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노트]
산중과 바다
나는 산중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그런지 바다보다는 산과 시냇물이 더 좋다. 팔랑거리는 나뭇잎 소리 산새 소리 시냇물 소리를 들을 때면 마치 쑥 향기를 맡고 있는 소녀처럼 얼굴색이 밝아진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부터 구례에서 살았다. 화엄사, 연곡사, 운조루를 드나들며 성장했다. 나의 성장지는 드넓은 논이 많고 마을 앞으로 강물이 흘러가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부모님과 2년을 떨어져 살았다. 오빠와 올케언니 말 잘 듣고 학교에 다니고 있으면 다음 계절에는 분명히 구례로 이사를 하시겠다는 부모님과의 약속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고아가 된 아이처럼 밤이 무서웠다. 오빠는 잘해준 것도 같았는데, 밤과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이른 아침 공동 빨래터에 가면 "산토끼와 발을 맞추며 살았지?" 동네의 어느 어른이 웃으시면서 말을 건네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부모님 없이 지낸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의 구례는 아프다. 그러나 내가 태어난 하동을 떠올릴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금세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 어머니께서 사랑한 '오리'라는 이름을 강아지, 내가 좋아했던 고양이, 누에를 키우던 아늑한 방, 외양간, 그리고 넓은 대청마루가 딸린 아래채에서 내려다보는 아랫마을 주변은 절경이다. 배나무는 뒤뜰에 앵두나무와 포도나무는 장독대 옆에 있다. 대문 입구 큰 감나무 아래를 지나 돌담 골목을 내려가서 조금만 걸으면 시냇물을 만난다. 거기에는 다래나무, 파리똥나무(토종 보리수)도 있다. 요즘도 자주 청명한 시냇물 소리가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다가 입 밖으로 쏟아진다. 그리운 부모님, 작은아버지, 이모들, 형제, 조카들이 그곳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시가 말을 건다.
내가 바다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다닐 때 수학여행을 간 곳, 여수 오동도였다. 그때 나를 바라본 오동도는 낯설고 바다는 관심 밖이었다. 파도의 움직임도 신비하지 않았고 오로지 붉은 꽃을 피운 동백나무에게만 집중하다가 바다를 떠났다. 내가 바다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이 있었을 때는 서울에서 울산으로 직장을 옮긴 후였다. 선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두 아이는 빠르게 성장하면서 바다와 물고기를 좋아했다. 매일매일 두 아이가 꿈을 키우는 사이 나도 어느새 바다가 되어갔다. 아마도 몽돌해변에서 텐트를 치고 밤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바다는 내가 더 궁금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고질병으로 고뇌하면서 머문 바다가 나의 마지막 숨까지 함께할 곳이 될 것이라는 것도 예감했다. 우리 부모님도 어떤 이유가 되었든 결국은 자식을 두고 떠날 수 있겠다는 것과 고래들도 주변 상황이 좋지 않으면 결국 어딘가로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도 바다였다. 가난과 지독한 외로움도 즐길 수 있어야 진정한 시인이다, 라고 위로해 준 것도 바다였다. 오늘 하루를 살더라도 누구든 치명적인 쓰레기는 아무 데나 버리지 말 것과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깨우쳐 준 것도 바다였다. 노을과 칸나를 사랑하게 한 것도 바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