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의 가문이 원수의 손에 몰락했다. 힘겨운 나날을 보내며 산 속을 헤매다 오래된 동굴에서 절세비급(絶世秘及)을 한 권 얻는다. 복수라는 의지와 신념을 굽히지 않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무공을 터득하고 원수를 찾아간다. 간교한 꾀에 빠져 때때로 위기를 겪지만 슬기로 위험을 헤치고 나온다. 요약하자면, 이렇게 닳고닳은 무협지 스토리다.
(남녀 이분법으로 따지자는 건 아니고)보편적인 남자라면 누구나 무협지를 읽고 중원을 누비는 절세 고수가 되기를 꿈꾼다. 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시대의 영웅이 되길 바라는 로망을 무협지속에서 찾는다고나 할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까. 더더군다나 주인공 병태(재희)는 괴롭힘 자체가 일상인 왕따가 아닌가. 그런 그에게 전설의 은둔고수 판수(백윤식)가 강림하셨다. 하늘에서 절세비급이 뚝 떨어진 것처럼.
왕따가 있으니 당연히 괴롭히는 학생도 있을 테고, '싸움의 기술'이란 제목이 붙었으니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까지 시쳇말로 안 봐도 비디오다. 더러 뜬금없는 캐릭터가 들쭉날쭉하는 통에 다소 산만한 구석도 있지만, 워낙에 간단한 구성이라 차라리 꾸밈음처럼 다채롭게 보인다. 이렇게나 뻔한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는 것은 폭압의 시대(말죽거리 잔혹사, 2003)를 지나고 학내폭력 문제가 이 시대의 고민이라는 것. 실제로 지난 2004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창원의 왕따 동영상과 해당 학교장의 자살사건이 현재 우리 학교의 자화상이 아닌가.
전반적인 이야기가 조악한 판타지 수준이 아닌 것은 '네 안의 두려움을 떨쳐라'는 교훈이 꽤나 멋들어진다는 점과 그 중심에 존재 그 자체로 아우라가 되는 백윤식이라는 걸출한 배우가 있다는 것. 예순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에너지가 넘친다. 유사 부자관계 또는 못난 제자를 둔 사부의 역할에서 위엄을 갖춘 은둔고수로 비치는가 했더니 물총 싸움하는 개구진 모습까지, 그의 다양한 페르소나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그런데, 예순 살이면 중년인가, 장년인가, 노년인가. 우리나라에서도 중장노년 배우 단독주연의 특히, 멜로영화가 만들어진다면 그건 아마도 백윤식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학교풍경은 낯익다 못해 변함이 없다. 존중하겠다던 학교 인권은 어디로 사라지고 아직까지 이 모양이란 요꼴이란 말인가.