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71년 12월, 중국 공산당 인민해방군 장병들이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동쪽 교외 오리패의 마왕퇴(馬王堆)로 불리는 구릉에 동굴을 파기 시작했다. 부상병을 구호할 지하병동을 건설할 목적이었는데, 10m쯤 파들어갔을 때 시추 구멍에서 코를 찌르는 기체가 한 줄기 솟구쳐 나왔다. 바로 그때 병원 원무처장이 담뱃불을 붙이고 있었는데, 그 불똥이 기체와 만나 ‘펑’ 소리를 내며 한 덩어리의 불꽃으로 변했다.
고분이 많은 장사(長沙)지방에서는 앞서도 이러한 일이 종종 발생했다고 하는데 이는 무덤에서 나오는 청백색의 가스가 불씨와 만나면서 화염을 일으키는 현상으로, 이곳 사람들은 이런 무덤을 ‘화동자’(火洞子) 고분이라 부르는데, 대부분 안에 유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증거로 보여진다고 한다.
호남성(湖南省)박물관은 즉시 발굴에 착수했고 장장 3개월여간에 걸친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고 무덤 주인공은 지하 16m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시신을 안치한 관은 4겹으로 싸여 있었는데 붉은색, 검은색 등 각각의 관에는 학, 표범, 주작, 말 등의 동물과 각종 기하학적인 무늬가 그려져 있었으며 맨 안쪽의 관을 열었을 때 발굴 단원들은 깜짝 놀라게 되었다.
여인의 시체가 생전의 모습처럼 고스란히 보존돼 있었는데 외모는 완전했고, 전신에는 윤기가 흐르고 있었으며. 피부조직은 탄력이 있어 발굴단원이 손가락으로 누르자 바로 원상태로 돌아갔을 정도였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시체가 말라 만들어진 미라는 많이 발굴되지만 피부와 장기가 온전히 보존된 것은 처음이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이 마왕퇴 한묘(漢墓) 1호분에는 시신 이외에 칠기, 나무인형, 수놓은 비단베개, 현악기, 대나무 상자 등 1000여점의 유물이 함께 발굴됐다. 발굴은 인접한 마왕퇴 2호분, 3호분으로 이어졌다.
72년 1월 시작된 마왕퇴 발굴은 74년 1월에야 끝이 났는데 첫 무덤과 달리 두 곳에서는 완전한 시신은 나오지 않았지만 T자형의 비단에 그림을 그린 명정, <노자>·<주역> 등의 백서(帛書), 인장, 옥기, 청동거울, 주사위, 악기 등 2000여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발굴이 있기 전까지 마왕퇴는 당(唐)나라 말기와 송(宋)나라 사이에 호남(湖南)지방에 있었던 초나라 왕 마은 부자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었다. 구릉의 모양이 말안장과 비슷하다 해서 마안퇴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출토 유물을 조사한 결과 마왕퇴는 2100년 전 서한(西漢) 때의 대부 이창(2호분)과 그의 부인 신추(1호분), 그리고 아들(3호분)의 가족무덤으로 확인되었다고 중공(中共)측은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2009년 당시 호남성 마왕퇴(馬王堆)유적을 찾아갔던 경향신문 특파원의 다음의 글은 우리에게 마왕퇴(馬王堆) 유적이 과연 누구의 것인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할 수 있다.
<갑자기 1호분과 2호분의 위치가 궁금해 물었더니 산을 가리켰다. 3호분 갱과 이어져 있는 야산이 바로 1, 2호분의 발굴지였다. 그러나 발굴지가 모두 메워져 어디가 구릉이고, 어디가 발굴장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산책나온 주민에게 물으니 “이곳에서 고분이 발굴됐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구체적인 장소는 모른다”고 했다. 안내판 하나 없는 허술한 관리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우리의 연구에 의하면 현 장사(長沙)지역은 조선사오천년의 호남(湖南) 즉 전라도(全羅道) 지역이 되는 곳이다.
물론 대륙조선 초창기 연구자들에 의해 전라도 광주(光州)로 비정되기도 했지만 이는 명백한 오류이며, 정확히는 전라도 군산(群山)이 되어야 타당한 지명(地名)이 된다.
1971년이면 모택동(毛澤東)이 살아 있을 당시다.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혁명(文化革命) 절정기의 시절로 왜소했던 한족(漢族)의 강역사(疆域史)를 대륙전체로 지명이동시키는 작업이 마무리되어가던 시점으로 우리는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마왕퇴(馬王堆)라 불리는 고분(古墳)이 존재한 장사(長沙)는 사천성(四川省)에 존재했던 한족(漢族)의 역사지명이 이동한 것뿐이며, 중국 공산당은 마왕퇴(馬王堆)라는 인류의 문화유산이자 조선민족 마한(馬韓)의 문화유적에 한족(漢族)의 역사를 덧씌워버린 후 세계학계에 마왕퇴(馬王堆)를 마치 한족(漢族)의 역사유적인 양 간교한 패악질을 해버린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아낼 수 있다.
마왕(馬王)이란 마한왕(馬韓王)을 의미했음을 우리가 현명하게 간파해 낼 수 있다면, 현 장사(長沙)지역이 조선의 전라도 즉 호남(湖南)지방이었음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엄청난 고분군(古墳群)을 만들어 후손에 남긴 마한(馬韓)의 문화수준이라면 고구려(高句麗)의 남평양(南平壤), 고려의 개경(開京), 조선(朝鮮)의 개성(開城)으로 그 유구한 역사를 호흡해온 현 서안(西安)지역의 진시황릉(秦始皇陵)이라는 고분(古墳)은 분명 대륙 중심부에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역사를 이어왔던 마한(馬韓)의 유적(遺蹟)이라는 심증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준다.
2.
군산(群山)이라는 지명의 역사와 관련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34권 / 전라도(全羅道) 옥구현(沃溝縣)의 내용을 보면,
<본래 백제 마서량현(馬西良縣)이었는데, 신라 때 지금 이름으로 고치어 임피군(臨陂郡)에 붙였고, 고려 때에도 그대로 하였다. 본조 태조 6년에 진을 설치하여 병마사로써 현의 일을 겸하게 하였고, 세종 5년에 병마사를 고치어 첨절제사로 만들었다가 후에 현감(縣監)으로 고쳤다.>
<군산포진(群山浦鎭) 북쪽으로 20리이며 진포(鎭浦) 가에 있다. 만경(萬頃)에 군산진(群山鎭)이 있었는데, 전에 해적의 침략을 당해 이곳으로 옮기고, 수군만호(水軍萬戶)를 두었다. 숙종 26년에 첨사(僉使)로 올리고, 성지(城池)를 지금의 이곳으로 정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위 글을 보면 군산(群山)이 위치했던 옥구현(沃溝縣)의 백제(百濟)때 이름이 마서량(馬西良)이라고 하는데, 이는 마왕퇴(馬王堆)와 마한(馬韓)과 모두 연계된 글자이며, 또한 제일 중요한 부분은 마왕퇴가 발견된 장사(長沙)라는 지명이 조선의 전라도 지역이 되니 이는 분명 마한(馬韓)의 땅이고, 따라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을 통해 마한(馬韓)-마서량(馬西良)-마왕퇴(馬王堆)가 서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명확히 고증해 낼 수 있게 된다.
군산(群山)이란 지명의 역사는 구한말(舊韓末) 옥구군(沃溝郡)이 개항장으로 지정(1899)되면서 옥구부(府)로 승격되었다가,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와 함께 군산부(群山府)로 개칭되며 당시 전국 12부중 하나가 되었다.
1914년 군산부의 개항장 지역만을 군산부로 남기고 나머지 지역을 옥구군(沃溝郡)으로 분리하였으며, 임피군을 옥구군에 병합하게 되었다.
군산(群山)이 서해안 중부권의 항구도시로 발돋움한 것은 일제강점(日帝强占)기로, 옥구평야와 김제평야 등의 곡창지대에서 나는 쌀을 일본으로 수탈하기 위한 통로가 되면서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되는데 이는 모두 반도조선에서의 일들이 되겠다.
3.
옥구(沃溝)라는 말은 ‘비옥한 도랑’ 정도의 뜻이 담긴 말이다.
구한말(舊韓末) 대륙조선의 군산(群山)을 찾아가려면 이 옥구(沃溝)라는 단어를 실마리로 잡고, 이전글에서 살펴본 공주(公州)와 부여(扶餘)의 위치 그리고 호남으로 통하는 조운(漕運)의 수로(水路)를 고찰하면 의외로 쉽게 찾아질수 있는 지명이라 할 수 있다.
거대한 대륙 동정호(洞庭湖)의 남쪽이라 해서 호남(湖南)으로 불리었던 대륙조선의 전라도(全羅道)
겨울에도 따뜻한 기운이 가득해 일년 이모작(二毛作)이상이 가능했던 조선의 곡창지대였던 전라도다.
현 장사(長沙)지역의 우측으로 제주도(濟州島)의 한라산(漢拏山)이 웅장하게 가로 뻗어 있고, 좌측으로는 호서(湖西)의 계룡산(鷄龍山)이 그 늠름(凜凜)한 위용을 자랑하면서 이 두 산의 좌측단과 우측단의 사이에 호남(湖南)에서 동정호(洞庭湖)로 이어지는 수로(水路)가 형성되어 조운(漕運)의 이점을 살리고 있으면서 전라도(全羅道)에서 생산된 쌀을 비롯한 풍부한 물자를 한양(漢陽)으로 올렸으니, 이를 일러 우리 선조들은 옥구(沃溝)라 명명했음을 올바로 알아들어야 하겠다.
이곳이 바로 구한말(舊韓末)의 군산(群山)이며 간악한 모택동은 조선이 빠져나간 거대한 대륙조선의 전라도 지역에 소상강(瀟湘江)을 만들어 놓고 또한 장사(長沙)라는 지명을 이전시켜 유구(悠久)한 조선의 역사를 숨겨버렸음이라!!
2022.06.28.松溪
첫댓글
계룡산이 충청도가 아니라 전라도에 있었던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