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몇년만일까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요. 2001년 11월의 하노이를 기억 속에 두고 있던 저에게 이번 일주일간의 베트남 여행은 추억을 더듬는 여행이었고, 새로운 베트남을 볼 수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사실 예전에는 캄보디아에서 육로로 호치민으로 들어와 쭈욱 올라왔으니, 비행기를 타고 하노이 공항에 내리는 순간 새로운 긴장감과 편안함이 뒤죽박죽 섞여 이상한 기분이었습니다. 편안하면서도 뭔가 잘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기분. 그 기분을 안고 미니버스를 타고 하노이의 호안끼엠 호수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깜깜한 밤임에도 새록새록 생각나는 길들. 복잡하지만 정감있던 그 거리들이 9년의 긴 터널을 뚫고 머릿속에 신호를 주고, 제 발은 그 신호를 받아 움직입니다.
정말 오래되고 복잡한 그 도로들을 저는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이 복잡함은 단순한 복잡함이 아니라, 정말 삶 자체입니다. 거리마다 보이는 오래된 집들과 사이사이 오래되서 축 늘어진 나무들, 그리고 그 밑에 목욕탕 의자만 몇개 가져다 놓으면 저절로 생기는 노점들. 그 노점에서 앉아서 먹는 수많은 먹거리들. 편안함을 주는 호안끼엠 호수까지.
10년의 세월에 큰 건물이나 새로운 빌딩도 생기고, 제가 묵었었던 숙소도 없어지고, 예전에 보이지 않았던 버스들도 많이 보이고, 아주 드문드문 보이던 승용차가 많아졌지만, 그래도 작은 도로 사이 사이의 느낌은 전혀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노이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하노이 구시가는 이런 분위기 입니다.
좁고 얽히고 설킨 도로. 오래된 건물들. 오토바이 그리고 군데군데 나무들.
전 왜 이 느낌이 복잡하다는 생각보다 아늑하고 아득해 보일까요?
세월의 무게에 눌린 듯한 거리가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이 좁은 도로는 항상 많은 차와 사람들로 가득하죠.
이렇게 복잡해도 참을 수 있습니다.
가끔 저 나무가 없다면 이 오래된 도로의 분위기가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나무가 없는 이 도로는 상상하기 싫습니다.
베트남의 힘은 행상을 하는 아주머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무거운 것을 들고 하루종일 걸어다니며 물건을 파는 그들의 땀으로 아이들이 커가는 것이겠죠.
10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베트남을 지탱하는 힘입니다.
항 박(Hang Bac) 거리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항 박에는 은세공 제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밀집해있죠.
손님을 기다리는 시클로 아저씨의 패달 밟는 속도가 느긋합니다.
손님을 태운 시클로도 한대 달리네요. 타는 사람은 배낭여행객보다는 단체 여행객들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패키지에 포함되어있지 않나 싶습니다.
나라가 길다보니 베트남은 채소의 왕국입니다.
싱싱한 채소로 여러가지 맛있는 음식들이 만들어지겠죠.
베트남은 길거리 어디나 조그만 의자만 놓면 음식점이 되고, 찻집이 됩니다.
길거리 어디서나 쉽게 볼수 있는 정겨운 모습 입니다.
어느새 하노이에도 승용차들이 많아졌습니다.
10년전부터 인기였던 마티즈 뿐만 아니라 중형, 대형 차들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조금 저렴한 마티즈 택시가 보이네요.
아무리 승용차가 늘어났다고 해도 아직 대세는 오토바이입니다.
베트남에서 오토바이 물결을 빼고 다른 걸 이야기 할 수 없겠죠.
저같이 겂이 없는 사람도 길을 건널 때는 무섭습니다.
오토바이 운전자와 기싸움에서 이겨야 하는데 목숨을 담보로 합니다.
오홀..신호등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오직 오토바이와 차를 위한 신호등이죠.
사람을 위한 신호등은 있어도 없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Cau Go 거리 중간 쯤 가면 구시가의 꽃시장이 나옵니다.
베트남 사람들 꽃을 너무 좋아하죠. 어느 가게나 싱싱한 꽃을 꼽아놓습니다.
여기 외에도 길거리에서 꽃을 파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저 장미 꽃 한아름 제 가슴에 안겨주면 감격스러울 것 같은데..
아직 남편에게 장미 한 송이 못 받아본 설움이 쏟아집니다.
항 베 (Hang Be) 거리 중간으로 가면 우리와 비슷한 시장을 볼 수 있습니다.
과일, 야채, 고기, 해산물 그리고 여러가지 간단한 먹거리들을 먹을수도 있습니다.
이 시장은 중간에 꽃시장과 연결되어있습니다.
오랜지와 용과 수박 시퍼런 망고가 보이네요.
3월의 베트남 과일은 파인애플도, 수박도 망고도 다 맛이 별로 없어요.
한 여름이 되면 조금 나아지려나 모르겠습니다.
베트남에서 두부를 쉽게 볼수 있습니다.
길거리에서도 튀김 두부를 손쉽게 사먹을 수 있답니다.
야채들을 보면 우리나라 음식을 쉽게 만들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장에서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죠.
흔히 먹을 수 있는 쌀국수 노점도 가득합니다.
쌀국수 시키실 때는 위에 한 수저 얹어주는 미원을 빼달라고 하세요.
잘못하다간 쌀국수 국물 맛=미원의 맛 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미원같은 조미료를 베트남 말로 "미칭" 이라고 하던데 정확한 발음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항 박 거리의 끝자락 입니다.
하노이의 구시가는 저렇게 파란 거리 명을 항상 확인하면서 가야합니다.
아니면 길을 잃기 쉽습니다.
항 박 (Hang Bac) 거리와 항 보 (Hang Bo) 거리가 만나는 사거리에 유명한 되뇌르 케밥집이 있습니다.
터키의 케밥이 이 곳 하노이까지 날라왔습니다.
하.지.만
이 집 케밥은 터키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돼지고기를 씁니다. 기발한 아이디어입니다.
돼지고기의 담백한 맛과 프랑스 식민지 시절 배운 바게뜨 빵이 만나
베트남표 돼지고기 되뇌르 케밥이 태어났습니다. (15,000동 2010년 기준)
주말 오후만 되면 급속도로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그러면 누구네 땅도 아닐것 같은 이곳에 주차비를 받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주차비를 내고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식당에 가거나 쇼핑을 합니다.
오토바이는 주차 걱정 없을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는 오토바이조차 주차대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실크를 파는 항 가이 (Hang Gai) 도로에 자리잡은 나이가 몇년이 됐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 나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 곳에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립니다.
하노이에는 "분짜" 라는 유명한 음식이 있습니다. 돼지고기를 양념해 우리나라 떡갈비처럼 만들어 구워 국물에 국수와 함께 넣어 먹는 음식입니다.
2001년 숙소 아저씨가 소개해준 분짜집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항 만 (Hang Manh) 거리에 있는 "닥킴" 이라는 곳입니다.. 분짜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그 때는 이런 곳을 찾아온 외국인이 없었는지 사람들은 제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했었고, 어떻게 먹는지 몰라 당황해하는 저에게 손짓 발짓하며 먹는 법을 알려주고, 맛있게 먹는지 아닌지 계속 쳐다봤지요.
지금은 외국인에게도 유명한 곳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주문은 영어로 다 받더라구요. 변하지 않은 듯 하면서 변하는 하노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분짜 35,000동, 스프링 롤 한접시 40,000동, 2010년 기준)
이게 분짜입니다. 국물에 파파야를 썰어 넣고 구운 고기를 올려줍니다.
그리고 국수와 야채 한사발을 주죠.
처음에 이 음식을 받고 나서 도대체 어떻게 먹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국수는 어떻게 먹어야 하고, 저 채소는 또 뭔가.
상추에 고기를 얹고, 국수를 넣어 싸먹어야 하는가.
국물에 국수를 말아서 고기와 파파야와 함게 먹으면 됩니다.
채소는 중간 중간 그냥 씹어먹으면 되구요.
베트남의 유명한 음식 스프링 롤이죠. 베트남 말로는 "넴" 입니다.
외국인이 오면 세트로 아예 내놓는 상술을 보이더군요. 하지만 이집 스프링 롤은 맛이 별로 없었어요.
먹고 싶지 않으면 주문할 때 빼달라고 하시면 됩니다.
아~ 분짜 입니다.
간이 잘된 고기를 불에 구워 파파야와 함게 먹으면 너무 맛있습니다.
국물은 도대체 어떻게 만드는지 그 맛을 잊을수 없습니다.
역시 하노이에서 분짜는 꼭! 먹어야 할 음식입니다.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빠르게 지나가는 오토바이와 달리, 하노이의 오래된 거리는 예전 그대로 인 것 같습니다. 아니면 변하려는 강한 힘이 거리 곳곳에 숨겨져 있는데 잠시 머문 저에게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언제 터질지 모를 화산처럼, 순식간에 변할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겠지요. 서서히 변하는 것도 있고, 갑자기 한 순간에 변하는 것도 있을 겁니다. 또 10년 후, 제가 사랑하는 하노이의 이 거리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 때에도 나무 그늘 아래, 목욕탕 의자를 놓으면 찻집이 되고, 쌀국수집이 되는 풍경은 남아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