으로 비판받아온 국민교육헌장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누구나 아무런 민족의식 없이 출생할 뿐이다.
이는 김지하가 전체주의적 가치관을 강요하는 독재정권에 저항하여 치열하게 싸운 이력에서도 확인된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그가 박정희 · 전두환 정권에 맞서 민주화투쟁을 하려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인가? 그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를 읽어본다.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이 시는 유신독재를 비판하는 뜻에서 1975년에 발표되었다. 유신은 종신 대통령이 되기 위해 당시 집권자 박정희가 국회의원의 33.3%를 자신이 임명하는 등의 내용으로 헌법을 개정하면서 발생한 독재정치였다. 당시의 시대적 어두움을 김지하는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라고 했다.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손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시는 뒷날 김광석 등의 노래가 되어 더욱 널리 알려졌다. 근래에는 고등래퍼 이병재와 하선호가 랩으로 훌륭하게 소화해 찬사를 받았다. 대략 2000년생인 그들이 1975년작 ‘타는 목마름으로’를 어떻게 알았을까? 참으로 우문이다. 그보다 50년 전인 1926년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도 아는데!
누군가는 청소년들이 현실참여시를 아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할지 모른다. 일제 강점기 때와 유신독재 시절에도 지배층은 그렇게 생각했고, 가르치는 것도 금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