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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일차 (2017. 8. 5. 토요일, 벤탄 시장 -호치민 광장 - 데탐거리 야시장-여행자거리)
날이 밝은 것 같아 눈을 뜨니 오전 6시 40분경이었다. 우리끼리 자유여행이라 시간 제약이 없어 10시까지 푹 자기로 했는데도 평소 습관대로 모두 일찍 일어났다. 부지런한 박경원 선생과 길기현 선생이 한국에서 가져간 컵라면과 햇반으로 아침상을 준비하여 아침을 제대로 챙겨 먹고 오전 8시경에 우리는 하나 둘씩 옥상으로 올라갔다. 숙소에 수영장도 있다고 하여 기대를 했으나 새벽에 도착했을 땐 주변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수영장이 있을만한 공간이 안보여 속았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었다. 그런데 수영장이 옥상에 있다는 말을 듣고 확인 차 올라가본 것이다. 나도 해변에 잘 어울릴 듯한 반바지 수영복에 붉은색 꽃무늬 남방 복장은 하고 따라 나섰다.
옥상에 올라가니 정말 멋진 수영장이 있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적은 인원이 물놀이 하며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그곳에는 외국인 몇명이 먼저 와서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야윈 몸매를 드러내기 싫어서 그동안 수영장이나 해수욕장을 기피해 왔지만 그날 만큼은 여행을 즐기고자 하는 들뜬 마음에 큰 맘 먹고 옷을 입은 채로 물속에 몸을 담갔다. 관리인은 수영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먼저 모퉁이에 설치된 샤워기로 몸을 씻고 들어가라고 안내하였다. 우리는 수영을 하며 호치민 시가지 풍경을 감상하였다. 주변에 시야를 가리는 높은 건물이 없어서 마치 전망대 처럼 시가지 전체를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인구 1,000만의 대도시 답게 사방이 각종 건물로 빼곡하였다.
빽빽이 들어선 콘크리트 숲을 일상적으로 보며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 풍경이 그다지 감동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도심을 흐르는 하천은 검은 빛으로 오염되어 우리에게 실망을 주었다. 다만 강변도로를 달리는 수많은 오토바이 행렬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저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여행기간 내내 도로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오토바이 행렬을 보면서 그 의문은 계속되었다. 시간이 이르고 날씨가 흐린 탓에 수영장 의 물이 다소 서늘한 느낌이 들어 우리는 물속에서 오래있지 못하고 두어 번 첨벙 거리다 바로 나와 숙소로 돌아왔다. 수영장과 함께 옥상 한쪽에 설치된 정원에서는 요가 하는 사람의 모습도 보였다.
사진 1) 옥상 수영장에 갈 채비를 하고 거실 피아노 앞에서 한 컷
사진 2) 옥상 수영장 한 모퉁이
사진 3) 옥상 수영장의 다른 한 모퉁이
사진 4) 옥상 수영장 입구 모퉁이에 설치된 샤워기
사진 5) 옥상 수영장에서 인증 샷
사진 6) 옥상 수영장에서 이헌동 교장, 박경원 선생과 함께
사진 7) 옥상 정원에서 요가하는 모습
사진 8) 숙소에서 내려다 본 주변 강변도로의 모습
사진 9) 강변도로를 누비는 오토바이 행렬
사진 10) 좀 더 근접 쵤영한 오토바이 행렬
사진 11) 옥상에서 바라본 호치민 시가지 풍경
당초 계획한 일정은 호치민 도착 첫날은 일단 잠을 푹 자고 10시쯤에 일어나 오전에 수영을 즐기고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12시쯤에 시내로 나가 쌀국수로 점심을 먹고 오후엔 벤탄 시장 등을 둘러보며 시티투어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모두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수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씻고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나서도 9시가 넘지 않았다. 점심시간까지 숙소에 머무르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그래서 우리는 오후 일정을 앞당기기로 뜻을 모으고 숙소입구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호치민에서 유명하다는 벤탄 시장으로 향하였다.
그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빗나가기를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숙소를 나서자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벤탄 시장은 숙소에서 멀지 앉은 곳에 있었다. 택시에서 내려 비를 피해 빨리 시장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요금을 계산하는 박경원 선생이 운전기사와 시비가 붙어 서로 삿대질을 하며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걱정이 된 길기현 선생이 택시 쪽으로 되돌아가 분쟁의 내용을 살피고는 껄껄 웃었다. 택시요금이 베트남 화폐로 6만동이 나왔는데 박 선생이 1만동을 주면서 거스름돈을 달라고 하니 운전기사가 기가 막혀 손짓 발짓을 해가며 항의를 한 것이다.
베트남 화폐는 단위가 커서 계산하기가 많이 헷갈린다. 화폐가치가 대략 우리 돈의 1/20로서 가장 간편하게 계산하는 방법은 우선 뒤에서 0을 하나 빼고 나누기 2를 하면 된다. 택시요금 60,000동을 이 방법으로 계산하면 우리 돈 3,000원쯤 되는 셈이다. 그런데 박 선생이 숫자가 헷갈려서 10,000동, 그러니까 우리 돈 500원을 주면서 거스름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으니 베트남 운전기사가 환장할 노릇이 아니겠는가? 길 선생의 중재로 10만동짜리 지폐로 바꿔내고 4만동의 거스름돈을 받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우리는 모두 오해가 풀렸다며 함께 껄껄 웃고는 운전기사와 악수를 나누고 시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때 길 선생이 갑자기 뒤돌아보며 ‘아차 내 우산’하며 소리 질렀지만 택시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우산을 챙겨 나왔는데 택시에서 내릴 때쯤 비가 소강상태를 보이자 뒷좌석에 그냥 두고 내린 것이다. 그는 아쉬운 듯 택시 떠난 자리를 힐끗 힐끗 쳐다보며 ‘에이 씨’를 연발하였다. 내가 그 때 그 택시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지금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사진 12) 택시요금 문제로 운전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
사진 13) 숫자 단위가 헷갈리는 베트남 지폐 (인터넷 자료사진)
벤탄 시장(Chợ Bến Thành)은 호찌민 시내 중심가인 레 로이(Le Loi) 거리에 위치한 최대 규모의 시장으로 호찌민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곳이다. 프랑스 식민 정부 시절인 1914년 문을 연 이래 약 100년 동안 시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꾸준한 인기를 얻어 호찌민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시장 입구는 총 네 군데로 나뉘며 넓은 중앙 통로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통로가 이어진다. 광대한 부지에 상점 2,000여 개가 빼곡히 들어서 미로처럼 복잡해 보인다.
우리는 시장 안으로 들어가 이곳저곳 구경을 시작하였다. 서양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도 눈에 많이 띄었다. 각각의 통로마다 구역이 나뉘어 의류, 신발, 원단, 가죽 제품, 귀금속, 주방용품, 침구류, 미용 제품 등 수많은 상품들이 진열되어있었다. 한국말로 호객행위를 하는 점원들을 피해 이리 저리 다니는데 시장 구경을 하다가 출출할 때 간단히 한 끼를 때우기 좋은 음식물 코너도 보였다. 당초 일정대로라면 아마도 이곳에서 쌀국수 등을 사먹으며 점심을 해결했을 텐데 구경을 다하고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라 점심은 다른 곳에서 먹기로 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사진 14) 벤틴 시장 입구 (인터넷 자료 사진)
사진 15) 벤탄 시장 내부 풍경
사진 16) 벤탄 시장안 음식점 코너
사진 17) 벤탄 시장안의 음식점과 일반 상점이 혼재해 있는 모습
사진 18) 벤탐 시장 내부 풍경
그 시간 마침 베트남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박경원 선생의 친구와 연락이 닿아 그 친구를 시내에서 만나 안내를 받기로 했다. 약속장소가 시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고 하여 시내 구경도 할 겸 걸어서 찾아가기로 했다. 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큰 비는 아니어서 우산을 쓰고 나섰다. 비가 오는데도 비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조금 걸어가니 인민위원회 청사도 보이고 그 앞쪽으로 호치민 동상이 있는 광장도 나타났다.
호치민은 염소수염에 색 바랜 노동복, 낡은 타이어를 잘라 만든 샌들을 신은 초라한 모습이지만, 그는 약소국 베트남을 이끌어 프랑스와 미국을 항복시킨 베트남민족의 영웅으로 일컬어진다. 베트남 통일 후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 시는 이 위대한 지도자의 이름을 따서 호치민 시라고 부르게 되었다. 베트남 지폐에도 그의 얼굴이 있고 공공장소마다 그의 사진이 걸려 있을 정도로 베트남 사람들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호치민을 손꼽는다고 한다.
호치민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접었던 우산을 서둘러 펼치며 길건너 인근 백화점 건물 처마 밑으로 대피하였다. 백화점은 현대식으로 지어져 고가의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왕래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한산한 느낌이 들었다. 이 와중에 박경원 선생은 와이파이가 고장 났다며 친구하고 연락해야 되는데 큰일이라고 혀를 끌끌 찼다. 우리는 잠시 스치고 지나가는 소나기이기를 바라며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백화점으로 들어가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빗줄기는 더욱 강해져 더 이상 걸어서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사진 19) 벤탄 시장 주변 풍경
사진 20) 인민위원회 청사
(1901~1908년 사이 건축된 이 건물은 프랑스 식민 통치자들의 공회당이었다. 현재는 호찌민 시 인민위원회 청사로 쓰이고 있는데, 호찌민의 상징적인 건축물 중 하나이다.)
사진 21) 인민위원회 청사 첨탑
사진 22) 호치민 동상
사진 23) 호치민 동상 앞에서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다행히 와이파이가 작동이 되어 우리는 박 선생의 친구와 연락을 취하며 약속된 장소로 택시를 타고 이동하였다. 시내 어딘가에서 내리니 어느 건물 처마아래서 그 친구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시간이 11시경이라 점심을 먹기가 애매했지만 그 친구는 우리의 의견을 듣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맛집으로 가자며 길가에 세워둔 자기 차에 우리를 태우고 어디론가 달렸다. 변두리에 있는 허름한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한 그는 고급식당이 아니라서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음식 맛이 일품이라 후회하지는 않을 거란 말을 강조하였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고급식당이 아니라 베트남 특유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바로 이런 곳”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우리는 종업원의 손짓에 따라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만으로 공간의 절반정도가 채워질 정도로 식당은 협소하였다. 단체 관광객들은 아마 들어오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는 선택받았음을 기뻐하며 음식 나오기를 기다렸다. 자리에 앉은 지 10여분쯤 지난 11시 30분경에 게 튀김과 새우튀김을 비롯한 게를 재료로 한 여러 종류의 요리가 차례로 탁자위에 놓였다. 우리는 하나씩 집어서 맛을 보며 “이야! 맛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우리는 처음 접하는 진귀한 음식을 배불리 먹으며 이곳으로 안내해준 그 친구에게 칭찬과 감사의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 24) 비가와서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로 이동
사진 25) 차창을 때리는 굵은 빗방울
사진 26) 굵은 빗줄기 속에서도 비옷을 입고 운전하는 오토바이 행렬
사진 27) 변두리 허름한 맛집 식당
사진 28) 맛집 식당 앞에서 인증 샷
사진 29) 식당 2층 홀에서 메뉴판을 보고 주문할 음식을 고르면서
사진 30) 맛있는 여러 종류의 요리
사진 31) 우리나라에선 구경하기 힘든 게속살 요리
우리는 그곳에서 그 친구에게 베트남 생활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보며 식사 후에도 한참을 얘기하다 차 한잔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왔다. 마침 식당 바로 옆에 커피재료를 파는 가게가 있어 커피를 시켰는데 커피 타는 것은 안해봐서 자신이 없다는 가게 주인의 말에 주문을 취소하였다. 그 친구는 근처에 마땅한 곳이 없다며 자신의 차에 다시 우리를 태우고 자신이 사는 아파트 단지 커피숍으로 데리고 갔다. 그 아파트는 외관이 우리나라 신도시 아파트처럼 매끈하고 상당히 고급스러워보였다. 1층 일부공간은 커피숍등 상가로 되어있고 마당에 넓은 수영장이 있는 것이 특이하였다. 길이가 50미터가 넘어 보였다. 열대지방이라 수영장이 필수시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32) 호치민에 있는 수영장이 딸린 고급아파트(인터넷 자료사진)
우리는 그곳에서 차를 한잔하며 담소를 나눈 후 다음코스로 이동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비는 내리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일정을 앞당기다보니 오후 일정이 텅 비게 되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날씨 탓에 다시 도보로 시내구경하기는 틀렸고 고심 끝에 저녁이후로 예정된 전신마사지를 먼저 받기로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택시를 타고 그 친구가 추천해준 마사지 숍으로 이동하였다. 마사지는 하루 종일 걸어서 지치고 피곤할 때 받아야 제 맛인데 멀쩡한 상태에서 받으려니 썩 마음 내키지가 않았다. 더구나 나는 몸이 여위어서 힘을 주어 주무르면 시원하기는커녕 아프다. 하지만 베트남 여인들이 하는 전신마사지의 손맛은 어떤 특별함이 있을지 호기심이 작동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기꺼이 동참하였다.
마사지 숍에 들어가니 분위기가 야릇하였다. 아오자이를 입은 여직원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1층 탈의실에서 찜질방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손짓하는 마사지실로 들어가니 마치 우리가 오길 기다린 듯 다섯 개의 낮은 침상이 놓여있고 다섯 명의 젊은 여인이 각각의 침상 앞에 서서 우리를 반기었다. 조명은 약간 어둠침침하였다. 들어가는 차례로 침상에 앉다보니 나는 그중 가장 키가 크고 괜찮아 보이는 여인이 서있는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다녀갔는지 그녀들은 몇 마디 한국말도 할 줄 알았다. 그녀들은 우리를 눕혀놓고 큰 수건으로 배를 덮은 후 따뜻한 물로 발을 씻기는 것으로부터 마사지를 시작하였다. 나를 담당한 그녀는 다른 여인들과 같은 동작으로 내 오른쪽 다리를 먼저 잡고 발바닥, 종아리, 허벅지를 순서로 힘차게 문질렀다. 나는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 신체부위를 수시로 바꿔가며 부드럽게 살살 만져주었으면 하는 나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오빠 아파?’ 하면서도 주어진 시간인 1시간 30분을 쪼개어 각각의 신체부위에 배당된 시간만큼 손에 힘을 주어 쥐어짜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였다.
허물이 벗겨질 것 같은 고통을 젊은 여인의 신체접촉에 따른 묘한 쾌감으로 상쇄하며 버텨내고 있는데 벽걸이 에어컨의 찬바람이 나에게 집중되어 그 쾌감마저 뺏어가고 말았다. 등 뒤 마사지를 위해 상의를 탈의하고 나니 더 추워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에어컨 바람을 좀 약하게 해달라고 손짓했더니 그녀는 말귀를 못 알아듣고 더 세게 틀었다. 나는 추웠지만 온 힘을 다해 애를 쓰는 그녀는 더웠던 것이다. 뜨거운 돌로 등을 문지르는 순서가 있어서 나에겐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나이가 22살이라고 하면서 자꾸 나에게 나이를 물었다. 나는 생물학적 나이를 댄스 나이로 환산하여 손가락 4개를 펴서 보여주었다.
팔과 어깨, 등을 거쳐 다리를 꺾는 레슬링 동작을 끝으로 전신마사지는 종료되었고, 난 감기에 걸릴 것 같은 위기에서 벗어났다. 나와는 달리 자리에서 일어난 일행들은 모두 ‘아! 시원하다’라고 외치며 흡족해 하였다. 박경원 선생이 대표로 그녀들에게 팁을 나눠주고 우리는 그녀들과 작별하였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데 그곳을 담당하는 종업원 청년이 ‘수고했다’는 나의 인사에 뭔가를 기대한 듯 나에게 ‘오우 잘 생긴 분!’하면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주었다. 나는 지갑에서 2달러를 꺼내어 팁으로 주었다. 마사지를 받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사진 33) 전신마사지를 받은 마사지 숍
사진 34) 마사지 숍 탈의실 관리담당 종업원과 함께
숙소에 들어와서도 오후 4시가 넘지 않았다. 저녁시간까지 잠을 더 자기도 그렇고 마땅히 할 게 없어서 오랜만에 훌라를 하며 여유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야시장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6시경에 다시 복장을 챙겨 바깥으로 나갔다. 택시를 타고 벤탄 야시장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더니 불과 몇 분이 지난 후 택시기사가 내려준 곳은 바로 우리가 오전에 방문했던 벤탄 시장이었다. 우리는 황당하여 그곳을 지나는 여러 사람을 붙잡고 손짓 발짓을 해가며 야시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서있는 자리가 야시장이라고 하였다. 벤탄 시장이 문을 닫으면 바깥 도로에 오후 7시부터 야시장이 형성된다고 하였다. 가만히 보니 상인들이 도로 양편 인도에 재두었던 천막포장들을 하나둘씩 펼치며 야시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이 낯에 한번 와본 곳이라 신비감이 없어졌고 야시장이 열리기까지 기다리는 것도 마음 내키지 않아 다시 택시를 타고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섰다. 운전기사에게 ‘데탐’으로 가자고 했는데 서툰 억양 때문에 말을 못 알아듣고 자꾸 엉뚱한 곳으로 차를 몰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핸드폰으로 검색한 지도를 보여주자 그때서야 알아차린 듯 고개를 끄떡이며 차를 되돌려 시내 어딘가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택시에서 내리자 길 건너 공원에서 쿵작쿵작하는 음악과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가니 광장에는 조명불빛이 번쩍이는 간이무대에서 길거리 가수가 공연을 하고 있고 거기서부터 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진 천막 아래로 야시장이 펼쳐져 있었다. 시간은 오후 7시경이었다.
잠시 공연을 감상하다가 천막 안으로 들어가 몇 개의 옷가게를 지나니 연기로 자욱한 먹거리 코너가 길게 이어졌다. 흔히 보는 꼬치에서부터 이름을 알 수 없는 것까지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조리하는 각각의 코너 마다 이를 사먹으려는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이 모습을 보고 신이 난 박경원 선생은 ‘그래 바로 이것이야!’라고 하면서 우리를 자리에 앉혀놓고 길 선생과 함께 코너 마다 다니며 음식을 사다 날랐다. 김밥과 라뽁기 등 낯익은 메뉴도 눈에 띄었다. 라이스페이퍼에 각종 재료와 양념을 넣고 반으로 접어서 구워 만든 베트남 피자와 과일즙을 냉동철판위에 펼쳐 얼린 다음 끌로 긁어 둥글게 말아 만든 롤 아이스크림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파는 음식을 종류마다 한 번씩은 다 먹어볼 요량으로 이것저것 주문하였으나 몇 가지만 먹고도 배가 불러 나머지는 눈요기로 대신하고 아쉬움을 남긴 채 오후 8시 30분경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진 35) 데탐 거리 간이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
사진 36) 데탐 거리 야시장 풍경
사진 37) 데탐 거리 야시장 꼬치 전문코너
사진 38) 데탐 거리 야시장 베트남 피자 코너
사진 39) 데탐 거리 야시장 베트남 피자
사진 40) 데탐 거리 야시장. 롤 아이스크림 가격표(우리 돈 약 1300원)
사진 41) 롤 아이스크림 제조 과정(냉동철판위에 펼친 재료를 끌로 긁어 올리면 둥글게 말아진다)
사진 42) 자리에 앉아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사진 43) 음식을 다 먹고 정리를 하며
길 건너 모퉁이를 돌아 조금 더 걸어가니 건물 여기저기에서 반짝이는 조명과 함께 음악이 울리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노변 탁자에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나타났다. 여행자거리라고 한다. 차 없는 거리에는 많은 동서양의 사람들로 붐볐다. 나도 이 날 만큼은 세월을 잊고 외국 젊은이들과 어울려 한편의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는데 의외로 일행들은 몸을 사리며 소극적으로 반응하였다. 길거리 군데군데서 어여쁜 베트남 아가씨들이 우리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며 유혹했지만 이 교장을 필두로 ‘함부레 그런데 넘어가면 큰일 난다’며 모두 손사래를 쳤다. 우리는 주변식당에서 파인애플 밥을 안주로 하여 간단히 맥주 한 잔하고 9시 20분경에 이 거리를 빠져나왔다.
사진 44) 어행자거리 입구
사진 45) 여행자거리 풍경(1)
사진 46) 여행자거리 풍경(2)
사진 47) 여행자거리를 지나는 우리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며 유인하는 베트남 여인
사진 48) 어느 주점에서 맥주와 음료를 주문한 후
사진 49) 파인애플 밥(신기했으나 맛은 별로 였다)
우리는 여행자거리를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숙소 앞 도로에서 내렸는데 앞자리에 앉아 택시요금을 계산하던 박경원 선생이 또 요금 때문에 시비가 붙었는지 한참 동안 내리지를 않았다. 돈 계산이 복잡했던 모양이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길 선생이 가서 택시 안을 들여다보니 박 선생은 그때서야 요금계산을 마치고 택시에서 내렸다. 뭔가 불만이 있는 듯 투덜거리며 우리에게 다가오던 박 선생은 가방을 만지더니 갑자기 놀란 듯 뒤돌아보며 ‘아! 내 핸드폰’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택시는 ‘부웅’하면서 급가속을 하며 떠났다. 여행의 모든 정보가 담긴 박 선생의 핸드폰이 없어지면 우리도 큰일이었다.
택시기사가 박 선생에게 고의로 말을 길게 걸며 주의를 흐린 다음에 기어스틱을 잡고 있던 오른 손으로 박 선생의 허리 왼쪽에 매고 있던 가방에서 핸드폰을 빼갔다고 하였다. 모두 큰일 났다고 탄식하며 안절부절 하는 중에 마침 그곳에 있던 경찰관에게 내가 찍어 놓은 택시사진을 보여주며 절도범을 잡아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순간 도로를 유턴해 오면서 정세를 살피던 택시기사가 그 모습을 발견하고 반대편 차선에 차를 멈추고는 차창을 열고 중앙분리대 너머로 핸드폰을 얼른 돌려주고 달아났다.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숙소에 들어와 씻고 누우니 오후 10시가 넘었다. 많은 것을 보고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는 하루였다.
사진 50) 핸드폰 사건의 택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