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문학상 수상작품>
아직은 마흔아홉
심 영 희
우리에게 아홉이란 숫자는 말도 많고 아쉬움도 많이 서린 단어다. 흔히 어른들은 ‘아홉수’라
하여 재수가 없는 해라고 모든 일에 조심하라고 이른다. 초등학생일 때 아홉 살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된 열아홉 살에는 이상이 있었고, 고민이 있었고
분노와 희열을 느끼며 살았다.
어디에 가든 아줌마인지 처녀인지 구별할 수 없다던 스물아홉 살은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귀엽게 커가는 자녀의 재롱에 언제나 스마일상으로 생활했고 모여지는 적은 재물에도 희망과
용기가 살아나고 부러울 것 없는 아홉수였지만 세월은 잡아둘 수 없어 어느새 삼십 년이 훌쩍 넘어버린 서른아홉 살은 아쉬워 십 년을 서른아홉으로
살겠다고 야무지게 다짐을 했고 누가 나이가 몇이냐고 물으면 사십이란 말을 하기 싫어 서른아홉이란 나이를 앵무새처럼 뇌까렸으나 그것도 친한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얘기지 아무에게나 써먹을 수 없었던 서른아홉,
마흔을 넘어 하나 둘 나이를 더해가며 세월은 정말 빨리 갔다. 사람의 나이를 자동차 속도에 비유한다더니 마흔을 넘기면서 달려간 세월은 마흔을 넘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마흔아홉 번째 생일이 돌아왔다.
엄마의 생일 선물 속에 들은 딸아이의 편지를 읽으며 묘한 기분이 감돌았다.
“엄마 마흔아홉 번째 생일을 축하 드려요” 어느덧 엄마의 연세도
사십 대를 마지막으로 장식하네요.
“아들은 며느리 주고, 딸은 사위 주고 어머니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줍니다. ”이런 노랫말이 오늘따라 생각납니다. 저는
항상 느껴요.
엄마는 다른 어머니와는 다르다고…….
평범을 거부한 ‘女人’ 그래서 더욱 돋보이는 나의 어머니,
내가 특이한 삶을 원하는 것도 엄마의 영향이 크답니다.
공부에 때가 없다고 생각한 것도 말이에요.
전 항상 자신감이 넘치시는 엄마가 자랑스러워요.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시는 엄마를 뵙고 있으면
나도
항상 보다 나은 날 위해 노력하게 돼요.
엄마!
사랑해요. 항상
건강하세요.
1997년 3월 17일
딸 애란 올림
딸아이의 편지 내용처럼 아직도 마흔아홉이라는데
희망이 있다. 또한 아쉬움도 많다. 앞으로 몇 년을 마흔아홉으로
살지는 모르지만 마흔아홉은 특별한 ‘아홉수’다.
사십 대 후반에서는 모든 신체에 노쇠현상이 일어난다. 젊음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오십(50)이란
숫자를 접하기엔 정말 아쉬움 투성이다. 그러나 거역할 수 없는 현실에서 올해가 다 가면 마흔아홉은 종말을
맞게 된다. 너무 아쉽다. 꼭 끌어안고 싶다. 달아나지 못하도록 줄을 매어 묶어놓고 싶다. 항아리 속에 꼭꼭 가두어
두고 싶다.
그러나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다. 다시 생각하자 용기를 갖자. 즐거움을 찾자. 아직은 마흔아홉이라고 외치며 세상을 활보하자.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활보하며 열심히 살자. 쉰아홉을 대비하여 더욱 알차고 보람 있게 살자.
“아직은 마흔아홉” 앞으로 십 년은 더 마흔아홉으로 멋지게 살 수 있겠지. (1997년에 씀)
운전과 재봉틀
심 영 희
자동차와 재봉틀은 따지고 보면 상통하는 점이 많이 있다.
우선 몇 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때는 재봉틀이 그리 흔하지 않았다. 그 시대에 재봉틀 한 대 집에
있으면 잘사는 편에 속했고, 또한 솜씨 좋은 사람이 가족 중 한두 사람은 있었다.
그런 시절 자가용이란 것은 특정인물이나 소유했었지만 얼마 후에는 자가용
승용차도 부잣집에 낀다며 많이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것 또한 운전면허증이란 것을 따낼 수 있는 재주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는 곧 역 현상이 일어났다. 자동차는
날로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재봉틀은 날이 갈수록 멸시와 천대 속에 고물상이나 중고품세터로 내동댕이쳐졌다.
집안의 불청객이 되어 사라져가던 재봉틀이 어느 날부터 미니재봉틀로 변신하여
생활용품이기보다는 장식품처럼 나타났고 옛날의 재봉틀은 상체는 잃어버린 채 다리에는 예쁜 페인트 옷을 입고 인테리어 탁자 대용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약삭빠른 신세대 주부들이 구세대를 개혁이라도 하려는 듯 재봉틀 구입에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노년층은 돈 벌어 제일 먼저 집을 장만했지만 이삼십 대 신세대는 집보다는 승용차를 선호한다. 이사를
자주 다니더라도 우선은 편한 것이 좋다는 게 젊은 층의 생활철학이다.
또 요즈음 젊은 주부들은 대단한 이기주의자들이다. 그래서 시간을 내어 양재나 홈패션을 배워 집안 인테리어를 손수 하는가 하면 귀여운 자녀에게 엄마의 멋진 솜씨로
옷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요즈음 엄마들이 직접 옷 만드는 것은 옛날의 의류산업이 발달하지 못했을
때 우리들의 어머니가 재봉틀 할 때와는 아주 다른 의미가 담겨있다. 아직 자동차 수량만큼은 늘어나지 않았지만 신세대가정에서도 재봉틀을 쉽게
볼 수 있다. 밖에서 사용되는 자동차와 집안에서 쓰는 재봉틀은 모두 없어서는 불편한 가치 있는 물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재봉을 할 줄 알았고 운전면허증도 팔십오 년도에 취득했으니 그 역사가 그리 짧은 것은 아니다. 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운 재봉틀은 지금까지 나에게 참 많은 이익을 주었다.
승용차 역시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초보자가 운전하던 소형트럭에 받혀
가슴이 핸들에 부딪치면서 가슴뼈에 금이 갔었다. 이 개월 동안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거운 물건을 옮기고 나면 가슴이 담담해옴을 가끔씩 느낀다.
이 글에서 자동차와 재봉틀을 비유하기보다는 운전과 재봉틀의 닮은 점을
얘기하고 싶다. 우선 재봉하는 일은 주로 여자들이 많이 한다. 또
운전은 분명 남자가 더 많이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운전이나 재봉틀은 여자에게 아니 여자처럼 차분한
성격의 사람에게 잘 맞는 일이다.
재봉틀은 발판을 밟으면 잘 돌아간다.
그러나 뒤로 박을 때면 조정 핀을 위나 아래로 조정해 주면 후진 할 수 있다. 운전 역시
마찬가지다. 엑셀레이터를 밟으면 앞으로 가다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정지하고 후진 기어를 넣고 운전하면
자동차는 뒤로 굴러간다.
똑바른 길은 핸들을 잡고만 가도 되지만 커브길은 핸들을 알맞게 잘 돌려야
자기 차선을 제대로 지켜 반대편 차선을 침범하거나 이탈해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는 불행이 없게 된다. 속도
역시 알맞게 달려야 예쁜 곡선을 그릴 수 있다.
재봉하는 것 역시 똑 같은 이치다. 능숙하게
운전대 돌리듯이 잘 돌리면 원형이 예쁘게 박아지는데 난폭운전자가 엑셀레이터를 밟아대듯이 마구 밟아대면 예쁘게 박아야 할 곡선이 삐뚤삐뚤 지그재그
걸음을 하게 된다.
4단 5단 기어를 넣고 자동차경주라도
하듯 미터기가 왔다 갔다 할 정도로 과속하지 말고 저속으로 가는 자동차처럼 천천히 재봉을 하면 버선볼같이 고운 곡선도 무난히 박아낼 수 있다.
이렇게 운전과 재봉하는 것이 일치해서일까 부쩍 여자 운전자들이 늘어난
것 같다. 대형차나 영업용은 아직도 남성들 전유물이지만 승용차만은 여자운전자가 많이 생겼다. 승합차와 소형트럭 기사도 가끔씩 눈에 뜨인다. 그러나 큰 도로에서나
복잡한 시내복판에서 쥐구멍이라도 기어들어가고 싶도록 무안한 욕을 얻어 먹는 게 여성운전자들이다.
“X년 집에서 밥이나 해 처먹지 복잡해 죽겠는데 차는 왜 끌고 나와 지랄이야” 창문을 열고 내뱉는 남자들의 욕설은 모든 여자들을 무시하고 희롱하는 것 같아 몹시 기분이 나쁘다.
여성운전자들이여 자동차를 몰고 큰 도로에 나오기 전에 재봉틀 원리를
알고 시운전부터 해보심이 어떨까?
출발, 정지, 되돌이, 천천히, 빠르게
재봉틀은 운전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출발이 잘못되면 재봉틀은 실이 끊어지고 자동차는 시동이 꺼진다. 정지가 잘못되면 재봉틀은 너무 박히거나 덜 박히고 자동차는 앞차나 뒤차를 받아버린다. 앞으로 잘 가는 운전자가 후진을 잘못하듯이 재봉 역시 앞으로 잘 박는 사람도 뒤로 박을 때면 삐뚤게 박아 두줄
세줄 박은 자리가 나거나 실이 끊어져 버린다.
이렇게 섬세하게 재봉틀 다루듯이 차분한 마음으로 자동차 운전을 한다면
적어도 자기 자신이 교통사고는 내지 않을 것이다.
재봉틀이 기름이 떨어지거나 먼지가 끼이면 뻑뻑하고 잘 나가지 않듯이
자동차 역시 연료가 떨어지거나 먼지가 끼이면 성능이 좋지 않고 여러 가지 고장을 일으킬 수 있으며 밀가루를 뒤집어쓴 듯 흙먼지가 많이 묻은 자동차는
미관상 좋지 않으니 매일 아침 세수하듯이 자동차 얼굴도 깨끗이 씻어주는 게 주인의 배려가 아닐는지
나는 운전을 배우고 나서부터 운전을 하면 재봉틀이 머리에 떠오르고 재봉을
하면서도 자동차 핸들을 돌리는 기분으로 바느질을 하게 된다.
얼마 전 문학회 세미나 차 강릉을 다녀오던 중 달리는 차 속에서 재봉틀과
운전에 관한 얘기를 했더니 듣고 있던 회원이 참 많이도 연구를 했단다.
나는 호기심이 무척 많은 사람이다. 어머니
등뒤에서 재봉하시는 것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어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 얼른 재봉틀을 돌려보았다. 처음에는
꺼꾸로 돌아갔으나 몇 번 시도하니 앞으로 똑바로 잘 박혔다.
운전면허증도 학원 등록 삼일 만에 이론 시험 합격해 놓고 정확히 십삼일
만에 1종 보통면허증을 소지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당시
운전학원에 2종 면허시험을 볼 승용차가 없어서 트럭으로 1종
면허를 따내기는 했으나 아주 편안하다. 때에 따라 승합차나 소형트럭도 몰고 다닐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운전은 여성에게도 잘 맞는 직종이니 무턱대고 여성운전자를 향하여
폭언을 하지 말기를 남자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또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자동차를 몰고 다니려거든 법규나 제대로
알고 끌고 나왔으면 좋겠다.
나는 운전이 서투른 사람의 차는 잘 안타는 편이다. 내가 교통법규를 철저히 지키듯이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해야 마음이 놓인다.
어느 날 승용차를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의 차를 탔는데 1차선으로 가던 친구가 2차선으로 가던 차가 정지를 하자 같이 따라
급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를 세우는 것이 아닌가, 왜 차를 세우냐고 했더니 옆 차가 서니까 자기도 섰다는
것이다. 분명 차선이 틀린대 앞차도 아닌 옆 차가 섰는데 왜 자기가 따라 정지를 하느냔 말이다. 이런 식의 여성 운전자들이 많으니 집에서 밥이나 해먹으라는 욕을 먹는 게 아닌가.
적어도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자동차를 몰고 다니려거든 정확한 예비지식부터
익혔으면 좋겠다. (1996년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