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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
본문 : 이사야 61장 1-11절
『오늘 본문인 61장은 좁게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달픈 포로생활에서 풀려나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황폐된 성전과 집들을 다시 복구함으로써 예전의 영광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고, 넓게는 ‘메시아가 오심으로 인해 죄악의 구렁텅이로 가는 인류를 구원하심과 동시에 악한 자들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1-3절에선 ‘이 땅에 오시는 메시아의 사명’에 대해 말씀하고 있고, 4-9절에선 ‘메시아가 행하셨던 사역의 결과’에 대해 말하고, 10-11절에선 ‘메시아로 인해 회복된 시온의 백성들이 부르게 되는 감격스러운 찬양’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 오늘 본문 내용입니다.』 특별히 저는 오늘 본문 1절 중간에 “나를 보내사”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여기서 ‘보내사’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살라흐’라고 하는데, ‘대사. 대리자, 사명자’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이루기 위해 대신 보내신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일을 하셨고, 메시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신 것처럼, 오늘날 저와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시려고 대사, 사명자, 살라흐로 보내셨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우리가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키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함께 1절을 읽겠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서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자 여기서 ‘여호와의 영이 내리셨다’는 말은 ‘성령이 임하였다’는 말이고, 또 ‘기름을 부으사’라는 말은 ‘마샤흐’라고 하는데, ‘임명하다, 사명울 주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그럼 누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사명을 주셨을까요?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을 주시고,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차례대로 보면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란 히브리어로 ‘아나원’이라 하는데, ‘고통당하는 자’의 뜻을 가졌습니다. ‘가난으로 고통을 당한 자, 환난과 억압으로 인해 힘들어 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 즉 ‘복된 소식’을 전하려 메시야를 보내신 것입니다. 또 “마음이 상한 자”는 ‘샤브르’라는 말로 ‘마음 또는 생각이 박살나다. 무너지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정신적으로 멘탈 상태가 된 자들을 고쳐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로된 자”는 ‘바벨론 포로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고, 더 나아가 ‘죄악 가운데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인간들’을 말합니다. 그런 저들에게 자유 다시 말해서, 구원하여 주신다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갇힌 자”는 히브리어로 ‘아사르’라고 하는데, ‘결박 당하다, 묶여 있다’는 뜻으로, ‘노예로, 죄와 사망으로 묶여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저들을 자유롭게 풀려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여지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 바로 메시아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기 원합니다. 감히 우리를 예수님과 비교한다는 것이 엄청난 죄이겠지만, 오늘 우리가 누구에요? ‘그리스도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닮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닮았다는 말이 뭐에요?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 중에 가난한 자가 있고, 마음이 상한 자가 있고, 포로된 자와 갇힌 자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무너지고, 영적 멘탈로 힘들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여 고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죄악으로 포로된 저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자유케 하고, 저주와 마귀의 종으로 갇혀 사는 자들을 해방시켜 줄 수 있도록 축사하며 저들을 구원해야 할 줄 믿습니다. 이 일을 하라고 저와 여러분을 불러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구경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왜 저 사람은 저래?” 탓을 해서도 안됩니다. 그런 저들을 우리가 구해야 할 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선 반드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름 부으심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 생각, 감성적으로 나설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으나, 우리는 능력이 없을지라도, 우리 주님과 성령님이 함께 하심으로 놀랍게 일하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우리 모두 하나님의 봉사자로 일해야’ 합니다.
우리 함께 6절을 읽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자 여기서 ‘너희’가 나오는데, ‘당시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합니다. 자. 저들은 나라가 없어졌어요. 바벨론에서 노예처럼 살고 잇는지도 70년이 다 되었습니다. 그런 저들에게 뭐라고 말해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말씀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봉사자’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저들이 다시 예전과 같이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특히 ‘봉사자’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사라트’라고 하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하나님께 봉사하는 사람’을 뜻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전과 같이 온전히 하나님만을 섬기고, 예배와 제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될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당시 포로생활로 절망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분이 다시 회복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을 준비하다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 이것입니다. 오늘 본문 전체를 볼 때에 구지 6절 말씀을 기록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여호와의 제사장’이란 말과 ‘하나님의 봉사자’라는 말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구지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이제 너희가 정말 여호와의 제사장처럼, 하나님의 봉사자처럼 살아야 함을 말씀하시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어, 또한 하나님의 봉사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길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 일을 감당하라고 3절에 나오듯이, 신분의 회복을 주시고, 4절에서 환경의 회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 일을 잘 감당하게 될 때에 “이방 나라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물질의 축복도 주시고, 모든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영광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의 봉사자로 일하기를 소망합니다. ‘봉사자’의 뜻이 뭐일까요? ‘어떤 대상이나 남을 위해 자신을 바쳐 일하는 사람’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봉사자’라 함은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바쳐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봉사자로 불러주셨는데, 정말 하나님을 위해 여러분을 모든 것을 바쳐 일하고 계십니까? 예를 들어 대통령이 여러분을 장관으로 임명하였는데, 여러분이 장관으로써의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면, 대통령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민들이 다 뭐라고 할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봉사자로 임명하셨는데, 봉사자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4-9절에서 주시려는 회복의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제사장이요, 봉사자로 불러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이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줄 믿습니다. 혹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신 분이 계십니까? 앞에서 말씀드렸던 1절과 2절에 나오는 대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4절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전을 돌보고 관리하는 일’입니다. 하여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봉사자로써의 일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다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주님의 신부가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같이 10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자 여러분! 여기서 ‘내’가 누구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고, 오늘 ‘저와 여러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다고요?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왜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해 구원을 옷을 나에게 입혀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공의의 겉옷을 더하여 주셨기 때문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저들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도무지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 수 없었던 자들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런 저들에게 ‘구원의 옷과 공의의 겉옷을 입혀 주심으로 수치를 가려주시고, 주님의 은혜로 덮어주심이 마치 혼인예식에 임하는 신랑 신부가 단장함과 같이 아름답게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헤세드의 은혜입니다. 도저히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도 없는 저들임에도 불구하고, 전적인 구원하심과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좀 달리 해석을 해보았습니다. 10절 하반부에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서 신부는 결혼식을 앞둔 자입니다. 따라서 아름답게 화장을 하고 예쁜 옷과 보석으로 자신을 꾸며야 합니다. 그런데 꾸밀 보석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기서 말하는 ‘보석’은 ‘그 사람의 행위와 상급’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열 명의 처녀들이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만 신랑을 맞이하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그러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왜 일까요? 미련해서 일까요? 아닙니다. 신랑을 맞이할 기름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10절의 말씀도 똑같은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신랑으로 다시 오실 때에 신부가 되는 우리들이 신랑되신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과 같이 기름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있다가, 불쑥 신랑이 오셨을 때에 맞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 우리도 구원의 옷으로, 공의의 겉옷으로 우리의 수치를 가려야 하는데, 자기 보석으로 아름답게 단장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준비한 것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하늘나라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은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단정할 자기 보석이 있으십니까? 여기서 ‘자기 보석’이란 ‘그동안 주님을 위해 준비한 것’을 말합니다. ‘헌신과 봉사, 섬김, 예물’을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도 포함됩니다. 그렇다면, 신랑이 신부가 단장한 보석을 보고 감탄하며 흐믓해 하는 것처럼, 여러분에게 주님이 감탄해 하시며 흐믓하게 하실 그 무엇이 있으십니까?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른 신부들은 아름다운 보석으로 단장하여 주님과 함께 하늘나라 혼인잔치에 들어가는데, 여러분은 단장할 보석이 없다면, 그래서 들어가지 못한다면, 어찌 될까요? 이사야 선지자가 그동안 수없이 말씀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다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옷을 입은 자, 공의의 겉옷을 입은 자, 그리고 주님의 신부가 되어 자기 보석을 단장하여 주님을 맞이하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여 오늘 여러분도 구원의 옷을 입으시고, 공의의 겉옷을 입고서, 자기 보석으로 단장하여 언제든지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구원함을 받게 될 것을 예표하는 말씀’입니다. 메시아가 오심으로 인해 복음이 전파되고, 슬퍼하는 자에게 재 대신 화관을, 또한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으로, 근심 대신 찬송의 옷으로 바꿔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구원함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을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도 여호와께 복 받는 자손이라 인정 받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재 대신 화관을, 슬픈 대신 기쁨의 기름을, 근신 대신 찬송의 옷으로 바꿔지길 소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대사, 사명자, 살라흐’로 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도 ‘성령충만하여 복음을 전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봉사자로써의 일을 잘 감당해야’ 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의 신부가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맡겨주신 사명을 잠 감당하여 하나님께 칭찬을 받고, 주님이 오셨을 때 주님의 신부가 되어 아름다운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