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회원님들에게 교육과 관련된 생활 속 이야기를 부탁드렸습니다.
원고청탁을 승락해 주신 17분 중 11분이
<회원들의 교육이야기>에 글을 올려주셨어요.
바쁘신 중에도 마감일을 지켜 올려주신 회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4월, 회원칼럼에도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려요.^^
테이크아웃 커피와 선생님
충주삼원초 교사 곽미화 님
미국을 다녀온 감상 중에 하나를 꼽자면 워낙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가 혼재해 있어서 그런지 ‘다름’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그들의 태도였다. 우리의 ‘다름’은 ‘이상한 것, 또는 사람’이어서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말이다.
언젠가 본 신문의 내용과 학교의 일상이 너무도 비슷하여 인용한다. ‘정치는 낯섦과 거리가 멀다. 도돌이표가 붙은 네 마디 악보 같다. 첫 마디는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시작한다. 국민은 왜 싸우는지도 잘 모른다.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면 둘째마디에서 서로의 이익을 챙긴 뒤 극적 합의에 이르고. 셋째 마디는 정치를 바꾸겠다는 약속으로 채워지며, 그리고 넷째마디는 해외로 놀러가고 지역구 챙기느라 여의도 정치는 쉼표다. 그러다 다시 첫 마디로 돌아간다.’
그런데 학교도 마디가 더 많아 그렇지 역시 도돌이표가 붙은 오래된 악보가 아닌가? 3월은 어수선한 상태로 참 바빠 정작 중요한 아이들과 눈 마주칠 시간을 낼 수 없고 4월은 안정을 찾아 수업을 하는 듯한데, 현장학습과 수학여행을 필두로, 5월 가정의 달을 맞으면서 면학 분위기는 오리무중이 된다. 정신을 차리면 6월이요, 이즈음 되면 7월 학기말에 맞추어 “알겠지? 다음, 거기 조용히 안하니? 다음 쪽! 나머지는 숙제.” 하며 폭풍진도를 나가야 한다.
7월은 한가한가? 성적표를 작성하고 한 해 두 번씩 맞는 방학이지만 그 준비도 만만치 않은 것이어서 방학 날까지 허덕이기 일쑤다. 2학기와 학년말은 적어 무엇 할까?
15년째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론 일천함을 핑계로 새로움을 만들려 하지 않았고, 변화를 향한 신선한 외부의 자극에는 적극, 정말 적극 편승해보고 싶었으나 도무지 위와 같은 흐름은 변할 생각도 안했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국가에 헌신하고 싶다했던 김종훈 같은 분도 어쩌지 못하고 장관 후보직에서 사퇴 하는 걸 보니 과연 ‘다름’ 즉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데는 작게는 우리 교육계를 포함하여 정말 인색 한 게 사실인 모양이다.
아래로부터의 개혁도 지지부진하고 위로부터의 변화도 수용하지 못하니, 학생 상호간의 협력과, 교사와 학생간의 밀도 있는 교류가 이뤄지는 속에서 네 생각이 무엇이냐를 묻는 이상적인 교육은 과연 TV에서만 존재하는 외국의 멋진 교육풍경으로 마무리 되면서 나의 선생 생활이 끝나지 않겠나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삼성 스마트 폰이 잘 팔리는 것과 별개로 스마트 폰이라는 아이디어를 낸 스티브잡스가 인정받고 추앙 밧듯 능력 없는 나는 오늘도 막연히 ‘다름’을 새로움으로 인정하는 많은 주변사람과 그것을 실천하는 ‘능력자’를 꿈꿔본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출근 한다하여 한 소리 들었다는 어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 집 걸러 두 집이 커피 전문점인데 이게 왜 이상한가? 그냥 다른 거지!
아기의 걸음마 - 부모의 역할
권의석(꼬옹용) 님
갓난아기가 뒤집기를 하고, 엉금엉금 기어가고, 이영차 몸을 일으키고, 두세 발 뒤뚱뒤뚱 걷다가 엉덩방아찧고, 아장아장 걷고, 넘어질 듯 넘어질 듯 뛰려한다. 이러한 아이의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아기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관점으로 표현을 한다.
분명 아기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더욱이 아기의 관점에서 본다면 분명한 목표가 있다. 신비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이동이 필요하고, 아기가 필요한 걷는 것은 누구나가 다 하고 있는 보편적인 생활이다. 걷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에 아기는 걷기위해 끊임없는 시행착오 끝에 걷는다. 또한 아기의 실패를 누구하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기의 도전에 응원을 준다.
하지만, 유치원을 가는 시기부터 경쟁의 시기에 들어가는 것 같다. 선의의 경쟁이 나쁠 것은 크게 나쁠 것은 없을 것 같다. 서로 자신의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여유는 있다. 유치원생이 되면 허용되지 않는 것들이 하나둘 생긴다. 어쩌면 부모의 기대치, 선생님의 기대치, 사회 구성원들의 기대치가 유치원생의 행동 하나하나를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시행착오! 한 번의 행동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몇 가지나 있을까? 분명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행착오, 실수 등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다. 한 번의 실수가 생사가 오가는 것이라면 실수를 하지 않아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많은 시행착오 속에 진정 자신의 색깔을 발견하고, 그 색깔로 아름다운 세상을 꾸미는데, 한 색깔이 되면 좋을 것 같다.
IBM 설립자 토마스 왓슨은 “성공의 속도를 높이고 싶다면 실패를 두 배로 늘려라”라고 이야기 했듯이, 아이의 바른 성장과 자아성장을 위해 실패가 아닌 시행착오를 수용해 줄 수 있는 부모가 우선 되어주어야 할 것 같다.
주거니 받거니
권의석(꼬옹용) 님
‘주거니 받거니’ 참 쉽게 들을 수 있는 속담이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나라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어쩌면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영어에는 ‘Give and take'가 있으니 말이다.
‘주거니, 받거니’
주는 것이 먼저이고 받는 것은 나중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받으면 줄 마음의 여유는 있을지 몰라도, 먼저 주는 것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주는 것이 꼭 물질적인 것에 국한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마음으로 상대를 안아주는 것이 더 클 것이다.
그럼 왜 주는 것에 인색한 것일까? 그럼 어떤 사람이 주는 사람이 될까? 가난한 사람보다는 부자인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럼 누가 부자이고 누가 가난한 사람일까?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자신 스스로가 부자와 가난을 정하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하고 부자이기에 많은 사람에게 애정을 줄 수 있다고 규정하고 그러한 행동을 할 수 있다면 분명 부자일 것이다. 그럼 왜 보편적으로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절대적인 빈곤으로 인한 가난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어쩌면 부모 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과거에 경험 즉 절대적인 빈곤이 그대로 자식에게 대물림 받아서 그런 것은 아닌 가 살짝 생각해 본다.
부자는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마음먹으면 그 순간 부자이고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부자에게는 또한 사랑을 주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
권의석(꼬옹용) 님
별똥별은 짧은 시간에 어두운 하늘에 한 줄기 빛줄기를 남겼다 사라진다. 이런 별똥별을 자주 접하기도 어렵고, 설사 보고자 하여도 언제 떨어질지 몰라 막연히 기다려야만 한다.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고, 떨어져도 너무 시간이 짧고... 과연 누가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 수 있을까?
말이 안 된다. 선조들이 말도 되지 않은 이야기를 많은 세대를 걸쳐 계속 이어져 왔다면 뭔가 근거가 있을 것이다. 아~~~ 문장의 앞뒤를 바꿔봐?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다.’에서 ‘소원을 빌고 있을 때 별똥별이 떨어진다.’ 어~~~ 말 되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의 핵심은 별똥별이 아닌 소원을 갖고 있으며, 그 소원을 일시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언제 어디서나 마음속에 그 소원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 생각된다.
아직 뭐 하나 제대로 이루었다고 생각할 만한 것이 아직 없지만, 꿈을 다이어리에 적고 항상 소지하면서 그 꿈을 수시로 상기시키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꿈, 소원, 소망 등을 성취하면 참 좋을 것이다. 설사 아직 성취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자신의 방향성을 스스로 정하고 추진하고 있기에 삶의 주체는 자신의 것이며, 그 속에서 많은 것들을 지혜롭게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시작이 반이다.
권의석(꼬옹용) 님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익숙하지 않기에 어색하다고 시작하기를 꺼려하기도 하고, 시작은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적·공간적·금전적 등 해결해야 할 것이 많다. 시작이라는 것은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도 있겠지만, 여기서의 시작은 조금은 중장기적인 목표를 갖은 것 추진하는 것의 시작으로 생각하면 더 좋을 듯하다.
예를 들어 영어학원을 다니고자 한다면, 위에서 언급했던 것들이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것들을 해결하고 처음으로 학원에 가서 등록한 것! 이것이 시작일 것이다. 시작이란 겉으로 보이는 시작이지만, 그 전에 보이지 않는 것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에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빙산의 경우 보이지 않는 부분이 8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어쩌면 시작은 반 이상일지도 모른다.
시작이라는 것이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학원을 한번 안 나가면, 안 다니는 방향으로 반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의 행위가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피아노
권일문(상상외) 님
피아노 조율이나 수리, 판매를 업으로 삼아 살아가면서 종종 곤란한 일을 겪을 때가 있다. 한번은 괴산의 외딴 지역으로 조율을 갔는데 도착해보니 수녀원이었다.
누군가에게 기증을 받으신 피아노라는데 외관상으로도 '아! 작업이 힘들겠구나' 싶을 정도로 낡은 피아노였다. 보통 1시간이면 작업을 마치는데 점심까지 얻어먹으면서 4시간 동안이나 작업을 했다. 기술로 먹고 살다 보니 그 정도 작업을 하게 되면 당연히 조율비도 많이 받지만 기본요금만 받았다.
청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잘했다 싶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점심을 먹으며 수녀님과 나눈 대화 내용 때문이었다. 동네에 아이들이 열댓 명 되는데 피아노를 배울만한 여건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시골동네이니 학원도 없을 터이고 그 흔한 방과 후 수업도 피아노는 없고…. 수녀원에서 수녀님들이 공부도 봐주시면서 마침 기증받은 피아노로 자원봉사 오시는 선생님께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레슨을 해주신단다. 짧은 시간에 피아노 한 대로 열댓 명의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친다는 것과 주변을 살폈을 때 너덜너덜한 피아노 교재가 마음에 쓰였다.
청주에 오자마자 피아노 교재 몇 권을 택배로 보내 드렸다. 그러고도 내 옆에서 붙어 서서 조잘거리던 아이들의 모습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지원지지 않았다.
비단 이곳만의 모습은 아닐 터이다. 더 외지고 낙후된 지역도 있을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복지사각지대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날 내가 보고 온 것은 교육사각지대일 터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먼 나라 이야기임을 누구나 느낄 것이다. 도심과 똑같은 여건이 아니라면 만들어주어야 한다. 피아노 내부를 보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조잘거리던 아이들에게도 마음껏 배울 수 있는 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교육당국이나 어느 특정 계층이 아닌 우리 어른들 모두의 과제일 것이다. 며칠 안에 다시 한 번 수녀님을 찾아봬야겠다. 따스한 봄 햇살 가득 머금은 아이들의 미소를 보러 가야겠다.
한국교육의 핵심과 본질
김경세(흙한줌) 님
교육은 평준화냐 수월성이냐, 인지교육이냐 인성교육이냐, 교사중심수업이냐 학생중심수업이냐, 주관식평가냐 객관식평가냐 등등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한국교육의 문제는 교육부와 교육청이 교육의 주체인 교사와 학부모와 학생에게 자율적 선택권을 주지 않고 획일적 강요와 통제를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며 본질입니다.
학교마다 교육의 3주체가 교육방법을 자율적으로 합의, 선택할 수 있도록 열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학교의 선발방법과 기준을 학교에, 학교의 선택권을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교육방법과 평가방법이 더 좋은지가 드러나게 될 것이고 그래야 자연히 좋은 교육방법과 평가방법을 채택하는 학교는 늘어나게 되고 채택되지 않는 교육방법과 평가방법은 서서히 도태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교육의 효율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교육의 특성화, 다양화입니다.
이 또한 자율과 선택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획일적 강요와 통제가 바로 이런 자연 생태학적인 바람직한 교육환경을 가로막는 주범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이 되면 교육에 이념논리의 잣대를 들이대는 전교조문제, 진보교육부장관과 진보교육감 논란의 여지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이고 본질인데 이를 외면하는 정치권과 행정부의 기득권 지키기 이기주의와 권위주의가 바로 문제의 원인이고 결과입니다. 교육과 학생이라는 관점에서 대승적 결단이 있어야만 해결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본질은 그대로 둔 채 이게 옳네, 저게 옳네 하면서 장관이 바뀔 때마다 요렇게 조렇게 바꾸면서 교육의 3주체를 모두 괴롭히고 국고를 축내고 국력을 낭비하고 있는 꼴이 그 동안 수십 년을 걸어온 한국교육의 모습입니다.
성격은 조금씩 다르겠습니다만 교육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각 분야가 대동소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핵심과 본질을 건드릴 수 있는 정치세력을 갈망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작금의 안철수 현상의 본질이 바로 이 점인 것입니다.
그나마 핵심과 본질을 간접적, 부분적이나마 건드리는 방법이 학교장초빙제입니다. 이런 시범적 시도조차도 교육과 학생은 실종되고 정치이념 논리가 판을 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핵심과 본질을 바꾸면 효율성, 행복지수가 한 차원 업그레이드가 되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가능한데도 근시안적 이기주의에 빠진 정치권과 그 핵심과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바꿀 의지가 부족한 국민수준 때문에 요 모양 요 꼴로 살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교육의 발전은 자율과 선택에 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
김규원(바리) 님
"학생의 흡연은 나쁘다." 이렇게 단정 짓지 말자. 그 학생들이 왜 담배를 피우게 되었고 쉽게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해결책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다.
각종 언론에서 성범죄자들은 무조건 나쁜 놈이라고 보도하던 시기에서 이젠 그들이 왜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보도도 하였고 최소한의 해결방법도 찾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담배를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쉽게 피운다는 생각으로 담배구입에 연령제한을 걸었더니 노숙자분들에게 심부름 값을 주고 사오게 하는 행위가 과연 정당한 방법인지? 학생들을 올바르게 선도해야 하는 사회의 책임감에서 나올 수 있는 행위인지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무지막지한 권력으로 탄압하여 담배를 못 피우게 하면 어떻게 될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곳에 가둬 놓고 철저한 규제 속에 공부를 시키면 어떻게 될까? 과연 담배를 안 피우고 온전히 고등학교까지 졸업 할 수 있을까.
길거리 모퉁이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에게 왜 큰소리로 욕을 하고, 모른 척 지나가려면 지나가지 자기들끼리 손가락질 하며 흉을 보는지, 그러한 행동은 정말 기성인으로써 잘하는 행동인지 반성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 담배피우는 것이 나쁨을 알고 있기에 길에서 피우기보다는 좀 더 외진 곳에서 하는 행동까지 못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 학생들에게 손가락질하기 보다는 어르신들이 지나가면 등을 돌리라고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알려주면 안 되는 것인가. 그렇게 하면 학생들을 방치하는 사회가 되는 것인가. 등을 돌리고 피우면 괜찮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로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이다.
피우는 것을 막지 못할 것 같으면 피우는 방법과 예의, 예절에 대한 우회적인 방법으로 학생들의 행동을 순화시키는 방법은 어떠한지 고민을 해봐야 한다. 그 학생에게 스스로 자신들의 행동이 올바른 것인지 이후 사회에 나가서 너희들이 기성인이 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이야기하며 자발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방법이 더 현명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공감 이야기
김대현(홀로세움) 님
지난 주 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방과후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초학력 부진 학생반(지금은 늘푸른 반으로 명칭이 변경됨) 학생들과 두 시간씩 수업을 진행한다.
지난 학기에도 그들과 함께 공감 수업을 했다.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는 아이들, 학교 선생님들은 모두 우리의 적이라고 여기는 몇몇 학생들, 수업시간에 수업 진행이 안 될 정도로 장난치고 떠드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과 3개월 동안 같이 지내면서 내 자신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존감이 상실되어 있고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그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을 하니까 서로가 마음을 여는 수업 진행이 되었다. 노트필기, 발표 한번 못해본 아이들과 매일같이 쓰고 발표하다 보니 점점 아이들이 자신감도 생기고, 왜 학교에 다녀야 하는 지 이유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이번 학기에도 늘푸른반 속으로 들어가 아이들이 행복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가려고 한다. 공부만 재능이 없는 아이들, 그러나 마음은 착한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 따뜻한 말 한마디로 감싸준다면 이번 학기도 재미있는 공감 수업이 되리라 믿는다.
절박함
김수열(오방) 님
주택에 살다보면 좋은 점도 많지만 오래된 집이라 곤란한 일도 종종 있게 마련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고양이가 안방 천정에 들어와서 새끼까지 낳아서 신경이 많이 쓰이고 불안하기도 했다. 쫓아낼 방법도 없어서 고작해야 천정을 두드리는 수밖에 없다. 나중에는 아무리 두드려도 오불관언이다.
별 뾰족한 수가 없던 차에 아들이 사자의 포효하는 소리를 다운 받아서 스피커로 확대 하여 천정을 두드리면서 한참을 틀어 댔더니 고양이들이 난리가 났다. 후다닥 소리와 함께 조용해진 것이다. 시원해서 좋아하던 것도 잠시, 새끼들이 문제였다. 제 어미를 잃고 가녀리게 울어대는데 만약 어미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꼼짝없이 굶어 죽을 판이다.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된 셈이다. 어찌할 거나. 고양이는 사자 굴로만 알고 있을 터인데 다시 돌아오겠는가 싶은 게 여간 고민이 아니다. 그러던 중에 다시 고양이가 천정에 들어와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새끼를 물고는 사라진 것이다.
어미 입장에선 사자 굴에 목숨을 걸고 들어와서 새끼를 구해 나간 것이다.
생각을 해 보니 참 감동이다. 어미 고양이는 얼마나 두렵고 또 갈등을 했을까. 그런데도 새끼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모든 두려움을 무릅쓰게 한 것이 아닌가.
지난 2월 말경 아직은 추위가 매서운 날 저녁에 일신여고 앞 시내버스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 한 여고생이 책가방을 멘 채로 서서 사발면을 먹는 것을 본 일이 있다. 학교에서 보충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학원으로 가야 하는데 밥 먹을 시간이 없다고 했다.
바라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측은해 보이던지. 무엇이 우리 학생들이 밥 한 끼 맘 편히 먹을 수 없게 만들었을까. 높으신 분들은 입만 열면 교육을 걱정하고 아이들을 생각한다는 말을 참 잘도 하던데.
말들은 많지만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일들은 하지 않는다. 나 자신을 비롯해서 정치인, 교육관료, 교사와 학부모들까지도 아이들의 고통에는 관심이 적다. 그것은 절박함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살아간다는 되도 않는 생각이 지배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미 고양이 만큼만의 절박함이라도 있다면 우리 아이들을 저렇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구체적으로 고민을 하고 실제로 아이들의 고통을 덜어 주는 일에 적극 나설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6년 만의 재회
창신유치원 종일반 교사 전금희(하늘땅별땅) 님
“사랑합니다~”
오늘도 유치원의 하루 일과는 이렇게 현관에서 유아들을 하나하나 맞이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처음엔 추운 날씨에 원장, 원감선생님까지 날마다 순회하시며 현관에서 아이들을 맞이하는 모습이 마치 유명 음식점의 종업원들이 ‘고객은 왕이다’를 외치며 손님맞이를 하는 것 같아 잠시 어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래, 아이들이 주인이지, 아이들이 있으니까 내가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서 전에 EBS 교육방송에 ‘우리 (교장)선생님이 달라졌어요.’ 라는 프로그램에서 위에서 부터의 변화가 곧 아이들의 변화로 이어졌던 모습이 떠오르며 우리 유치원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6년 만에 다시 돌아온 유아들과의 만남은 3월 첫 주엔 나의 정신을 쏙 빼어 놓아 잠시 내 선택을 의심케도 했다. ‘아, 그동안 내가 왜 이 유아들을 상대하는 고충을 잊고 있었던가?’ 하면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6년간은 별로 잔손이 가지 않던 고등학교에 있다가 올해 갑자기 유치원으로 와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유아들을 상대하게 되니 혼이 빠질 만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다 내 업이고 숙명인가보다 생각하니 이내 마음이 정리되어 다 똑같아 보이던 아이들이 드디어 하나 둘씩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맡은 반은 유치원의 특수반이다. 그동안 난 고등학교에서도 줄곧 특수학급의 장애아들과 함께 해왔다. 그러면서 한 가지 늘 아쉬웠던 점은 ‘아이들의 교육이 좀 더 일찍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더라면’ 하는 점과 또 아무리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치더라도 과연 정말 부모가 최선을 다했는데 이 정도까지 밖에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그래서 올해 유치원으로 오면서 그 의구심과 아쉬움을 함께 해결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에 내심 기대가 컸다.
하지만 모든 것이 첫술에 배부르랴, 처음부터 강적을 만났나 보다. 작년에 ‘청소년 이상심리학’을 배울 때까지만 해도 자폐아들은 예후가 가장 좋지 않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난 쉽게 동의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전에 자폐유아 한 명을 지도해 본 경험이 있는데 뇌 발달이 이루어지는 유아기 때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면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이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번에 맡은 아이들은 그런 나의 믿음을 무색하게 했다. 아직 한 아이는 여섯 살이 되도록 한 단어도 표현하지 못하고 있고, 다른 한 아이도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데 겨우 인사말 정도만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상태다.
아, 이를 도대체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정상아들은 태어나서 같은 단어를 약 2천 회 이상 듣게 되면 그 단어를 표현한다는데, 이 아이들은 도대체 얼마나 말을 들으면 하게 될까?
올봄 감기가 꽤나 기승을 부린다. 하루 쯤 내 따끔거리는 목을 쉬게 하고도 싶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갈 길이 바쁘다. 오늘도 제대로 착석이 되지 않고 눈 마주침도 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하나라도 더 집중시켜보려 나름 애써본다.
“자, 여기 좀 보세요. 이게 무엇일까요? 그래요, 사과에요. 이 사과를 칼로 한번 잘라볼까? 쓱싹쓱싹~ 어? 사과가 잘라졌네. 사과를 칼로 싹둑 잘랐더니 반쪽, 반쪽 두 쪽이 되었어요. 반쪽은 ○○가 먹고 나머지 반쪽은 선생님이 드실게요. 냠냠... 아, 맛있다. 이 사과는 색깔이 빨간색이네? 사과도 빨갛고 여기 있는 토마토도 빨간색이에요. 이 블록도 빨간색이다. 또 빨간색은 뭐가 있을까?”
마치 내가 헬렌켈러를 지도하는 설리반 선생이라도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 언젠가 이 아이들이 말을 하고 어느 정도 통합이 되는 그날이 올 때까지 쭈욱 파이팅!^^
역사 바로 알기
최은실(포도) 님
지난 주 중에 비가 내리더니 전국이 꽃샘추위로 겨울옷을 다시 꺼내 입어야 하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해마다 봄이 오려면 어김없이 꽃샘추위를 견뎌내야 하는 모양이다.
요즘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아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선생님들도 분주하다. 서울에 있는 큰딸은 대학2학년생이 되더니 새내기들에게 밥 사주며 선배노릇 하느라 바쁘고, 둘째 아들은 중학교 때와 사뭇 다른 고교(기숙사)생활에 적응하느라 애쓰고 있다.
그러다보니 네 명 밖에 안 되는 식구임에도 좀처럼 한자리에 모여 함께 식사하는 시간 갖기도 어렵게 되었다. 나 역시 변화된 이 상황에 맞게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교회에서의 봉사, 배드민턴클럽, 각종 모임이나 시민단체회원으로서 성실히 활동하고자 함은, 소위 ‘빈둥지증후군’을 겪지 않으려는 생각일 뿐만 아니라, 나를 바로 알고 더 나은 나로 성숙해지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내일 3월 26일은 일제 치하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날(1910년)이다. 국가보훈처는 이 날 오전 10시 남산공원 내 안중근의사 기념관에서 103주기 추모식을 한다고 한다. 참석은 못하더라도 그를 기리는 맘을 가져야겠다.
오는 3월30일에는 충북교육발전소에서 '충북 속의 독립운동'이란 주제로 역사문화기행을 간다고 한다. 둘째 아이 6학년 때가 떠올랐다. 독립기념관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10회에 걸쳐서 토요일마다 천안으로 동행했었다. 갈 때마다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전시관을 둘러본 우리 부부가 그러했듯이 아이도 분명히 뭔가 보고, 듣고, 느낀 바가 있었을 것이다.
서울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 재연해 놓은 일제강점기 때 있었던 고문실 모습과 사형장을 보면 인간의 잔악성에 전율하게 된다. 동시에 모진 고문 끝에 심신의 고통 속에 떠나간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이 보이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만약 내가 그 상황에 놓였다 상상해보면, 몇 끼만 굶겨도 아마 그들이 원하는 답을 줄줄이 말해버리거나 협조하는 나약한 내가 보인다. 어쩌면 옥고는커녕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친일매국행위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친일청산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러한 생각으로 친일인물들을 변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2001년에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가 출범되고 우여곡절 끝에 2009년 사전이 발간되었다. 지금은 스마트폰 앱으로까지 진화하여 친일인물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명단에는 운보 김기창 화백(한국화가), 노덕술(경시), 도광한(충북출신 고등경찰), 민영은(청주출신 중추원 참의), 방응모(<조광>발행인), 손광화(천도교, 청주출신, 손병희의 딸), 이무영(=이용구, 음성출신 소설가), 홍난판(작곡가) 등 각계각층에서 이미 잘 알려져 있거나 그렇지 않은 다양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요즘 친일파 민영은 후손이 청주중학교 인근 도로 일부를 포함한 토지 12필지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분노했다. '후손들에게 일제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알게 해주는 것이 진정으로 미래를 여는 것'이라는 말을 되새겨봐야 할 때인 것 같다.
또한, 3월 30일에는 민족지도자 장준하선생 겨레장이 치러진다고 한다. 38년간 밝히지 못한 선생님의 사인규명을 위한 정밀감식을 마치고 드디어 평안한 안식을 하시도록 보내드리게 되는 모양이다. 9시 발인제(서울광장 분향소), 11시 노제(서대문 형무소), 2시 안장식(파주 장준하공원)이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http://me2.do/xWZ1N7Yb)
이제 곧 4월이다. 과거 4월에는 어떤 역사적 인물, 사건이 있었는지 살펴봐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부터 잘 몰랐던 우리 역사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바르게 알도록 힘써야겠다. 오늘의 우리가 과거의 어둡고 아픈, 잘못된 역사(특히 근현대사)를 철저히 되짚고 넘어가야 내일의 후손이 더 밝고 건강한 미래를 맞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한겨울에서 새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꽃샘추위를 견뎌냄으로써 생명력 넘치고 따뜻한 봄을 맞을 수 있듯이...
인권친화적 학교문화 조성
충북보건과학대학교 홍성학 님
지난 3월 11일 경북 경산의 고교생 최모(15) 군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2월 정부의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이 있은 지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이다. 이에 정부의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학교폭력의 근본 해결책을 다시 고민하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시민단체를 비롯해서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지난 2011년 12월 대구 중학생 권모(당시 나이 14세)군이 자살하였고, 학교폭력이 사회적 관심으로 떠오르면서 정부는 2012년 2월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마련하였다. 여기에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통한 강제전학 등 가해학생 엄중처벌, 학교폭력 조치사항 학생기록부 기재, 신고센터 개선, 학교폭력 전수조사 등의 정책이 담겨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지난해 6월까지 전국 1만1000여 개 학교에 모두 10만여 대의 CC(폐쇄회로)TV를 설치해 학교 주변 CCTV 설치율을 98%로 끌어올렸다. 교과부는 경찰청과의 업무공조를 통해 전국 초중고교에 상담사 자격증을 가진 전담 경찰관(스쿨폴리스) 500여 명을 배치했다. 아울러 상담교사도 300명을 증원하는 한편 배움터 지킴이 등 학생보호인력도 8955명에서 1만633명으로 늘렸다.
그러나 이러한 처벌 및 감시, 통제 위주의 대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이 드러났다. 학교 주변 CCTV 설치율을 98%로 끌어올렸지만, 이번 최모 군의 사례는 CCTV의 사각지대에서 폭행이 이루어졌다. ‘강제전학’ 역시 또 다른 부작용 낳고 있고, 가해사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는 이른바 ‘낙인 효과’등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최모 군이 2년 동안 중학교에서 학교폭력에 시달릴 때 해당 중학교에서는 상담 교사가 가해학생을 상담하였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학교폭력 방지책의 허점도 보여줬다. 학기별 1회식 실시하도록 되어 있는 학생․교직원․학부모 대상 학교폭력 예방 교육도 전문성이 결여된 채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그동안의 처벌 및 감시, 통제 위주의 대책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학교폭력 예방 위주의 대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예방을 위해서는 현재의 경쟁위주의 입시 교육정책에서 탈피하여야 한다.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학생들을 보살필 수 있도록 학급당 인원수 및 교사들의 잡무를 줄여야 한다.
이외에도 학교폭력 예방 위주의 대책을 위한 여러 구체적인 방안들이 있을 수 있는데, 결국 ‘인권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처벌 및 감시, 통제 위주의 대책이 나온 지 6개월 정도 지난 2012년 8월 3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의 학교폭력대책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인권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종합정책>을 의결하고 17개 시․도 교육청 등 관련 부처에 권고한 바 있다.
2012년 7월 30일자 국가위원회 <인권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종합정책권고 결정문>에서는 권고 배경으로 ‘2011년 12월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을 계기로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비상하게 높아졌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학교폭력 진정사건 접수도 늘어났다. 그동안 아동․청소년 인권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위원회는 사회적 관심에 부응하여 학교폭력 대책마련에 착수하였다. …… 교육문제의 대증적 해법을 찾기보다는 장기적으로 견지해야 할 인권적 가치와 방향제시에 주력하였다.’라고 밝히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종합정책 권고는 5개 영역 20개 분야에서 52개의 정책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중 5개 영역은 ‘인권교육의 제도화, 학생인권 증진, 교원의 교권 존중, 체벌 없는 인권친화적 학생지도, 학교폭력 예방과 적극적 대응’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권고는 인간 존엄에 대한 인권의식을 높이는 것이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충분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담고 있는 것이다.
충북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의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은 <인권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종합정책권고>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학생의 인권을 강조하다보면 교권이 위축되어 학교폭력 학생을 지도하기 힘들어진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운동본부의 조례안은 학생, 보호자, 교사에 대해 인권 교육을 실시하여 서로에 대한 존엄의식을 높이도록 하고 있어 오히려 교권 존중을 높일 수 있다.
이제라도 정부 관련 부처는 물론 시․도교육청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종합정책권고>를 적극 받아들여, 인권이 존중되는 행복한 학교를 실현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충청북도에서는 충북학생인권조례안이 도의회에 발의되고 제정되어 교사와 학생의 인권이 모두 존중되고, 학생들의 다양한 가치를 계발하는 행복한 충북학교를 만들어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받아쓰기, 협상하다
홍승표(공동선) 님
1.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독일군
2.위험스러울 뿐이었다.
3.어이 구스타프, 세워 봐봐
8.지도랑 전혀 틀려 다리도 모두 끊겨 있고 말이야.
9.북극곰 같은 놈들이 머리도 쓸 줄 안다니까.
위 글은 제 아들이 쓴 3월 14일자 받아쓰기 내용 가운데 일부분입니다. 제 아이는 우리 나이로 10살이고, 홈스쿨링을 하고 있지요. 제가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이 학교요, 놀이터인 셈입니다. 아이를 향한 제 바램은 놀이를 통해 어른들이 공부라고 말하는 내용들을 자연스레 익힐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놀이를 통해 공부를 익히도록 보살핀다는 것이 제게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인가 아이에게 직접 하기보단 그저 바라보며 아이 속에서 놀이와 공부가 잘 영글어 하나가 되기를 기다리는 게 제 몫임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은 놀기 위해 이 세상에 온다고 말씀하신 선생님도 계시지만 그 놀이의 내용이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것처럼 보이거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면 제 속에 슬금슬금 불안이 생겨나곤 합니다. 그래서 올해 들어서는 제가 아이에게 조심스레 제안을 해 봅니다. 이제 받아쓰기도 좀 해 보면 어떨까?, 음... 좋아, 그러면 어떤 책을 받아쓰기 할래?
받아쓰기 책을 골라보자는 내 말에 한 참을 생각하던 아이는 자기가 재밌게 읽고 있는 책으로 하자고 협상을 청해 옵니다. 그 책은 문효섭이 2차 대전을 소재로 그린 ‘강철의 대지’입니다. 헉, 만화책! 나는 잠시 갈등이 일었습니다. 만화책을 가지고 받아쓰기를 한다고, 그래도 되는 것인가? 받아쓰기를 하려면 글씨 책이어야 하고, 그 가운데서도 문학성이 있는 것이라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만화책으로 하자고? 이걸 어쩐다. 받아쓰기를 조금 미뤄야 하나 아니면 만화책이라도 받아쓰기를 해야 하나?
나는 아이의 제안을 받아들여 ‘강철의 대지’로 받아쓰기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만화책에도 글이 있으니까 글쓰기를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거기다 아이가 좋아하는 내용이니 어떤 글은 몇 글자만 읽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이라며 그냥 외워서 받아쓰기를 합니다. 저는 아이가 햇갈려 하는 쌍받침이 있는 글을 몇 개씩 섞어서 읽어주고 받아쓰기가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가를 점검하면 됩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무엇을 갈등했던 것일까요?
홈스쿨링의 장점이 아이가 가진 개성을 맘껏 살릴 수 있다는 것인데 나는 학교 밖에 있으면서도 학교를 따라가려고만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 봅니다. 일찍이 우리 인문학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시인 김수영은, 팽이는 각자의 중심으로 돌아야지 한 팽이에게 중심을 맞추면 나머지 팽이는 다 쓰러지고 만다고 하셨지요. 우리가 교육을 제대로 하자면 아이가 가진 개성을 어떻게 살려주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교육은 물통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불을 지피는 것이라고 했다지요. 예이츠 말마따나 교육이 모름지기 아이에게 무언가를 억지로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아이 속에 있는 위대한 것을 자연스레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면, 학교교육이든 학교 밖 홈스쿨링이든 아이를 존중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교육은 중심은 누가 뭐래도 아이입니다. 그것을 잃으면 아이들은 다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힘들지만 아이들이 팽이처럼 자기의 중심을 잡고 돌 수 있게 해 준다면 아이들은 보다 잘 설 수 있을 것입니다.
받아쓰기 협상을 해서 결정한 만화 ‘강철의 대지’를 가지고 아이가 받아쓴 노트에 저는 이렇게 써 주었습니다.
잘했어요, 그리고 글씨가 참 예쁘군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