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나누고 전하는 데 앞장서는 장애어린이합창단 ‘에반젤리’ 단장
배우 손현주(51)의 턱에는 철심이 박혀 있다. 젊은 시절 작품을 하다가 턱을 다쳐서 수술한 이후 계속 몸속에 남아 있는 금속이다.
2006년엔 SBS 특집극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을 찍다가 왼쪽 무릎 슬개골이 부서지고 전후방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을 입었다. 지금도
다리를 굽히고 펴는 것에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서울 은평구 북한산성에 있는 한 아웃도어 매장에서 만난 손씨는 인터뷰하는 동안 시종일관 온화한 표정에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난해 개봉돼 화제를 모았던 영화 <더
폰> 촬영 때 손현주는 청계광장에서 자전거로 군중 속을 누비며 추격신을 벌이는 강행군을 했다. 굴지의 로펌에 다니는 변호사로 등장, 아내를
죽인 범인과 격렬한 몸싸움도 벌여야 했다. 손현주는 압박붕대를 감은 상태에서 청계천 모전교에서 뛰어내리고 상대 배우는 다리 인대가 늘어나는 등
부상을 피할 수 없을 정도였다.
Q <숨바꼭질>, <더 폰>과 <악의 연대기>(2015년)까지
연달아 스릴러 영화 주연을 맡으면서, 이른바 ‘스릴러 3부작’을 완성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A “사람들이 ‘저 배우는 스릴러만
하는가보다’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스릴러를 계속 하려고 고집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끌리는 시나리오를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겁니다. 이 얼굴로 멜로는 포기한 지 오래고요.(웃음) 시나리오를 영상으로 옮겼을 때 어떤 모습일까 기대가 되는 작품을 택하다 보니 공교롭게도
스릴러가 된 겁니다. 드라마적 요소가 강한 영화, 가족적인 내용의 영화가 들어오면 당연히 하게 될 겁니다.”
A “서울 상도동에 살았는데 어려서부터 아버지 따라서 산에 많이 갔었습니다. 대학시절에도 근교 산에 자주 올랐었지요. 1991년에 드라마 ‘서울의 달’로 유명한 방송작가 김운경을 만나 모임 ‘월산’을 꾸렸습니다. ‘월요일에는 반드시 산에 간다’는 취지였지요. 지리산, 설악산, 제주 한라산 등 국내산들을 많이 다녔습니다. 산악인 한왕용 대장, 나관주 대장, 진재창 대장 등과 ‘월산’을 같이하면서 일본, 네팔 등지로 원정 등반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는 산에 다니다 보니 아픔도 있다면서 고(故) 고미영을 언급했다. 마지막 등정 전에 잘 다녀오라고 문자까지 나눴는데 불귀의 객이 되었다는 것이다. 고미영은 2006년부터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등정에 나서 4년간 11좌를 등정했으나, 낭가파르바트 산 등정 후 하산하던 중 실족해 사망했다.
손씨는 고(故) 박영석과도 안나푸르나 산 남벽에 가기 전에 남대문시장에서 만나 무사귀환을 기원했던 인연이 있다고 한다. 그는 “이전에는 단독 산행도 더러 하고 그랬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다. 산을 다니다 보면 자꾸 욕심이 나게 마련이다. 요즘 내 화두는 안전한 산행이다. 산을 가다가 힘들면 내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어린이 돕는 게 제겐 힐링이에요”
손현주는 인연이 닿은 신부님과 함께 2005년 장애어린이합창단 ‘에반젤리’를 창단해 11년째 단장직을 맡고 있다. 합창단 유지를 위해 무명시절부터 사비를 털어 재원을 충당했다.
“‘에반젤리’는 ‘사랑을 나누고 전하다’라는 뜻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터뷰에서 이 얘기가 나오면 일부러 안 했습니다. 개미 후원자들은 더 생기겠지만, 합창단 친구들이 상처를 받으면 어쩌나 우려된 점이 컸습니다. 얼마 전부터 생각이 바뀌어서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굳이 에반젤리를 돕지 않더라도, 이러한 단체들의 존재를 대중들에게 환기시키는 효과가 있을 테니까요.”
합창단이 10년을 넘기면서 창단 때 초등학생이던 아이들 중에 스무 살이 넘어가는 아이들도 나오기 시작하자 그의 고민도 커졌다. 성장하는 아이들을 위해 청소년 합창단 창단과 에반젤리 사회문화센터를 운영하면서 성인이 된 아이들의 사회적 자립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다.
Q 10년 이상 그런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 “그 친구들 덕분에 제가 힐링됩니다. 겉으로 드러나기엔 제가 그 친구들을 돕는 것 같지만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제가 받는 게 많습니다.”
Q 일상생활에서도 기본적으로 소탈하게 생활하는 듯합니다.
A “실생활에서는 무장해제를 많이 합니다. 신비주의를 택하는 배우들도 있지만, 저는 굳이 숨어 있지 않습니다. 연기할 때는 일부러 스스로를 고립시켜 몰입과 집중을 극대화하지만, 개인 생활에서는 풀어져 지냅니다. 방 안에 혼자 갇혀서 아무리 좋은 와인이나 샴페인을 마신다 한들 불행하지 않을까요? 지방 장터나 황학동 만물상 나들이 같은 일상의 소소함만큼 재미있는 게 없지 않나요?”
손씨는 인터뷰를 끝낸 뒤엔 매니저, 코디와 함께 북한산성 인근에서 묵, 파전을 놓고 막걸리 한잔 할까 생각 중이라며 사람 좋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