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찬명이 어느날 상제를 모시고 있을 때 상제로부터 요․순(堯舜)의 도가 다시 나타나리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전하는도다.
(교운 1장 46절)
여기에서 말하는 “요순의 도”는 요임금과 순임금을 말하며 요순시대는 “태평성대”라는 말로 통용된다. 요를 이은 순(舜)을 일러 ‘요순의 치(治)’라 하며,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천자상(天子像)으로 알려져 왔다.
○요순시대는 태평성대라는 말로 통용
요순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전경 교운 2장 26절 전교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傳囂頊嚳勛華禹 初統初會世世聖
전효욱곡훈화우 초통초회세세성(교운 2장 26절 전교 중에서)
전하건데 효(소호 금천씨), 욱(전욱 고양씨), 곡(제곡 고신씨), 훈(제요 도당씨), 화(제순 유우씨), 우(제우 하우씨)는 초통 초회때 대대로 성인이었다.
초통 초회때 이 세상에 출하신 성인이다. 여기에서 훈(放勛은 요임금의 다른 이름)은 요임금을 화(重華는 순임금의 다른 이름)는 순임금을 뜻한다.
어진임금이 잘 다스리어 태평한 세상이나 시대를 太平聖代(태평성대)라 하는데 태평성대를 나타내는 말에는 康衢煙月(강구연월), 擊壤歌(격양가), 堯舜之節(요순지절)이 있다.
옛날 순이 요에게 물었다. “천왕의 마음씀은 어떠한 것입니까?”
요가 대답했다. 완미한 백성을 멸시하지 않고 가난한 백성을 버리지 않고 죽은자를 위해서는 괴로워하고 고아를 기쁘게 해주고 과부를 슬프게 여겼는데, 이것이 나의 마음쓰는 바요.“
康衢煙月(강구연월)이라 함은 ‘사람의 왕래가 많은, 사통오달의 번화한 큰 길거리에서 달빛이 연기에 은은하게 비치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로, 태평한 세상의 평화로운 풍경을 이르는 말’ 이다.
“요임금이 천하를 오십년간 다스린 후 민심을 살피기 위해 평복차림으로 번화한 거리(康衢)를 돌아다니다 아이들의 노래를 들었다.” 아이들이 “우리 백성을 살게 해 주심은 임금의 지극한 덕”이라고 노래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천하가 잘 다스려져 태평함을 알았다한다.
어린아이들이 무심코 뛰고 놀면서 입에 올리고 있는 이 노래를 후세에는 강구가康衢歌 라고 했다. 노래가 담고 있는 뜻은 「백성들이 저마다 자유롭게 자기의 삶을 잘 살고 있다. 그렇게 잘 사는 것이 곧 임금님의 지극하신 덕이 아닌 게 없다. 우리 백성들은 저도 모르게 임금님이 세우신 법도를 따를 뿐이다. 법이 있는 줄도 모르면서 따르는 것이 이상적인 덕의 정치다.」
요임금이 농촌 깊이 들어가자 이번에는 여러 노인들이 입에 음식을 물고 배를 두드리며 격양가를 부르고 있었다.
격양가라 함은
日出而作 일출이작
日入而息 일입이식
鑿井而飮 착정이음
畊田而食 경전이식
帝力何有於我哉 제력하유어아재
「해가 뜨면 나가서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와 쉬노라, 우물을 파서 물 마시고 밭을 갈아서 배부르게 먹노라. 임금의 힘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이 노래를 含哺鼓腹(함포고복)의 격양가라고도 한다. 뜻이 백성들이 임금이나 정치를 의식하지 않고 저마다 배불리 먹고 잘 살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해가 뜨면 밭에 나가서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와 쉬거나 잠을 잔다. 이는 즉 자연의 법칙을 따라 낮에는 활동하고 밤에는 휴식한다는 뜻이다. 우물을 파서 물 마시고 밭을 경작해서 먹고 산다. 이는 곧 사람들이 각자 스스로의 힘으로 생산해서 민생을 꾸려 나간다. 그러니 임금님의 힘이 우리에게 별도로 작용할리 없다.
이와 같은 경지가 곧 무위자연의 덕의 정치다. 사람이 자연의 이치를 따라 살았던 것이다.
○요임금의 검소함과 겸양
都平陽 茆茨不剪 土階三等 有草生庭
도평양 묘자부전 토계삼등 유초생정
요임금은 하늘을 두려워했고 만민에게 겸손했으며 아울러 나라의 씀씀이를 절약했다. 이에 백성들도 본받고 감화되어 부지런히 일하고 절약하고 저마다의 부를 쌓았다.
그는 평양(중국 山西省의 지명)에 도읍을 삼고 궁전도 조촐하게 세웠다. 궁전의 높이를 흙으로 세층계로 하였으며 띠지붕도 끝을 고르게 자르지 않았다. 기둥이나 대들보도 대패질하지 않고 단청으로 칠하거나 장식하지도 않았다.
식사도 채소와 잡곡밥을 오지그릇에 담아서 조촐하게 들었다. 옷도 여름에는 삼베나 갈포를 걸쳤고 겨울에는 사슴가죽으로 추위를 막았다. 그러나 조회나 의식을 올릴 때에는 황색의 관을 쓰고 백마가 끄는 붉은 수레를 탔다.
요임금은 만민이 저마다의 삶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게 무위자연의 덕치를 폈다. 인위적 조작이나 압력을 가하지 않고 하늘의 섭리를 따라 만민이 스스로 자라고 발전하게 다스렸다. 그러므로 후세에서도 태고때의 무위자연의 덕치를 높이고 칭송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