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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윤석 신부의 주일 강론
2011. 2. 20. 연중 제7주일 가해. hor7a11용서원수사랑.hwp
* 이 강론은 여러 번 수정 한 후 ‘마르코니 카페’에 저장됩니다. 지난 주일 강론을 보시려면 마르코니 카페를 참고하십시오. http://cafe.daum.net/DS0LB
* 원하시는 공소회장님들과 희망자에게 매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내용이 길으므로 줄여서 사용하세요.
* 전화로 말씀의 전화 듣는 법: 152 누르고 기다림-신호음 울리고 안내말 나오면-사서함번호 3217번 누름. 듣는 시간 3분. 전국 어디서나 시내전화 1통화 요금. 공소예절 중 강론시간에 스피커폰으로 대신하실 수 있습니다. 들으시려면 아래 카페로 들어가세요.
* 말씀의 전화 카페에 음성 녹음이 있습니다. http://cafe.daum.net/malssmphone
▥ 레위기의 말씀입니다. 19,1-2.17-18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3,16-23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8-48 <원수를 사랑하여라.>
* 제목 : 원수는 멀리 있지 않다.
가수 문주란 씨의 ‘동숙의 노래’라고 아시죠? 1966년에 데뷰한 노래입니다. “1. 너무나도 그님을 사랑했기에 /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미움. / 원한 맺힌 마음에 잘못 생각에 / 돌이킬 수 없는 죄 저질러 놓고 / 흐느끼면서 울어도 때는 늦으리. / 으음~ 때는 늦으리 ~. // 2. 님을 따라 가고픈 마음이건만 / 그대 따라 못가는 서러운 미움 / 저주받은 운명에 끝나는 순간 / 님의 품에 안기운 짧은 행복에 / 참을 수 없이 흐르는 뜨거운 눈물 / 으음~ 뜨거운 눈물~. 이상입니다. 이 노래는 동숙이라는 처녀가 자기를 배반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는 애인을 살인하는 복수극으로 끝나는 내용입니다. 가사 중 ‘돌이킬 수 없는 죄’가 바로 살인죄입니다. 당시 실제 사건을 노래화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원수를 사랑하라.”입니다. 우리에게 원수는 누구일까요? 가까이 있는 사람, 내가 잘 아는 사람들, 그리고 이해 관계가 있어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입니다. 친구, 애인, 부부, 자녀, 형제, 친척, 이웃 사람, 부모 등입니다. 나라로 치면 북한, 일본, 소련, 중국 등입니다. 멀리 있는 경상도 사람이나 제주도 사람 등은 원수가 되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스웨덴이나 핀란드 같은 나라가 원수가 되지 않습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즘 황혼 이혼이 많다고 합니다. 저는 다 늙어서 무슨 이혼이냐고 이해를 못했습니다. 늙어서 서로 등 따습고 서로 몸을 녹여가며 따뜻하게 서로 의지가지하면서 살면 되지, 다 늙어서 무슨 청승이냐? 젊어서나 배우자가 죽었으면 재혼이라도 하지... 가 저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강론 준비 때문에 몇몇 교우 분들과 이 문제로 대화를 나누는 중 황혼 이혼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남자가 힘이 있고 벌어다 주는 것이 있고 아이들 때문에 할 수 없이 살았지만 이제 아이들 다 크고 남자가 힘도 없고 돈도 못 벌게 되니까 “내 인생은 뭐냐? 나도 이젠 자유를 누리면서 살겠다.”고 이혼한답니다.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황혼 이혼을 쳐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2006년 12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전체 이혼 가운데 20년 이상의 부부가 이혼한 황혼 이혼의 비율은 갈수록 높아져, 1995년 8.1%에서 2000년 14.3%, 2003년 17.8%, 2004년 18.3%로 늘어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또 황혼 이혼 연령층도 자녀들이 출가한 60대 이후에서, 자녀들의 대학 입학 이후인 50대로 내려가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황혼 이혼의 특징을 보면 첫째로, 연령대가 주로 50대에서 60대 이상이고, 둘째로 자녀가 대부분 성인이 되어 독립한 후라는 점, 셋째, 황혼 이혼의 원인은 만성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상입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이혼하지 마십시오. 교회법으로 금지하는 사항입니다.
제가 드리려는 말씀은 가까운 부부끼리도 이렇게 원수가 되어간다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인심이 고약해져가고 있습니다. 별 것도 아닌 것으로 형제나 이웃지간에 다투어 법원에 고소하고 고등법원, 대법원 판결까지 갑니다. 모두가 악에 받쳐 있습니다. 남에게 해를 입으면 10배, 100배로 보상 받으려 합니다. 결국엔 변호사 비용 등 엄청난 소송비를 날리고 큰 손해보고...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고나서야 그만둡니다. 여러분,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나에게 해를 끼친 원수를 용서하기도 너무 힘든데 사랑까지 하라니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겠습니까?
구약의 율법은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라는 법이 있습니다. 동태복수법입니다. 같은 방법으로 복수하라는 법입니다. 원시사회나 고대사회에 적용되던 형벌원칙으로 피해자에게 입힌 상해(傷害) · 손해(損害)를 가해자에게 정확히 그대로 보복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신체 상해의 경우 가장 흔히 적용되었습니다. 즉 가해자가 피해자의 눈을 상하게 했다면, 가해자도 피해자가 당한 눈의 상처만큼의 형벌을 받습니다. 동태복수법은 그 이전 사회에 적용되었던 ‘피의 보복원칙’(살인행위에 의해 희생된 자가 속한 가문이나 혈연이 살인행위를 한 사람이나 그 사람의 가문, 혈연에게 처벌을 가하는 것)이 발전된 형태이며, 그 뒤 더욱 사회가 복잡하게 됨에 따라 점차 ‘금전적 보상’이라는 형태로 전환되었습니다. 구약에서 동태복수법적인 원칙은 출애 21:23-25, 레위 24:17-21, 신명 19:21 등에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히 폐기되었습니다(마태 5:38-48, 루가 6:27-30).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구약의 율법은 잔인하긴 했어도 피해입은 것보다 더한 보복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네 오른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어라,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까지 내주라, 천 걸음을 가자고 하면 이천 걸음을 가주어라.”고 하십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고 하십니다. 완전히 사랑의 법입니다.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문을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연평도 포격사건때 100배, 1000배의 보복을 했더라면 북에서도 보복을 가하여 더 많은 사상자가 났을 겁니다. 폭력은 더큰 폭력을 부릅니다. 그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는 말씀의 예화를 말씀드립니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하루는 6시간 넘게 폭우가 쏟아져 낮은 지대에 있는 주택들과 아파트가 물에 잠기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잠을 자고 있던 주민들은 새벽에 급히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는데, 잠에서 늦게 깨어난 주민들은 물에 잠긴 집안에 갇혀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인 '하다드'라는 이름의 주부도 잠에서 깨어보니 물이 이미 집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3명의 어린 자녀들을 깨워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탈출을 시도했지만 갑자기 불어난 물로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고, 외부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쇠창살 때문에 창문으로도 나갈 수 없었습니다. 물은 자꾸만 밀려와 금방 그녀의 목까지 차 올랐습니다. 절박한 위기에 처한 하다드는 자녀를 머리 위로 올려 들고 마지막 힘을 다해 "살려 주세요" 하고 외쳤습니다. 다행히 이 소리를 이웃에 사는 아랍인 '다카'의 가족이 들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다카의 가족들은 하다드네 현관으로 달려갔으나 문을 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쇠막대기로 방범 창살을 부수고 창문으로 들어가 겨우 하다드의 가족을 구출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네 살배기 막내아들은 이미 숨진 뒤였지만, 아랍인 이웃이 아니었으면 하다드의 가족들은 모두 죽었을 것이 뻔한 일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두고 전쟁과 다름없는 위기에 처해 있는 이스라엘 지역에서는 이스라엘인과 아랍인 사이에 뿌리 깊은 증오와 적개심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돌을 던지고 집에 불을 지르는 등 보복을 일삼던 그들이었지만, 갑작스런 폭우로 마을이 물이 잠기자 서로에게 향했던 증오를 거두고 누구 할 것 없이 힘을 합쳐 구조작업을 펼쳤던 것입니다. 따뜻한 이웃 사랑에서 보여준 것처럼 두 민족 사이의 화해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월간 <좋은 생각> 참조).
한 식료품 가게 주인이 하루는 자기 스승에게 찾아가서는, "맞은편에 큰 연쇄점이 생겨서 자기는 망하게 생겼다"고 하소연 했습니다. "10년 동안 지켜 온 제 가게를 잃어버린다면 별다른 기술도 없는 전 곧 파멸할 것입니다." 그러자 스승이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자네가 그 연쇄점 주인을 두려워한다면 그를 증오하게 될 것이고, 그 증오야말로 자네가 파멸하는 원인이 될 걸세."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매일 아침 가게 앞에 나가서 자네 가게를 축복하고, 돌아서서 길 건너 그 연쇄점도 축복하게." "아니, 경쟁자이자 파괴자를 축복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자네가 그에게 축복하는 것은 무엇이든 자네에게 좋은 쪽으로 되돌아 올 걸세. 마찬가지로 자네가 그에게 바라는 악은 무엇이든 자네를 멸망시킬 걸세." 여섯 달 후, 그 식료품 가게 주인은 다시 스승에게 찾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걱정과 근심만으로 지냈다면 정말로 가게를 닫아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승님 말씀대로 했더니 지금은 그 연쇄점까지 제가 맡고 있으며 어느 때보다도 경기가 좋습니다."(인터넷 사이트 '햇볕같은 이야기' 참조).
미국에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Metro Goldwin Mayer)라는 유명한 영화 제작. 배급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 설립자는 회사 이름의 끝 글자인 메이어(Mayer)입니다. 그가 어렸을 때 한번은 친구와 크게 다툰 적이 있었습니다. 메이어는 친구에게 맞고 집에 돌아와 분통을 터뜨리며 친구를 욕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메이어를 산으로 데리고 가, 친구 욕을 실컷 하라고 했습니다. 메이어는 산을 향해 "이 나쁜 놈아. 못된 놈아"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이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자신에게 10배의 소리로 되돌아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이번에는 "하느님이 너를 축복하신다" 하고 외쳐보라 말했습니다. 메이어가 이렇게 외치자 동일한 메아리가 자신에게 축복의 말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때 메이어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남을 향해 한 번의 욕을 하면 그것이 10배로 되돌아오고, 내가 남을 한 번 축복하면 10배로 축복이 되돌아온다." 메이어는 이 교훈을 평생 마음에 새기고 훗날 그 큰 영화사를 세우게 됐다는 것입니다(<국민일보>, 2006년 2월 12일자 참조).
‘용서’에 관한 명언 모음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1. 용서는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용서는 우리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 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자아의 변화다. 상처와 고통을 당했던 사람들이 담대함과 능력과 사랑과 희망을 보여 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용서를 통해 자아가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폴 마이어.
2. 용서는 자신에게 베푸는 최고의 자선이다. 용서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존재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상처를 준 사람들, 우리가 '적'이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을 포함해, 용서는 그들과 다시 하나가 될 수 있게 해 준다.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는 상관없이, 세상 모든 존재는 우리 자신이 그렇듯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 그러면 그들에 대한 자비심을 키우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달라이 라마
3. 용서하는 것이 용서받는 것보다 낫다. 우리는 끊임없이 용서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도 누군가로부터, 또는 신으로부터 용서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러셀
4. 인간으로서 우리의 자유는 용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용서는 우리가 스스로를 가둔 감옥에서 우리를 해방시킬 뿐 아니라, 우리를 억압하고 상처를 주고 마음 아프게 한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스태니슬라우스 케네디 수녀.
5.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가 지나가야 할 다리를 파괴하는 사람이다. -조지 허버트
6. 진실로 시간이 귀한 줄을 아는 현명한 자는 용서함에 있어 지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용서하지 못하는 불필요한 고통으로 말미암아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무엘 존슨.
7. 복수할 때 인간은 그 원수와 같은 수준이 된다. 그러나 용서할 때 그는 그 원수보다 위에 서 있다. -베이컨.
8.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용서하는 것이다. -엥리잘 벤 주다.
9. 사랑하는 동안에만 용서할 수 있다. 용서하는 것은 가장 고결하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형태. 용서는 이 세상에서 듣지 못할 평화와 행복을 그 보답으로 주나니. -로버트 뮬러. ( 출처 : 생활성서 3월호).
이혼은 안 됩니다. 부부지간에 원수 같아도 사랑해야 합니다. 원수 같다고 생각될 때 더 적극적인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엄격한 율법적 관습보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적극적인 사랑의 법이 우리 신앙인에게 요구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자신을 박해하는 이를 사랑할 때까지 우리는 사랑하고 용서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원수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우리의 부모, 형제, 자매, 부부, 친척, 친구, 연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
<<웃음한마당>> 에구, 웬쑤같은 마누라...
<1. 이혼 소송> 한 살에서 열네 살짜리까지 14명의 자녀를 둔 한 여인이 남편이 처자를 돌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남편이 언제 집을 나갔습니까?” 판사가 물었다. “13년 전에요.” 여인이 대답했다. “남편이 13년 전에 집을 나갔다면서 그 많은 애들은 모두 어떻게 낳았소?” 그랬더니 그 여인 왈, “남편이 사과하러 집에 왔었거든요.”하더란다.
<2. 세 친구가 술집에서> 자신들의 아내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로 어떻게 하면 마누라를 순종하게 하는지 자랑을 했고, 마누라가 자신에게 쥐어 산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한 친구는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다른 두 친구가 말했다."이봐, 자네는 어때? 얘기 좀 해봐." 그러자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우리 마누라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내 앞으로 다가오지." "와... 그래? 그래서 어떻게 되나?" "그리고 마누라는 내게 조용히 말하지. 좋은 말로 할 때 침대 밑에서 얼른 나와라~잉!"
<3. 열 받은 아줌마> 운전을 갓 배운 아주머니가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운전 초보자는 그렇듯이 운전에 서툴렀지만 그 뒤에 어떤 성질 급한 아저씨가 있었으니, 그 아저씨는 아주머니를 보고 이렇게 외쳤다. "야, 이 여편네야, 집에 가서 밥이나 해~!" 참던 아줌마는 이 한마디에 열 받아서 아저씨에게 한마디 했다. "밥 하려고 쌀 사러 간다. 개 자식아!"
<4. 나는 악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엄마가, 가정에 재미를 못 붙이고 매일 술이 취해 집에 들어오는 남편을 한번 크게 겁을 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어느 날 밤 붉은 뿔과 긴 꼬리가 달린 악마 의상을 입고 정원의 나무 뒤에 숨어 있다가 남편이 다가오자 무시무시한 갈퀴를 들고 앞을 가로 막아 섰다. "당신 누구요?" 남편이 술이 취해 혀 꼬부라진 소리로 물었다. "난 악마다~!" 아내가 고함을 꽥 질렀다. "아, 그래요~? 그럼 나랑 우리 집에 들어갑시다. 내가 당신 여동생과 결혼한 사람이라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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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강론 말씀 감사드립니다~~
성거산성지로 남편과 함께 미사를 보러 갔습니다 .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피정이 끝나고 선물 수북히 쌓아 놓고 척사대회까지했습니다
저는 후원자도 아니지만 신부님 빽을 믿고 점심먹고 윷놀이까지하고 잘 놀았습니다 남편은 윷놀이보다 쇠주가 더 좋은 듯했습니다 그래도 전체4등을 했지요
미사시간에 신부님강론이 재미있었습니다. 웬수는 나를 잘 알고 가장 나를 사랑했던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이라고요. 그런 웬수가 있지요 남편의 일생을 다 뺏아간 사람, 마누라보다 더 아끼고 믿었던 사람^^ 천생연분이 웬수가 된다는 신부님강론에 웃었습니다 . 신부님 장가도 안가보시고 어찌~~~~ 그리 잘 아시남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