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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문집, 고전 스크랩 예천의 자랑
윤재호 22세 (장수골) 추천 0 조회 99 16.02.15 21:5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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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4228:윤상(7)
작성자장병창
작성일2015-12-28

  예천의 자랑(4228) : 윤상(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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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상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癸未二月二十六日酉時, 上御思賢閤。/ 思賢閤, 孟子, 姜必履|洪九瑞|夏彦|夢弼|洪鳳漢|尹東度|李昌壽|徐志修|尹勉憲|鄭述祚|勉憲|堯|舜|鳳漢|鳳漢|志修|鳳漢|勉憲|朴聖源|聖源|鳳漢|東度|志修|英廟|尹祥|別洞|鳳漢|東度|兪奉朝賀|鳳漢|朴聖源|鳳漢...(daum 2010)

 

  윤상 [專門資料] : 命兼 輔德 以僚屬中堂上正三品差出/ 李秉模|徐志修|世宗|尹祥(daum 2010)

 

  윤상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李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李|崔惠吉|洪|金世濂|朴明|尹絳|崔後定|金光厚|尹祥履|兪撤|李枝茂|尹履之|미결|미결(daum 2010)

 

  윤상 [專門資料] : [간행물] 문묘(文廟)/ 태조|태종|자사(子思)|자장(子張)|변계량(卞季良)|변계량|윤상(尹祥)|최항(崔恒)|순회세자(順懷世子)|소현세자(昭顯世子)|효장세자(孝章世子)|장헌세자(莊獻世子)|단종|덕종|허조(許稠)|한호(韓濩)|주지번(朱之蕃.../ 이긍익(李肯翊)  |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윤상 [專門資料] : [간행물] 세종조의 명신(名臣)/ 恭戴公)|야선(也先)|어변갑(魚變甲)|고조(高祖)|자선(子先)|정이오(鄭以吾)|마희성(馬希聲)|어연(魚淵)|윤상(尹祥)|신장(申檣)|신장|권제(權)|허주(許周)|강석덕(姜碩德)|자명(子明)|완역재(玩易齋)|대민공.../ 이긍익(李肯翊)  |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윤상 [專門資料] : 조선 초기 성리학과 수양론의 인식/ Ⅰ. 성리학과 수양론의 인식배경 Ⅱ. 卞季良의 ‘中’과 수양론 Ⅲ. 尹祥의 성리설과 수양론 Ⅳ. 도학적 수양론과 독서법 Ⅴ. 조선초기 도학의 성격/ 琴章泰  | 서울大學校 宗敎學硏究會(daum 2010)

 

  윤상 [專門資料] : [간행물] 학문(學問) 국조의 유현(儒賢)과 유일(遺逸)은 이미 각 왕조의 조목 아래에 자세하게 기록하여 붙였으므로, 대강 선배의 논평을 수록하고, 이어 문생을 기록하여 붙인다./ 문충공(文忠公)|정몽주(鄭夢周)|양촌(陽村) 권근(權近)|매헌(梅軒) 권우(權遇)|황현(黃鉉)|윤상(尹祥)|김구(金鉤)|김말(金末)|김반(金泮)|세조(世祖)|공기(孔)|정자영(鄭自英)|유진(兪鎭)|김순명(金順命)|노자형.../ 이긍익(李肯翊)  |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윤상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甲申十月十二日辰時, 上御熙政堂。朝/ 朴道天|庠|庠|程子|碩載|鳳漢|趙雲逵|鳳漢|鳳漢|李明煥|權姓|鄭震郁|權女|鄭哥|震郁|鳳漢|朴聖源|聖源||鳳漢|尹祥|鳳漢|李鎭恒|鳳漢|李明煥|鳳漢|鳳漢|鳳漢|鄭履煥|鳳漢|李昌誼|始顯|太丁|者斤萬|太丁|者斤萬...(daum 2010)

 

  윤상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嶺儒가 驛村에서 侵擾한 일에 대해 조사할 것을 청한 일 때문에 배척을 당한 일 등을 이유로 削職을 청하는 金鎭圭의 상소/ 嶺|嶺|陰城|洛|嶺邑, 金鎭圭|尹祥|金普澤|李世瑾(daum 2010)

 

  윤상 : 김시습 평전/ 冊/ 심경호 지음| 돌베개 펴냄 | 2003-04-07 책본문 柳仁淑)이 화를 당하자 관직을 떠나 문산(文山)에서 은거 생활을 한 일이 있다.윤상(尹祥, 1373∼1455). 김시습이 어려서『주역』과『예기』를 수학한 학자이다. 본관은 예천(醴泉.../ 684페이지(daum 2010)

 

  윤상 : 야사로 보는 조선의 역사 1/ 冊/ 최범서 지음| 가람기획 펴냄 | 2003-03-03/ 책본문 : ...어변갑이 헌납(사간원 관원)에 있을 때였다. 동료가 상소를 올려 계림부윤 윤상尹祥을 탄핵하려고 협조를 당부했다. 어변갑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나는 윤공과 근무한 적이.../ 170페이지(daum 2010)

 

  윤상 : 성리학과 양명학/ 冊/ 유명종 지음| 연세대학교출판부 펴냄 | 1994-10-01/ 책본문 : I . 序說 ...화되기 시작하였다. 明나라와 함께 朝鮮王朝가 건국되면서 權近. 尹祥. 趙光祖. 李彦進. 李湯 등의 理學派가 발전하고, 한편 金時習. 徐花潭 등의 氣學派도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나.../ 189페이지(daum 2010)

 

  윤상 : 19세기 조선 생활과 사유의 변화를 엿보다/ 冊/ 주영하, 김소현, 김호 외 1명 지음| 돌베개 펴냄 | 2005-06-10/ 책본문 : ...곳 挺萌奉曆壽君前語在年年如約是予情”.31) 尹祥, 『別洞先生文集』卷1,「詩元日付同宴次柳掌令韻」, “春..金殿暖初暉仙仗紛紛擁御..天樂動來和氣滿瑞煙籠處俗塵微眼D季札觀周.../ 153페이지(daum 2010)

 

  윤상 : 조선의 문인이 걸어온 길/ 冊/ 이종호 지음| 한길사 펴냄 | 2004-04-20/ 책본문 : ...일치한다. 108)김종직의 문학관은 스스로 사숙했노라고 고백한 별동(別洞) 윤상(尹祥, 1373~1455)109)의 시집 서문에 잘 요약되어 있다. 그는 말하기를 “문장이란 것은 경술에서 .../ 108페이지(daum 2010)

 

  윤상 : 한시어사전/ 冊/ 전관수 지음| 국학자료원 펴냄 | 2002-07-09/ 책본문 : 이 모임은 난정의 술자리라, 모름지기 흐르는 술잔 잡아 차례로 돌려 마시네.)<윤상尹祥 차벽송정창화시次碧松亭唱和詩> → 王羲之(왕희지).鸞鳥(난조) 난 새. 중국의 전설에서.../ 129페이지(daum 2010)

 

  윤상 : 고려사대부 작가론/ 冊/ 김동욱 지음| 박이정 펴냄 | 2004-08-30/ 책본문 : 출세를 다투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重房과 監察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 이때, 倖臣인 尹祥이 上護軍이 되었는데, 중방에서 전의 일이 불만스러워 윤상으로 하여금 왕에게 감찰을 .../ 237페이지(daum 2010)

 

  윤상 : 한국의 음악가/ 冊/ 손태룡 지음| 영남대학교출판부 펴냄 | 2003-01-10/ 책본문 : ...대해서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 세종(世宗) 때에는 경학(經學)으로는 황현(黃鉉). 윤상(尹祥). 김구(金鉤) 등이 있었고, 역학(譯學)으로는 김하(金何). 이변(李.../ 165페이지(daum 2010)

 

  윤상 : 한국종교사상사 2/ 冊/ 유동식 지음| 연세대학교 출판부 펴냄 | 1986-08-01/ 책본문 : ...할 수 있다. 김시습(金時習, 1435~93)은 당시의 대학자인 천반(金漆)과 윤상(尹祥)에게서 수학하였다. 2l세 때 삼각찰에서 공부하다가 세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자 책을 모두.../ 82페이지(daum 2010)

 

  윤상 : 한국한문학의 탐구/ 冊/ 이병혁 지음| 국학자료원 펴냄 | 2003-05-10/ 책본문 : 尹明···...···83尹祥···...···229尹宣佐···...···92.../ 490페이지(daum 2010)

 

  윤상 : 청구야담 I(주해)/ 冊/ 최웅 지음| 국학자료원 펴냄 | 2005-07-30/ 책본문 : 안향(安珦). 최초의 주자학자로 지칭됨. 80) 봉명사신(奉命使臣)의 행차. 81) 윤상(尹祥)의 호. 윤상은 조선조 단종 때의 문신으로 성균관 박사가 되어 단종에게 학문을 장려하였음.../ 88페이지(daum 2010)

 

  윤상 : 한국문화의 힘 휴머니즘/ 冊/ 이화형 지음| 국학자료원 펴냄 | 2004-08-31/ 책본문 : 최상의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점필재선생문집』(제1권) 윤상선생시집서(尹祥先生詩集序)에서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문장이란 것이 경술에서 나온 것이니, 경술은 곧문장의.../ 289페이지(daum 2010)

 

  윤상 : 조선시대 예학연구/ 冊/ 이범직 지음| 국학자료원 펴냄 | 2004-02-28/ 책본문  : 530朝鮮時代禮學硏究/ 육조 六曹 133 육학 六學 359 363 육행 六行 383 윤상 尹祥 113 382 윤선거 尹宣擧 422 윤효손 尹孝孫 347 율곡 栗谷 127 205 206 208 209 210 211 212 213 214 .../ 534페이지(daum 2010)

 

  윤상 : 매계 조위의 생애와 시세계/冊/ 임종걸 지음| 한국문학도서관 펴냄 | 1992-12-01/ 책본문 : ...것으로 보면 그만이다. 결국 김종직의 입장이 보76) 金宗直, r삼輦齋集J 卷l, 9l쪽, r尹祥先生詩集序J, 文章者出誇經術經術乃支章之根저也醫之草本湯安有無根저而料葉之條響華實之需秀者간... 52페이지(daum 2010)

 

  윤상 : 지조여 절개여_강준희/冊/ 강준희 지음| 한국문학도서관 펴냄 | 1990-04-10/ 책본문 : ...至言)은 속된 귀에 거슬리터 참된 말은 반드시 중유(衆儒)에 어긋난다' 했지만, 윤상(尹祥)은 <별동집(別理集))에서 '전(博)에 이르기를, r임금의 하고자 함을 그치게 (못하대.../ 146페이지(daum 2010)

 

  윤상 : 금오신화의 신연구/ 冊/ 설중환 지음| 한국문학도서관 펴냄 | 2008-07-04/ 책본문 : ..., 家門이 그했끄, 이름이 그린고, 로한 고의 才質블 키워준 外祖나, 事季旬, 金津, 尹祥 등의 스승이 그린다. 나아가 그의? 를을 세상에 알린 賢相誇摘를 비출한 漆公巨歷이 그했고.../ 51페이지(daum 2010)

 

  윤상 : 한국유학의 철학적 전개 上/ 冊/ 연세대학교출판부 펴냄 | 2009-08-15/ 책본문 :  大司成 金漆의 門下에서 孟子. 詩經. 書經. 春秋를 修學하였고, 또 역시 이읏에 살던 尹祥에게서 周易. 禮記. 諸子百家. 諸史를 두루 배됐다 하니, 』. 一覽獄記의 재주는 朔鮮朝5co.../ 162페이지(daum 2010)

 

  윤상 : 태평한화골계전(대교역주)(전2권)/ 冊/ 박경신 지음| 국학자료원 펴냄 | 1998-09-10/ 책본문 . ……(중략)…… 그 뒤로는 함장(函丈 스승[師])이 될 만한 사람으로 황현(黃鉉)·윤상(尹祥)·김구(金鉤)·김말(金末)·김반(金泮)이 있는데, ……(이하 생략)……”라는 기록이 있고(민족문화추진회.../ 311페이지(daum 2010)

 

  윤상 : 한국문화의 힘 휴머니즘/ 冊/ 이화형 지음| 국학자료원 펴냄 | 2004-08-31/ 책본문 : 최상의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점필재선생문집』(제1권) 윤상선생시집서(尹祥先生詩集序)에서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문장이란 것이 경술에서 나온 것이니, 경술은 곧문장의.../ 289페이지(daum 2010)

 

  윤상 : 조선시대 예학연구/ 冊/ 이범직 지음| 국학자료원 펴냄 | 2004-02-28/ 책본문 :  530朝鮮時代禮學硏究 육조 六曹 133 육학 六學 359 363 육행 六行 383 윤상 尹祥 113 382 윤선거 尹宣擧 422 윤효손 尹孝孫 347 율곡 栗谷 127 205 206 208 209 210 211 212 213 214 .../ 534페이지(daum 2010)

 

  윤상 : 매계 조위의 생애와 시세계/ 冊/ 임종걸 지음| 한국문학도서관 펴냄 | 1992-12-01/ 책본문 : ...것으로 보면 그만이다. 결국 김종직의 입장이 보76) 金宗直, r삼輦齋集J 卷l, 9l쪽, r尹祥先生詩集序J, 文章者出誇經術經術乃支章之根저也醫之草本湯安有無根저而料葉之條響華實之需秀者간.../ 52페이지(daum 2010)

 

  윤상 : 지조여 절개여_강준희/ 冊/ 강준희 지음| 한국문학도서관 펴냄 | 1990-04-10/ 책본문 : ...至言)은 속된 귀에 거슬리터 참된 말은 반드시 중유(衆儒)에 어긋난다' 했지만, 윤상(尹祥)은 <별동집(別理集))에서 '전(博)에 이르기를, r임금의 하고자 함을 그치게 (못하대.../ 146페이지(daum 2010)

 

  윤상 : 금오신화의 신연구/ 冊/ 설중환 지음| 한국문학도서관 펴냄 | 2008-07-04/ 책본문 : ..., 家門이 그했끄, 이름이 그린고, 로한 고의 才質블 키워준 外祖나, 事季旬, 金津, 尹祥등의 스승이 그린다. 나아가 그의? 를을 세상에 알린 賢相誇摘를 비출한 漆公巨歷이 그했고.../ 51페이지(daum 2010)

 

  윤상 : 한국유학의 철학적 전개 上/ 冊/ 연세대학교출판부 펴냄 | 2009-08-15/ 책본문 : 大司成 金漆의 門下에서 孟子. 詩經. 書經. 春秋를 修學하였고, 또 역시 이웃에 살던 尹祥에게서 周易. 禮記. 諸子百家. 諸史를 두루 배됐다 하니, 』. 一覽獄記의 재주는 朔鮮朝 5co.../ 162페이지(daum 2010)

 

  윤상 : 태평한화골계전(대교역주)(전2권)/ 冊/ 박경신 지음| 국학자료원 펴냄 | 1998-09-10/ 책본문 : . ……(중략)…… 그 뒤로는 함장(函丈 스승[師])이 될 만한 사람으로 황현(黃鉉)·윤상(尹祥)·김구(金鉤)·김말(金末)·김반(金泮)이 있는데, ……(이하 생략)……”라는 기록이 있고(민족문화추진회.../ 311페이지(daum 2010)

 

  윤상 : [강원 강릉]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은 매월당.../ 2010.04.30/ ...전지까지 받았다 한다. 그 뒤 13세까지 수찬(修撰) 이계전(李季甸), 성균관 대사성 김반(金泮), 별동(別洞)의 윤상(尹祥) 등으로부터 사서삼경을 비롯한 각종 사서(史書)와 제자서(諸子書)를 배우고 익혔다. 15세에 어머니 장씨를.../ //blog.daum.net/j68021/ 유담의 등산과 야생화/ 태그: 강원, 강릉, 선교장, 매월당 김시습... | 장소: 강원도 강릉시 경포동 매월당 김시습...(daum 2010)

 

  윤상 : 매월당 김시습 (梅月堂 金時習)의 묘/ 2009.10.16/ ...)의 문하에서 학문의 기초를 익힌 김시습은 이어서 당시의 석학인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김반(金泮)과 윤상(尹祥) 등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를 계속하여, 겨우 10여세에 익히지 못할 책이 없을 정도이었다. 이러한 그에게 서서히.../ //blog.daum.net/0118983530/ 김규봉(金圭鳳)의 사는 이야기(daum 2010)

 

  윤상 : 1493.03.30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 세상.../ 2010.03.31/ ...배웠고, 이후 13세까지 이웃집의 성균관 대사성 김반(金泮)에게서 ≪맹자≫·≪시경≫·≪서경≫을 배웠고, 겸사성 윤상(尹祥)에게서 ≪주역≫·≪예기≫를 배웠고, 여러 역사책과 제자백가는 스스로 읽어서 공부했다. 15세에 어머니 장씨를.../ //blog.daum.net/gjkyemovie/ 추억속으로(daum 2010)

 

  윤상 : 성현(成俔)의 수필집 용재총화./ 2009.10.21/ ...도(道)에 우익(羽翼)이 된 공이 적지 않다. 그 뒤로는 함장(函丈 스승)이 될 만한 사람으로 황현(黃鉉)ㆍ윤상(尹祥)ㆍ김구(金鉤)ㆍ김말(金末)ㆍ김반(金泮)이 있는데, 황현의 학문은 세상에 알려진 바가 없고, 윤상은 가장 정밀하였으.../ //blog.naver.com/bhjang3/ 德 田 의 문 화 일 기(daum 2010)

 

  윤상 : 님들아 급합니다. 성균관 조사/ 2009.09.02/ 여러 유생을 교훈(敎訓)하기를 명하였다. 《국조보감》 ○ 세종조에 김구(金鉤)ㆍ김반(金泮)ㆍ김말(金末)이 윤상(尹祥)의 뒤를 이어 대사성(大司成)이 되어 인재를 길러내어 효과가 있었으니 사람들이 관중삼김(館中三金)이라 하였다.../ 답변수: 1 | 조회수: 540(daum 2010)

 

  윤상 : 용재총화(?齋叢話)가 뭔가요?/ 2006.01.26/ ...내용과는 무관하다. 이 책은 제일 먼저 우리나라의 유학에 관하여 논하여, 정몽주(鄭夢周)·권근(權近)·윤상(尹祥) 등 경학(經學)의 대가들이나 최치원(崔致遠)·정지상(鄭知常) 등 신라와 고려의 명현(名賢)과 서거정(徐居正)·성임.../ 답변수: 1 | 조회수: 256(daum 2010)

 

  윤상 : 김반 - 조선 전기의 학자인 김반에 대해 알려주세요./ 2004.10.15/ ...그의 글이 알려졌다. 1441년 대사성, 이듬해 중추원첨지사, 1446년 행대사성에 제수되었다. 1448년 윤상(尹祥) ·김말(金末)과 더불어 경서(經書)에 대한 논쟁 중 꾸짖고 욕하다가 파직되었다. 강서에 돌아가 곤궁하게 여생을.../ 답변수: 1 | 조회수: 86(daum 2010)

 

  윤상(尹祥) : 분류 인물 > 영남유학인물자료/ 초록  본관 :예천(醴泉), 출신지 :예천, 주요 관직 :;교수(敎授), 부윤(府尹), 예조정랑(禮曹正郞), 성균관 대사성(成均館 大司成), 예문제학 지중추부사, 생애 일화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인 윤상(尹祥 ; 1373∼1455)의 본관은 예천(醴泉), 초명은 철(哲), 자는 실부(實夫), 호는 별동(別洞)이다. 1393년(태조 2) 생원시에 합격하고 1396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선산, 상주의 교수가 되었다. 그 후 산음, 황간의 감무를 거쳐 교서, 교리, 성균직강, 형·예조의 정랑을 역임하였다.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와서 성균사예, 지제교가 되고 노친을 위해 외직을 청하여 금산, 영주, 대구의 수령이 되고 대사성에 올랐다. 1448년(세종 30) 예문관제학에 올라 성균관박사가 되어 세손(단종)에게 학문을 강의했고 문종 초에 치사(致仕)했다. 이로부터 별동에서 후진교육에 힘썼다. 예천 향현사(鄕賢祠)에 봉향되었다./ 자료제공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www.history.go.kr/2014)

 

  윤상(朝鮮時代 慶北 北部地域 初期 性理學 集大成 : 文化解說師와 함께하는 慶北의 再發見 - 46.醴泉 尹祥 先生과 尹別洞廟) [記事] : 예천군 보문면 미호리에 위치한 조선 초기 대학자 별동 윤상 선생의 불천위 사당인 도유형문화재 제293호 윤별동묘. 예천군 보문면 소재지인 이곳은 내성천이 마을 앞을 둘러 눈썹처럼 되어 있다 하여 미호리(眉湖里)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마을은 조선 초기 대학자 별동(別洞) 윤상(尹祥:1373~1455)이 벼슬에서 물러나 터를 잡은 곳으로, 현재 예천 윤씨들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예천군청 이재완 학예연구사와 예천 보문면에 자리잡고 있는 윤상의 불천위(나라에 큰 공훈으로 영원히 사당에 모실 수 있도록 허락한 신위) 사당인 윤별동묘(도유형문화재 제293호)에 대해 알아본다. 어릴 적 예천군수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머물렀던 다산 정약용은 예천을 일러 공자와 맹자의 고향이라는 뜻의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 했다고 한다. 곧, 예천은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고향처럼 예절을 알고 학문이 왕성했던 곳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 초기부터 이곳은 대제학을 지낸 송정(松亭) 조용(趙庸 ?~1424)과 그의 제자이면서 대제학을 지낸 별동 윤상 등이 후학을 양성했던 유학의 태동지이자 모태지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이러한 고을 풍습은 오랫동안 이어져 수많은 문과 급제자를 배출해 내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 전국의 문과 급제자는 9천30명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예천이 44명, 용궁 18명으로 모두 62명이다. 이는 경주 52명, 밀양 32명, 대구 27명, 영해 14명 등에 비해 많이 배출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학풍은 인근 영주·안동에 이어져 초기 유학을 전파하는 데 교두보 역할을 했다. 실제로 명종 22년(1567) 가을, 중국의 사신으로 온 서국(徐國)과 위시량(魏時亮)은 "동방에 공맹(孔孟)의 심학(心學)을 능히 아는 사람이 있는가?"라고 묻자 퇴계 이황은 고려의 우탁, 정몽주와 조선의 김굉필, 정여창, 윤상, 이언적, 서경덕의 7인을 적어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별동 윤상은 조선조 경학에 조예가 깊었던 성리학의 선구자였으며, 경북 북부지역 초기 성리학적 학풍을 조성하는 데 막대한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초라한 사당만이 미호리에 자리해, 옛 선현의 가르침을 어렴풋이 기억하게끔 하고 있다. 별동 윤상은 어떠한 인물이었는가? 윤상은 출생부터 신이한 존재로 기억되고 있다. '예천군지'에는 윤상의 아버지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옛 무덤에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후 윤상의 아버지는 무덤 주인이 학 한 마리를 주는 태몽을 꾸고 윤상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학은 조선조 문인의 흉배에 수놓아져 있는 것으로 문인을 뜻하는데 윤상은 문인으로 대성한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현재 예천군 미호리에는 그의 흔적을 알 수 있는 사당이 도유형문화재 제293호로 지정되었으며, 윤상을 제향하는 불천위사당(不遷位祠堂)으로 1456년(세조 2)에 건립했다. 이 사당에는 별동 윤상과 그의 부인 정부인(貞夫人) 안동(安東) 전씨(全氏)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매년 음력 3월 8일 미호리의 예천 윤씨 종가에서 제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서 낮은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막돌초석 위 어칸에는 둥근기둥을, 양쪽 칸에는 네모기둥을 세웠다. 또 어칸은 창방을 높이고 양쪽 칸은 창방을 낮게 처리했으며, 어칸에만 두 짝의 열개문을 달고 양쪽 칸에는 빛이 통과할 수 있는 광창만 두는 오래된 구성법을 보여 사당 건축에서는 흔하지 않은 구조와 양식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구는 삼량가인데, 양측 귀기둥 위에는 창방머리를 다듬어서 길게 빼고 위에는 주심을 십자로 짜서 얹는 등 독특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외벽은 외부 배면만을 제외하고는 내외부를 모두 회벽으로 마감하였다.

 

  사당 내에는 별동집 목판이 보관돼 왔으나 훼손이나 분실, 도난 등의 예방을 위해 안동 국학진흥원에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현재 이 별동사당은 옛 조선조 초기 성리학자인 별동 윤상을 기억하게 하는 소중한 건축문화재로 자리잡고 있다. 또한 미호리 동쪽 등성이에 위치한 정자는 윤상이 산이 수려하고 앞에는 내성천의 맑은 물이 흘러서, 이 정자에 오르면 마음이 맑아지고 정신이 쾌락하여 지었다고 하는 청심대(淸心台)가 있다. 별동 윤상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후의 기록에는 그의 행적이 많지 않은 이유로, 그의 행적을 간략히 소개해 본다. 윤상의 어릴 적 불렸던 이름은 철(哲)이었고 20살 관례를 치른 후 동기간에 불렸던 자는 실부(實夫), 호 별동(別洞) 윤선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혜하고 명민해 보통 아이들과 달랐으며 8~9세 때 공부에 힘써 밤낮으로 글을 외우고 익혔다. 어려서 향리의 일을 맡아 보았는데 관솔불을 모아 밤늦게까지 글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관아의 군수였던 당대의 대유학자 조용이 그의 명민함을 눈여겨보고는 그를 제자로 삼았는데, 그는 이때 사서육경과 성리서(성리학 책자)를 연구했다. 그의 학문적 바탕은 바로 이 시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윤상은 태조 1년(1392) 진사, 이듬해 생원이 되고 태조 5년(1396)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상주·선산의 교수를 거쳐 예조정랑(禮曹正郞)이 되었으며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사예(司藝,성균관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정사품 벼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늙은 부모를 위해 외직을 청해 금산과 영주, 대구 등지의 수령을 역임한 후 대사성에 뽑혀 16년이나 성균관 관장으로 지냈다. 당시의 많은 문인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성리학으로 당시의 주종이었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특히 그는 세종 30년(1448)년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으로 성균관박사가 돼 단종에게 학문을 가르쳐 사림의 자랑이 되기도 했다. 당시 경학삼김(經學三金)이라는 김구(金?), 김말(金末), 김반(金泮) 보다 더욱 뛰어나 모든 선비들이 다투어서 그에게 배우기를 청했다고 한다. 이처럼 조선 개국 이래 으뜸가는 사범(師範)이라 불려 질 것은 오랫동안 교편을 잡으며 현관(顯官)·명사(名士)들이 그의 문하에서 많이 배출되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문종 원년(1451) 고향으로 돌아왔을 당시 나라에서는 예천군수로 하여금 음식을 매달 바치게 했다. 그의 시호는 문정(文貞)으로, 지금은 헐어서 치워 버린 예천의 향현사(鄕賢祠)에 모셔졌다.

 

  '진주 삼킨 거위' 구한 선비이야기 실제 주인공/ 이재완 예천군청 학예연구사는 윤별동 선생의 일화를 짧게 들려줬다. 별동 선생이 길손이 되어 먼 길을 가던 중 날이 저물어 주막에 들었는데 주막에 앉아 밖을 보니 주인의 손자로 보이는 대여섯살난 어린아이가 구슬 한 개를 들고 대문 밖을 나가다가 그만 구슬을 손에서 떨어뜨리자, 그때 마침 아이의 옆에서 먹이를 찾던 거위가 구슬이 먹이 인 줄 알고 집어 삼키고 말았답니다. 한참 후 주막 주인은 별동 선생을 의심하며 밧줄로 꽁꽁 묶어 관가에 끌고 가려 했는데 별동은 태연히 저기 있는 거위를 멀리 못 가도록 묶어 나와 같이 있게 하면 내일 아침 구슬을 틀림없이 찾을 것이라 주인에게 사정했다. 이튿날, 별동 옆에 다리가 묶인 거위가 똥을 누자 별동은 주인에게 거위의 똥 속에서 구슬을 찾으라고 했다지요. 구슬을 찾은 주인은 백배 사과하고 거위가 구슬을 먹은 줄 알면서 왜 말을 하지 않고 밤을 새워가며 고생하였냐고 묻자 "구슬을 당장 찾기 위해 거위를 죽였을 것이니, 내가 하룻밤만 고생하면 구슬도 찾고, 거위도 죽이지 않을 것이 아니요."라고 했답니다. 이렇게 침착성과 참을성을 갖고 모든 일을 처리한 탓에 별동은 높은 벼슬과 큰 학자도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윤상의 학문은 후대에 이르러 당대의 경학자이자 대문장으로 일컬어진 서거정과 김종직, 성현, 이황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장석원 記者 慶北日報 2010-11-12)

 

  윤상(관솔불 아래에서 工夫하다, 尹祥) [記事] : 전회에 우리고장 영동을 소개할 때 윤상(尹祥·1373∼1455)이라는 인물의 표현을 인용한 바 있다. '산과 물이 맑고 기이하다. 윤상(尹祥)이 금유(琴柔)에게 보낸 글에, "영동은 산수(山水)가 맑고 기이해서 시(詩) 짓는데 도움을 받을 만한 것이 진실로 많다" 했다.'-<신증동국여지승람> 윤상은 경상도 예천군의 향리인 윤선(尹善)의 아들로 태어나서 과거를 통해 양반 신분이 된 인물이다. 과거 합격자 명단을 적어 놓은 방목(榜目)을 보면 그는 태조 때 진사와 생원시에 합격한 후 문과에 급제했다. 조선시대에는 형식상 서얼을 제외하고 양인 이상이면 누구나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 준비에는 적지 않은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하고 또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평민(양인)이 합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고려 때 향리는 한 지역의 지배계급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향리(아전)는 수령의 보좌역으로 중인에 해당했다. 윤선이 이런 환경에서 오늘날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문과에 합격했다는 것은 남다른 노력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사료에 이와 관련된 표현이 적지않이 등장한다. '공은 자질이 아름답고 총명이 뛰어나게 태어났다. 향리로서 고을 일을 맡아 볼 적에 고된 사무를 보면서도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오고갈 때 반드시 관솔을 따서 관사 은밀한 곳에 두었다가 밤에 글 읽을 때 썼다. 문과에 급제하여…'-<연려실기술> 인용문 중 관솔은 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의 가지나 옹이를 말한다. 한자로는 송명(松明)으로, 불이 잘 붙기 때문에 등불을 대신하기도 했다. 윤상은 그 관솔불 밑에서 공부했다. 마치 한자 숙어 '형설지공'(螢雪之功)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그는 영동 외에 황간현감을 역임하기도 했다. 해동잡록이라는 고문헌은 이와 관련해 '일찍이 황간 태수가 되어 있을 때, 김숙자(金淑滋)는 먼 길을 걸어다니며 주역을 배워 음양이 변화하는 수(數)와 원시요종(原始要終)의 설(說)을 깊이 탐구하여, 이로 하여 역학이 크게 밝아지게 되었다'라고 썼다. 인용문 중 '원시요종'은 일의 시초를 궁구하고 결말을 알아낸다는 뜻으로 학문하는 자세를 말한다. 그리고 김숙자는 사림파의 시조인 김종직의 아버지다. 인용문 대로라면 그 김숙자가 황간현감으로 있는 윤상에게서 성리학을 배운 것이 된다. 이렇듯 윤상은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영남 사림의 산파자였다. 그의 성리학적 해박성에 대해 이긍익은 연려실기술에서 '조선개국 이래 사범(師範)의 제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사범'은 가르치는 자의 모범이 된다는 뜻이다. '공은 실오리처럼 올올이 가늘게 분석하여 일러 주되 종일토록 근면하여 피곤한 줄을 몰랐다. 그 시대의 달관(達官)과 문인(聞人)이 모두 그의 제자였으니, 조선 개국 이래 사범(師範)으로서 제일이었다'-<연려실기술> 그가 낙향하자 문종(文宗)은 그곳의 관아를 통해 달마다 음식물을 제공했다. 이처럼 퇴로(退老)한 재신(宰臣)에게 임금이 음식물을 하사하는 관습은 이때 처음 생겨났다. 그는 매우 장수해 83살까지 살았다.(조혁연 大記者 忠北日報 201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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