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지정 예고 '이순신 장도 문화재청 "진품…1594년 제작 종가 유물"
문화재청 "구국의 영웅 행적 서려 있는 도검…역사·학술적 가치 높아"
문화재청은 이순신 장도가 국왕 하사 검이 아니며 1594년 제작된 후 종가에서 보관되어 내려온 도검이라고 했다.
국보 지정 예고 때 문화재청은 칼자루 속에 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인 슴베에 새겨진 글귀로
갑오년(1594년)에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든 도검임을 알 수 있고, '이충무공전서'(1795년)의 기록을
통해서는 이순신 종가에서 오랜 기간 보관해온 내역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조선 도검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살펴 보면, 임진왜란 이후 당대 도검 제작기술이 가장 발달했던
일본 도검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순신 장도는 조선 전기와 후기 제작 도검을 잇는 교량적 역할을
살필 수 있는 유물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순신 장도는 조선시대 구국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의 숭고한 행적이 서려 있는 도검으로,
제작연대와 제작자가 명확하고 내력이 분명하며 조선 도검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갖추고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며 "우수한 제작 기술, 가죽·금속·칠 등 다양한 전통공예의 조화로운 활용,
세련된 균형미와 조형감각 등 기술적·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이번에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국보로 지정 예고된 '이순신 장도'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이순신 유물 일괄'에 포함되었던 칼로,
길이가 약 2m에 달하며 크기와 형태가 거의 같은 한 쌍(두 자루, 2병)이 각각 칼집을 갖추고 있다.
장도 1의 칼날 위쪽 부분에는 이순신이 직접 지은 시구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이, 장도 2의 칼날 위쪽 부분에는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이충무공전서'(1795)의 기록과 일치한다.
칼자루 속 슴베에 새겨진 '갑오사월일조태귀련이무생작'(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茂生作, 갑오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이라는 글귀를 통해서는 제작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있다.
국보로 지정 예고된 이순신 장도. (문화재청 제공)
국보로 지정 예고된 「이순신 장도」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이순신 유물 일괄」에 포함되었던 칼로,
길이가 약 2m에 달하며 크기와 형태가 거의 같은 한 쌍(두 자루, 2병)이 각각 칼집을 갖추고 있다.
* 규격- 장도1: 칼몸 196.8cm, 칼날 137.3cm, 칼자루 59.5cm, 무게 4.32kg- 장도2: 칼몸 197.2cm, 칼날 137.8cm,
칼자루 59.4cm, 무게 4.20kg- 칼집1: 칼집 길이 144.5cm, 가죽 끈 길이 87.0cm, 무게 1.40kg- 칼집2: 칼집 길이 144.5cm,
가죽 끈 길이 92.0cm, 무게 1.24kg 장도1과 장도2의 칼자루는 모두 나무에 어피(魚皮)를 감싸고 붉은 칠을 하였으며,
칼자루의 일부분에 직사각형의 금속판을 댄 뒤 검은 칠을 한 가죽끈을 X자로 교차해 감아 칼자루를 잡았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였다. 외날의 칼날은 칼등 방향으로 조금 휘어 있으며, 칼날의 단면은 칼날의 위쪽과 아래쪽의 각도를
보았을 때 가장 보편적인 육각도(六角刀) 단면이다.
* 외날: 한쪽 면만 갈아서 만든 날* 칼등: 칼날 반대쪽의 두꺼운 부분 칼자루 속 슴베에 새겨진
‘갑오사월일조태귀련이무생작(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茂生作, 갑오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
이라는 글귀로 제작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있다.* 슴베: 칼자루 속에 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으로 칼자루와
칼날의 결합을 위해 필요한 부분 「이순신 장도」는 조선시대 군용 도검 형식이다. 나무틀 위에 어피를 감고
주칠을 한 칼자루,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돌기를 만들어 칼자루 표면에 부착한 금속판, 은입사기법으로
꾸민 전통무늬, 칼날에 새긴 글씨와 물결무늬, 칼집의 패용 장식과 가죽끈, 칼집 상단의 테두리와 하단의
마개 등은 모두 조선의 도검에서 보이는 전통적인 양식들이다.
▲ 이순신장도
당시 칼 제조기술이 발달한 일본 칼의 요소도 일부 적용되었는데, 슴베와 칼자루를 결합했을 때 구멍을
맞추고 못을 끼워 고정하기 위한 목정혈(目釘穴), 칼자루를 단단하게 쥘 수 있도록 가죽끈을 X자로 교차해
감은 방식, 칼날이 휘어진 곡률이나 혈조(血漕, 피홈)를 넣는 방식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주칠: 누런색이 조금
섞인 붉은색의 칠* 은입사: 청동이나 철, 구리 등 금속에 은실을 이용하여 문양을 넣는 세공 기법* 혈조:
칼날에 홈을 낸 것으로 피가 흘러나오도록 만든 것임 「이순신 장도」는 다음과 같은 까닭으로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지정하여 보존, 관리할 값어치가 충분하다. ▲ 《이충무공전서》의 기록과 일치하는 칼날에 새겨진
시구를 통해 충무공 이순신의 역사성을 상징하는 유물로 값어치가 탁월하다. ▲ 칼자루 속 슴베에 1594년
태귀련, 이무생이 제작했다는 명문이 남아 있어 제작연대와 제작자가 분명하다. ▲ 군사사 분야에 있어서도
조선 도검의 전통 제작기법에 일본의 제작기법이 유입되어 적용된 양상을 밝힐 수 있으므로 학술적인 값어치가
높다. ▲ 칼날의 예리함과 견고함, 칼날에 새긴 글씨와 물결무늬 선각장식의 기술성, 칼자루 및 칼집의 테와
고리를 장식한 은입사기법, 가죽ㆍ금속ㆍ칠 등 다양한 전통공예의 조화로운 활용, 세련된 균형미와 조형감각
등 제작기술과 예술성 역시 우수하고 완성도가 높다. ▲ 제작연대가 오래되었음에도 모두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요대함(腰帶函)」은 보물 「이순신 유물 일괄」에 포함된 「요대(腰帶, 허리띠)」를 담아 보관했던 원형의
나무함으로 별도의 잠금장치 없이 위함을 아래함 위에 뚜껑처럼 덮는 형식이다. 아름드리나무를 베어 일정
간격으로 칼집을 넣어 세우고 판재에 베싸기를 한 후 겉은 흑칠, 안은 주칠을 하였다.
▲ 요대함
▲ 요대
▲ 옥로
▲ 복숭아모양 잔과 받침
조선의 전통적인 공예기법과 높은 기술 수준으로 제작되었고, 비슷한 다른 유물들에 견줘 크기가 매우 크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또한 당시의 관복과 요대의 보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학술적ㆍ
자료적 값어치도 높다. 따라서 「요대함」이 이미 지정된 「요대」와 함께 보존될 때, 해당 유물의 값어치가 동반
상승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보존ㆍ관리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어 이번에 추가로 보물 지정
예고한다. 문화재청은 국보로 지정 예고하는 「이순신 장도」, 요대함을 보물로 추가 지정 예고하고 일부 유물
이름을 바꿔 예고하는 「이순신 유물 일괄」 등 2건에 대해 30일 동안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ㆍ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국보ㆍ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 국보ㆍ보물 지 정 예 고 목 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