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종로 모던 행정‘신문고’출범
“내 귀와 눈이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어 막히고 가려지는 우환에 이를까 두렵다. 이에 옛 법도를 상고해 신문고(申聞鼓)를 설치한다”
1402년 조선의 세 번째 임금 태종은 즉위 2년에 민원인이 직접 왕에게 호소할 수 있는 제도로 신문고라는 직소제도를 만들면서 이렇게 교서를 반포했다.
“온갖 정치의 득실과 민생의 근심을 아뢰고자 하는 자는 즉시 와서 북을 쳐라. 원통함과 억울함을 아뢰고 싶어도 그것을 호소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나 와서 북을 쳐라. 원통하고 억울함이 훤하게 밝혀질 것이다”
조선 시대 태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친.인척과 공신들 척결을 무자비하게 감행하면서도 백성을 위한 신문고 제도 설치로 국정 안정을 도모했다. 그 신문고가 명실상부한 작동을 하면서 신문고 설치 초기부터 상당한 활성화를 이룬 것으로 기록된다.
실제로『태종실록』에는 ‘멀리 동북 면에 살던 사람과 여인들 그리고 심지어 승려들까지도 집단적으로 신문고를 이용했으며, 이를 통해 구체적으로 관리가 감찰되거나 정책이 결정되기도 했다’고 나와 있다. ‘태종 6년 2월 26일 척불정책과 관련해 조계사의 승려 성민이 동료 수백 명을 몰고 와서 신문고를 쳤다거나, 태종 8년 3월 1일 각 도 군영의 색장 149명이 집단적으로 신문고를 쳐서 서용해 주기를 청했다’는 기록이 바로 신문고 제도의 활발한 작동을 의미한다.
조선 시대 신문고는 국가나 관리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것인데, 이는 일상적인 행정 제도를 통해 수렴하지 못하는 긴급하고 중요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하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역사학자들은 이를 유교의 민본주의 사상을 구체화시킨 제도로써 유교적 정치 운영의 한 모습이라고 평가도 한다.
신문고 제도가 중국 상고시대부터 이어져 오는 동양의 민본주의 발로라면 서양에서는 1809년 스웨덴에서 최초로 도입된 옴부즈만 제도가 있었다. 스웨덴 옴부즈만 제도는 그 후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영국과 프랑스, 덴마크, 노르웨이 등으로 확산되었고, 1998년경에는 전 세계 86개 선진 민주 국가에서 채택되어 운영됐으며 우리나라도 1994년도부터 옴부즈만 제도가 실시된 바 있다.
옴부즈만 제도가 도입된 것은 근대 국가의 행정기능이 다양해지면서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또한 자유주의 시대를 맞은 국민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행정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상승하게 되는 등 행정기관과 국민 생활이 밀접하게 결부되어 행정의 역할과 기능이 강조됐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우리나라는 지난 2005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의 시행으로 대통령 소속으로 설치하고, 이명박 정부 시절「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으로써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국가청렴위원회,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가 모두 통합되어 2008년 2월 29일 국민권익위원회가 출범됐다.
이에따라 지방자치시대에 부응하는 지방 옴부즈만 형태인 시민고충처리위원회가 「부패방지권익위법」 제32조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및 그 소속 기관에 관한 고충 민원의 처리와 행정 제도의 개선 등을 위해 각 ‘지자체’ 별로 설치되어 2022년 말 현재 전국 ‘지자체’ 243개 중 28.8%인 70여 곳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난 8일 종로구가 드디어 서울특별시 종로구 시민고충처리위원회를 구성, 현판식을 열고 공식적인 출범을 알렸다.
종로구 시민고충처리위원회는 정문헌 민선 8기 구청장의 ‘종로 모던’ 정책을 내세우면서 종로구 자치행정에서의 ‘종로 모던’을 구현하겠다는 의지로 평가된다. ‘종로 모던’의 취지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종로에 대해서 새로운 모더니즘적 구성주의로 ‘세계의 본(本)’을 이루겠다는 발상으로 보인다. 다시말해 종로구 지방자치 행정의 청렴 종로 모던 행정의 구현이야말로 새로운 미래 종로를 여는 셈인 것인데, 이제 비로소 청렴하고 공정한 종로구 지방자치 시대를 열면서 시민 권익을 보호하고 책임지는 주민 소통 공감 행정을 실현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사실 행정 일반에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사상이 내포되어 소수의 피해자를 낳는 폐해가 있었던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이른바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권리가 사장되거나 행정 사각지대에서 제대로 권리보호를 받지 못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더군다나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복지국가라는 것이 ‘나랏님도 구제를 못하던 가난에서 이제는 생존권을 요구하는 권리의 시대’로 변한만큼 그에 편승된 주민의 권리보호와 권익증진이 시대적 조류가 됐다.
따라서 조선 시대 때부터 우리네 선조들이 시작한 민본주의 전통 사상을 계승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시대 선진 복지국가로 향하는 종로구 시민고충처리위원회 출범은 ‘신문고’라는 역사성과 함께 ‘종로 모던’ 미래성을 공유하는 일로 기대된다. 종로구 지방자치 시대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