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을 나아가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그 도시의 겨울에 종종 찾아오던,새벽에 호수처럼 시가지로 밀려 온 안개가 저녁까지 걷히지 않던 날처럼.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들이 안개에 덮혀 흔적도 보이지 않는 회색 건물들 사이를 축축한 석벽에 바싹 몸을 붙이고 천천히 걸어야 하는 밤처럼.
아무도 자전거를 타지 않는 밤,사람 자취 없이 무거운 발소리들만 들려오던 밤,아무리 더 나아가도 싸늘한 집에 다다를 수 없을 것 같은 밤처럼.' 한 강 소설 -희랍어 시간 중에서-
안개의 정도는 밀도로 말해야 하나? 두께로 느껴야 했을까? 내 나이 열 살 무렵 안개가 주는 평소 이미지는 늘 아련하고 사뿐했었다
새벽녘 엄마가 일으키는 소란에 눈을 떴다 새벽 기도를 하러 굴다리 위 천리교로 나섰는데 문득 다다른 곳이 글쎄 남원 로타리 부근 어느 교회 문앞이었다는 것이다
그토록 동네 교회 근방만 스쳐도 기겁을 하며 '그런 곳은 네가 갈 곳이 못된다'고 못을 박던 엄마 새벽길을 그날 교회로 인도했던 것은 안개였다 아련하고 사뿐한 안개가 아닌 두텁고 끈적하고 빡빡한 밀도의 그런 안개였던 것이다.
때아니게 설친 잠에서 나를 일으키며 눈을 비비며 내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북쪽에 있는 천리교 교당에 간다고 간것이 어찌 완전 반대인 남쪽 교회로 갈 수 있어?"
"야 함 나가봐 지금 밖은 한 치 앞도 안보여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할 수 있어야지 내 생전 이런 안개는 처음이다 기도고 뭐고 갑자기 사방분간이 안되니 무섬증이 오싹 들더라 집에도 어찌 더듬어 왔는지 모르겠다 살다살다 무슨..도깨비한테 홀린 것도 아니고!!"
엄마는 아직 우리 온기가 남아 있는 이불 속을 파고 들자 미처 털어내지 못하고 묻혀온 빡빡하고 시퍼런 안개도 함께 묻혀 들었다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내 속살까지 퍼렇게 전해졌다
당시 여고생이었던 큰언니는 별다른 까닭없이 다리를 절게 되었다 백약이 무효라 가족들 시름이 짙어질 무렵 엄마는 천리교 교구당에 가겠다고 선걸음이셨다
'리어카로 실려 온 앉은뱅이가 기도 끝에 서서 나갔다더라'
딸을 낫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그렇게 시작된 새벽 기도를 지속하던 중 안개로 인해 맞은 봉변을 당하셨던 것이다
우리집에서 해봐야 50미터 인근에 제칠일안식일교회라는 긴 이름의 교회가 있었다 거기 발걸음만 하면 요절을 낸다는 엄포가 있던 영역이었지만 내겐 금단 앞에 더욱 치열해지는 열정이 웃자란 그 곳이어서 단 한번 선 넘어 발길한 곳이었다
기도와 설교 끝에 달디단 색연필과 색지를 준다는 눈 딱 감고 그것만 받아오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큰 쉼호흡 끝에 발 들인 곳이었다
"주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흘만에 부활하시어 앉은뱅이도 나아 바로 걷게 하는 기적을 행사하셨으니~~~"
'그 곳에 가면 귀 엷은 너희들은 그만 인이 박혀 평생 그리 살아야 한단다 안될 말이지.우리 집에서 가당키나 한 말이가!'
목사님 설교를 듣는 순간에도 간간이 이르는 엄마 말이 진득하게 부풀어 오르는 밀가루 반죽처럼 가슴팍을 치받아 색연필이고 뭐고도 잊고 튀어나온 적이 있었으나 그 기억을 결코 발설한 적은 없었다
그 날은 순전히 안개 탓이었을 것이다 온통 안개로 해서 온 집안이 다 습하고 끈적였던 날이었으니까!!
"엄마 안개가 왜 갑자기 끼었겠어? 일평생 한번도 본 적 없었다며? 그런 안개가 왜 하필 새벽 엄마 기도길을 천리교가 아닌 거꾸로 있는(남쪽)교회로 이끌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