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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업무정상화 및 학교자치 관련 부작위 법령 정비 방향
가. 교원업무정상화 관련
교사를 학생의 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교원업무정상화 정책의 내실화를 위해서도 관련 법령의 정비 및 근거 법령의 마련이 필수이다. 현재 우리네 학교는 교육이 아닌 행정 중심의 구조로 형성되어 있어 교사들의 일과는 시간표에 따라 수행할 수밖에 없는 수업(전체 업무의 55.9%)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의 절반(전체 업무의 21.7%)이 행정 업무로 채워지고 있다. 이는 턱없이 부족한 상담 및 생활지도(전체 업무의 7.7%)와 연수(전체 업무의 3.2%)의 원인이 되고 있다.
실천교육교사모임이 지난 2017년 5월, 전국의 교원들을 상대로 조사한 교사들의 각종 행정업무 실태를 보면 안전, 돌봄, 정보 등 교사들이 수업 외에 맡고 있는 각종 행정 업무들은 무려 230여 종에 이르고 있다. 또한 교육부와 교육청은 하루 평균 20여 건의 공문서를 학교에 보내고 있으며, 학교가 처리하는 공문서는 연간 만 건을 넘는 실정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경기도교육청 '2015 본청 각부서 기본계획 분석결과'에 의하면 각 부서 기본계획들만을 가지고도 학교에서는 3~4월에 걸쳐 35개의 계획을 세워야 하고, 19개의 협의체(위원회)를 구성해야 하며, 29개의 연수를 실시해야 한다. 39가지 주제를 교육과정에 반영하거나 행사를 열어야 하고, 26개의 성과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는 정규 수업과 평가, 생기부관리, 입시 등 교사의 '본무' 외에 해야 하는 일들이다.
이러한 현실은 수업과 상담의 부실화를 가져와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 만족도를 낮추는 주요 원인이 될뿐더러, 교사들의 사기와 전문성 저하를 초래한다. 비생산적인 일에 교육 및 행정 역량을 투입하게 만들어 교육력을 낮추고, 도리어 문제가 생겼을 때 면피용 문서로 인해 책임 소재를 무력화 시키는 데 악용된다. 더 나아가 일상적 교육 활동의 경시와 행정 업무 우대 풍조를 확산시키는 것은 물론 번잡한 문서 행정을 교사의 전문성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학교의 문화까지 왜곡해 버리게 만든다. 더구나 미래형 개별화 교육은 기존의 대량생산체제 모델에 입각해 이루어지던 일제식 수업에 비해 교사의 품이 많이 들기에 교원업무정상화는 교육 혁신의 필수 전제조건이 된다.
그런 까닭에 현재 교육부는 물론 각 시·도 교육청별로 교원업무정상화 정책을 입안하여 시행하고 있다. 이미 1979년부터 ‘잡무 경감’이라는 표현이 각종 교육시책에 나타난 바 있고, 2009년 진보교육감 등장 이후 본격화되었다. 2012년에는 교육부 차원에서도 교원행정업무경감대책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노력들은 장부 감축, 결재 간소화, 공문의 양 감축과 질 제고 면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교원행정업무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며 교무행정실무사도 배치되었고, 대학본부를 모델로 교무실과 행정실을 통합한 ‘교육지원실’ 설치, ‘업무전담팀’ 구성 등이 모색되었다. 방과후나 돌봄 같은 교육과정 외 업무를 지자체로 이관해 가려는 시도도 나타났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 현장에서 이를 체감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며, 더구나 미래형 맞춤형 교육 활동을 위한 시간 확보에는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여러 시책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와 교육청의 일하는 방식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 보고를 받더라도 이중 삼중으로 비슷한 일을 되풀이하게 하는 행정편의주의적 관행을 지속하거나, 여전히 불필요하게 많은 정보를 수집하여 실적거양이나 면피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양식과 절차가 복잡해진다고 교사들이 교육적 고민을 더 하거나 책임감을 더 느끼진 않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훈령, 지침, 매뉴얼 같은 문서들은 나날이 정교해지고 있다. 학교의 업무 일정이나 하중에 대한 직무분석 없이 무슨 문제가 터질때마다 학교에 요구하곤 하는 주먹구구식 직무관리는 여전하며 문서 뒤지기 식 감사 관행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
물론 일제 강점기 총독부가 선포한 「조선교육령」(1911) 이후 100여 년에 걸쳐 고착화된 행정 관행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교원업무정상화의 법적 근거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구속력을 갖고 강행되는 다른 지침들과 달리 교원업무정상화 지침은 늘 ‘권장 사항’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각 교육부 및 각 시‧도교육청의 교원업무정상화 정책이 보다 강력하게 실행되고 관철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이미 2017년 아래 <표5>에 나오는 바처럼 「교원지위향상 및 교육활동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14조(교원의 교육활동 보호)에 관련 근거 조항을 삽입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표5> 학교행정업무경감의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법령 개정(안)
교원업무정상화 근거조항의 법제화는 학생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담대한 과정의 첫 출발점이다. 시도교육감협의회 역시 “추후 각종 법령 개정 작업의 선행적 작업”이 될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법제화를 바탕으로 하는 기존 관행들과의 상시적인 투쟁과 더불어 ①형식적 문서주의를 유발하고 학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좀먹는 불요불급한 각종 훈령‧지침들(가령 교육과정이나 학교생활기록부)을 대강화 하는 일, ②컴퓨터를 이용하게 할 뿐이지 사실상 종이로 하던 시절과 똑같은 업무 프로세스를 유지시키는 NEIS를 전산화‧정보화의 효율이 극대화 되도록 대대적으로 혁신하는 일, ③칸막이 문화로 상징되는 불필요한 규제와 실적사업을 양산하여 학교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좀먹는 교육부 및 교육청의 직제를 획기적으로 개편하는 일 등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모든 학교(교사)를 잠재적 위험인자로 상정하고 불필요한 감시‧통제를 디폴트 값으로 두며 과도한 규제를 남발하는 소위 ‘액티브액스’형 과잉 행정 시스템을 미래형으로, 양적 투입에 의존하는 외연적 성장을 넘어서는 질적 내포적 성장과 생산성을 제고가 가능한 방향으로 고쳐 나갈 수 있다. 과도하게 쏟아지는 기안-사업-설문-수합-통계-보고-정산의 비교육 업무들의 프로세스는 수업에 전념해야 할 교사들의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임을 상기해야 한다.
나. 학교 자치 관련
민주공화국의 헌법 정신을 교육 현장인 학교에서부터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율과 자치에 기반을 둔 법령 정비가 필수이다. 현재 우리의 학교는 독립적인 자치 기관이라기보다는 수직적 국가 관료제 질서의 말단에 보다 가깝다. 일단 교육 행정 조직이 철저히 하향식으로 조직되어 있다. <표6>에 보이는 것처럼 교육부 직제와 시도교육청의 직제는 거의 1:1 대응 수준이다. 교육청에 대한 일선 학교의 지위는 종속적인 편이며(물론 이는 인사와 재정을 의존성으로부터도 비롯됨), 학교 내부적으로도 일제시기 조선인 학생과 교사를 감시하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집중된 교장권이 여전히 잔존해 있어 권한과 책임의 분산 정도가 미숙하다.
<표6> 교육부와 서울교육청 직제 비교표
물론 최근의 학교자율경영체제 도입의 흐름 속에서 제도적인 정비(가령 학교운영위원회 설치나 권한 이양, 학생회 및 학부모회 법제화 등)는 이루어 지고는 있으나, 여전히 문화적으로는 학교나 교사의 협의 결정 사항이 ‘교육청의 지침’이나 ‘교장 선생님의 지시’를 넘지 못하는 것이 상례이다. 이러한 이유는 학교 시스템을 정초하는 각종 법령 체계가 기존의 관료제적인 질서와 관행을 답습하게 만드는 꾸준한 동인(動因)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교육기본법」을 살펴보면 주어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24번, 교육부장관이 2번, 학교의 장이 1번, 교직원이 1번, 학생이 2번, 학부모가 1번 언급된다. 반면 목적어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교육부장관, 학교의 장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교직원이 목적어로 2번, 학생은 23번 등장한다. 학부모는 아예 없다. 「초중등교육법」은 더 심하다. 교육부장관이 주어로 36번, 학교의 장이 30번, 교사가 1번 등장하고, 학생·학부모·교직원은 제로다. 반면 목적어로 학생은 78번, 교사는 27번, 학부모는 3번, 교직원은 8번 나온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교육부 장관, 학교의 장은 목적어로 역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통상 주어가 행위 주체, 목적어가 행위 대상이 되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한국의 ‘교육 3주체’는 사실상 ‘교육 3대상’에 불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흐름은 학교 운영 풍토로 고스란히 재생산되고 있으며, 이는 교장 승진제 부조리와 엮여 많은 부조리를 양산한다. 현재 학교의 주요한 의사 결정은 소수 간부교사만 참여하는 '기획회의'(부장회의) 등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향이 강하며, 이 결과 리더십의 정당성 부족으로 인한 교내 갈등,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부패와 전횡, 그리고 주인의식 없는 냉소와 무관심의 분위기가 조성되는 일이 잦다. 학생과 학부모의 경우에는 훨씬 더 학교 참여가 어렵다.
이는 교육적으로도 그러하다. 학교장에게 집중된 권한(과 책임)은 ‘결재’를 통해 교사들의 정당한 수업과 평가의 자율성까지 제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교사들의 교육 활동 재량권은 학교장의 성향에 좌우되게 되며, 현행 교장승진제의 특성상 사고와 민원 회피를 제1의 가치로 삼아 새로운 교육적 시도를 저지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최근 여러 곳에서 불거지고 있는 지필평가 1회 시행에 대한 학교장의 결재 거부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결과 전문적 교육과정 개발과 운영이 방해 받고, 이러한 평가의 획일성이 다시금 교육과정과 수업 모두를 획일화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따라서 <표7>에 나오는 예시처럼 여러 교육법령에 나오는 ‘학교의 장’을 ‘학교’로 바꾸어 권한과 책임을 공식적으로 분산시켜 자율과 자치가 꽃필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래야 교사들이 전문적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며, 무사안일과 책임 회피를 위한 방어막도 사라지게 된다. 학생과 학부모도 교장의 헤게모니가 약해져야 (교장과의 사적 관계를 넘어선) 공식화된 경로의 학교 참여 방향 모색이 보다 수월해 진다.
이러한 권한과 책임의 분산은 교원업무정상화에도 긍정적이다. 결재 과정의 생략은 불필요한 행정 수요를 감축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교사의 일상을 지배하는 학생부 기록 작성이나 평가계획 작성 영역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간 교원업무정상화의 대상에서도 빗겨나 있었다.
<표7> 학교장의 책임과 권한을 학교 전체로 나누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물론 학교장의 ‘관리’에 의존하던 기존의 패러다임을 새로운 학교자치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는 혼란과 문제점도 나타날 수 있다. 학교 격차를 야기할 수 있으며, 프랑스 같은 나라처럼 교사의 자율권만 극대화되는(교사 집단의 학교자율권 사유화, 가령 복잡한 단원은 가르치지 않고 넘어가기 등) 학교의 자치 남용 또는 오용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교사들의 지대 추구 행태(편의주의)를 제어하고 견제할 수 있는 학생과 학부모의 참여 확대 방안이 검토되어야 한다.
또한 최소한도의 ‘책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치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기업체 등이 무한대로 자율권을 누리는 것은 수익을 내지 못하면 망하는 것을 감수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어느정도의 균형이 갖춰지기 때문인데, 학교의 경우 그런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시적 혼란과 문제점은 일종의 성장통으로 보되, ‘선의’에만 의존하지 않는 합리적인 자세, 적응 기간을 충분이 두어 혼란을 최소화 하는 점진주의적인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첫댓글 글의 출처가 어딘가요?
경기ㅡ 신동하 선생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