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대상을 고립시키기 위해 여럿이 같이 뭉쳐 배척하는 일.'이에요.
이를테면,
노동자가 단결하여 고용주의 부당한 횡포에 대항하는 것, 소비자가 단결하여
어떤 상품을 사지 않는 불매 운동, 국
제 질서를 어지럽힌 나라에 대해 주변 국가가 동맹하여 항의 표시를 하는 것 등이 있겠지요.
이 말은 아일랜드의 지주 캡틴 보이콧(1832-97)에게서 유래되었어요.
한때 육군 대위였던 이 지주는 어찌나 소작농들에게 지독하게 굴었던지 농민
들의 반발뿐 아니라 지주 사회에서도 따돌림을 받고 있었어요.
1879년 아일랜드에는 전에 없는 큰 흉년이 들었어요.
그러자 농민들은 걱정거리에 휩싸였어요.
"큰일이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농민들은 저마다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었어요.
"그렇게 한숨만 쉬지 말고 뭔가 살 방법을 찾아봅시다."
"흉년이 들었는데 어디서 도둑질을 하지 않는 이상 무슨 방법이 있겠소?"
"아니오, 우리농민들이 힘을 뭉치면 뭔가 좋은 방법이 생길 거요."
이렇게 해서 그 해 토지 동맹이 결성되었어요.
그리고 이듬해인 1880년 토지 동맹은 소작료를 25% 내려 줄 것을 요구했어요.
그러나 지주 보이콧은 그들의 요구에 콧방귀를 뀌었어요.
"흥, 어림없는 소리 마라! 제놈들이 농사를 잘못 지어서 흉년이 든 걸 왜 나한테 와서 하소연이야."
보이콧 아래서 농사를 짓는 소작인들은 눈앞이 캄캄했어요.
"잘못하다간 다 굶어 죽게 생겼소."
"정말 지독한 사람이야. 이런 흉년에는 소작료를 좀 깎아 줘야 우리도 살 수 있을 텐데...."
보이콧은 소작인들의 딱한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강제로 소작료를 전부 거두어들였어요.
그러나 먹을 것도 부족한 터라 소작료를 내지 못한 농민이 대부분이었지요.
화가 난 보니콧은 그 해 9월 추수 무렵에 이런 명령을 내렸어요.
"소작료가 밀린 녀석들은 앞으로 땅을 빼앗고 쫓아 버리겠다!"
보이콧은 그야말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만한 지주었어요.
이 소식이 전해지자 농민들은 술렁대기 시작했어요.
토지 동맹의 지도자인 찰스 스튜어트 파넬은 이런 지시를 내렸어요.
"소작료를 깎아 주지 않는 지주에겐 폭력을 쓰지 말고 대신 일손을 놓고
어떤 접촉도 하지 마시오. 모두 가을 추수를 거부하시오!"
보이콧은 순간 당황했으나 다른 지역에서 일꾼들을 데려와 군인들의 호
위를 받으며 겨우 추수를 마칠 수 있었어요.
그러나 그는 전체 소작민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여 결국 영지에서 쫓겨나고 말았어요.
그 소문은 순식간에 독일, 프랑스 등지에 퍼져 '보이콧'이란 낱말까지 생기기에 이르렀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