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1 사랑나누기 행복더하기
호접란
나눔과 섬김 송미경 집사
예뻐서 보고, 신기해서 한 번 더 보고, 기특해서 옆에 쪼그리고 앉아 보고 또 본다. 개업이나 축하할 일이 있어서 난을 선물할 때만 해도, 나는 난의 진가를 알지 못했다. 사군자가 매난국죽(梅蘭菊竹)이라고 교과서에서 배우기만 했지, 그 진가를 알고 충분히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 나에게 호접란 “나, 이런 존재요.” 라며 증명이라도 하듯 제대로 진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사를 하고 짐을 정리할 때 새로운 집에 테라스가 있어서 화분들을 모두 밖으로 내어 두었다. 늘 거실에 갇혀있던 불쌍한 애들이라 햇빛도 실컷 누리고 지나가는 바람도 마주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라고…, 그런데 그날 하루종일 강한 바람이 불었다. 테라스에 나갈 때마다 얼른 들어오고 서둘러서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다음 날은 더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식물들은 강한 바람이 이끄는 대로 이리 흔들리고 저리 부딪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그다음 날도 바람이 멈추기는커녕 갈수록 더 강한 바람이 불어서 문을 열어둘 수가 없었다. 윤이 나던 이파리들은 파리해진 채 이리저리 팍팍 쓰러지는 것들이 보였고, 흙에 준 물은 금방 바짝 말라갔다. 견뎌보라고 마른 흙 위에 물만 더해 주었다. 다음 날도 바람은 강도를 더해 불어서 어느새 돌풍이 되었다. 외출을 하다 보면 이 정도의 바람은 아닌데, 이상하게 우리 테라스에만 부는 것 같았다. 바람은 좀처럼 잦아들지를 않았고, 식물에게는 어느새 토네이도급으로 변해서 불어 재꼈다. "얘네들 다 죽겠다. 거실로 데리고 와야겠다." 보다 못한 남편이 일주일이 지나도 안 되겠다 싶어서 결국 화분들을 다시 안으로 들였다.
결국 화분이 쓰러지고, 식물은 돌풍을 경험한 생채기를 그대로 지닌 채 이파리들이 처참하게 무너지거나 찢어졌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패전병을 마주하는 것 같이 마음이 아팠다. 행복하게 지내라고 보냈는데…. 그 일주일간의 난리 속에서도 고고한 자태로 꽃을 지키고 피우며 고스란히 살아남은 것이 바로 호접란이었다. 12월 14일 임직식을 축하하며 집사님 한 분이 보내신 것이니, 벌써 4개월 이상 변함없는 꽃을 피우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두툼하고 묵직한 잎은 강한 돌풍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 괜히 사군자가 아닌가 보다.
심하게 찢어지고 떨어져 나가고 무너져내린 이파리들을 여기저기 잘라주고 손질하는 내가 구급대원이나 응급구조사가 된 기분이다. 꺼져가는 생명줄을 끝까지 붙잡아두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다. 생채기가 제일 심했던 오션은, 이제 다시 이파리에 윤이 흐르며 컨디션을 회복했다. 어디 식물만 그럴까? 사람도 어렵고 힘든 시기를 지나 봐야 그 진가를 제대로 알지 싶다. 그 사람 진국인지 텅텅 소리 나는 빈 그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