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백신
포루투갈 목장 : 황태용 집사
저희 가정은 2년간의 코로나로 삶속 변화 중 가장 큰 것은
사춘기 절정의 중딩 친구들과 집에서 지지고 볶고 한 것입니다
교회에 못가고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기간,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여 가정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편안한 집에서 드리는 예배이니 아이들의 반항도 심하였습니다.
하루 15분밖에 안 되는 쥐꼬리만 한 예배시간 늘 입이 나와 있는 첫째가 하는 말은
“ 아빠 오늘따라 집중이 안 되네요 !” 이거나 “ 오늘은 너무 졸려서 !” 이었습니다.
“ 우리의 자유를 보장해 달라 !”고 늘 외치는 저희 집 첫째 돌아온 탕자의 문제는
6일 내내라는 점입니다.
다행히 저희 집 둘째는 예배를 잘 드립니다.
그런데 이 친구도 좀 이상합니다.
“ 예배를 건성으로 드리는 누나를 심판해 달라, 아니면 내가 심판하겠다.” 입니다.
딱 집에 있는 탕자 모습입니다. 그러고서 예배 후 나는 누나와 다르니 보상해 달라고
합니다. 물론 보상은 누나보다 자신을 더 칭찬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집에 있는 집탕, 돌탕과 함께 사는 저 역시 성경에 나오는 인자한 아버지이면 좋겠는데…
매를 들고 때리거나 협박도 하면서 “ 이렇게 예배드리려면 오늘은 때려 치자~!”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참을성이 없고 화도 잘 내는 사람인가를 똑똑히 알게 된 것 이 코로나 기간 시작된 가정예배를 통해서 이었습니다.
저희 가정에 찾아온 어려움은
21년 한해를 미리 알았더라면, 고민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었을 것입니다.
첫 번째 찾아온 어려움은 아버님의 소천이었습니다.
어머님 사별 후 홀로 계신 아버님은 암수술과 항암치료 후, 재발되셔서 입/퇴원, 응급실
오가기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21년 3월 까지 가족과 함께 하였습니다.
코로나 방역수칙으로 병원과 호스피스에 계신 동안 면회 신청도 제한되어
병원 입구에서 영상 통화로만 만날 수 있었던 어려운 시간들을 걷게 하셨습니다.
둘째 어려움은 저의 갑상선암 수술이었습니다.
아버님을 떠나보낸 3월, 회사에서 받은 건강검진에서 갑상선 암이 의심되어 재검 통지를 받았습니다.
이미 지난 2년간 건강검진에서도 의심 소견으로 세침검사를 받았지만 음성으로 판명되어
‘이번에도 괜찮겠지! ‘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검사에서는 암으로 확인되어 서울의
병원으로 전원 되었습니다. 이후 갑상선과 전이된 림프절 수술 및 방사선 치료를 받았습니다.
세 번째 어려움은 아내의 유방암 수술입니다.
10년 전 유방암 초기 시술 이후 잘 지내오던 아내도, 재발 소견으로 저와 같은 달, 같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2주의 간격으로 아내는 저의 보호자로, 저는 아내의 보호자로 번갈아 가며
환자의 경험을 하며 저희만의 힘으로는 지나기 어려운 시간들을 갖았습니다.
하나님은 저희 부부에게 아버님의 죽음과 암 치료의 경험으로
50이라는 인생의 전환점에 맞추어 삶을 다시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희 가정에 미리 말씀의 백신을 맞게 하셨습니다.
평소 병원과 별로 상관없이 살던 저에게 암환자라는 꼬리표는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또한 아내와 아이들에게 뭐라고 이야기 할지 걱정되었지만,
가족예배 시간에 주신 요한복음 말씀과 함께 이야기 하였습니다.
< 요한복음 9:1~3 >
“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이니이까? 그의 부모이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
“ 애들아, 아빠가 건강검진에서 암에 걸렸다고 하네!
근데 이게 누구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일을 나타내고자 그러신 거래!
아빠 뭐 죄 지은 거 있으세요? 잘못한 것 있지요?
우리 집 집탕 순호가 말합니다.
야 그럴 줄 알고 오늘 본문에 그러시잖아,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이 이렇게 된 것이
그의 죄도, 그 부모의 죄도 아니고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으시다고…! “
이렇게 저의 암 진단은 요한복음 속 맹인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하실 일이란 무엇일까?
그 일들이 얼마나 좋은 것이기에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긴 세월을 맹인으로 살았어야 했을까?
여러 질문들이 제 머리를 두드렸지만
마음에서 올라오는 “왜 하필 내게...?” 라는 원망의 칼날에 든든한 방패가 되어 주었습니다.
한주가 지나 죽은 나사로를 향해 가시는 본문에서 또 제게 말씀하십니다.
< 요한복음 11:4 >
“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
“ 애들아 이것 봐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고 하시잖아!”
그런데 뒤이어 나오는 깨름직한 말씀도 있었습니다.
“ 나사로가 이미 무덤에 있은지 나흘이라 ”
이미 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2년간의 추적 검사 동안 암전이가 진행된 것은 아닐지,
그래서 치료의 적기를 놓친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어지는 요한복음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은 제게 말씀하시고 저도 하나님께 구하였습니다.
< 요한복음 11:25 >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예 주님, 죽어도 살겠고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로 제가 죽는다는 것인지, 죽지 않는 다는 것인지 좀 속 시원히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2주에 걸쳐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주신 말씀의 백신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나사로처럼 살려주셔서 저의 영광을 받으셨으면 더 좋겠습니다.
며칠 후의 요한복음에서는 제가 드린다는 영광이 예수님의 받으신 영광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요한복음 13:31 >
“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
한주 전 제가 생각하였던 영광은 나사로도 살고 나도 살아서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으로 이해
하였는데, 오늘은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팔러 나가는데도 예수님은 당신뿐 아니라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셨다고 하니 도대체 이 영광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어려운 시간을 지나며 구해야 할 영광은 나사로의 부활일 수도,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팔려 십자가의 죽음으로 가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영광은 지금 내게 관심의 대상인 “삶과 죽음의 문제”를 넘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맹인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이 하실 일의 나타냄” 이었고, 나에게는 이미 하신 일인
“자녀 됨의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암으로 건강을 잃어 버렸지만, 예수님께서
이루신 “하나님 자녀 됨의 선물”을 저는 이미 가지고 있었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저의 간구는 “고쳐주세요, 낫게 해주세요. 에서
“이 걸음을 주님과 함께 걷게 하여주세요!, 저희 가정이 하나님이 예비해주신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힘을 주세요!” 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왜 우리 가정에 암을 주셨을까요?
저희 치료의 소식을 듣고 목회자 세미나 때 방문하셨던 선교사님께서 욥기 설교집(박영선 목사님) 을 보내 주셨습니다.
‘ 주님은 저를 잠시 욥의 동생처럼 대하시는가?’ 라는 생각으로 입원기간 읽게 된 책속에서,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며 깨달은 점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제 생각이 암에 걸린 것은 죄를 지어서 벌을 받는 것일 거야! 에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으시다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방향성입니다.
암이 낫게 되고 고난의 시간이 멈추면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녀의 선물을 주시기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은 쉽게 해결할 수 있으신
제 모든 어려움들을 당신의 목숨을 건 방식으로 해결하셨으며,
저도 그 삶으로 부르고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이 부르심의 순종을 위해 반드시 내가 죽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나의 필요를 내가 채워가는 삶이었다면,
이제는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다고 인정하는 순종의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쳐 죽어지는시간이 있어야
비로서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맡길 수 있는 존재가 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수술 후 회복기간 병원에서 이어진 묵상입니다.
< 요한복음 21:15~17 >
“ 요한의 아들 시몬아,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되 내 어린양을 먹이라 “
50까지는 회사에서 일하는 보람과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기쁨으로 푹 빠져 지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를 멈추시고 삶의 이정표를 다시 바로 세우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여전히 회사에서는 문제해결들 속에 뒤엉켜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 전 처럼 제 주변의 어려움 해결만을 부르짖으며 살아가지 않으려 합니다.
건강한 사람보다 아픈 분들이 더 잘 보이게 되니, 저희 부부처럼 건강에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계신 지체들이 있다면 살피며 함께 걷겠습니다.
제게 주신 목장의 목원 분들을 먹이시라는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들이 또 다른 분을 섬기는
자리에 서도록 위로 하고 격려하며 섬기겠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의 시간을 지나며 꼭 필요한 것은 지체들의 돌아봄이라고 생각됩니다.
저희 가정도 그러한 분들이 계셨기에 이 시간 간증으로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시간들을 이겨가도록 동행하며 위로해 주신 목사님 가정과 전도사님,
병원을 오갈 때마다 김천구미역에서 집까지 차편으로 섬겨주신 장로님, 권사님
기도의 응원으로 손 모아 주신 초원 식구 분들,
아이들만 남겨진 저희 부부의 빈자리를 채워주신 목원 분들,
저희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신 목자, 목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암과 죽음이라는 단어가 두려움으로만 다가올 사춘기 시절, 말씀 백신을 맞으며
가족 예배로 함께 걸어준 지선, 순호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저희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두려움으로 떨 수밖에 없는 고난들마저
협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으며,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글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