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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펄스베이(淺水灣, 深水灣, 온갖 잡신의 상징물을 다 모아 놓은 곳)→ 스탠리 마켓(동네시장, ‘군인들 숙소’였던 머레이 하우스)→ 빅토리아 피크(태평산위에 있는 공원)→ 산정열차→ 유람선→ 이층버스 타고 시내 투어→ 야시장 관광→ (식사 후 공항)→ 홍콩 떠남 |
작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모습에서 인간은 어떤 환경이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어 있다는 것은 느꼈다. 낮의 홍콩, 밤의 홍콩, 번화가의 홍콩, 뒷골목의 홍콩 등의 얼굴이 전혀 다른 모습에서 느낀 것으로 질서가 없는 가운데 질서를 찾으면서 일부는 홍콩인으로, 중국인으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었다.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야 하니 건물을 높이 지을 수밖에 없고, 이 건물들이 풍수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건물이 다양하다. 예로
홍콩 야경은 소문난 것이기에 짧은 시간이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콩의 야경이 아름다운 것은 이곳에 건물의 형태가 다양하고, 대형건물은 일정기간마다 조명을 바꾼다고 한다. 또 불빛이 밝은 것은 우리나라처럼 아파트에 베란다가 없어 불빛이 바로 나오기 때문인 것 같았다. 여기에 다른 하나를 덧붙이면 안개가 아닐까? 한 달에 열흘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안개가 드리운다고 하니 옅은 안개 사이로 보이는 야경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꽃은 반개(半開)가, 산은 안개가 드리웠을 때 아름답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야경을 보기 위해 산 중턱인 빅토리아 피크[태평산(太平山)]에 차로 올랐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야경을 마음껏 느낄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다시 산정열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볼 수밖에 없었다. 휘황찬란한 불빛이 차창 밖으로 지나간다. 홍콩의 제일 큰 문제점은 아마 이 밤을 밝히는 전기와 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로 들어와 유람선, 이층버스를 타고 바라보는 도심에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이 세련돼 보이지는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 안내자는 우리나라는 ‘의식주(衣食住)’라고 순서를 정하지만, 이들은 ‘식주의(食住衣)’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입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였다.
1842년 아편전쟁의 대가(代價)로 영국령으로 있다가 반환된 땅, 영국이 홍콩을 강탈할 때는 부도덕한 전쟁을 일으켜 뺏었지만, 해적의 소굴이었던 이곳을 세계의 경제적 메카로 성장시켰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광고 불빛도 보여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하루라는 짧은 일정을 마무리하고 홍콩을 떠났다.
시드니(2013. 01.12.~01.13)
[호주에서 1일차] 시드니 국제공항(현지시각 12시 경 도착)→ 올림픽 파크(야외에서 점심식사)→ 수족관 관람→ 유람선으로 시드니 항을 관람하면서 선상식사→ 스템포드 호텔 [호주에서 2일차] 호텔 출발→ 불루 마운틴 관광→ 시내 귀환(광나루에서 점식)→ 동물원(이곳에서만 사는 동물 관람) → 오페라하우스(객석에 앉아서…)→ 더블 베이 등 시내 투어→ 갭팍(시드니 항 입구)→ 본다이 비치(해수욕장)→ 시드니 국제공항(오후 7시 45분 이륙예정인 비행기가 10시가 넘어서 이륙) |
범인이 비행기를 탑승하는 일은 많지 않다. 2008년 대만을 다녀온 이후 한 번도 비행장에 가보지 않았다. 이번에 가장 긴 시간은 홍콩에서 호주 시드니까지 약 11시간이다. 탑승하여 처음에는 자다가, 나중에는 가슴이 답답하다가 그 다음은 아무 생각이 없어져버렸다. 포기한 것인가? 달관한 것일까? 연암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내 생각에 무리가 있을까? “내, 이제야 도(道)를 알았도다! (…) 말의 재갈을 풀어주고 강물에 떠서 안장 위에 옹송그리고 앉았다. 한번 떨어지면 강물이다. 그땐 물을 땅이라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몸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마음이라 생각하리라. 그러자 마침내 내 귀에는 강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박지원 원저, 고미숙 역, 『열하일기』)” 연암이 연경에서 열하로 가는 무박4일간의 기록 중 강을 건너는 상황으로, “마침내 내 귀에는 강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것은 두려움은 물론이고 죽음마저 초월한 도의 상태일까? 외물과 주체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 물아일체가 된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호주 시드니에 도착하여 관광버스에 태워져 올림픽공원 야외식탁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행사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버스를 승차하자마자 안내가 시작된다. 호주는 넓은 땅에 비해서 인구 약 2,200만 명으로 적다고 한다. 그래서 출산 장려정책을 강력하게 실시하고 있으며, 국민소득이 약 5만 8천불 정도라고 하니 대단히 잘 사는 나라인 것 같다. 이곳 안내자의 설명에 의하면 호주는 인본주의이며, 역사인식이 특별한 것 같았다. 물론 이러한 인식의 기저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예로 혼자 사는 할머니 집에 화재가 발생하여 할머니가 사망하는 사고가 나자 각 세대마다 ‘스모그 알렘’ 설치를 의무화하여 소방서와 연결하여 사고가 나면 5분 이내에 출동한다고 한다. 또 어떤 도로를 불문하고 자전거 전용도로를 건설하여 국민들이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 국민건강증진에 힘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눈에 보이는 부분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모든 것을 계획하고 건설한다는 점에 대해서 안내하였다. 우리도 그렇게 못할 바는 아니지만 문제는 경제력 아닌가? 푸른 도심 속을 달리면서 느낌이 다른 가운데 올림픽공원에 도착했다. 산들바람 속에 식사하는데 낯선 객들임에도 아랑곳없이 걸식하는 새들 보니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 같았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시내 투어를 위해 승차하자 다시 안내를 시작한다. 이곳 정부에서 국민을 위하는 정책 중에 중점을 두는 것이 국민건강이라고 한다. 그래서 포장마차와 길거리의 잡상인을 허용하지 않으며, 뿐만 아니라 시드니 항에는 갯내가 전혀 나지 않을 정도로 오염되지 않았는데,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시드니 항에는 오물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노력과 함께 천혜의 조건을 갖춘 항구이기에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지 모른다. 천혜의 자연조건에다 오페라 하우스 등 인공 구조물을 세우고 관리하는 것은 이곳 사람들의 몫이었기에 잘 가꾸어 이런 명성을 얻은 것이다. 유람선을 타고 시드니 항을 관광하면서 오페라 하우스와 대형 크루즈, 하버 브릿지, 수많은 보트와 요트 등 미항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관심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엄격하다고 한다. 예로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경기장을 건설하는데 이곳에만 서식하는 녹색에 노란 줄이 들어간 개구리 서식지가 나와 그대로 보존하고 다른 곳에 경기장을 지었으며, 그 외 캥거루와 코알라, 웜뱃 등도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낯선 곳을 이리저리 다니다보니 벌써 저녁이 되었다.
시드니에서 2일째는 불루 마운틴과 시내를 관광하고 이곳을 떠나게 된다. 불루 마운틴은 코알라 먹이인 유칼립투스가 집단으로 서식하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이 나무 잎의 푸른빛이 마치 푸른 안개가 피어나는 듯하여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이곳은 석탄을 채탄하던 곳으로 지금은 관광지이다. 내려갈 때는 열차를 이용하고, 이어 울창한 삼림 속을 산책한 다음 ‘케이블 카’로 올라왔다. 몇 년전 중국 광주 갔을 때 채석장을 공원으로 가꾸어 놓은 것을 보았는데, 이곳 역시 버려진 땅을 공원으로 조성하여 활용하고 있다. 시드니로 들어와 ‘오페라 하우스’ 내부를 둘러보고 오페라 공연장 객석에 앉아 우리나라 출신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니 가슴 뿌듯하였다. 이곳 오페라 하우스에는 우리나라 출신 직원이 3명 있다고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근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호주는 1840년 죄수 송출이 중단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고 하니 역사는 길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과 풍부한 지하자원 등으로 인하여 선진국이 되었다. 시드니 일대를 돌아보면서 잘 사는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선진국이란 경제력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배려하고 포용하고 그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끌어안는 정치를 해야 선진국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여기에서 다시 느끼게 되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저녁 먹는 시간을 놓친 것인지는 몰라도 공항에서 김밥으로 저녁을 먹고 뉴질랜드로 향하기 위해 출국심사를 마치고 들어서는데 비행기가 딜레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연되는 이유는 호주와 뉴질랜드 사이 이상 기류 때문이라고 한다. 자연 앞에 인간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뉴질랜드 ‘퀸스 타운’에서(2013. 01. 14 ~ 01. 14)
[뉴질랜드 남섬 1일차] 크라이스트처치→ 캔터베리 대평원→ 마운틴 쿡(만년설)→ 데카포 호수→ 푸카키 호수(푸카기 가든에서 점식식사)→ 크롬웰 과수단지→ ‘카와라우’강의 세계 최초의 번지 점프장 관람→퀸스 타운 도착 [뉴질랜드 남섬 2일차] 퀸스타운 출발→ 와카티푸 호수(‘싱가포르’만한 호수)→ 테아나 호수→ 애글리팅 벨리(갈대와 만년설이 어우러진 풍경)→ 거울호수→ 피오르드 국립공원(만년설아래 너도밤나무 군락지, ‘반지의 제왕’ 촬영지)→ 밀포도 사운드 도착→ 크루즈 선상에서 점심 식사→ 밀포드 해안 관광→ 몽키 크릭(계곡 생수)→ 호모 터널 입구에서 휴식→ 퀸스타운 도착 [뉴질랜드 남섬 3일차] 퀸스타운 출발→ 에로우 타운(사금 채취하던 금강촌)→터석(Tussuk) 평원→ 푸카키 호수→ 데카포 호수(중국식으로 점심식사)→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현장 및 모나 베리 공원 산책→ 한국관에서 저녁식사→ 크라이스트처치 이륙→ 오클랜드 도착 및 호텔(와이푸나호텔) |
호주에서 출국이 늦어져 호텔에서 잠잔 시간이 약 2시간 정도였다. 비몽사몽간에 아침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 ‘퀸스 타운’으로 이동하는데 눈앞에 펼쳐진 대평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엄청나게 넓은 평원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소와 양, 가끔 눈에 들어오는 사슴 밖에 없다. 그리고 풀을 키우기 위한 긴 ‘스프링 쿨러’만 보일 뿐이다. 얼마를 달렸을까? 저 멀리 만년설을 이고 있는 높은 산과 함께 ‘애머럴드’빛 데카포 호수가 나타난다. 때 묻지 않은 태초의 모습 그대로 였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는 모든 것들이 그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하는 맑은 날 평원도 푸른데, 호수에 물결이니 비색으로 물드네. 한 마리 개 동상 물가에 임하니, 만년설의 신산이 목 빼고 웃더라. |
訪動淸天廣野蒼 爲湖秘色起波浪 孤空犬像臨濱水 萬雪神山笑頸長 |
휴식을 마치고 다시 달리니 이번에는 푸카키 호수가 나타난다. 이들 호수들은 만년설 빙하가 만든 것으로 엄청난 저수량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호수였다. 이런 물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한다고 한다. 이곳의 전기는 수력과 풍력으로 생산할 뿐 원자력발전소는 건설하지 않는다고 하니, 청정지역으로 남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가 보이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국가는 원자력이 필요 없을지 몰라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기 때문에 안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체리 농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조상이 이곳을 찾아 모험을 마다하지 않았듯이 그 후예들도 모험과 도전정신이 뛰어나다고 한다. 인구 약 4백만 정도인데 노벨상 수상자가 3명이고,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무산소 등정한 험프리 경, 최초의 번지 점프 등이 이를 말해주는데 이것은 교육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세계 최초로 번지점프를 한 ‘카와라우’강의 ‘번지 점프장’을 관람하고 이어 ‘퀸스 타운’에 도착했다. ‘와카티푸’ 호수의 저녁햇살을 받은 ‘퀸스 타운(Queens town)’은 이름 그대로 여왕이 살 정도의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였다. 열심히 달려와 저녁 먹고 호숫가를 산책하다 신혼여행 온 부부를 만나 한담하다 돌아와 별을 헤며 잠이 들었다.
모닝콜과 ‘썸머타임’, 하늘에 떠있는 해로는 시간을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예정된 시간에 아침식사를 마치고 ‘밀포드 피오르드’를 찾아 나섰다. 이 지명이 이전에는 ‘밀포도 사운드’였는데, ‘밀포드 피오르드(이하 밀포드)’로 바뀌었다고 한다. 지나는 곳곳에 보이는 것은 역시 소와 양들이다. ‘퀸스 타운’에서 ‘밀포드’까지는 약 3시간에서 4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하는데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개발이 가능하지만 이들은 이것을 시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자연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것은 호머라는 사람이 이곳에 터널을 만들 때 처음에는 허가하지 않다가 나중에는 손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구로 작업하는 조건으로 허가했다고 하는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터널은 18여년의 공사 끝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정권을 잡거나 단체장이 되면 이름을 남기기 위해 일을 만드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였다.
저 멀리 만년설을 이고 안은 높은 산들이 눈앞에 나타나고 길옆으로 만년설을 벗 삼은 삼림들이 객을 반긴다. 호머터널을 지나 마지막 고개를 넘으니 엄청난 규모의 너도밤나무 숲과 안개와 만년설이 뿜어내는 실핏줄 같은 수많은 폭포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좋은 곳은 누가보아도 좋은 곳이다. 예술작품도 마찬가지이다. 반지의 제왕을 보고 저 “아름다운 경치는 어디를 배경으로 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곳이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태백이나 정철이 이곳을 보았다면 무엇이라 읊었을까? 이런 곳은 천상의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을 그런 비경이 아닌가? 차에서 내려 약주라도 한 잔 했으면 좋겠다는 세속의 마음을 품었지만 아쉬움만 남아 한 수 중얼거려 보았다. 나만 그런 생각을 했을까.
백운이 춤추고 폭포수 날고 나니, 바위산 절벽이 눈앞을 압도하네. 숲속의 맑은 천에 신선이 노는가, 대작하며 비경을 노래함이 어떠리. (황태현, <途中>) |
亂舞雲遊瀑布飛 巖山絶壁眼前威 淸川鬱木神仙樂 對酌爲歌秘景依 |
이런 곳에서는 문명의 시간이 필요 없다. 오로지 자연의 시간에 따라 생각하고 움직일 뿐이다. 여기서 내가 가져가야 할 것이라고는 이곳에서 경험하고 느낀 흔적 즉 추억 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땅위에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씻기고 씻기어 흔적조차 없을 질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 하고 드디어 ‘밀포드’ 바닷가에 도착했다. 이곳은 빙하가 만든 피오르드 해안으로 만년설을 안고 있는 높은 산으로 둘러싼 천혜의 지형인데 해안의 바깥쪽 바다에서는 이곳을 찾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여름에는 눈이 녹아 곳곳에서 폭포수가 쏟아지고, 여기에다 비가 조금만 와도 안개를 덮어 쓴 산이 전부 폭포가 되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이런 경치와 함께 크루즈 선상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약 2시간 정도 관광을 하고 이어 다시 ‘퀸스 타운’으로 돌아간다. 모두가 열심히 일을 하여 관광이나 여행하는 이유를 대충 알 것 같다.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살고 있는 곳, 생활하는 일정한 패턴 등에 지배를 당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일상생활은 대부분 신호―반복행동―보상의 3단계를 거쳐 형성된 행동 덩어리, 즉 습관이 지배하고 있다(찰스 두히그, 『습관의 힘』). 사람들은 이렇게 지배를 당하고 있으면서 당하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는데 이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여행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든 그렇지 않든 사람들은 떠난다. 그리고 그것에서 해방되기도 하지만, 다시 그것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사인 것 같다. 돌아서는 길은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고은시인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이라고 읊었는데, 이곳으로 올 때 못 본 것이나, 느끼지 못한 것을 ‘퀸스 타운’으로 돌아갈 때 볼 수 있을까? 호머 터널입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니 만년설과 안개가 쏟아내는 폭포 앞에서 완전히 압도당했다. 이를 가슴에 담고 다시 길을 재촉하여 달리니 목장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이어 와카티푸 호수 끝자락에 있는 아직도 동력으로 움직이는 기관차가 있는 마을인 ‘킹스톤’에 도착하여 증기기관차와 호수의 깨끗함을 보고 ‘퀸스 타운’에 돌아왔다.
아름다운 ‘퀸스 타운’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호숫가를 산책하는데 오리와 갈매기가 무수히 날고 있었다. 저들은 과연 즐거울까? 장자와 혜자는 물에서 노는 물고기를 보고 진정 아는 것이 무엇이며, 물화(物化)가 무엇인지를 논했는데 나는 저들을 보면서 저들이 될 수 있으며, 저들의 즐거움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에~라! 모르겠다. 다만 눈에 보이는 이곳 갈매기가 부산갈매기와 다르지 않았다. 아무튼 지친 영혼을 보듬어 주는 자연의 품에 안겨 그들의 숨결 따라 동행하며 작은 순간만이라도 그들이 되어 걷는 이 길이 내가 누릴 수 있는 행운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이제 산을 넘으려 하고 있다.
‘퀸스 타운’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눈이 부시게 파란 아침하늘을 보며 ‘크라이스트처치’로 이동이 시작되었다. 서정주 시인은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고 했는데… 조용한 이곳에서 느끼고, 보이지 않는 흔적을 남기고, 이곳의 아름다움을 안고 떠나게 되니 서운한 감도 없지 않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미당처럼 오늘을 그리워하게 될까?
인간에게 황금이란 무엇일까?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에 모든 것을 버리고 이곳까지 사람들이 몰려들었을까? ‘퀸스 타운’에서 멀지 않는 ‘에로우 타운’이라는 사금(砂金)을 채취하던 금광촌에 들렸다. 많은 사람들이 금을 캐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들어 한 때 뉴질랜드 정부에서 수도를 남섬으로 옮기는 것 까지 검토했을 정도였다고 하니 황금의 힘이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은 관광객을 맞이하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인간이 태어나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닌데 서로 잘나고 못나고, 있고 없고를 따지면서 살 것도 없을 것 같다. 지나간 길을 돌아오는 것이라서 그럴까? 많이 낯설지는 않았다.
금광촌을 벗어나 달리니 민둥산이 나온다. 겹겹이 쌓인 민둥산이 만들어낸 아득한 선에서 황량한 아름다움을 본다. 유려한 선이 왜 사람의 마음을 당길까? 그저 자를 대고 그은 선은 정이 없다. 그것은 점과 점의 연결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 바라보는 선은 인체의 선과 같이 정을 가지고 있으며, 생명이 자라고 있기 때문에 그 선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민둥산 지역을 지나니 차창 밖으로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과 개발하지 않고 있는 땅만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잠시 적정이란 단어를 생각했다. “알맞고 올바른 정도”, “수준이나 정도가 어떤 일을 하는 데 알맞다”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는데 홍콩이나 호주, 이곳의 자연과 함께 사는 사람의 비율은 적정을 벗어난 것 같다. 홍콩은 사람에 비해 땅이 비좁아 건물을 높이 짓지 않을 수 없고, 호주나 뉴질랜드는 땅에 비해 사람이 적다. 이 적은 것을 양이나 소가 채우고 있어 살아 숨 쉬는 것들의 적정비율을 맞추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달려도 보이는 것은 평원과 풀을 뜯는 소와 양이다.
내가 태어나는 곳은 나의 선택이 아니지만, 내가 살아가는 것은 나의 선택으로 가능하다.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이런 곳에서 난관을 극복하며 살아갈 수는 있는 것이다. 이런 도전이 젊음의 특권이 아닌가? 지금 앞에서 열심히 안내를 하는 부산 출신 가이드 ‘장(張)군’을 보면서 느낀 것이다. 부산에서 초중고와 대학을 졸업하고 우연히 이곳에 정착하여 이제 영주권을 얻었다고 하니 대단한 젊은이이다. 그는 이곳을 경유하여 영국에서 살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말하는 가운데서도 고향에 계신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는 마음의 정이 느껴져 듣는 이의 가슴이 짠하였다.
가이드 ‘장군’의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크라이스트처치’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2011년 2월 22일 규모 6.3의 지진이 강타한 곳이다. 참혹했던 현장을 자동차로 돌아보는데 지금은 많이 정리가 된 듯하였다. 그래도 시내 곳곳에 빈곳이 많았다. 그것은 지진으로 허물어진 곳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유학생 남매도 이곳에서 희생되었다고 하니 가슴 아픈 일이다. 시내 곳곳에 공원이 있는 것 같고 부동산 재벌이 기부한 공원이라는 모나 베일(Mona Vale) 공원을 산책하면서도 지진이 할퀴고 간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자식에게 자산을 물려줄 생각을 않는다고 한다. 자기가 노력하여 모은 재산은 먹고 쓰다가 나중에는 공공에 기부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런 기부문화가 생활화되기 까지는 이들이 가진 자원이나 경제적으로 기본바탕이 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로 대학을 가지 않아도 십 수 년을 노력하면 농장주나 목장주가 될 수 있는 조건이 그것이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은 토지주와 가축주가 동업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지진으로 도시 일부가 훼손되기는 했어도 나무들은 푸르렀다. 이 도시를 일명 ‘Garden City’라고 하는데 도시를 걸어보면 실감할 수 있는 이름이다. 간간이 내리는 비를 맞은 나뭇잎이 더욱 초록빛을 더한다. 이런 분위기 좋은 때에 벌써 저녁식사를 해야 할 시간이 되어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으로 옮겨 식사를 마치고 ‘크라이스트처치’를 떠났다.
이곳은 겨울이라도 얼음이 얼지 않을 정도라고 하니 연중 나무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땅은 넓고 인구는 적으니 집을 높이 지을 필요가 없다. 가가호호(家家戶戶) 마당 한켠에 나무를 심고, 잔디를 심으니 녹색집이 되고, 녹색마을이 되니 시내 전체가 녹색이 된 것이다. 그러니 가든 시티라는 말이 실감나는 곳이다.
오늘이 무슨 요일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것이 뭐 중요한가. 휴대폰을 끄고, 인터넷을 끊고, 모든 문명의 이기를 벗어놓고 태초의 자연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니 나도 태초 대자연의 한 소속이 되어 그 속에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될 수 없음을 알았다. 다만 한 순간, 순간마다 그것이 되고자 한 것이다. 어쩌면 그런 염원대로 한 순간은 그것이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로의 복귀는 나의 의사와 전혀 관계없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퀸스 타운’과 그 주위에서 보았던 절경 중의 절경들은 하나 같이 그렇게 되고자 하여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다. 바위산, 만년설, 폭포, 백운, 맑은 계곡물, 깨끗한 호수 등 억지가 하나도 없다. 이런 것들을 누가 만든 것인지, 누구의 소유인지, 어디에 있는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보고 느끼고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저런 상념 속에 벌써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이곳 공항에서 출입국 심사를 받으면서 본 것은 이들이 우리 말 한마디 정도는 대부분 할 줄 알았다. 이렇게 우리의 위상이 높아진 것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02년 월드컵 4강이라는 것이다. 감동의 환희에 차 외쳤던 ‘대~한~민~국~’ 구호를 이들도 알고 있다. 그리고 강남스타일 ‘싸이’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할 점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런 문화 컨텐즈가 우리의 위상을 높이는데 많을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알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안내하는 안내자들이나, 이곳에 거주하는 교민들이 한 결 같이 하는 말이 이제 우리의 위상도 많이 높아졌다고 한다. 이것은 국내에서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2013. 01. 15 ~ 01. 19)
[북섬 오클랜드 1일차] 호텔숙박 [북섬 오클랜드 2일차] 호텔 출발→ 와이모토 석회동굴(반딧불이)→ 중식(빅 애플)→ 테푸리아(마오리 민속촌)→ 간헐천(끊는 진흙, 유황 등)→ 천연유황 온천욕(폴리네시안 스파)→ 항이 디너 및 마오리 민속 쇼→리셔호텔 [북섬 오클랜드 3일차] 레드우드 삼림욕→ 아그로 돔(양몰이, 양털 깎기, 트랙터로 농장 견학, 등)→‘농구타’산 Sky Line 타고 산 중턱에서 점심식사→ 조셉 공원→ 저녁식사(한인식당 미가)→ 콥슨 호텔→ 오클랜드 대학 산책→ 호텔 [북섬 오클랜드 4일차] 호텔출발→ 오클랜드 도메인 공원, 전쟁기념관 및 식물원 견학→ 오클랜드 공항 출발 |
뉴질랜드 북섬이라고 남섬과 다른 것이 있겠는가? ‘퀸스 타운’ 갈매기가 부산갈매기와 다르지 않듯이 모닝콜보다 먼저 잠을 깨운 것이 우리나라 참새와 똑 같은 그들 노래 소리였다.
오늘은 석회동굴과 간헐천을 관광하고 유황온천에서 온천욕을 하는 것이 주요 일정이다. 남섬은 지형이
뉴질랜드 양은 정확하게 계산할 수 없지만 약 5천만 두 정도를 방목하는데 한 마리가 1년에 벌어들이는 수입이 약 48만 원 정도라고 하니 엄청난 것이다. 양은 주로 고기와 털을 이용한다. 양털은 쓰임이 많다고 하는데, 그것은 발화점이 700도로 높고, 불이 붙어도 유독가스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카펫을 만들어 공공장소에 깔고 있으며, 소리를 흡수하기 때문에 공연장의 의자 등에도 사용한다고 한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의자나 실내공간에도 이 양털카펫이 깔려 있으니, 양이 인간에게 제공하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이렇게 소와 양이 이 나라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보니 가축에 대해서 얼마나 신경을 쓰겠나.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때 우리나라 119구조대를 파견하여 구조작업을 지원하고자 하였으나 뉴질랜드 정부에서 거절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당시 우리나라는 구제역이 창궐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 제일 먼저 관람한 곳이 석회동굴이다. 석회동굴은 우리나라 강원도에도 많이 있다. 그런데 이곳의 석회동굴에는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반딧불이가 살고 있어 유명해졌다고 한다. 이놈 때문에 석회동굴에 조명을 할 수 없으니 여느 동굴과는 다른 느낌이다. 이놈들이 몸에 불을 밝히고 가느다란 실 같은 물질을 늘어뜨려 먹이를 기다린다고 한다. 그 불빛이 마치 맑은 밤하늘의 은하수와 같아서 신기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였다.
이곳 관람을 마치고 이어 점심 식사를 했는데 식당을 찾아오는 또 다른 객이 있었으니 참새였다. 뷔페 음식통 가장자리에 앉아 부리로 음식물을 쪼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했는데, 주인이 참새들을 내쫓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자주 찾아오는 모양이다. 마치 설악산의 다람쥐들이 등산객을 졸졸 따라 다니는 것처럼…, 이들이 야성(野性)을 잃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식사를 마치고 유황과 온천의 도시 ‘로토루아’로 이동했다. 먼저 마오리족의 민속촌을 관람하고 이어 이곳의 유명한 키위 새가 있는 곳을 관람했다. 야행성이라 낮에는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관광객을 위해 불을 밝히지 않아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자세히 보니 움직임이 보였다.
이곳에는 세 개의 키위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키위 열매로 원산지는 중국이라고 하는데 뉴질랜드에서 골드키위에 이어 레드키위를 개발하여 다른 나라에 수출하고 있는 특산품이라고 한다. 다음
이어 자연이 준 신비함인 간헐천을 관람했는데, 옛날 경제지리를 가르칠 때 간헐천을 아이들에게 열심히 설명한 적이 있어 낯설지 않았다. 뜨거운 수증기와 온천수를 내뿜는 모습이 신기할 뿐이었다. 간헐천 입구에 펄펄 끊는 진흙이 있었는데 그 주위에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이것이 마누카 나무이고, 여기서 채취한 꿀이 유명한 마누카 꿀이라고 한다.
다음 일정은 유황온천에서 약 1시간여 온천욕을 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서 짐을 풀고 이어 저녁식사와 함께 마오리 족의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장에 나온 가무희(歌舞姬)들의 몸매는 가히 옛날 시골의 짚동을 연상케 했는데 몸무게가 대개 150kg은 넘을 것 같았다. 그들의 민속노래를 이어가면서 ‘포 카레카레’도 불렀다. 이 노래는 한국전쟁에 참여한 뉴질랜드 병사들의 입으로부터 전해진 마오리족 민요로 우리나라에 연가(戀歌)로 소개된 곡인데, 이런 전설을 담고 있다고 한다. 육지에 사는 부족 아리와 족장의 딸 히네모아는 모코이아 섬에 사는 부족 훠스터의 아들 투타네카의 피리소리에 반하여 사랑을 하게 된다. 이 처녀는 ‘투타네카’를 만나러 밤마다 카누를 타고 호수를 건넜다. 뒤에 이를 안 아리와 족장은 마을에 있는 모든 카누를 불태워버렸다. 이를 모르는 투타카네는 저녁마다 풀피리를 부니, ‘히네모아’는 그리움을 참지 못해 표주박을 몸에 감고 호수를 헤엄쳐서 건너가 두 사람이 사랑을 속삭였다. 이를 알고 두 부족은 화해했다고 하니 남녀의 위대한 사랑이 담겨있다. 이때 부른 풀피리가 아마 ‘포 카레카레 아나’일 것이다. 이 노래를 이곳 출신 성악가 ‘헤이리 웨스튼라’의 노래로 들으면 참 아름답다. 이 노래에 이어 우리나라 학생을 무대로 불러 아리랑을 합창해 가슴 뭉클하게 하였다. 아리랑은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밧줄과 같은 강력한 힘을 가진 노래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 오늘의 모든 일정도 끝나 호텔에서 와인 한 잔 하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원주민인 마오리족은 이제 많이 변했다고 한다. 백인과의 혼혈이거나 식생활이 바뀌면서 모습도 많이 바뀐 것 같아 보였다. 이들이 하와이에서 건너와 이 땅을 가꾸고 살다가 영국인에게 땅을 물려주고 뒷전이 된 것은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것 중 하나가 자연자원이 아닐까? 영국이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카오리 나무’와 ‘바다표범 가죽’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땅을 일방적 계약에 의해 빼앗기 시작하여 차츰차츰 땅을 그들 소유로 만들어갔다고 한다. 마오리족은 본래 고기를 많이 먹지 않았다고 하지만 현재 식생활은 어떤지 몰라도 몸이 비대할 대로 비대해져 걷어 다니는 것이 아니라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또 다른 날이 밝았다. 오늘 관광은 이곳 주위에 있는 레드우드 공원의 삼림욕과 농장 체험을 위주로 행사를 하고 오클랜드로 이동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다. 식사 후 일행은 레드우드 공원으로 이동하였다. 여기에는 1901년생 나무가 자라고 있을 정도로 삼림이 울창한 공원으로 시민들이 삼림욕을 즐기는 곳이다. 개인 소유지였는데 나라에 기증한 땅으로 약 100만 평 정도라고 한다. 공원 삼림욕에 이어 농장으로 이동하였다. 1967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와 현재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함께 이곳 뉴질랜드를 방문하여 목장으로 안내되었는데 목장의 소를 보고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한다. 소 몇 마리면 자식 대학 보내던 시절, 배고픈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시절이었으니 넓은 들판에 유유히 풀을 뜯으며 뛰노는 소를 보고 울만도 하지 않았을까? 이것을 전해들은 이곳 수상이 소 500마리를 선물했다고 한다. 이를 인수 받아 안산에 우리나라 최초 목장을 만들었다고 하니, 못살던 시대의 애환이기에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이다.
목장의 소와 양, 알파카, 타조, 사슴, 키위 농장 등 많은 동물들을 돌아보고 이어 이곳에서 제일 높다는 ‘농구타’산 중턱에 있는 식당에 ‘스카이 라인’을 타고 올라 식사를 했다. 큰 분화구 호수를 내려다보면서 하는 식사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이곳의 식사는 한인이 경영하는 식당이든 그렇지 않든 고기는 기본으로 등장한다. 그러니 소주 한 잔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 한인 식당에서는 한 병에 20,000원 내외하는 소주 몇 병을 구입하여 우리가 가져간 것과 함께 마실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탁자 밑에 소주병을 숨겨 조금씩 부어 마셔야 하니 답답하기는 하였지만, 그 술맛 또한 일품이다. 술은 만취(滿醉)가 아니라 미취(微醉)가 최상이다. 숨겨서 따라 마시는 몇 잔에 미취해 흥을 돋우니 이 또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여행 중의 미취는 느낌의 촉매제가 되어 여행의 정취를 배가시켜준다. 지금이 그런 것 같다.
끝없는 초원에 이어지는 녹지(綠地), 소와 양 한가하니 그들의 낙원이네. 삭도타고 산에 올라 반주로 식사하니, 이국의 깊은 정취 눈앞에 펼쳐지네. |
毋限草原綠地連 牛羊遊戱樂園專 登山索道佳饒食 異國深情鋪眼前 |
이런 느낌도 잠시 뿐 다시 이동이 시작되었다. ‘로토루아’에서 ‘오클랜드’까지 돌아오는데 약 3시간 정도 걸렸다. 오클랜드는 자연재해가 한 번도 없어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라고 하였다. 내가 보아도 살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주택에서 느껴진다. 그리고 집을 자세히 보면 북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은 남반부이기 때문에 집이 우리와 반대로 북향이라야 우리의 남향과 같이 햇볕이 잘 드는 방향이다. 집의 개념이 우리와는 다른 것 같았다. 길가의 작은 공간이든 개인주택의 마당이든 공간만 있으면 잔디를 심고, 나무를 심어 녹색도시를 만든다. 그러므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전부 녹색이다. 회색도시인 우리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평균연령 84세의 장수국이 되었을까?
오클랜드에 도착하여 여행 중 수준이 가장 떨어지는 호텔에 짐을 풀고 오클랜드 대학을 산책하였다. 방학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한가한 가운데 능소화가 만개하여 반겨주었다. 이곳에는 유도화, 자귀나무 등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꽃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이제 서서히 지쳐가는 것으로 보아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된 것 같다. 이곳에서 마지막 아침이 밝아오고 모든 짐과 이곳에 풀어놓았던 마음을 챙겨 떠날 준비를 마무리하고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뉴질랜드에 기증한 땅이라는 ‘오클랜드 도메인’을 관람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호주는 국기에 별이 6개 인데 이것은 여섯 개 주를 의미하고, 뉴질랜드는 별이 4개 있는데 이것은 십자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이 아끼는 식물이 고사리인데, 특히 이곳 “원주민인 마오리족은 이것으로 집을 짓고 살았기 때문에 더욱 애착을 갖는다.”고 한다. 또 서로 다른 마오리족이 고사리 잎을 가운데 놓고 잎을 밟으면 싸움, 손으로 잡으면 화해를 의미한다고 할 정도로 고사리나무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한다. 그 외 이 지역에는 나무들이 많이 없어 외국으로부터 수입해와 심어서 토종화 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있었으니 우리나라 억새와 비슷한 생명력을 가진 ‘터석’이라는 식물이 들어와 골치를 썩이고 있다고 한다. 이 풀은 잘 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번식력도 강하지만 문제는 소나 양이 먹지 않는다고 하니 농약을 뿌려 죽일 수도 없는 형편이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여행을 마치면서
여행의 형태는 배낭여행과 여행사에 의뢰하는 경우로 크게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전자는 언어의 소통이라는 장벽이 있어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한 실시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은 더욱 어렵기 때문에 후자를 이용하는 편이다. 그러므로 계획된 곳을 움직이다 보면 기계적으로 움직여야 단점 외에 몇 가지 문제점들이 있다.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도 느끼는 것들이 있다.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로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느낀 몇 가지를 요약해본다.
첫째, “여행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것이다. 내 짧은 소견으로는 “책에서 읽고 익힌 것들을 현장의 체험 등을 통하여 확인하고, 또 미지의 세계를 접함으로써 나를 돌아보고 나를 찾는 작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현장을 확인하는 것이야 개인적 취향에 따라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고 나를 찾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앞서본 대로 습관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이전의 나를 보고 앞으로 나의 길을 찾는 것은 사색과 관조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이 사색과 관조를 할 수 있도록 시간과 조건을 제공해 주는 가장 좋은 것이 여행이다. 여기서 배려와 포용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여행은 언제든 내려놓을 수 있지만 삶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현재 생활하고 있는 환경과 삶의 정도가 현지와 같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남으면 남는 대로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여행이 되었다는 의미도 포함될 것이다.
둘째, 시드니 부근과 뉴질랜드를 여행하면서 느낀 것이다. 먼저 풍부한 자연자원과 함께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정신이 살아있었다. 이것은 사람이 자연을 이용하지만 그것에 군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하나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자연 앞에 대단히 겸손하다는 것을 느꼈다. 다음은 넓은 땅에 비해 사는 사람들이 적어서 그럴까? 사람들이 여유로워 보였다. 농업과 목축업, 낙농업을 하다 보니 자연이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결과는 서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예로 봄에 씨 뿌리고 가을에 이것을 수확할 때까지, 또 소가 임신해서 송아지를 출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자연의 시간과 섭리를 잘 알고 이것이 생활화 되어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호주나 뉴질랜드 모두 살기 좋은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몇 일 길거리를 다니면서 바라본 단면적인 것 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눈에 보인다는 것은 결국 이곳이 지상낙원은 아니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세상에 낙원은 있을 수가 없다. 다만 그것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생긴 문제인지는 몰라도 눈에 보인 몇 가지를 들어본다.
먼저 비만(肥滿)이다. 길거리를 다니면서 본 이곳 사람들의 몸무게는 셈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날씬하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젊은 사람들밖에 없었다. 또 다른 예는 호텔에서 공연하는 이곳 출신 ‘마우리족’의 여성 네 명중 세 명은 일본 씨름 스모 선수들보다 더 뚱뚱해 보였다.
그리고 자외선에 의한 피부암이 많다는 것이다. 뉴질랜드는 남극과 가깝기 때문에 남극 상공에 뚫린 오존층으로 인해 자외선 강도가 엄청나게 높다고 한다. 이런 영향을 받는 것인지는 몰라도 피부암 환자가 많다고 한다. 이 부분을 포함한 자국민의 건강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복지국가가 갖추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일 것이다.
다음은 이들 나라가 보유한 자연자원은 엄청난 것이었다. 특히 뉴질랜드 남섬의 피오르드 국립공원의 삼림자원과 만년설에 의한 빼어난 자연경관은 어느 지역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훌륭한 것이지만, 이에 반해 자연이 주는 재앙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예로 크라이스트처치의 지진, 북섬의 휴화산 등인데, 그것이 재앙이 될 수도 있는 반면 강점도 될 수 있다. 예로 간헐천, 유황온천 등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문제점이라 하기 보다는 역사에 관한 것이다. 뉴질랜드는 약 1억 년 전에 대륙으로부터 분리되었으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이 불과 1000여년 밖에 되지 않았고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문화유산은 우리에 비해 다소 미약한 느낌이 들었다. 문화는 삶의 궤적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으로 유무형의 자산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풍부한 자연자원과 짧은 역사에 비해 우리는 비록 자연 자원이 상대적으로 그들에 비해 부족한 면이 있을지 모르지만 반만년에 걸친 유구한 역사가 일구어 놓은 문화유산이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점이 선진국에 뿐만 아니라 이들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셋째, 여행한 세 곳 즉 홍콩, 호주의 시드니, 그리고 뉴질랜드의 공통점은 홍콩은 인적자원, 나머지 두 나라는 자연자원이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다른 공통점은 세 나라 모두 영국의 통치하에 있다가 독립한 나라들이다. 처음에 영국이 들어와 다스릴 때는 어떠했는지 모른다. 영국이 다스린 것이 선정(善政)이었든지 아니면 횡포였든지 간에 지금은 모두 세계에서 주목받는 나라들로 성장했다. 이런 성장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들의 표정이 여유가 있어 보였다. 또 우리가 한 수 배워야할 점은 양보와 배려, 그리고 스마일이었다. 이것은 생활화되지 않고는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것들이다. 생활화 된다는 것은 훈련이나 교육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는 국제사회에 당당하게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위치에 왔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 속에 너도 나도, 우리 모두가 포함되어 있음도 알았다. 그러므로 이제 여유를 가지고 상대를 포용하고 배려하며 웃는 얼굴로 서로를 대하는 모습이 생활화 되도록 나 자신은 물론이고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또 나보다 훨씬 글을 잘 쓰는 사람들도 많은데 하찮은 이런 것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여행을 시작하면서 생각했던 것, 즉 내가 어디에 와 있으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를 돌아보는 것이다. 또 먼 훗날 기억이 희미해질 즈음 이것을 펼친다면 소파에 앉았어도 이 여행을 할 당시의 상황을 상기하며 와유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3년 1월 21일. 호주 뉴질랜드를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